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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IS 컴포넌트 추출기법

        박태옥,김계현 한국공간정보시스템학회 2002 한국공간정보시스템학회 논문지 Vol.4 No.2

        The CBD(component based development) method has recently been on the rise as the main current among all fields of developing Information Systems. The developing system by building and intergrating of components is encouraged in GIS sphere. Business domain which considerably identifies components occupies GIS shpere rather then any other sphere. Arithmetic function is quite needed in GIS sphere but non-arithmatic functions are also used in GIS sphere as wellas in enterprise sphere. Component is characterized by ensuring the reuse of itself. The efficiency of reusing component is promoted as the component is functionally simple and is packed to a minimum. The GIS Component Extraction Method has already been presented in several studies but this study is about the GIS Component Extraction by the Affinity Analysis Method. CBD uses UML on a basis and the core of the UML is consisted of the use case and the class. The purpose of the Affinity Analysis is a study how relate between the use case and the class in a certain business domain and then the results identify the component. The Affinity Analysis is useful not only in GIS but also in every business domain and is considered to be popular as the procedure of this method is not complex at all. 오늘날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모든 분야에서 컴포넌트에 기반한 개발(CBD : component based development) 방법이 주 흐름으로 등장하였다. GIS 영역에서도 컴포넌트의 개발 및 조립을 통한 시스템 구축을 권장하고 있다. GIS 영역은 다른 영역에 비하여 컴포넌트의 식별이 뚜렷한 업무영역(business domain)을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영역은 비교적 산술적 기능을 많이 요구하는 부분이다. GIS 영역에서나 전사적(enterprise) 영역에서나 비산술적 기능 부분이 많이 존재함을 인식하여야 한다. 컴포넌트는 재사용성을 보장하여야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재사용성이란 가능한 기능이 단순하고 최소의 크기를 가질 때 효용가치가 상승한다. 몇 연구에서 GIS 컴포넌트를 추출하는 기법을 제시한 바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친화력분석(affinity analysis)이란 기법을 통하여 GIS 컴포넌트를 추출하고자 한다. CBD에서는 UML을 활용하는 것이 기본으로 쓰임새(use case) 와 클래스는 UML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이다. 이 쓰임새와 클래스가 해당 업무영역 내에서 얼마나 친화력을 가지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친화력 분석의 목적이며, 이 분석 결과를 가지고 컴포넌트를 식별하게 된다. 이 친화력 분석은 GIS 영역뿐만 아니라 모든 업무영역에 활용이 가능하고 분석의 수행절차가 복잡하지 않음으로 널리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 KCI등재

        일제강점기 유교지식인의 공동체 인식과 사회적 지향: 정인보의 ‘얼’사상을 중심으로

        박태옥 인문예술학회 2023 인문과 예술 Vol.- No.15

        This study examines the closely related concepts within his philosophical system, focusing on ‘Eol’, the core concept of Cheong In-bo’s philosophical thought. Through this, it confirmed his community perception and the direction in which that perception would go. Cheong In-bo said that the subjectivity of ‘I am myself’ stems from ‘Eol’. Keeping one’s ‘eol’ is the basis for moral autonomy, and when it expands and solidarity, a sense of community and social realization are achieved. Based on the existence of a subjective individual through this ‘Eol’, it was considered that the pride of the national community could be promoted. His perception of history also emphasizes subjectivity, and through this, he tried to promote national pride. Even Yang-Ming Study is not an end in itself, but an academic means for finding one’s own mind and for the community to exist independently. Cheong In-bo’s perception of community has several characteristics that are different from those of traditional Confucian scholars. In the face of the crisis of loss of national authority, it did not simply emphasize the whole community, nation, and state as the tradition of studying abroad, but urged a sense of community based on individual subjectivity. It also emphasized community ethics based on individual subjective morality. In addition, Confucianism showed an aspect of a transition of perception from a hierarchical community to a horizontal community that emerged in a traditional society. The people are no longer the subject of enlightenment. They are beings who restore the ‘sincere mind’ through ‘Eol’ and lead the community as moral subjects. As Cheong In-bo emphasized, there is a need to establish a consciousness as a more mature moral subject that restores the original ‘sincere mind’ and pursues the common good. It is also worth recalling that all community members are newly aware of their position as human beings and are responsible for peace, coexistence, and coexistence through the ideology of the ‘Hongik-Ingan’ he summoned. 이 글은 정인보 철학사상의 핵심 개념인 ‘얼’을 중심으로 그의 철학체계 내의 긴밀한 연관 개념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그의 공동체 인식과 그러한 인식의 정향(定向)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개항 이후 주자학적 세계관이 해체되고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겪으면서 개인과 공동체 의식은 다양한 변용 양상을 보였다. 정인보는 ‘저는 저로서’의 주체성이 바로 ‘얼’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자기의 얼을 지키는 것은 도덕적 자율성의 토대가 되며 그것이 확장되고 연대될 때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구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얼’을 통한 주체적 개인의 존립을 발판으로 민족 공동체의 자존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의 역사 인식 역시 주체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민족 자존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양명학마저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저마다의 얼을 찾고 공동체가 주체적으로 존립하기 위한 학문적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인보의 공동체 인식은 전통적인 유학자의 그것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을 갖는다. 국권 상실의 위기 앞에서 단순히 유학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의 전통 아래 공동체·민족·국가라는 전체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주체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을 촉구한 점, 아울러 개인의 주체적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 윤리를 강조한 측면, 그리고 유가 전통사회에서의 위계적 공동체에서 수평적 공동체로 이행하는 인식 전환의 측면을 보여준 점 등이 그것이다. 더 이상 민중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얼’을 매개로 ‘실심’을 회복하고 도덕주체로서 공동체를 영위하는 존재인 것이다. 정인보가 강조한 것처럼 본래의 ‘실심’을 회복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보다 성숙한 도덕주체로서의 의식이 정립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또한 그가 소환한 홍익인간의 이념을 통해 모든 공동체 구성원이 새롭게 인간으로서의 위치를 자각하고 평화와 공존·상생의 책임을 지는 존재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 KCI등재

        면암 최익현의 철학사상에 나타난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문제*

        박태옥 한중인문학회 2009 한중인문학연구 Vol.26 No.-

        최익현(崔益鉉:1833~1906, 勉菴)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혼란한 시기에 반외세․반침략의 기치를 들고 평생 강고한 위정척사 운동을 벌인 인물이다. 이 글은 위정척사 사상의 긍정적․부정적 측면에 대한 결과론적인 인식 보다는, 당시 현실 인식과 그 대응 양상의 철저한 기반이 된 철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위정척사의 문제를 검토함으로써 원리와 현실 적용의 일체화, 혹은 굴절된 모습을 비교해 보고 그 현대적 의미를 도출해 내고자 하였다. 최익현의 위정척사 사상의 철학적 개념은 성리학적 기반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이기론과 심성론에 있어서 이기(理氣)의 불상리(不相離)를 인정하지만 이(理)의 우위를 강조하고, 심에 있어서 이의 주재성을 강조하는 주리적(主理的) 견해로 나타났다. 나라의 존립이 위태롭고 인간다운 삶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이 세계 존재의 원리인 이(理)를 엄정히 지켜내고 구현하고자 하는 ‘주리(主理)’적 가치관을 통해 한말 항일운동과 위정척사 운동이라는 현실 대응이 가능했던 것이다. 위정척사 사상의 내용과 체계는 벽이단론과 존화양이론으로 이루어진다. ‘존화양이(尊華攘夷)’의 명분사상은 중화를 높이고 이적을 배척하는 것인데, 서양과 일본이라는 이적의 학문과 문물은 인간을 짐승처럼 만드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배척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위정척사의 현실대응 양상은 내수외양(內修外攘)과 의병항쟁으로 나타났다. 최익현은 먼저 안으로 도덕적 본성을 회복하고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았고, 숱한 상소와 서한을 통해서 위정척사 운동을 주도하다가 국권 침탈이 목전에 이르자 의병항쟁에 투신하였다. 이처럼 위정척사 사상이 실천적 측면에서의 활동으로 구체화됨으로써 문화적 자존의식과 주체성을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주자학적 세계관을 맹종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엄정한 자기 철학의 현실적 구현이었던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Choi Ik-Hyun(1833~1906, Myeonam) promoted the ‘Wijung Chuksa(defending orthodoxy and rejecting heterodoxy)’ movement during the chaotic time between the late 19th Century and the early 20th Century. His philosophical ideas were based on the Sung Confucianism. For the theory of Liqi he insisted that Liqi is not separate from one another, but Li is the prime object. Within the desperate reality when the ownership of nation was invaded and quality of life might be endangered, he was able to participate in the Anti-Japan movement and the Wijung Chuksa movement based on his faith in safeguarding Li. The fundamentals of the Wijung Chuksa theory were ‘fighting heresy’ and ‘respecting China and fighting Japan.’ The philosophies and civilizations of Japan must be absolutely ostracized as they make humans similar to animals. The Anti-Japan activists’realistic strategies were ‘strengthening power’ and forming the loyal army. Choi believed that it was critical to recover ethics and finding order within. He led the Wijung Chuksa movement by submitting numbers of petitions and letters to the King and eventually participated in the loyal army when Korea’s national ownership was about to be plundered. We must realize the fact that the Wijung Chuksa theory protected Korea’s cultural pride and subjectivity in the practical aspect. Although this theory was criticized that it failed to read the flow of time and blindly followed the Sung Confucianism, but it is difficult to deny that it achieved realization of a rigorous philosophy and supported the activists’ subjective reaction to social issues.

      • KCI등재

        개화기 유학의 실천적 변용과 근대 지향 - 『서유견문』에 나타난 유길준의 개화사상을 중심으로

        박태옥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한국학연구소 2019 한국학연구 Vol.69 No.-

        이 글은 변혁의 시기 조선의 개화를 부르짖은 유길준의 사상에 있어서 유교의 위치와 의미를 분석하고 그것이 그의 개화사상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지 그의 대표적 저작인 『서유견문』을 중심으로 고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유교와 근대와의 교착점과 변용 양상을 유길준의 유학사상 안에서 규명하고자 하였다. 개화사상가 유길준(兪吉濬;1856~1914)은 최초로 일본과 미국에 유학한 국비유학생으로서 조선의 개화를 위해 활약한 인물이다. 유길준은 유교적 전통을 절멸시키지 않고 오히려 주체적 개화를 이끄는 이념으로 차용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개화의 이상적 상태는 반드시 반유교적이거나 탈유교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개화한 자의 모습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부와 ‘일신(日新)’의 자세가 기반이 되는 유교 지식인의 원형을 거부하지 않는다. 유길준에게 개화란 유교적 가치의 현실적 변용이라고 할 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책임을 강조하며 도덕에 의해 규율되는 경쟁의 논리를 중시한’ 그의 관점은 자유와 통의(通義)라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설명된다. 개인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공동체로 확장됨으로써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와 통의를 구현하는 인간 존재의 완성은 바로 교육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그가 강조한 문명개화의 세상은 새로운 서구 근대문명의 자극에서 촉발되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유교적 이상세계와 맞닿아 있다. 이 점이 완전한 문명화를 이루지 못한 한계로 지적되어 왔으나, 오히려 유교 전통의 폐단과 모순에 대한 비판적 자기성찰에서 출발하여 유교적 전통과 가치를 근대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This paper tries to analyze the status and meaning of Confucianism in Yu Gil-jun's thinking. And looking at the role it plays in his ideas of enlightenment. Through this, we will consider the standoff between Confucianism and modern times and the aspects of embracing it in Yoo Gil-jun's Confucian ideology. Yoo Gil-jun(1856~1914) dedicated his life to the enlightenment of Joseon. He did not break up Confucian tradition, but instead borrowed it as an ideology that led to independent enlightenment. Yu Gil-jun's idea of enlightenment placed importance on the logic of competition, which is regulated by morality, by pursuing common interests and emphasizing self-responsibility. His view of things like this is explained by the central concept of liberty and rights(通義). And the completion of human existence, which embodies liberty and rights, is possible by education. Education should be able to be useful in real life, not just in revealing the logic of things, and that's what makes the world profitable. As he emphasized, the world of civilization was inspired by the new impetus of modern Western civilization, ultimately, it is a realistic transformation of the Confucian ideal world.

      • 藥草園植物目錄

        朴胎玉,金寧順 梨花女子大學校 藥學硏究所 1960 梨花藥學硏究 Vol.- No.2

        본대학 약초원은 단기4289년 5월 31일에 이대 창립 70주년(약대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설립된 것인데, 당시 학교당국에서는 물론 여러 학부형들과 졸업생들 그리고 약업계의 정성어린 성원으로 지금에 이르는 우리들의 산(生) 배움터가 이룩되게 된 것이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제일 먼저 눈에 띄게 되는 것은 우뚝 솟은 대강당이지만, 그 아래 아담하게 자립자고 있는 우리 약초원은, 약학이란 학문을 택한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사로잡게 마련이다. 약초원의 총면적은 1000평이며 이 안에는 2개의 온실이 있고 각각 12평, 16평이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식물을 용도별로 보아 약용식물이 270종, 관상용식물이 200종이며, 이 관상용은 대개 온실에서 재배되고 있다.

      • 藥草園植物目錄

        朴胎玉,金寧順 이화여자대학교 약학회 1960 梨花藥學會誌 Vol.- No.1

        본대학 약초원은 단기4289년 5월 31일에 이대 창립 70주년(약대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설립된 것인데, 당시 학교당국에서는 물론 여러 학부형들과 졸업생들 그리고 약업계의 정성어린 성원으로 지금에 이르는 우리들의 산(生) 배움터가 이룩되게 된 것이다. 교문을 들어서기 전에 제일 먼저 눈에 띄게 되는 것은 우뚝 솟은 대강당이지만, 그 아래 아담하게 자립자고 있는 우리 약초원은, 약학이란 학문을 택한 우리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사로잡게 마련이다. 약초원의 총면적은 1000평이며 이 안에는 2개의 온실이 있고 각각 12평, 16평이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식물을 용도별로 보아 약용식물이 270종, 관상용식물이 200종이며, 이 관상용은 대개 온실에서 재배되고 있다.

      • KCI등재

        ‘위정척사(衛正斥邪)’와 ‘개화(開化)’사상에 나타난 유교지식인의 공(公)·사(私) 관념

        박태옥 인문예술학회 2022 인문과 예술 Vol.- No.13

        이 글은 근대 전환기를 맞은 조선 유교지식인들의 공·사 관념과 현실대응 양상을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근대 문명 수용에 대해 대립적인 관점을 가진 최익현, 유인석, 기정진 등을 중심으로 한 위정척사파의 사상과, 박규수, 김윤식, 유길준 등을 중심으로 한 개화파의 사상을 중심으로 공·사 관념은 살펴보았다. 위정척사파는 공·사 문제를 ‘천리지공’과 ‘인욕지사’의 성리학적 관점을 계승하여 시대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이념적 단초로 사용하였고, 사를 배격하고 공의 가치를 수호함으로써 외세의 압박과 침략에 대항할 것을 강조하는 현실대응 논리를 보여주었다. 이와 더불어 외세의 침략과 위협에 직면하여 단순히 ‘천리지공’과 ‘인욕지사’의 공·사관에 머물지 않고 공론이나 『만국공법』과 같은 국제법의 공공성에 기대어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렇지만 이때의 공론이나 공법 등은 그들의 성리학적 가치관이 투영된 공적 가치 추구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며, 공정과 공평 등의 공적 가치 실현을 담보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개화파는 공론과 공법의 논의를 통하여 세계 질서의 변화 양상을 인식하고 공도·공명 등의 가치를 중시하며 근대 문명을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주로 현실정치의 일선에서 활동했던 그들은 공법을 강조하는 대외정책 노선을 보여주었다. 공법도 현실적으로는 힘의 우열에 따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공의는 인민의 권리와 저항을 통하여 공공성을 확보함으로써 구현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위정척사파가 강조한 공론이 주로 지배계층에 한정된 공론이었다면, 개화파에게서는 인민의 영역까지 포괄함으로써 천리의 공과 천하의 공이 공존하는 인식의 단초를 볼 수 있었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근대적 이념의 영향도 나타났으나 개인은 여전히 공동체의 가치 안에 포획된 개인으로서, 이를 서구 근대와 같은 개인의 대두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시기 유교지식인의 공·사관이 서구 근대에 비견할 만한 새로운 변화를 명징하게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근대 이행기라는 특수한 시공간 안에서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공·사 관념은 전통적인 가치관을 토대로 한 유사점과 근대 문명에 대한 대립된 태도에서 오는 차이점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오늘날 공·사 인식의 연원을 가늠하게 한다.

      • KCI등재

        근대 유교지식인의 평화사상과 현실적 구현: 위정척사파의 철학사상을 중심으로

        박태옥 인문예술학회 2021 인문과 예술 Vol.- No.11

        Based on the Neo-Confucianism ideology, the ‘Wijeongcheoksapa’ carried out a strong Wijeongcheoksa movement. Through this, they showed a typical example of intellectuals acting in difficult times. Of course, the limitations of their conservatism, exclusivity which failed to effectively cope with the rapidly changing international situation, and advocacy of class order, do not require reconsideration. However, it is necessary to take a new approach in terms of protecting human universal values and further longing for peace against forces that threaten peace with the logic of power. Based on the values that value ‘Li’, the Wijeongchuksapa developed the Wijeongcheoksa ideas of excluding heterodoxy and revere the China and expel the foreigners about the Western powers and Japan's armed provocations and aggression. They emphasized the inward preparation and outward defense as the methodology of the Wijeongchuksa. On the one hand, while undergoing a paradigm shift of modernity, they presented the theory of Oriental peace that appealed for incorporation and solidarity within the world order, or launched a righteous army uprising against the Japanese colonial invasion. Such efforts for peace of the Wijeongchoksapa have been transformed and converted according to the passage of the times, showing the aspect of not giving up individuals and communities as moral subjects. 위정척사파는 도학적 이념을 바탕으로 강고한 위정척사운동을 통해 위난의 시기에행동하는 지식인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물론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그들의 보수성과 배타성, 그리고 계급질서 옹호 등의 한계점은 재론을 요하지 않지만, 힘의 논리로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주체적으로 대항하여 인간의 보편가치를 지키고 나아가 대동사회의 평화를 희구하였다는 측면에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화서학파와 노사학파가 중심이 된 위정척사파는 주리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서구 열강과 일본의 무력 도발과 침략행위에 대해 벽이단과 존화양이의 위정척사사상을 전개하였다. 그들은 위정척사의 방법론으로 내수외양을 강조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근대라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겪으면서 세계 질서 내의 편입과 연대를 호소하는 동양평화론을제시하거나, 일제의 식민주의 침략에 맞서 의병항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위정척사파의 평화를 위한 노력은 그들의 성리학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도덕문명의 수호의지를 보여주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용하고 전환하면서 도덕주체로서의 개인과 공동체를 포기하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비록 힘의 열세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불의와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주체성이야말로 비평화적 세력의 확대재생산을 막고 감시할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주체와 타자의 관계속에서 생명을 존중하고 인간 주체의 책무를 환기하며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은유학의 이상이자 평화가 실현된 세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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