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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素昻の抗日獨立運動と三均主義 : 東アジアの友好を望む日本人の立場から
靑柳純一 釜山大學校 1993 人文論叢 Vol.43 No.1
냉전시대에 즈음하여 한·일양국에서는 각각의 사회에 맞는 개혁이 진행중이고, 앞으로 는 새로운 東아시아적 시각을 모색할 필요가 증가되고 있다. 이러한 모색의 하나로써, 본고에서는 趙素昻·三均主義를 들어, 그 형성과정 및 중국에 있어서의 한국독립운동 속에서 수행했던 역할을 검토한다. 우선, 제 2장에서 趙가 1910년 전후의 일본유학기에 받았던 여러가지 영항을, 이어서 중국에 망명하여 3·1독립운동 전후에 전개했던 활동, 上海임시정부에의 참가, 그리고 유럽에서의 외교활동등의 개략을 더듬는다. 1922년 귀국한 그는, 민족주의 세력의 결집에 힘쓰는 한 편, 사회주의 세력과의 공존·연합을 추구하여 三均主義의 기본적인 내용을 확립, 1930년에는 한국독립당이 결성되는 과정을 고찰한다. 또 제 3장에서는 上海사변 후의 일본의 탄압으로 임시정부는 流轉을 강요받아, 趙素昻들도 離合集散을 되들이 하지만, 中·日전쟁의 전면화에 의해 한국의 민족주의세력 사회주의세력 각각이 연합전선을 형성, 그 쌍방의 사상적 기반으로서 三均主義가 작용했던 것을 확인한다. 나아가 제 4장에서는 1940년 9월에 임시정부가 重慶에 정립되고, 광복군을 창설함으로서 새로운 단계에 달한 후, 태평양친쟁의 개시직전에 建國綱領을 발포하지만, 이것과 통합한국독립당의 黨義를 분석해서 三均主義를 음미한다. 그 위에 重慶임시정부 내부의 변화와 미국의 신탁통치안등에 대한 외교활등을 돌아보고, 왜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았는가, 그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美·蘇대립의 틈새에서 남북분단에의 전망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제3의 길"을 모색했으나 6·25전쟁하에서 어절 수 없이 남북된 趙素昻이 북에서도 평화통일운동에 진력했던 것을 언급한다. 이러한 趙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는 균등하다라고 하는 주장은 일본국헌법의 정신과도 비슷하고, 이 주장과 국내에 있어서의 균등사회의 실현과의 관련에서야말로, 三均主義의 오늘날의 의의를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