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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使節とヴェトナム使節の中での邂逅 -虛構の交流-

        淸水太郞 전북사학회 2007 전북사학 Vol.0 No.31

        중국의 수도에서 조선과 베트남 양국 왕조의 조공사절에 의해 행해진 교류는 14세기초 부터 18세기말 까지 약 20번 정도 확인할 수 있다. 교류는 한시의 창화(唱和)가 중심이며, 16세기말 이후에는 漢文에 의한 문답도 기록되어 왔다. 이와 같은 교류를 통해서 양국 사절은 이제까지 중국의 서적을 중심으로 완성된 상대국에 대한 이미지를 교류에 의해서 얻은 정보나 지식을 기초로 하여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수정하였다. 한편 확실히 후세의 부탁이라고 생각되는 交流의 이야기도 나온다. 본고에서는 14세기 초의 막정지(莫挺之)와 고려사절, 15세기 후반 16세기 초의 조신(曹伸)과 여시거(黎時挙), 16세기 전반의 정렴(鄭石廉 )과 안남인(安南人), 17세기말의 원등도(阮登道)와 조선사절의 네 개의 사례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또한, 이들 허구의 교류의 특징으로서, 「①한시, 찬문(賛文)의 경연 등 문학교류가 중심이다. ②교류 상대의 본질이 애매하고 명확하지 않다. 또 실명이 나와 있어도 사료에서 확인할 수 없다. ③같은 시대의 자료에는 없고, 후세에 작성된 자료에 나타난다. ④자국 인물의 문재를 상대적으로 높이기 위해서, 조선 또는 베트남사절을 등장시키고 있다.」는 네 가지 점을 들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조선사절과 베트남사절로서, 필담이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서 교류할 수 있는 상대는 필연적으로 한정되었다.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면, 중국에 조공한 많은 왕조나 민족 중에서 조선사절, 베트남 사절정도가 한시의 창화나 한문에 의한 문답을 행할 정도로 유일한 상대였다. 더욱이, 양국 왕조의 문인정치가로서 중국에 건너가 문재로 이름을 드높이는 것은 본인으로서도 각 왕조로서도 매우 중요했다. 이 때문에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융성해진 필기소설(筆記小説)이나 야사(野史) 중에, 중국에 건너간 조선·베트남의 문인정치가들이 문재로 활약한 이야기를 많이 발견할 수 있지만, 그들의 문재를 상대적으로 상승시키기 위해서는, 한시, 한문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조선, 베트남사절의 등장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것이 허구의 교류가 발생한 요인의 하나가 아니었는가라고 결론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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