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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지역연구의 동향과 전망

        김영정 ( Young Jeong Kim )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2014 한국사회 Vol.15 No.1

        ‘지역연구’는 연구자의 관점과 이론적 지향의 차이에 따라 세 가지로 범주화될 수 있다. (1) 가치중립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지역(region) 연구’, (2) 중앙과의 비대칭적 권력관계에 기초하여 지역의 문제를 바라보는 ‘지방(local) 연구’, (3) 정치경제학적 공간이론의 관점에서 지역문제에 접근하는 ‘공간(space) 연구’ 등이 그것이다. 본 논문은 이 프레임에 기초하여 한국사회학계의 지역연구의 특징을 살펴본 것이다. 분석의 텍스트는 지난 20년 동안 지역사회학회 공식 저널에 실린 논문들이다. 분석 결과 얻은 가장 두드러진 점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전통적인 지역연구 분야인 ‘region 연구’(가치중립적인 지역연구) 영역의 주제가 그동안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해 왔던 농촌/도시사회학의 전통 주제를 크게 뛰어 넘어 정보화, 시민사회, NGO, 자원봉사, 다문화, 외국인 노동자, 로컬푸드 등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 변화의 큰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이들 문제들이 지역차원에서도 논의되고, 분석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당위적 결과이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의 관점이 ‘region 연구 관점’으로부터 ‘local 및 space 연구 관점’(지방 및 공간사회학적 관점)으로 급격하게 변동하는 패러다임 이동(paradigm shift)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방자치가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프라이비티즘(privatism)’으로 개념화되는 ‘자치 패러독스’ 현상과 ‘특정 집단의 극단적인 이익중심주의’ 현상이 만연된 지역현장을 주목해왔던 지역사회학자들에게 그 실상을 고발하고 설명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과 프레임이 필요했던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이들 관점에 근거한 규범적 연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것은 참여정부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고, 뒤이은 MB정부는 물론 현 정부까지도 이를 주요 국정과제로 다룰 수밖에 없는 지방 대 중앙의 대결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정책 친화적 관점이 활황을 누렸던 덕분으로 보인다. Regional studies can be classified in 3 categories. Those are (1) ‘region study’ from the point of value-free perspective, (2) ‘local study’ based on non-balanced power relationship between governments, and (3) ‘space study’ from the point of theoretical perspectives of political-economy. This study aims to determine the characteristics of regional studies in the field of Korean sociology according to the frames above. The analyzed texts in this research were published in the official journal of Korean Regional Sociological Association for last 20 years. The results are as in the following. First, the subject of research on ‘region study’, a conventional field in regional studies, is expanding from the traditional rural/urban sociological topics to the contemporary social issues such as informationization, civil society, NGO, volunteering, multi-culture, foreign worker, local food etc. This seems to be an appropriate outcome since these issues, which reflects the flow of changes of Korean society from 2000s, need to be analyzed and discussed in terms of regional dimension. Also, a radical paradigm shift on the perspective of researchers is emerging, from ‘region study’ to ‘local/space study’, This seems to result from the need of a new theoretical perspective and frame to explain and warn the reality of which ‘privatism’ is prevalent in the Korean regional society, to the researchers who paid attention to it, even when local autonomy has been.

      • KCI등재

        한국사회 갈등의 원인 및 관리에 대한 연구: 갈등유형별 특성을 중심으로

        유희정 ( Hijeong Yu ),이숙종 ( Sookjong Lee )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2016 한국사회 Vol.17 No.1

        본 연구는 한국사회의 갈등수준을 측정하고, 갈등유형 별로 원인 및 관리에 대한인식차이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를 정리하면, 첫째, 다수의 시민들이 사회갈등 수준을 ‘보통’ 이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구체적인 유형별로는 계층ㆍ계급갈등과 이념갈등을 공공 및 지역갈등 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둘째, 연령, 거주 지역, 직업상의 이유로 갈등쟁점에 노출될 확률이 높을수록 사회갈등 수준을 높게 인식하는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셋째, 한국사회의 전반적 갈등수준을 심각하게 인식할수록 갈등의 내ㆍ외부적 원인에 동의하는 수준이 높고, 갈등기능 및 해결의 관리방식에 대한 인식차이가 통계적 유의성을 갖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넷째, 계층ㆍ계급갈등 수준을 높게 인식하는 집단에서 사회갈등의 외부적 원인과 순기능에 대해 동의하는 수준이 높고, 갈등해결의 관리방식 중에서 법원판결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공공 및 지역갈등 유형의 경우 갈등수준에 따라 사회갈등의 내부적 원인과 갈등의 역기능 정도를 다르게 인식하는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념갈등 수준별로는 사회갈등의 내ㆍ외부적 원인과 갈등기능의 인식차이에서 통계적 유의성이 확인되었다. 이 같은 결과는 사회갈등유형별 원인이 당사자들 간의 상호작용과 사회구조적 접근을 통해 명확히 규명되고, 사회갈등의 건설적 전개를 위한 관리 방식이 다양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This study measures Koreans’ perceptions of social conflicts and analyzes the differences in causes and managements of conflict types. On average, the level of social conflicts citizens perceive is above 3 on the 5-point Likert scale and the levels of public and regional conflicts are lower than other types. Citizens are often exposed to conflict issues regarding socioeconomic status consider social conflicts as much more serious problems. The research found that there are significant differences in causes and managements in terms of social stratification, public, regional, and ideological conflict. These results show, to understand causes of conflict, it is helpful to consider interaction attributes among stakeholders based on the socioeconomic structure. In addition, our findings imply that Korean government needs to focus on the strategic managements by conflict types.

      • KCI등재

        Relation with Japan in the Era of Koryŏ

        Jongwoo Na(나종우)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2006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10 No.-

        고려시대의 일본과의 관계는 고려 전후 시대에 비하여 정치ㆍ경제ㆍ외교ㆍ군사 등 모든 면에서 침체되고 가장 침체되고 부진했던 시대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도 보편적은 아니지만 양국관계가 이어졌다. 전기에는 고려가 보다 적극적으로 일본에 대하여 접근을 시도했는데, 이러한 시도는 사절의 내왕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하여 당시 일본은 고려를 두려워했다. 그러한 일본이 표류민의 송환을 해오면서 조심스럽게 접근을 시도하여왔는데, 특히 대마도는 지리적으로 가장 근접해 있어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사절을 보내 진공(進貢) 하였다. 당시 고려에 대한 일본의 무역양식은 진헌하사(進獻下賜)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 특색이다. 고려의 제한적인 무역에 불만을 품어오던 일본은 고려 말기에 이르러 그들 자체의 남북전쟁이라는 혼란했던 사회정세와 고려 사회변동의 기회를 타서 왜구로 고려에 침입하였다. 왜구들은 고려의 연안과 내륙 깊숙이까지 침입해왔으며 고려는 북적과 함께 왜구 퇴치라는 과제로 국력을 크게 소모하였다. 왜구 퇴치라는 과정에서 군권을 쥐게 된 이성계 등 신흥세력이 등장하게 되었다. 고려말의 여ㆍ일 관계는 왜구로 인하여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대외관계를 유지 할 수 밖에 없었으며, 고려왕조는 당면한 국내의 모순과 왜구문제를 종식시키지 못한 채 조선왕조로 넘어가게 되었다.

      • KCI등재후보
      • KCI등재

        외부, 내부의 시선에서 본 사법전문가 집단에 대한 신뢰와 그 함의에 대한 탐색적 접근

        이명진,최유정,최항섭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2018 한국사회 Vol.19 No.2

        Under the notion that the loss of social trust is a potential risk factor that enhances conflict in Korean society, 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legal experts’ reliability and the social perception of Jeon-gwan-ye-u(privilege of former post).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an international comparison shows that judge’s integrity in Korea ranked 90th out of 117 countries. While legal authority is strikingly high compared to that of other experts, evaluation on their public interest and ethics is only somewhat higher than the average. The result implies that perception on legal authority is based on physical power and not social respect. In other words, if physical power, a ground of legal authority declines, the overall authority can fall along with it. This provides an important implication to enhance court and judges’ integrity. Secondly, this study also investigated response from both general public and legal workers on direct problems related to Jeon-gwan-ye-u(privilege of former post). In many respects, there was a chasm between general public and legal practitioner’s perception. There were variances within legal practitioner’s position as well. For example, assessment, basis, and solutions to court reliability, its change, jeon-gwan-ye-u(privelege of former post) varied depending on whether the respondent is a judge, prosecutor, or a lawyer. In the case of general public, legal experts’ reliability has not changed dramatically in recent years, but legal practitioners have been relatively many changes in the perception of legal practitioners. While general public evaluation is due to the context of overall decline in trust, legal practitioners evaluated based on their direct and indirect experience. They viewed Jeon-gwan-ye-u(privilege of former post) more seriously and they were more skeptical about the solutions. In conclusion, it is necessary to take various measures such as anti-corruption activities and mechanisms and devices to check and prevent trust decline in legal experts. 본 연구는 사회적 신뢰의 상실이 한국사회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인자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사법전문가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도를 파악하고 대표적 부패 문제인 전관예우를 포함한 사법권의 신뢰성에 대한 사법체계 내부의 시각과 평가를 일반인과의 비교 하에 다차원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주된 내용이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법부 전문가의 청렴도라는 측면에서 국제비교 결과를 보면, 한국의 경우는 판사의 청렴도에 대한 평가가 조사 대상 117개국 중 90위로 나타났다. 다른 전문가의 특성을 비교해 볼 때 법조인은 권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공익성이나 윤리성에 대한 평가는 평균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법조인의 권위에 대한 평가는 현대사회에서 전문가들의 권위에 수반되는 사회적 존경을 기반으로 하기 보다는 물리적인 권력에 기반한 측면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법원과 판사의 청렴도 제고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즉 사법전문가인 판사에 대한 권위의 기반에 권력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것은 권력이 다른 이유로 인해 저하될 경우 권위나 신뢰도 역시 같이 하락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둘째, 일반 국민들과 법조직역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사법 전문가에 대한 내, 외부적 시선을 살펴본 결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일반 국민들과 법조직역종사자 사이에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법조직역 종류별로도 차이가 크다. 예를 들면, 동일한 상황이나 정책에 대한 평가가 응답자가 판사, 검사 혹은 변호사인가에 따라 달라졌다. 법원에 대한 신뢰도와 신뢰도 변화여부를 비롯해 전관예우에 관한 평가, 근거, 해결방안에 대한 평가도 상이하게 나타났는데, 사법 전문가들 내부에서 경험에 근거해 보다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음은 흥미롭다. 일반 국민들의 경우에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최근에 들어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법조직역종사자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더 부정적인 평가가 심화되었다. 전관예우에 대한 평가와 근거에 대해서도 법조직역종사자들이 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직간접적인 경험에 근거해 그러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해결방안에 대해서도 일반 국민보다 법조직역종사자들이 상대적으로 회의적이었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할 때, 사법 전문가의 신뢰도 하락을 막기 위한 견제나 장치의 도입, 반부패 활동 등의 다각적인 시도가 필요하리라 본다.

      • KCI등재후보

        Ssangsŏng Ch’onggwanbu as the Border between Koryŏ and Yuan Dynasty

        Nakano Kota(나카노 고우타)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2013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18 No.1

        1258년부터 1356년까지의 약100년간 존재한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는 元이 고려 동북부에 세운 지배기구이다. 쌍성총관부는 100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특수성과 이성계 가문의 세력기반이라는 정치적 중요성 때문에 연구자들의 주목을 끌어 왔다. 쌍성총관부에 관한 기존연구는 고려와 쌍성의 관계를 검토한 것이 대부분이고 元과의 관계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본고는 쌍성과 元, 그리고 고려와의 관계를 검토함으로써 쌍성총관부가 元과 고려 사이에서 어떻게 존속했는가를 밝히려고 했다. 그 검토를 통해 아래와 같은 결과를 얻었다. 元은 쌍성을 고려의 일부분 아니면 고려와 女眞의 경계지역 정도로 인식하고 자기의 영토로서 그리 중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元은 금의 공납을 받는 대신 쌍성총관의 지배권을 인정했으나 고려가 금의 공납을 약속하자 元은 고려의 쌍성수복을 묵인했다. 쌍성총관부와 고려의 관계는 원래 적대적이었다. 1287년에 元에서 乃顔 · 合丹의 난이 일어나자 고려는 그 기회를 이용해 쌍성수복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난을 계기로 고려의 영향력이 커지고 쌍성 내부 세력들도 고려와의 관계를 중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쌍성은 조림 형제의 출사로 볼 수 있듯이 고려에 대해 의존하게 되었다. 쌍성총관부는 元과 고려라는 자기보다 큰 두개 세력을 균형있게 이용함으로써 100년 가까이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쌍성에서 고려왕에 대해 비교적 자립적인 이성계 세력이 성장할 수 있던 이유도 쌍성총관부의 이런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Ssangs?ng Ch’onggwanbu, which existed for about 100 years between 1258 and 1356, was a governing body established by Yuan in the northeastern part of Kory?. It has drawn the attention of researchers owing to its survival for a century and the political importance as the power base of Yi S?nggye’s family. Most of the previous studies about Ssangs?ng Ch’onggwanbu have focus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it and Kory?. This paper sheds ligh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it and Yuan and Kory? in an attempt to see how it continued to exist between those two stronger powers. It appears that Yuan did not attach great importance to Ssangs?ng, viewing it as a part of Kory? or the border between Kory? and the Jurchen. Yuan allowed general superintendents to exert their right of control over the Ssangs?ng area in return for their submittal of part of their gold production to Yuan as tax, but when Kory? recovered Ssangs?ng and promised to continue to submit part of gold production to Yuan, Yuan made no protest. The leadership of Ssangs?ng Ch’onggwanbu took a hostile attitude toward Kory?. In 1287, when Nayan and Qada’an staged a rebellion against Emperor Shizu in Yuan, Kory? tried to take advantage of the situation as an opportunity to recover Ssangs?ng, but in vain. However, Kory? came to exert stronger influence on the area following the rebellion and the people in Ssangs?ng started to attach more importance to the relationship with Kory?. As a result, Ssangs?ng came to rely on Kory?, as shown by Cho Rim and his brother serving in the Kory? officialdom. Ssangs?ng Ch’onggwanbu was able to survive for a century by taking a balanced position toward Kory? and Yuan. Yi S?nggye could build his power there as a faction relatively independent of the Kory? Dynasty apparently thanks to the unique status that Ssangs?ng Ch’onggwanbu maintained.

      • KCI등재

        사회적 주변화 인식에 대한 사회적 자본의 영향: 한국 거주 이주배경 청년을 중심으로

        백경민 ( Baek Kyungmin ),연규진 ( Yon Kyujin )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2022 한국사회 Vol.23 No.1

        최근 한국 사회의 인구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최근 한국 사회에 진입하는 이민자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민자들의 사회적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주배경 청년들의 한국사회에서 겪는 사회적 주변화 정도를 통계적인 척도를 통해 살펴보고, 이들의 사회적 주변화 정도가 어떻게 사회적 자본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특히 본 연구에서는 사회적 자본을 사회적 유대감과 사회적 연결망의 차원으로 나누어 각각의 차원이 사회적 주변화에 대한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본 연구의 결과는 사회적 자본 중 사회적 연결망의 차원이 사회적 주변화 인식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정보의 획득이 이들의 사회적 주변화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결과는 정서적 안녕감보다, 구직을 위한 또는 생활을 위한 다양한 정보가 이들의 한국사회 적응과 정착에 더 중요한 요소이며, 이러한 정보망에서 배제될 때, 자신들이 주변화되어 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This study examines migrant young adults’ perceived social marginalization in Korea and how social capital affects it. Using a national survey of migrant young adults aged 25 to 34 living in Korea, the results of this study show that the social network has a significant and negative effect on migrant young adults’ perceived social marginalization in Korea, which indicates that the acquisition of information has an important role on the decrease of their perceived social marginalization.

      • KCI등재

        한국의 노인인식: 주요 사서에 나타난환과고독 개념과 구휼을 중심으로

        안호용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2018 한국사회 Vol.19 No.2

        Hwan’gwakotok is a collective term that refers to old widowers[hwan 鰥], old widows[kwa 寡], orphans[ko 孤], and the aged without children[tok 獨]. Since the age of the Three Kingdoms, hwan’gwakotok has consistently attracted attention in various relief works. This study examines the usage of the term hwan’gwakotok and other related terms including sakung, samin, and hwan’gwatok in three major Korean historical records: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the History of Koryŏ, and the Annals of the Dynasty of Chosŏn. Using the Korean History Database of the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this study aims to understand the perception of the old reflected in Korea’s traditional welfare policies for the old. The perception that hwan’gwakotok is the group that the royal regime should take priority in giving relief has been prevalent throughout the Korean history. In reality, welfare policies did not only over hwan’gwakotok, but also the elderly, the disabled, and sick people; Old age was always considered, but the most important criterion was the level of poverty and the inability to support one’s life. The term sagung which is often thought of as another name for hwan’gwakotok was not widely used in historical records. Around the 15th year of King Yŏngjo (1747), transition of definition and specialization of the concept of hwan’gwakotok took place, which is a noteworthy social phenomenon. The term samin had meant ordinary people, but after this time it was used to mean hwan’gwakotok. And a new term hwan’gwatok was used as an independent category from this time. From then on, the use of both hwan’gwakotok and hwan’gwatok dramatically decreased and both terms have now become obsolete. Hwan’gwakotok was a category of people in need of special treatment and attention; it has been a 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most miserable subject’ and the ‘priority of the royal regime.’ However, it is insufficient to view the emphasis on hwan’gwakotok and relief to helpless old in the Korean history as the evidence of the Korean society to be a ‘kyŏngno-sahoe,’ a society that respects the elderly. Society’s protection and respect did not automatically accompany one’s old age. ‘환과고독’은 삼국시대 이래 각종 구휼 시책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온 대상이다. 본고는 한국 전통사회에서 사용한 ‘환과(고)독’과 이에 관련된 사궁, 사민, 환과독 등의 표현을 중심으로 그 주요 개념이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의 역사서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검토한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상기 3종의 사서에 사용된 주요 용례를 분석함으로써 한국의 노인 구휼에 나타난 노인인식의 일면을 알아보고자 했다. 환과고독이 ‘왕정이 우선적으로 구휼할 빈곤한 백성’이라는 인식은 한국사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다. 실제적인 구휼 사례들의 대상은 환과고독뿐만 아니라 노인, 병자, 장애인 등을 포괄하는 것이었고 언제나 노인이 고려되었다. 그러나 구휼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빈곤’이었으며, ‘무고’, ‘무의’ 등 그들이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빈핍불능자존자’임이 강조되었다. 환과고독의 별칭인 ‘사궁’은 한국의 사서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았다. 사농공상의 백성 일반을 의미하는 ‘사민’은 영조 15년(1747) 이후 환과고독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기존의 환과고독으로부터 ‘환과독’이 독립적인 범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의미의 전환과 개념의 분화는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이후 환과고독이나 환과독 모두 사용례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고, 현재에는 사용하지 않는 사어가 되었다. ‘환과고독’이란 일정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범주였고 이에 따라 특별한 관심과 우대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역사서 텍스트의 맥락에서는 고전이 말하는 바 ‘왕정소선’의 대상이며 ‘가장 불쌍한 백성’의 대명사적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관찰되는 ‘환과고독’에 대한 강조와 다양한 사은 및 구휼 사례들을 ‘경로 사회’의 증거로 읽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노인이 단순히 ‘고령’만으로 사회적인 보호 또는 존경을 획득했던 것은 아니다.

      • KCI등재

        Political Trends of Hong Bog Won Clan in the Period of Mongol Domination

        Oleg Pirozhenko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2005 International Journal of Korean History Vol.9 No.-

        13세기 초엽 고려 북계의 토호인 洪福源은 아버지 洪大純의 정치적 성향을 이어받아, 고려를 배반하고 몽고의 고려 침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후, 그는 몽고에 투항한 고려인들의 지도자가 되어, 그것을 기반으로 遼藩지방에서 튼튼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홍복원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은 高麗ㆍ元 간의 갈등 관계에 기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평생토록 이런 갈등상황을 유지시키려 했다. 사료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는 것은 홍복원의 자손 가운데 그의 둘째 아들 洪茶丘와 그 아들인 洪重喜, 洪重慶으로 구성된 분파에 대해서이다. 그들은 고려와 모든 관계를 단절시킨 채 고려에 압박을 가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홍복원의 정치적 성향을 계승하였으며, 고려에 대한 침략과 수탈을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여 했다. 그러한 가운데 高麗ㆍ元 관계 성립기, 즉 충렬왕 즉위까지는 洪茶丘의 정치적 영향력이 컸지만, 양국관계가 안정됨에 따라 그 영향력은 쇠퇴하였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홍다구는 김방경 사건을 비롯하여 도발적인 책동을 벌였지만, 끝내 그 영향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13세기말~14세기 초에는 홍다구의 아들인 홍중희, 홍중경의 활동이 遼瀋지역에 집중되었으며, 따라서 이 지역은 그들의 정치력, 경제력의 유일한 근거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요심지방에 대한 충선왕의 영향력의 확대는 바로 홍중희, 홍중경으로 하여금 立省論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즉, 홍중희, 홍중경은 충선왕의 섬양진출로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자기 세력의 기반을 지키기 위해 충선왕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에 지지할 세력이 없는 그들은 충선왕 지지세력과 협상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元 조정을 통해서 충선왕 세력 제거를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입성책동을 시도하였던 것인데, 그것이 실패하자 그들의 영향력은 더욱 약화되었으며, 그 이후 그 一派는 적극적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홍복원 일가 가운데 그의 또 다른 아들인 洪熊三, 洪君洋과 그들의 후손이 따로이 일파를 구성했는데, 그들은 홍씨 국내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원에서 활동하였다. 이들은 駙馬國體制에 적응하여 고려와 원의 교류에 있어서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주로 충렬왕 때에 활동하였던 홍군상은 그의 정치적, 경제적 위치가 두드러졌는데, 高麗ㆍ元 간의 평화적 교류와 우호관계 유지에 크게 기여하였다. 홍복원의 동생인 洪百壽는 고려에 남아 활동했는데, 그의 후손이 홍씨일가의 국내파를 형성하였다. 자신들의 사회경제적 기반과 이해관계가 고려와 관련되었던 만큼, 그들 홍씨 국내파는 高麗ㆍ元 간의 관계를 깨뜨리는 일보다는 고려와 원 사이의 중재인 역할을 원했고, 실제로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으므로, 이 시기의 다른 부원배 세력과 대조를 이룬다고 하겠다. 물론 그들의 정치적인 성향도 고려의 내정 상황에 따라 좌우되었다. 즉, 洪詵을 비롯한 홍백수의 이들로 구성된 일파는 충선왕 측근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1차 立省論을 반대하였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만한 것은 홍복원 일가의 정치적 동향을 통해서 드러나는 바 요심 지역에서 고려인이 정치적, 군사적 측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서이다. 당시 元都에서는 요심 지역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서보다는 별도의 지역으로 인식하였으며, 요심 지역 고려인 토호세력의 존재와 요심 지역에 대한 고려 왕조의 영향을 인정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이 지역에 있어서 고려의 영향은 상당히 강했으며, 요심 지역에서의 통치권 분쟁은 대부분 고려인 간에 일어난 것이었다. 홍복원 일가는 요심 지역에서 계속적으로 관직을 차지하면서 이 지역의 고려군민을 통제하였다. 한편, 원은 以夷制夷 政策의 일환으로 瀋王을 임명하여 요심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둘러싸고 고려 지배층의 분열을 조장하였는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심왕은 물론 형식적이라도 요심 지역과 관련하여 관직을 받는 사람들이 모두 고려인으로서, 고려 왕조와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심왕이 요심 지역에 대해 실제 통치권을 갖지 못하도록 심왕을 견제한 인물들이 바로 고려출신 홍복원 일가였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보아, 당시 요심 지역에 있는 고려군민의 큰 비중과 이 지역에 있어서의 고려의 강한 영향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의 붕괴에 뒤이어 명이 성립되어 고려 및 조선과 외교 관계를 전개시켜 나갔고, 그 결과 遼瀋 지역에 대한 漢族제국인 명의 통제가 확립되었던 것이지만, 13세기 이 지역에서 고려군민 세력이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홍복원 일가의 정치적인 활동을 통해 드러나는 요심 지역에 대한 고려의 강한 영향력과 그 지역과 고려와의 긴밀한 관계는 재인식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바로 동북공정과 관련된 역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 KCI등재

        왜 특성화고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가?: 특성화고 학생의 진로 수정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

        김홍기,김지훈,김양현 고려대학교 한국사회연구소 2017 한국사회 Vol.18 No.2

        Korean government has promoted vocational education and job placement for vocational high school graduates through various policy measures. Despite that, more than one third of vocational high school graduates over the past decade pursue college education right after their graduation. This study aims to examine why vocational high school students want to pursue college education and what it means for them through a qualitative study of 10 vocational high school students. Findings are as follows. A critical reason was that vocational high school student (re-)discovered their aptitude while studying or doing practical training at high schools. This study identified three patterns. The first patten was that they realized their aptitude while studying their majors at high schools. The second pattern was that they realized that real work environment with their majors was different from what they expected before. The third pattern was that they chose their majors of vocational high school without seriously considering their aptitude during middle school period. Participants constructed their meaning of college education as “finding out what they want to do more in the future.” This was also done by considering opinions of their significant adults including their parents who think college education is important in Korea. This finding suggests some implications for educational theories and policies for vocational high schools. 직업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특성화고 졸업생의 1/3 이상은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정부가 특성화고의 직업 교육과 취업 장려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특성화고 졸업생의 대학 진학은 높은 수준으로 오랜 기간 지속되어왔다. 이전 단계 에서 취업으로 본인의 진로를 선택했던 특성화고 학생들 다수가 왜 대학에 진학하 고자 진로 수정을 하는 걸까? 본 연구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이유와 대학 진학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특성화고 재학 중 대학 진학을 준비한 10명의 연구참여자를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수행한 탐색적 질적 연구이다. 본 연구참여자 학생들이 대학 진학으로 진로 수정을 하게 된 핵심 계기는 특성화고 재학 중 적성 (재)발견 경험으로 요약할 수 있었다. 세부적으로 3가지 유형을 파악 할 수 있었다. 특성화고 세부 전공과 자신의 소질이 맞지 않음을 알게된 유형, 특성 화고 세부 전공을 바탕으로 취업했을 때 현장에서 겪을 실천적 현실이 자신의 소질 과 맞지 않음을 알게된 유형, 고등학교 입학 당시 본인의 적성에 관한 적극적인 파 악 없이 전공을 택했던 유형을 구분할 수 있었다. 연구참여자들에게 대학 진학의 의미는 '더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나가기'가 중심적이었으나, 학부모 등 의미 있는 어 른들이 지닌 한국 사회에서의 대학에 대한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고졸’ 학 부모들은 자신들의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녀가 대학으로 진로 수정을 고 민하는 시기에 자녀의 대학 진학을 지지 권유하는 경우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결과는 특성화고 출신 고등학생의 진로 결정에 있어서 수요자 중심 이론의 중요성과 분석단위에서 다양한 시각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고교 진학 이전 단계에서의 진로 교육 강화, 특성화고졸 대입 제도 개선, 고교 직업 계열 과 학업 계열 간의 유연한 계열 이동 제도 등 현행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함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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