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Joseph R. Strayer, On the Medieval Origins of the Modern State
金榮漢 漢陽大學校 文理科大學 史學科 1973 史學論志 Vol.1 No.1
흔히 중세사라고 하며 지루하게 느껴지고 접근하기에 많은 부담감을 안겨준다. 중세는 우리에게 선명한 상을 제시해 주지 못할 만큼 정체와 혼돈의 베일 속에 가려진 사회처럼 생각되고 현대와는 거리가 먼 시대같이 여기진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등학교나 대학에서 중세사는 별로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따라서 중세사 연구의 특별한 중요성과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중세사의 일반적 경견풍조로 인하여 중세문화가 올바로 인식되지 않고 있음을 개타난 프린스톤 대학의 J.R. Strayer 교수는 지금까지 The Middle Ages, Western Europe in the Middle Ages, Feudalism, The Administration of Normandy under St. Louis 등의 주저와 다수의 논문들을 통하여 중세의 적극적 평가에 주력해 왔다.
金毅圭 漢陽大學校 文理科大學 史學科 1975 史學論志 Vol.3 No.1
의종 24년 경인(1170)8월 무신일파가 봉기하면서 使人 呼於道曰 凡載文冠者 雖胥四 殺無遺種(高麗史 券 128 鄭仲夫傳) 이라 하여 문신멸종주의의 구호를 외치면서 대소문신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대량살육을 감행하였다. 이어 명종 3년 계사(1173) 9월 김보당의 반란때에는 甫當 臨死誣曰 凡其臣孰不與謨 於是 一切誅戮 或投江水 句日間 文士戮且盡(上同) 이라 한 것으로 앞서 경인란 때 화강에서 구면된 문사들이 다시 참화를 입어 모두 주륙되었거나 도는 강수에 투진하여 거의 전몰상태에 이르렀음을 전하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양차에 긍한 무신의 문신대학살은 고려전기 문신위주의 정치체제에 종지부를 찍게 하고 무신집권기를 출현시켰던 것이다.
Karl-Georg Gaber;Theorie der Geschichtswissenschaft, Verlag C.H.Beck, Munchen, 1974, SS.1-265
車一龍 漢陽大學校 文理科大學 史學科 1977 史學論志 Vol.4 No.1
역사학은 인간의 과거의 합목적적인 행동과 사고를 그 인식의 대상으로 함으로 인생의 추구가 근원적인 목적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은 시간적인 제약속에서 일회적인 계속성을 가지고 역사적 인과관계하에 이루워지는 것이다. 바른 역사인식을 위하여서는 우리는 역사의 일반성과 개별성,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에 대하여 경험적이며 사변적인 인식으로 종합하고 해석하여야 하는 것이다
19世紀 獨逸 自由主義의 性格 : 獨逸自由主의의 自滅過程
車一龍 漢陽大學校 文理科大學 史學科 1974 史學論志 Vol.2 No.1
본고에서는 독일적 자유의 개념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독일 자유주의는 어떠한 정신사적 배경으로 나타났으며 또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사적 현상을 나타내는가를 논구하여 그 성격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제(Ⅰ)부 서론에서 독일적 자유주의의 개념을 논하고, 제(Ⅱ)부에서는 불란서혁명과 독일자유주의의 관계를 살펴서 그 생성과정을 찾고 제(Ⅲ)부에서는 Stein의 개혁사상을 통하여 19세기초의 독일자유주의의 구체적 양상을 살피며 제(Ⅳ)부 결론에서는 독일의 전통을 고찰함으로써 자유주의가 자성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황을 논구해 보고자 한다. 시간의 제약과 천학비재인 필자로서 얼마나 이 목적에 접근할 것인가를 의문이나 그러나 어떤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문제를 재차 정리하여 봄도 의의가 있으리라는 궁색한 자위를 해보며 다만 선학들의 질책을 바랄 뿐이다.
李完宰 漢陽大學校 文理科大學 史學科 1973 史學論志 Vol.1 No.1
1990년대 초두, 국운경퇴에 따라 비등하였던 교육구국열은 일종의 시대적 풍조였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한결같은 열도에 그친 것만은 아니었고 이를 사상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볼 때에 그 가운데에도 많은 차이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단순한 애국적 열정에 그친 것도 있는 한편, 일정한 사상적 체계의 토대위에서, 사회정치체제의 전반적인 혁신을 전제로 교육의 목적 등 구체적이고 다각적인 견해를 제시하여 그 실현을 위한 방법론까지 주장한 것도 있다. 국권회복의 길을 신교육의 보급에서 찾으려 하고 구학문의 폐단을 제정하는 것으로서 그 한 방법을 삼으려고 한 것은 그 중의 하나였으며, 해학이 구문학의 폐해를 ① 사대주의의 폐해 ② 한문습관의 폐해 ③ 문호구별의 폐해라고 지적하고 그 각각의 대안을 예거한 것이 곧 그것이다. 당시 교육을 논하는 자의 상당수가 사회의 전반적 개혁을 주장함이 없이 다만 교육의 필요성만을 강조한 것이 일반적 경향이어서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구래의 사회체제 위에 교육방법만을 새 것으로 고치려 하였던 「접목식」의 견해인데 반하여, 해학은 보다 진정한 교육입국은 정치적 사회경제적 면에서도 구례제에 대한 혁신이 병행됨으로써 기대할 수 있다고 반봉건적인 견해를 표시하였다고 하겠다. 해학의 교육관이 실사구제의 실학사상과 선명하게 연결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구체제의 전반적 혁신을 전제로 현시세에 부합할 수 있는 교육이론을 제시한 그의 사상이라는 점에 상도할 때,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하겠으며, 이 점은 현금 학계에서 논의되는 실학사상과 개화사상과의 연결문제의 일단면을 이룬다고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