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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錫敏 대한일어일문학회 2003 일어일문학 Vol.20 No.-
この論では日帝の文化的侵略と言語抹殺政策などが朝鮮の文學者にどのような影響を與えたか。また被壓迫民族側の文學者の苦惱と葛藤,卽ち母國(語)の讀者を持ちながらも日本語での創作を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金史良の心境·文學·立場は一體何であったかを後期の作品を通して考察して見た。金史良が民族主義作家と呼ばれるのも、强要された言語を逆手に執って巖しい狀況下でありながらも植民地朝鮮の現實(被害者側の立場と境遇、苦しみ等)を描き、加害者の蠻行を告發したからであろう。しかし、彼のそのような文學的立場も長く續けられなかった。太平洋戰爭の末期に至っては、母國語で祖國の若者を日帝の侵略戰爭の現場に赴かせる言わば政策文學に加擔せざるをえなくなったのである。卽ち民族主義作家としての名聲を以て文學に足を踏み出した彼も結局は日帝の政策文學への加擔者という立場に、終局的に追い입まれて行ったのでみる。そこに私は、朝鮮近代文學の、そして日本近代文學の共通に抱えもつ、悲劇的な矛盾の一つの象徵的なかたちきを見るものである。卽ち金史良の文學的足跡を通して植民地朝鮮における文學者の苦しみ、文學者の主體的立場は如何なるものであるかを考察してみたのである。
추석민 대한일어일문학회 2002 일어일문학 Vol.18 No.-
김사량의 初期 作品들의 特徵은 日帝의 蠻行을 正面으로 告發하며, 일제에 의해 破綻되는 朝鮮民衆들의 모습을 그리고 또한 加害者의 正體를 確實히 밝히는 것이었다. 즉 김사량의 民族主義적 抵抗精神이 作品에서도 그대로 反映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時代가 時代였던 만큼 政策文學에의 强要를 뿌리치면서 언제까지나 초기 작품들과 같은 文學적 抵抗을 繼續할 수는 없었다. 初期의 作品을 改作, 改題하여 中期에 發表한 「土城廊」「尹主事」에서도 알 수 있듯이 加害者의 正體를 밝히지 않을 뿐 아니라 日帝 만행을 告發함에 있어서도 대단히 消極적임을 알 수 있다. 즉 더욱 嚴重히 되어가는 出版物 檢閱을 意識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본 論文에서는 이러한 時代적 狀況하에서 김사량이 摸索해 온 文學적 抵抗은 무엇이며 「Q伯??」「蟲」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初期의 作品이 植民地下의 朝鮮民衆의 苦痛과 日常의 만행을 告發하는 一元的인 文學的 抵抗을 追求하였다면 中期의 作品들에서는 多元的인 文學的 抵抗을 追求하고 있음을 上記의 두 作品에서도 알 수 있었다. 金史良이 民族主義作家로 불리우는 것도 이러한 窮理와 苦惱를 하며, 가해자의 群像과 時代的 狀況과 現實下에서 苦惱하는 被害者의 群像, 또한 그들의 內面世界와 精神的 肉體的 傷處들을 把握하고 그려 내었기 때문이다. 즉 어려운 시대적 狀況下에서도 뛰어난 리얼리즘文學을 實現하였던 것이다. 中期 創作의 最大의 意義가 여기 있으며, 「Q伯爵」 「蟲」에서도 그러한 中期 金史良의 文學的 特徵들을 充分히 考察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