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선택해제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조선후기 사행가사의 세계 인식과 문학적 특질

        김윤희 高麗大學校 大學院 2010 국내박사

        RANK : 248702

        본고는 조선후기 사행가사를 연구함에 있어 내재적 분석에 국한되었던 기존의 관점을 지양하고 동아시아 관계사에 기반한 입체적 접근과 한문기록과의 상관성에 대한 고찰을 통해 개별 작품들의 세계 인식과 문학적 특질을 보다 선명하게 확인해 보고자 하였다. 이상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전망적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을 삼도록 하겠다. 사행가사는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의 외교적 체험이 소재가 되어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창작&#8228;향유된 일련의 작품군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단편적인 작품론으로는 해명되지 않았던 인식의 지층과 문학적 특질의 제양상은 통시적 고찰의 시야에서 보다 선명하게 확인될 수 있었다. 본고에서는 작품들에 발현된 중화주의나 화이관이 대타적 자국 인식의 기제가 전제된 관념이라는 점에 유의하여 그 현상적 변모보다는 작품이나 시기에 따라 斷續的으로 발현된 양상에 주목해 보았다. 또한 기존의 연구에서 간과되었던 작품들의 창작 원리를 논증함으로써 자신의 사행록이나 관련 기록들을 토대로 재구성한 사행가사의 문학적 관습과 그 지속적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17세기 사행가사의 전반적 특징은 중화주의와 관련하여 형성된 화자의 인식이 서정적 층위로 수렴되고 있다는 점인데 중국과 일본에 따라 그 발현 양상과 문학적 질감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17세기 중반의 작품인 <장유가B>는 ‘중화회복’에 대한 열망이 실제적 공간 인식에 투사되어 대명의리론에 기반한 감정적 진폭이 확인되는 작품이다. 중화의 공간을 夷狄(淸)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심정적 고뇌가 탄식과 회고의 정서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남용익은 자신이 연행 도중 창작한 한시의 주요 구절들을 차용하며 체험의 서정적 결을 보완&#8228;심화해 나갔다. 반면 <장유가A>에서 일본은 중화의 주변국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화이관이 부분적으로 발견될 뿐 대체로 경험론적 시선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견문의 교술적 나열을 지양하고 초월적 상상력에 기반하여 창작함으로써 가사문학으로서의 심미적 특질이 구현되고 있었다. <장유가B>와 마찬가지로 남용익은 자신의 한시 작품들 중 환상적 미감이 발견되는 구절들을 참조&#8228;재배열함으로써 사적인 향유에서의 정서적 몰입과 효용성이 극대화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한 것이다. 그런데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청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자 조선 집권층은 ‘중화계승’의식을 통해 자국 인식을 강화하게 되며 이러한 대외 인식의 변모가 17세기 후반의 사행가사인 <서정별곡>, <연행별곡>에도 반영되어 있었다. <장유가B>에 비해 자국의 공간을 인식하고 표상하는 비중이 강화되었으며 대명의리론에 기반한 탄식과 회고 의식은 감소되고 있는 것이다. 청을 비난하며 중화의 회복을 염원하는 구절도 확인되지만 <장유가B>에 비하면 부분적이며 청나라 문물을 가시적으로 인지&#8228;표상하거나 개별적 시각에서 풍경을 포착하여 감흥을 표현하는 등의 변모가 발견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조선후기 대청 인식의 구도와 사행가사의 문학적 표상이 상응하며 변모한 현상을 확인케 하는 일차적 사례인 것이다. 또한 <연행별곡>은 자신의 <연행일기>를 토대로 창작된 정황이 확인되는 바 일기의 인상적인 장면들이 선별되어 가사문학의 서사 내에 속도감 있게 배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행가사 작품들은 일기나 한시 등을 토대로 서사적 축을 설정하고 주요 감흥을 보완함으로써 문학적 미감을 생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안정된 율격과 분량을 유지하며 가창 및 음영되었던 이 시기 가사문학의 존재 기반과 유사하지만 그 창작 원리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후 18세기 사행가사 작품들에서 확인되는 주요 특징은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인식이 점차 개방됨에 따라 對他的 자국 인식도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초는 대청 관계가 안정됨에 따라 조선의 외교 구도도 실질적인 변화를 보이는 시기이다. 북벌론이 주장될 만큼 중화 회복의식과 명분론에 집착했던 17세기 중&#8228;후반의 서인 집권층은 점차 청나라의 현실적 위력을 감지하게 되며 강희-옹정-건륭으로 이어지는 청나라의 정치&#8228;문화적 안정으로 인해 연행사들은 청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인식&#8228;수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대내적으로는 존주론과 정통론이 강화되며 명나라 역사서가 본격적으로 저술되는 등 중화 계승국으로서의 자존적 의식을 강화한다. 기자의 계보를 추적하고 마한정통론이 대두되는 것은 물론 이 시기 연행을 다녀온 이들의 작품 속에 북방고대사 회복에 대한 소재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모는 17세기 후반의 <연행별곡>과 <서정별곡>에서도 확인되었으며 18세기 전반의 <임자연행별곡>도 유사항 양상을 보인다. <임자연행별곡>의 내용을 보면 북방 영토에 대한 회고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명분론의 관념성과 배타성은 약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연경의 문화적 풍경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 사물을 포착한 어휘의 특성은 19세기 사행가사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前兆的 표상으로서의 의의를 확보하고 있다. 이처럼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 대청 사행가사의 경우 북방 고토를 인지&#8228;회고하는 방식으로 중화계승의식이 발현되어 있었지만 18세기 중반의 작품인 <일동장유가>에서는 자국의 문화적 우월감과 화이론적 관념이 작동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동장유가>의 화자가 일본의 물질적 번영을 찬탄하고 자국의 열세를 인정하는 등 이적국을 중화의 세계로 포섭&#8228;소유하고자 열망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화이관의 수치적 변화나 동향을 파악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내재한 실제적 의식을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일동장유가>의 창작 맥락을 살펴본 결과 전대의 작품들처럼 &#985172;동사록&#985173;이라는 자신의 일기를 저본으로 재구성된 작품이라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자족적 향유의 차원을 넘어 가내 독자를 상정하여 창작된 작품인 만큼 과장이나 허구적 장면화로 자신의 능력적 우월함을 과시하는 내용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인식의 개방 및 전달 욕구가 강화되면서 김인겸은 자신의 일기를 가사 작품에 전면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으며 사행가사의 통시적 흐름에서 보면 이는 형식적 전변을 보이는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한문일기를 국문가사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대화체의 활용, 율격적 이완, 세밀한 묘사 등과 같이 전달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문체 특질들이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특징은 19세기 사행가사 작품들에서 더욱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일동장유가>의 형식적 전변은 문학사적 연속성을 확인케 하는 지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9세기 이후에는 서세동점에 따른 근대화에 따라 사행가사에 투영된 세계 인식도 시기별, 국가별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우선 19세기 전반의 대청 사행가사인 <무자서행록>의 경우 청나라와 조선을 ‘大國-小國’의 구도 하에서 이해하며 긍정적 대청관을 견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19세기 전반의 연행사들 기록에서 대체적으로 확인되는 논리이기도 하며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을 전후한 시기에 청은 엄격하게 정보 누설을 차단했기 때문에 조선 연행사들은 청의 약화상을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자서행록>의 화자는 자신을 ‘편방’에 위치한 ‘고루한 소국’의 ‘촌계’로 지칭하고 있어 <일동장유가>과 비교했을 때 관념적 인식 기제가 더욱 약화되고 대타적 자의식의 현실성이 강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분적으로 중화회복에 대한 열망이나 중화계승적 자부심도 발견되지만 산문기록인 &#985172;부연일기&#985173;와 비교했을 때 문학적 상상이 투사된 논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면 의식이 지향하는 영역을 비교적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 이러한 사행가사의 효용성은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창작&#8231;향유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일부이며 <무자서행록>의 전반적 특성은 ‘遊覽誌’로 규정할 수 있을 만큼 흥미성과 전달성이 강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대의 <일동장유가>와 마찬가지로 가내 소통을 전제로 창작되는 과정에서 전달의 효용성과 수용자의 흡인력을 제고할 수 있는 층위에서 연경에서의 체험 소재가 재조정되어 배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동장유가>의 경우 일기의 서사를 유지하면서 매일의 경험이 폭넓게 수용되고 있는 반면 <무자서행록>은 ‘遊覽’의 범주에서 소재가 선택되어 집중적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았고 靜態的 대상들은 사실적 정보들이 나열되면서 장면이 확장되고 있었다. 특히 이러한 측면이 부각되는 부분에서는 산문기록의 서사가 파열되는 양상이 발견될 만큼 ‘遊覽’ 의식이 강화되어 이국 체험의 재현에 대한 강렬한 문학적 욕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독자들이 <무자서행록>을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는 萬物圖’로 이해&#8228;수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창작 의식 때문인 것이며 이는 산문기록이나 한시와 다른 층위에서 체험을 구성하고자 한 사행가사의 차별적 영역을 선명하게 확인케 하는 사례이기도 한 것이다. <무자서행록>의 이러한 특징은 이후 <병인연행가>에서도 발견되는데 기존에는 두 작품의 차별적 영역이 고찰되지 않아 <병인연행가>의 대청관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병인연행가>의 창작 맥락과 동아사아 관계사를 고려한 결과 <병인연행가>에는 오히려 부정적 대청관이 내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홍순학은 연행 도중 목도한 서양 세력에 대해 위협을 느낀 후 작품을 창작했기 때문에 <무자서행록>에 비해 자국 인식의 측면이 강화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대명의리론이 강하게 발현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특히 홍순학은 삼사 신분이었던 만큼 <병인연행가>에서는 대명의리론이 주된 의식 기제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이는 전대의 <장유가>나 <임자연행별곡>과 같이 대타적 자국 인식이 강화된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은 기존에 화자의 보수적 세계관이나 관습적 표현으로 간주되면서 그 의미 실질이 제대로 분석되지 못하였다. <병인연행가>를 살펴보면 <무자서행록>처럼 연경에 대한 ‘유람지’로서의 특질을 보이고 있고 그 비중도 상당하기 때문에 이 지점들에서 화자의 주된 세계 인식을 추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들에서 <병인연행가>와 <무자서행록>의 상호텍스트성이 발견되고 있는 문학적 현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병인연행가>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외교적 주체로서의 체험이 반영된 부분은 산문기록을 저본으로 삼고 흥미로운 소재나 장면들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무자서행록>을 참고한 정황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군집화된 소재별 분류와 확장적 첨가의 방식 등을 통해 <병인연행가>는 보다 진전된 문학적 구성의 전략과 형상화의 특질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전대의 사행가사 작품들과 비교해 본다면 시각적 재현과 관련된 장면이 독립적인 층위에서 이해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무자서행록>과의 상호텍스트성이 확인되는 지점들은 <병인연행가>의 화자가 실제로 목도하거나 경험한 장면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찰자의 시각적 체험이 <병인연행가>&#61778; 세밀한 묘사를 가능케 했다는 기존의 전제적 인식은 재고될 필요가 있으며 경험 세계에 가치 부여를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셔유견문록>을 보면 근대화된 문물을 경탄의 층위에서 묘사함으로써 경험 세계에 압도되는 양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전단계적 현상을 <무자서행록>과 <병인연행가>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병인연행가>와 동일한 연행 체험을 토대로 창작된 <북행가>는 문학적 소재 및 질감에서 상당한 이질성이 발견되어 흥미로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자국 인식’이나 ‘연경의 문물’에 초점을 두지 않고 지극히 사적인 시선에서 소재를 선별&#8228;형상화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사행가사의 소재적 ‘변이’로 인식되었던 기존의 시각을 본고에서는 소재의 ‘확장’으로 규정하여 그 문학적 특질과 의의를 해명해 보았다. 그 결과 <북행가>는 여행의 여정과 화홍과의 애정을 교차되면서 문학적 흡인력이 생성된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사행이라는 공식적 목적을 소거했을 때 남는 여행의 설렘과 아쉬움이 기녀와의 만남과 이별이라는 감정적 동요의 체험과 교묘히 결합되면서 사행가사가 표상할 수 있는 문학적 특질이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대의 작품인 <일동장유가>에도 ‘기녀’가 등장하지만 대부분 관찰자적 시선에 포착된 부수적 인물형들인 경우가 많았지만 <북행가>에서는 서사 과정의 중요한 축에 기녀들이 배치되면서 그들과의 관계나 감정선이 중시되고 있다. 이념에 종속된 시선이나 외국 문물의 재현이라는 층위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인간의 감정에 주목함으로써 이를 극적 장면화의 수법과 서사적 연속성의 방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학적 흡인력으로 인해 <북행가>는 경북 상주의 규방 문화권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소통&#8228;향유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후반에 오면 본격화된 서세동점으로 인해 청 문물에 대한 적극적 호기심은 많이 감소하게 되며 사행기록도 관습적으로 반복되거나 퇴행되는 양상을 보이는 만큼<북행가> 이후 새로운 대청 사행가사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병인연행가>는 여러 이본들이 확인되고 <무자서행록>의 필사년도가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만큼 새로운 연행가사가 창작되지 않더라도 독자층의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한 정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 세계로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목도하게 된 일본과 서구 체험의 경우 각각 한 편씩의 사행가사가 발견되고 있다. <유일록>과 <셔유견문록>은 ‘중화’에서 ‘근대’로 세계 인식이 전변되는 양상을 확인케 하는 사행가사 작품들인 것이다. 사행 도중 을미사변, 아관파천, 단발령 등과 같은 격변적 사건들을 접하게 된 <유일록>의 화자는 근대화된 일본의 위력과 상대적인 조선의 약세를 완전하게 자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일본의 기계 문명이나 군사, 세금제도 등을 긍정하고 있으며 교육과 일부 제도는 ‘본받아야’ 한다는 논리까지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부정적 대일관은 대체로 ‘풍속’의 범주에 한정되어 발현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기존에 <유일록>의 주된 대일 인식으로 부각되었던 화이관은 근대성 이외의 논리에서 부분적으로 발현되는 관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일동장유가>의 경우 발현된 화이관이 대타적 자국 인식과 상응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유일록>에서의 적절한 대응 논리를 형성할 만큼의 의미 실질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는 점에서도 더욱 그러하다. 중화주의를 구심점으로 동아시아와 일본을 인식했던 <일동장유가>의 경우와는 달리 <유일록>의 화자는 근대성에 경도됨으로써 문물과 제도를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수용하는 논리를 개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 사행가사인 <무자서행록>, <병인연행가>와 비교해 보더라도 ‘유람지’의 성격에 해당하는 부분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지만 <유일록>의 경우 ‘근대적 문물’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심화되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풍속의 범주를 넘어 자료에서 추출된 지식적 층위의 담론들까지 확인된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선명하게 확인된다. 또한 &#985172;범사록&#985173;과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그 창작 원리를 규명해본 별과 대체로 한문일기의 서사를 수용하되 전달 및 기록의 욕구가 발현되는 부분에서는 장면이 확장되고 있었다. <무자서행록>이나 <병자연행가>와 문학적 특질의 유사성이 확인되는 바 창작 원리를 고려함으로써 그 동인을 해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 전변의 지점들을 세밀하게 살펴본 결과 장면의 유기적 연속&#8228;확장을 위해 다른 날짜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분산&#8228;재배치되는 현상과 장면 단위 내에서도 소재들이 재배열되어 체계적 구성이 강화된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장면의 실제성과 전달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정연한 구조 내에 세밀한 묘사를 보완하는 등 <유일록>도 &#985172;범사록&#985173;을 토대로 창작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문학적 특질을 확보하게 된 사행가사임을 알 수 있었다. <일동장유가>도 &#985172;동사록&#985173;을 토대로 창작되었지만 자신의 체험과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층위에서 과장 및 허구의 논리가 적용된 양상을 확인되었다. 그러나 <유일록>은 이미 자국의 열세를 인지한 상황이므로 근대적 문물과 관련된 장면에서는 내용이 보완&#8228;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사행가사에 투영된 대외 인식의 주된 관념이 중화에서 근대로 전환되는 이러한 양상은 동시기 대영 사행가사인 <셔유견문록>에서 더욱 명확하게 발견된다. 특히 잔존하는 중화적 사고로 일본에 대한 이적관이 부분적으로나마 확인되는 <유일록>과 달리 영국의 경우 근대화의 구심점으로 설정되어 찬탄의 시선만이 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대와 달리 동아시아를 벗어난 외교 체험이 소재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중화주의가 근대적 세계관으로 교체되는 轉變 양상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유일록>에도 근대적 문물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전제되어 있지만 중화주의적 가치관으로 인해 발현된 이적관과 자국의 열세에 대한 한탄도 대타적 자의식의 기제로 표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셔유견문록>에서 확인되는 자국 인식의 구심점은 ‘근대성’이며 영국을 ‘제나라’로 환치하여 이해할 만큼 근대적 세계에 대한 맹목적 동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당시의 패도적 국제 관계를 분쟁&#8228;종식케 하는 권력의 주재자로 영국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조선이라는 약소국이 구원될 수 있기를 염원하는 당시 지식인의 내적 반응이 투사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02년은 일본에 의한 국권 침탈이 가시화되던 시기였으므로 당시의 대영 체험과 그 인식 속에는 자국의 부국강병에 대한 열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셔유견문록>도 &#985172;서사록&#985173;을 저본으로 삼되 근대적 세계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감흥을 감각적으로 재현한 작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985172;서사록&#985173;을 변환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허구적 요소를 첨가하여 조선과 영국의 친밀한 관계를 상정하는 등 인간적 내면이 형상화된 문학적 공간을 발견할 수 있는 가사작품으로서 의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품의 주된 표현 특질을 보면 관념적 인식이 거의 작동하지 않아 역동적인 문체로 근대적 세계가 감각적으로 재구성되어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상적 장면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서사가 파열된 지점은 물론 감각적 재현을 위해 율격이 이완되어 있는 사례들도 발견되었다. 그리고 회정 과정에서 화자는 시&#8228;공간을 압축한 듯한 자신의 체험을 속도감 있는 문체로 표현하는 등 전대의 사행가사 작품들과 확연하게 변별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현전하는 마지막 사행가사인 <셔유견문록>은 전대의 작품들과 유사한 문학적 창작 원리를 보이지만 세계관적 전환이 여실히 확인되고 그 과정에서 변화된 문학적 특질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후기 사행가사를 통시적으로 고찰함에 있어 동아시아 관계사와 중화&#8228;화이관에 내재한 대타적 자국 인식의 측면을 고려함으로써 단편적 작품 분석이나 평면적 비교의 한계적 시각이 극복될 수 있었다. 또한 개별 작품들의 창작 원리가 해명되어 사행가사 작품들이 문학적 특질과 그 의의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주지하듯 전근대 지식인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수용하는 차원이 가장 급격하게 변화하게 되는 것은 자국의 경계 밖에서 사유하게 된 계기들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리고 낯선 공간의 이동에 따른 다양한 체험들은 시적 주체의 시선이 유연해짐에 따라 상당히 넓은 편폭으로 수렴되어 국내 기행가사가 담당할 수 없는 층위의 경험과 어휘들로 구현된다. 이 과정에서 이념적 단일성은 물론 서사적 인과성도 유지되지 않으며 인식과 구조의 이러한 이완 양상은 작품의 장편화는 물론 문체 특질의 변화와 직접적 상관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행가사의 특질이 변모하게 되는 동력 내지는 주요 표지로서 사행가사의 변모 양상은 큰 의의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행가사의 창작 및 향유와 관련된 기록들을 고찰함으로써 작품들의 실질적 창작 동인과 수용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대나 창작 주체에 따라 정서적 환기, 기억과 재현의 매개체, 향유층의 추체험, 의식적 열망의 대체물 등 다양한 문학적 기능이 발현되었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이는 ‘여행자 문학’의 시각과도 조응되며 낯선 세계에서 촉발된 자아의 내면이 시대에 따라 양상을 달리 하며 국문시가와 접속했음이 사행가사를 통해 확인된다. 기존에 사행가사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던 이러한 시각은 내재적 분석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작품들이 실질적으로 내포했던 당대의 사회&#8228;문화적 의미를 고찰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러한 본고의 논의는 조선시대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20세기 이후 기행을 소재로 창작된 국문시가 작품들과의 비교&#8228;분석도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학 양식은 일정한 역사성 위에서 형성&#8228;변모하는 ‘세계 인식의 질서’이며 새로운 시대에 따라 경험의 표현도 변화하는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근대 매체나 새로운 형식과 관련된 단절이나 연속의 지점들을 보다 세밀하게 살펴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단절적 지층이 반성적으로 조망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사행을 소재로 한 국문시조 및 국문 사행록, 기행가사 등을 통해 공시적인 층위에서의 심화된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이본들이 발견되는 작품들의 경우 면밀한 고증을 통해 필사 및 향유의 실태를 규명해 보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작품들을 새롭게 분석할 수 있는 의미망이 생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전시가는 민족의 언어로 당대인들의 절실한 내면이 형상화되어 있고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 울림에 공감하고 향유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름답다. 본고의 논의를 토대로 고전시가의 미학적, 성찰적, 현재적 의의를 더욱 선명하게 규명하기 위한 확장적 연구가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 사행가사 연구 : 일동장유가와 연행가를 중심으로

        서정규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전공 1986 국내석사

        RANK : 248639

        This thesis is a study on Sahaeng-Kasa (使行歌辭), a travel account of governmental delegation in the form of Kasa. This thesis tried to study of Ildongjangyuka (日東壯遊歌), Yeunhaengka (燕行歌) mainly, which have been said to be most famous: works of Sahaeng-Kasa. The followings are the synopsis of the results of the study. Kim In-Kyum (金仁謙), the author of Ildongjangyuka, came out of the nobility strain. The very fact, however, that he was an illegitimate unabled him to enjoy promotion, in spite of his outstanding literary talent. He was a very strict per son enough to make direct appeal to his superior in the face of unjustice. On the other hand, he was a man of humanity and had a great love for the nation as well. In his-work, Ildongjangyuka, such personal characteristics can be found in many places easily. Hong Soon-Hack (洪學淳), the author of Yeunhaengka, was not impaired by his social status like Kim In-Kyum, even though he wasn't out of the nobility stock. He was as bright as to pass the state-run exam, Byunggwa (丙科 ),for civil servants at the age of 16. He advanced further in government hierarchy to be one of the three envoys at the age of 25 when he was appointed as a member of the delegation to China. His work, Yeunhaengka shows his youthful vitality and his emotional touch also. In describing the foreign natural feature, Kim In-Kyum resorted to some ideal and abstract style. On the contrary, Hong Soon-Hack gave it a minute amount using descriptive and realistic words. Especially, both authors' attention was largely drawn to the people and their cultures. That is belived to be most important part of Sahaeng-Kasa to attract reader's interst. Even in this matter, they presented a stricking contrast. While Kim In-Kyum expressed his strong subjectivity in his work, Hong Soon-Hack introduced the people and their culture as they were. upon the destination, the purpose, and each person's position. Especially, all member of delegation to Japan had to keep Korean's dignity. Among them, the secretary was so demending that he was supposed to write many poems everyday throughout the delegation's trip. Therefore, we can emagine that Ildongjangyuka was under such influence of circumstances. By contrast, Hong's duty in the delegation to China wasn't so demanding one as that of Kim. Without feeling any pressure from his daily duty he was able to make his work a detailed account of delegation's trip from the landscape to the culture. Sahaeng-Kasa is a part of travel sketch in the form of Kasa which has various characteristics. Like in Ildongjangyuka Yeunhaengka, the style of Sahaeng-Kasa was largely dependent upon the writer's character and also upon various conditions in terms of its quality and quantity. From this standpoint, Sahaeng-Kasa should be understood as an important part of Korean Literature of later Yi Dynasty.

      • 使行歌辭 硏究 : <日東壯遊歌>와 <丙寅燕行歌>를 중심으로

        송미숙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2004 국내석사

        RANK : 248639

        This thesis is a study on Sahaeng-Kasa, a travel account of governmental delegation in the form of kasa. This thesis tried to study of Ildongjanyuka, Byunginyeunhaengka mainly, which have been said to be most famous works of Sahaeng-Kasa. The followings are the synopsis of the results of the study. Kim In-Kyun, the author of Ildongjanyuka, came out of the nobility strain. The very fact, however, that he was an illegitimate unabled him to enjoy promotion, in spite of his outstanding literary talent. He was a very strict person enough to make direct appeal to his superior in the face of unjustice. On the other hand, he was a man of humanity and had a great love for the nation as well. Ildongjanyuka such personal characteristics can be found in many places easily. Hong Soon-Hack, the author of Byunginyeunhaenga, was not impaired by his social status like Kim In-Kyum, even though he wasn't out of the nobility stock. He was as brigh as to pass the state-run exam, Byunggwa, for civil servants at the age of 16. He advanced further in government hierarchy to be one of the three enboys at the age of 25 when he was appointed as a mentor of the delegation to China. His work, Byunginyeunhaenga shows his youhtful vitality and his enotional thouch also. In describing the foreign natural feature, Kim In-Kyum resorted to some ideal and abstract style. On the contrary, Hong Soon-Hack gave it a menute amount using descriptive and realistic words. Especially, both authors' attention was largely drawn to the people and their cultures. That is belibed to be most important part of Sahaeng-Kasa to attract reader's interst. Even in this matter, they presented a streicking contrast. While Kim In-Kyum experssed his strong subjectivity in his work, Hong Soon-Hack introduced the people and their culture as they were, upon the destination, the purpose, and each person's position. Especially, all member of delegation to Japan had to keep Korean's dignity. Among them, the secretary was so demending that he was supposed to write many poens everday throughout the delegation's trip. Therefore, we can emagine that Ildongjanyuka was under such influence of circumstances. By contrast, Hong's duty in the delegation to Ching wasn't so demanding one as that of Kim. Without feeling any pressure fron his daily duty he was able to make his work a detailed accoung of delegation's trip from the landscape to the culture. Sahaeng-Kasa is a part of trabel sketch in the form of Kasa which has various characteristics. Like in Ildongjanyuka Byunginyeunhaenka, the style of Sahaeng-Kasa was largely dependent upon the writer's character and also upon barious conditions in terms of its quality and quantity. From this standpoint, Sahaeng-Kasa should be understood as an important part of Koeran Literature of later Yi Dynasty.

      연관 검색어 추천

      이 검색어로 많이 본 자료

      활용도 높은 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