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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일제초 상공업 자본가의 분화와 식산흥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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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 논문은 1904년에서부터 1910년대까지의 한국 상공업 자본가들의 존재형태와 ‘국가 부재’의 문제에 대한 사상적 대응으로서 그들의 경제론에 대해서 살펴본 연구이다.
    러일전쟁의 결과로 대한제국이 무력화되고 보호국으로 전락하게 됨에 따라 한국의 자본가들은 통감부의 경제정책에 의한 새로운 경제적 환경과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통감부의 경제정책은 한국경제를 일본이 필요로 하는 식량 및 원료의 공급기지이자 상품 판매 시장으로 기능하도록 재편·장악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 통감부는 화폐개혁, 재정정리, 교통·통신의 구축 및 장악 등 한국을 식민지경제체제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기본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대한제국이 한국 상공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구축해놓은 특권상업체제를 해체하고 일본인 회사 및 공장의 진출을 지원하는데 힘썼다. 그 결과는 대일무역액의 급증과 거래품목의 확대 및 일본인 회사와 공장의 증가 등으로 이어져 한국경제에 대한 일본의 침투가 한층 강화되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의 경제 침투의 수준과 영향은 분야별로 상당한 편차가 있었다. 일본자본주의의 발전 수준과 그에 대응하는 한국 상공업 자본가의 역량이 분야별로 각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경제 침투 확대로 인해 강력한 생존경쟁의 압박에 직면한 경제영역이 존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의 경제 침투가 확대되는 가운데서도 비교적 한국인의 상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일부는 오히려 일본과의 거래를 바탕으로 이득을 보는 경제영역도 존재하였다. 대체적으로 운수업·운송업, 직물업, 연초제조업, 도자기 제조업 등이 전자에 속한 분야였다면 정미업, 제지업, 주조업 등은 후자에 속한 분야였다. 소매업과 도매업의 경우에도 취급물품별, 지역별, 계층별로 전자에 속하는 이들과 후자에 속하는 이들로 나누어졌다. 통감부의 경제정책으로 경제 침투가 확대됨에 따라 일본자본주의와의 관계를 둘러싸고 한국 상공업 자본가들의 재편·분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통감부의 정책과 그로 인한 경제적 변화에 대한 한국 상공업 자본가의 대응은 한말 식산흥업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때 이들 내부에는 상공업 자본가들의 재편·분화를 반영하여 이론기반, 주체설정, 경제발전의 방법과 방향 등을 둘러싸고 각각 ‘자유주의 식산흥업론’과 ‘국가주의 식산흥업론’으로 규정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흐름의 경제론이 존재하였다. 전자는 일본과의 거래에서 이득을 보거나 경제 침투의 확대 속에서도 한국인의 상권이 비교적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던 경제영역에 속하는 자본가들의 입장을 반영한 경제론이었고, 후자는 이는 일본의 경제 침투 확대로 인해 강력한 생존경쟁의 압박에 직면한 경제영역에 속하는 상공업 자본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론이었다. 한말 식산흥업론 내부의 존재하였던 사상 구도와 그들이 가졌던 문제의식, 논리 구조, 방법 제시, 식민권력에 대한 대응 모색 등은 한국 근대경제사상의 원형으로 병합 이후로도 일부 계승되어 식민지하 경제운동 및 경제론의 전개 방향을 결정짓는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병합 이후 총독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통감부 때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식민지 수탈의 총량을 늘리기 위하여 식민권력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발’의 주체로서 나서게 된 것이다. 1910년대 총독부는 여전히 농업을 경제정책에 중심에 두면서도 조선의 무역수지 문제를 개선하고자 수이입품들 가운데 조선에서 원료를 구할 수 있고 기술도 크게 요구되지 않는 상품들을 대상으로 중국 및 러시아로의 수출을 목표로 하는 수출용 상공업 육성정책을 추진하였다.
    191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의 영향과 총독부의 수출용 상공업 육성정책의 효과가 반영되어 생산과 판매를 둘러싸고 병합 이전에 비해 분화 구도가 한층 심화되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영역이 존재하였는데 첫째는 생산과 판매의 과정이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영역으로, 국산품을 주 거래 품목으로 하는 소매업과 국내 상권에서 주로 활동하는 운송업·용달업, 인쇄업과 같은 주요 수출품목 이외의 제조업이 여기에 해당하였다. 둘째는 생산과 판매의 과정이 일본시장과의 거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영역으로, 대일주요수출품의 생산자와 위탁판매 형식으로 이들 품목의 수출을 관장하는 무역업, 대일주요수입품목을 주로 거래하는 수입품 판매업자 등이 속하였다. 셋째는 생산과 판매의 과정이 중국 및 기타 외국시장과의 거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영역으로 대중국주요수출품의 생산자 및 관련 제조업과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 수입해온 품목을 거래하는 수입품 판매업자들이 해당하였다.
    이처럼 1910년대를 거치면서 일본에 예속적인 경제영역이 꾸준히 확대되고 조선경제와 상공업 자본가들의 분화 또한 보다 심화됨에 따라 식민지 경제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 경제론 또한 한말 식산흥업론과 비교하여 일정한 변화가 있었다. 1910년대 조선인 자본가·지식인들의 경제론은 한말 식산흥업론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사상구도·방법 모색 등을 상당 부분 계승하되, 총독부를 현실권력으로서 인정하고 정책적 요구를 하거나 일본이 세운 각종 경제 시설과 기관들을 활용하는 것은 조선산업개발을 위해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점차 확산되고 있었다. 다만 정책 요구의 내용과 식민권력과의 관계설정은 논자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1910년대 심화된 조선인 자본가들의 존재형태 분화가 반영된 결과였다.
    1910년대 경제론 내부에 존재하던 입장 차이는 1921년 ‘산업조사위원회’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전선실업가대회, 유민회, 조선인산업대회의 세 그룹은 중심인물과 지지기반을 달리하고 있었고 경제론의 내용에 있어서도 조선개발의 목표, 중심산업의 설정, 총독부에 대한 정책적 요구 내용, 내지 실업계와의 관계설정 등에 있어도 의견에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기만적인 정치 이벤트에 불과했던 산업조사위원회의 본질로 인해 세 그룹의 경제론은 모두 제대로 정책화 되는데 실패하였다. 조선인 자본가·지식인들의 입장에서는 식민지배의 냉혹한 현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었지만 한 조선인 논자의 평대로 산업문제, 경제발전이 조선인에게 사활이 달린 핵심과제인 이상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한 조직적인 시도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곧 1920년대의 각종 정치·사회·경제 운동은 한말부터 이어진 경제론의 흐름과 1921년 정책화 시도의 좌절 경험 위에서 전개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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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1904년에서부터 1910년대까지의 한국 상공업 자본가들의 존재형태와 ‘국가 부재’의 문제에 대한 사상적 대응으로서 그들의 경제론에 대해서 살펴본 연구이다. 러일전쟁의 결...

    본 논문은 1904년에서부터 1910년대까지의 한국 상공업 자본가들의 존재형태와 ‘국가 부재’의 문제에 대한 사상적 대응으로서 그들의 경제론에 대해서 살펴본 연구이다.
    러일전쟁의 결과로 대한제국이 무력화되고 보호국으로 전락하게 됨에 따라 한국의 자본가들은 통감부의 경제정책에 의한 새로운 경제적 환경과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다. 통감부의 경제정책은 한국경제를 일본이 필요로 하는 식량 및 원료의 공급기지이자 상품 판매 시장으로 기능하도록 재편·장악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를 위해 통감부는 화폐개혁, 재정정리, 교통·통신의 구축 및 장악 등 한국을 식민지경제체제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기본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대한제국이 한국 상공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구축해놓은 특권상업체제를 해체하고 일본인 회사 및 공장의 진출을 지원하는데 힘썼다. 그 결과는 대일무역액의 급증과 거래품목의 확대 및 일본인 회사와 공장의 증가 등으로 이어져 한국경제에 대한 일본의 침투가 한층 강화되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의 경제 침투의 수준과 영향은 분야별로 상당한 편차가 있었다. 일본자본주의의 발전 수준과 그에 대응하는 한국 상공업 자본가의 역량이 분야별로 각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경제 침투 확대로 인해 강력한 생존경쟁의 압박에 직면한 경제영역이 존재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의 경제 침투가 확대되는 가운데서도 비교적 한국인의 상권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일부는 오히려 일본과의 거래를 바탕으로 이득을 보는 경제영역도 존재하였다. 대체적으로 운수업·운송업, 직물업, 연초제조업, 도자기 제조업 등이 전자에 속한 분야였다면 정미업, 제지업, 주조업 등은 후자에 속한 분야였다. 소매업과 도매업의 경우에도 취급물품별, 지역별, 계층별로 전자에 속하는 이들과 후자에 속하는 이들로 나누어졌다. 통감부의 경제정책으로 경제 침투가 확대됨에 따라 일본자본주의와의 관계를 둘러싸고 한국 상공업 자본가들의 재편·분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통감부의 정책과 그로 인한 경제적 변화에 대한 한국 상공업 자본가의 대응은 한말 식산흥업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때 이들 내부에는 상공업 자본가들의 재편·분화를 반영하여 이론기반, 주체설정, 경제발전의 방법과 방향 등을 둘러싸고 각각 ‘자유주의 식산흥업론’과 ‘국가주의 식산흥업론’으로 규정할 수 있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흐름의 경제론이 존재하였다. 전자는 일본과의 거래에서 이득을 보거나 경제 침투의 확대 속에서도 한국인의 상권이 비교적 안정되게 유지되고 있던 경제영역에 속하는 자본가들의 입장을 반영한 경제론이었고, 후자는 이는 일본의 경제 침투 확대로 인해 강력한 생존경쟁의 압박에 직면한 경제영역에 속하는 상공업 자본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론이었다. 한말 식산흥업론 내부의 존재하였던 사상 구도와 그들이 가졌던 문제의식, 논리 구조, 방법 제시, 식민권력에 대한 대응 모색 등은 한국 근대경제사상의 원형으로 병합 이후로도 일부 계승되어 식민지하 경제운동 및 경제론의 전개 방향을 결정짓는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한편 병합 이후 총독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통감부 때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식민지 수탈의 총량을 늘리기 위하여 식민권력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발’의 주체로서 나서게 된 것이다. 1910년대 총독부는 여전히 농업을 경제정책에 중심에 두면서도 조선의 무역수지 문제를 개선하고자 수이입품들 가운데 조선에서 원료를 구할 수 있고 기술도 크게 요구되지 않는 상품들을 대상으로 중국 및 러시아로의 수출을 목표로 하는 수출용 상공업 육성정책을 추진하였다.
    1910년대는 1차 세계대전의 영향과 총독부의 수출용 상공업 육성정책의 효과가 반영되어 생산과 판매를 둘러싸고 병합 이전에 비해 분화 구도가 한층 심화되었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영역이 존재하였는데 첫째는 생산과 판매의 과정이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영역으로, 국산품을 주 거래 품목으로 하는 소매업과 국내 상권에서 주로 활동하는 운송업·용달업, 인쇄업과 같은 주요 수출품목 이외의 제조업이 여기에 해당하였다. 둘째는 생산과 판매의 과정이 일본시장과의 거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영역으로, 대일주요수출품의 생산자와 위탁판매 형식으로 이들 품목의 수출을 관장하는 무역업, 대일주요수입품목을 주로 거래하는 수입품 판매업자 등이 속하였다. 셋째는 생산과 판매의 과정이 중국 및 기타 외국시장과의 거래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영역으로 대중국주요수출품의 생산자 및 관련 제조업과 중국과 미국 등지에서 수입해온 품목을 거래하는 수입품 판매업자들이 해당하였다.
    이처럼 1910년대를 거치면서 일본에 예속적인 경제영역이 꾸준히 확대되고 조선경제와 상공업 자본가들의 분화 또한 보다 심화됨에 따라 식민지 경제문제에 대한 대응으로서 경제론 또한 한말 식산흥업론과 비교하여 일정한 변화가 있었다. 1910년대 조선인 자본가·지식인들의 경제론은 한말 식산흥업론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사상구도·방법 모색 등을 상당 부분 계승하되, 총독부를 현실권력으로서 인정하고 정책적 요구를 하거나 일본이 세운 각종 경제 시설과 기관들을 활용하는 것은 조선산업개발을 위해 더이상 피할 수 없는 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점차 확산되고 있었다. 다만 정책 요구의 내용과 식민권력과의 관계설정은 논자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1910년대 심화된 조선인 자본가들의 존재형태 분화가 반영된 결과였다.
    1910년대 경제론 내부에 존재하던 입장 차이는 1921년 ‘산업조사위원회’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보다 구체화되었다. 전선실업가대회, 유민회, 조선인산업대회의 세 그룹은 중심인물과 지지기반을 달리하고 있었고 경제론의 내용에 있어서도 조선개발의 목표, 중심산업의 설정, 총독부에 대한 정책적 요구 내용, 내지 실업계와의 관계설정 등에 있어도 의견에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기만적인 정치 이벤트에 불과했던 산업조사위원회의 본질로 인해 세 그룹의 경제론은 모두 제대로 정책화 되는데 실패하였다. 조선인 자본가·지식인들의 입장에서는 식민지배의 냉혹한 현실을 새삼 확인한 것이었지만 한 조선인 논자의 평대로 산업문제, 경제발전이 조선인에게 사활이 달린 핵심과제인 이상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한 조직적인 시도는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곧 1920년대의 각종 정치·사회·경제 운동은 한말부터 이어진 경제론의 흐름과 1921년 정책화 시도의 좌절 경험 위에서 전개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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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1883~1905년 인천항 일본상인들의 영업활동, 김윤희, 사림 44, 2013, , 2013

    2. 「1908~1919년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의 설립과 경영」, 오미일, 동방학지 123, 2004, , 2004

    3. 「1904~1910년 일제의 한국 침략구상과 ‘시정개선’」, 권태억, 한국사론 31, 1994, , 1994

    4. 「1905년~1930년대초 일제의 酒造業 정책과 조선 주조업의 전개」, 이승연, 한 국사론 32, 1994, , 1994

    5. 「분원의 마지막 자기업, 分院磁器株式會社~1916)의 설립과 운영 진」, 박은숙, 한국사학보 50, 2013, , 1910

    6. 1910년대 일제의 농업정책과 식민지 지주제: 이른바 ‘미작개량정책’을 중심으로」, 정연태, 한국사론 20, 1988, , 1988

    7. 「1910년대 식민농정과 금융수탈기구의 확립과정」, 한국사연구회 편,  3 1민족해방운동연구, 정태헌, 청년사, 1989, , 1989

    1. 「1883~1905년 인천항 일본상인들의 영업활동, 김윤희, 사림 44, 2013, , 2013

    2. 「1908~1919년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의 설립과 경영」, 오미일, 동방학지 123, 2004, , 2004

    3. 「1904~1910년 일제의 한국 침략구상과 ‘시정개선’」, 권태억, 한국사론 31, 1994, , 1994

    4. 「1905년~1930년대초 일제의 酒造業 정책과 조선 주조업의 전개」, 이승연, 한 국사론 32, 1994, , 1994

    5. 「분원의 마지막 자기업, 分院磁器株式會社~1916)의 설립과 운영 진」, 박은숙, 한국사학보 50, 2013, , 1910

    6. 1910년대 일제의 농업정책과 식민지 지주제: 이른바 ‘미작개량정책’을 중심으로」, 정연태, 한국사론 20, 1988, , 1988

    7. 「1910년대 식민농정과 금융수탈기구의 확립과정」, 한국사연구회 편,  3 1민족해방운동연구, 정태헌, 청년사, 1989, ,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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