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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기 한국인의 일본기행문과 일본인의 한국기행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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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개항 후 한일합방까지 한국인이 쓴 일본기행문과 일본인이 쓴 한국기행문의 목록과 서지정보 등을 제시하고 검토한 후, 전체적인 서술 양상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현전하는 개화기 한국인이 작성한 일본기행문으로는 21명의 저자가 쓴 총 27편의 작품이 확인되었다. 시기별 작품수를 살펴보면, 개항 이후 갑오경장(1876-1893)까지 17편, 갑오경장 이후 을사조약(1894~1904)까지 2편, 을사조약 이후 한일병합 이전(1905~1909)까지 8편이었다. 일본인들이 작성한 한국기행문으로는 42명의 저자가 쓴 42편의 작품이 확인된다. 시기별로 보면 개항 이후 청일전쟁 이전이(1876-1893) 9편, 청일전쟁 전후 러일전쟁 이전(1894-1904)이 12편, 러일전쟁 이후 한일병합 이전(1905~1909)이 21편이었다.
    개항 직후 한국은 정부에서 파견한 공식 사행원들로 하여금 일본기행문을 작성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일공사관이 설치되면서 사행록의 형식의 일본기행문도 사라지게 된다. 이태직의 기행문은 형식적인 면에서는 사행록의 전통을 계승한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으나, 개인의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공적인 내용을 다루었던 사행록과 구별된다. 잠시 단절되었던 기행문은 유학생들 사이에서 다시 만들어진다. 1906년 경에 윤정하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留學實記」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 작품에는 기행가사 <일본유학가>가 실려 있다. 이후 1908년부터 유학생 잡지에 근대 일본기행문이 본격적으로 게재되기 시작하였다. 유학생 잡지는 19세기 말에도 존재하였지만, 당시 유학생들이 기행문을 투고하지 않았던 것은 유학 상황과 국내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1906년 이후 유학생 잡지가 발간되면서 기행문을 발표하는 장이 생겼고, 이러한 배경과 맞물려 1908년에 독자를 겨냥한 일본기행문이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기행문은 서로 긴밀한 관계 속 다른 사회적 배경 아래 전개되었다. 개항 후 한국인의 일본기행문은 통신사들의 사행록을 모델로 하였다. 그런 이유로 수신사와 조사시찰단의 기행문은 사행록의 체제를 답습하였다. 그들은 일정·일기·시·문답록·서계 등 사행을 둘러싼 여러 기록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 간행하는 관습을 따랐는데, 정부에 제출하는 보고서 외에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사행록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중국 연행과 일본 사행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일본 사행을 ‘오랑캐의 나라로 가는 것’, ‘배울 것이 없는 여행’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행록은 연행록에 비해 널리 읽히지 않았으며, 사행록의 작자들도 자신의 기록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 인식은 개항 직후에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반면 일본인이 쓴 한국기행문은 전부 출판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에 이미 출판업이 성행했으며, 이런 가운데 기행문은 여행문화의 발달에 힘입어 대대적으로 출판되었다. 기행문은 상업 출판 뿐 아니라 개인의 필사를 통해서도 널리 유통되었다.
    기행문과 사회의 관계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기행문이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는 반면, 일본의 경우 사회의 영향이 기행문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은 초창기에는 사신들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었으며, 이후에는 유학생의 신분이 아니면 일본으로 건너가기 어려웠다. 이렇게 도일(渡日)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을 경험한 이들이 귀국후에 남긴 기행문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한국에서 일본기행문의 독자는 왕과 주변 고위관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기행문에 기대하는 것은 여행대상국에 대한 정보였다. 이렇게 주된 독자가 지배계층이었기 때문에, 일본기행문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일본에서는 언론과 학자들이 생산한 한국관련 담론이 그대로 대다수의 기행문에 반영되었다. 일본의 경우는 사회의 영향이 기행문의 서술을 좌우하였다. 국가에서 만들어낸 한국관이 학자들을 통해 유통되고, 이것이 기행문의 형태로 재생산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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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개항 후 한일합방까지 한국인이 쓴 일본기행문과 일본인이 쓴 한국기행문의 목록과 서지정보 등을 제시하고 검토한 후, 전체적인 서술 양상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현전...

    본고는 개항 후 한일합방까지 한국인이 쓴 일본기행문과 일본인이 쓴 한국기행문의 목록과 서지정보 등을 제시하고 검토한 후, 전체적인 서술 양상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현전하는 개화기 한국인이 작성한 일본기행문으로는 21명의 저자가 쓴 총 27편의 작품이 확인되었다. 시기별 작품수를 살펴보면, 개항 이후 갑오경장(1876-1893)까지 17편, 갑오경장 이후 을사조약(1894~1904)까지 2편, 을사조약 이후 한일병합 이전(1905~1909)까지 8편이었다. 일본인들이 작성한 한국기행문으로는 42명의 저자가 쓴 42편의 작품이 확인된다. 시기별로 보면 개항 이후 청일전쟁 이전이(1876-1893) 9편, 청일전쟁 전후 러일전쟁 이전(1894-1904)이 12편, 러일전쟁 이후 한일병합 이전(1905~1909)이 21편이었다.
    개항 직후 한국은 정부에서 파견한 공식 사행원들로 하여금 일본기행문을 작성하게 하였다. 그러나 주일공사관이 설치되면서 사행록의 형식의 일본기행문도 사라지게 된다. 이태직의 기행문은 형식적인 면에서는 사행록의 전통을 계승한 마지막 작품이라 할 수 있으나, 개인의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공적인 내용을 다루었던 사행록과 구별된다. 잠시 단절되었던 기행문은 유학생들 사이에서 다시 만들어진다. 1906년 경에 윤정하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留學實記」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 작품에는 기행가사 <일본유학가>가 실려 있다. 이후 1908년부터 유학생 잡지에 근대 일본기행문이 본격적으로 게재되기 시작하였다. 유학생 잡지는 19세기 말에도 존재하였지만, 당시 유학생들이 기행문을 투고하지 않았던 것은 유학 상황과 국내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1906년 이후 유학생 잡지가 발간되면서 기행문을 발표하는 장이 생겼고, 이러한 배경과 맞물려 1908년에 독자를 겨냥한 일본기행문이 등장하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기행문은 서로 긴밀한 관계 속 다른 사회적 배경 아래 전개되었다. 개항 후 한국인의 일본기행문은 통신사들의 사행록을 모델로 하였다. 그런 이유로 수신사와 조사시찰단의 기행문은 사행록의 체제를 답습하였다. 그들은 일정·일기·시·문답록·서계 등 사행을 둘러싼 여러 기록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 간행하는 관습을 따랐는데, 정부에 제출하는 보고서 외에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한국에서 사행록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중국 연행과 일본 사행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일본 사행을 ‘오랑캐의 나라로 가는 것’, ‘배울 것이 없는 여행’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행록은 연행록에 비해 널리 읽히지 않았으며, 사행록의 작자들도 자신의 기록을 적극적으로 알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 인식은 개항 직후에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반면 일본인이 쓴 한국기행문은 전부 출판된 것이다.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에 이미 출판업이 성행했으며, 이런 가운데 기행문은 여행문화의 발달에 힘입어 대대적으로 출판되었다. 기행문은 상업 출판 뿐 아니라 개인의 필사를 통해서도 널리 유통되었다.
    기행문과 사회의 관계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기행문이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는 반면, 일본의 경우 사회의 영향이 기행문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은 초창기에는 사신들만이 할 수 있는 경험이었으며, 이후에는 유학생의 신분이 아니면 일본으로 건너가기 어려웠다. 이렇게 도일(渡日)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을 경험한 이들이 귀국후에 남긴 기행문의 가치는 더욱 커졌다. 한국에서 일본기행문의 독자는 왕과 주변 고위관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기행문에 기대하는 것은 여행대상국에 대한 정보였다. 이렇게 주된 독자가 지배계층이었기 때문에, 일본기행문은 한국 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일본에서는 언론과 학자들이 생산한 한국관련 담론이 그대로 대다수의 기행문에 반영되었다. 일본의 경우는 사회의 영향이 기행문의 서술을 좌우하였다. 국가에서 만들어낸 한국관이 학자들을 통해 유통되고, 이것이 기행문의 형태로 재생산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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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is study aimed to present as a list the current status of Japan travelogues written by Koreans and Korea travelogues by Japanese which were written until the Korea-Japan annexation since the opening of a port, and examine the descriptive aspects of the whole travelogues after investigating the bibliographic data for each of them.
    The author could identify the existing 27 books of Japan travelogues by 21 Korean writer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Looking at the number of travelogues for each period, there are 16 books written before the Gabo Reform(甲午更張) after the opening of a port(開港) (1876-1893), 2 books before the Eulsa Treaty(乙巳條約) after the Gabo Reform(甲午更張) (1894-1904), and 9 books before the Korea-Japan annexation treaty(韓日倂合) after the Eulsa Treaty(乙巳條約) (1905-1909).
    For the published travelogues which were written by Japanese at the enlightenment period, 42 books of travelogues by 42 different authors could be identified. Looking at each time of this period, they can be divided into 9 books in 1876~1893, 12 books in 1894~1904, and 21 books in 1894~1904.
    Travelogues of Korea and Japan were under different social backgrounds but developed being closely related to each other at the same time. A Japan travelogue after the opening of a port was based on the Sahengrok(使行錄) from the Korean news agency. For this reason, the travelogues by the Susinsa(修信使) and the Inspection Team(朝士視察團) followed the system of the Sahengrok(使行錄). They followed the custom where a book was published with the various records bound into about envoy missions such as itineraries, diaries, poems, dialogues, and credentials, and they wrote their own Sahengrok(使行錄) individually. However, the conventional public perception of the Sahengrok(使行錄) in Korea was not positive. It was because when looking at the difference in conventional Korean perception of envoys to China and those to Japan, being dispatched to Japan as an envoy was regarded as being sent to the 'barbarians' country and having nothing to learn from. Because of this, Sahengrok(使行錄) has not been known as much as Yeonhengrok(燕行錄), and writers themselves did not try to make it known widely.
    On the other hand, the situation of travelogues in Japan was quite different. As one of the biggest difference, a difference of publication cannot be avoided mentioning. In case of Japan, publishing business was already flourishing in the Edo period(江戶時代) and the published travelogues among all the publications were widely read in Japan where a travelling culture was developed. There were different forms of travelogues such as publications for sale and self-publication.
    In terms of the effect between travelogues and a society, in Korea, travelogues had an influence on the society whereas in Japan, the effects of a society were reflected in travelogues. In Korea, going over to Japan was only possible for the delegates sent by the government in the earlier times and then, for the students studying in Japan in the later times. Because of that, the value and meaning of the travelogues written by them after their return to Korea was much bigger. It is because they were the only ones who actually saw the real Japan. It might only have been kings and top officials around them who read the Japan travelogues. What they may expect from a travelogue would be information about the country. In this sense, travelogues had an influence on our Korean society. Contrarily, in Japan, what journalists and scholars said about Korea was reflected in an ordinary travelogue as it was. In Japan, the effect of a society decided how a travelogue was described. A view of Korea made up by the government was spoken out by scholars and written by the public in their travelogues contributing it to be widely spread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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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study aimed to present as a list the current status of Japan travelogues written by Koreans and Korea travelogues by Japanese which were written until the Korea-Japan annexation since the opening of a port, and examine the descriptive aspects of ...

    This study aimed to present as a list the current status of Japan travelogues written by Koreans and Korea travelogues by Japanese which were written until the Korea-Japan annexation since the opening of a port, and examine the descriptive aspects of the whole travelogues after investigating the bibliographic data for each of them.
    The author could identify the existing 27 books of Japan travelogues by 21 Korean writers during the enlightenment period. Looking at the number of travelogues for each period, there are 16 books written before the Gabo Reform(甲午更張) after the opening of a port(開港) (1876-1893), 2 books before the Eulsa Treaty(乙巳條約) after the Gabo Reform(甲午更張) (1894-1904), and 9 books before the Korea-Japan annexation treaty(韓日倂合) after the Eulsa Treaty(乙巳條約) (1905-1909).
    For the published travelogues which were written by Japanese at the enlightenment period, 42 books of travelogues by 42 different authors could be identified. Looking at each time of this period, they can be divided into 9 books in 1876~1893, 12 books in 1894~1904, and 21 books in 1894~1904.
    Travelogues of Korea and Japan were under different social backgrounds but developed being closely related to each other at the same time. A Japan travelogue after the opening of a port was based on the Sahengrok(使行錄) from the Korean news agency. For this reason, the travelogues by the Susinsa(修信使) and the Inspection Team(朝士視察團) followed the system of the Sahengrok(使行錄). They followed the custom where a book was published with the various records bound into about envoy missions such as itineraries, diaries, poems, dialogues, and credentials, and they wrote their own Sahengrok(使行錄) individually. However, the conventional public perception of the Sahengrok(使行錄) in Korea was not positive. It was because when looking at the difference in conventional Korean perception of envoys to China and those to Japan, being dispatched to Japan as an envoy was regarded as being sent to the 'barbarians' country and having nothing to learn from. Because of this, Sahengrok(使行錄) has not been known as much as Yeonhengrok(燕行錄), and writers themselves did not try to make it known widely.
    On the other hand, the situation of travelogues in Japan was quite different. As one of the biggest difference, a difference of publication cannot be avoided mentioning. In case of Japan, publishing business was already flourishing in the Edo period(江戶時代) and the published travelogues among all the publications were widely read in Japan where a travelling culture was developed. There were different forms of travelogues such as publications for sale and self-publication.
    In terms of the effect between travelogues and a society, in Korea, travelogues had an influence on the society whereas in Japan, the effects of a society were reflected in travelogues. In Korea, going over to Japan was only possible for the delegates sent by the government in the earlier times and then, for the students studying in Japan in the later times. Because of that, the value and meaning of the travelogues written by them after their return to Korea was much bigger. It is because they were the only ones who actually saw the real Japan. It might only have been kings and top officials around them who read the Japan travelogues. What they may expect from a travelogue would be information about the country. In this sense, travelogues had an influence on our Korean society. Contrarily, in Japan, what journalists and scholars said about Korea was reflected in an ordinary travelogue as it was. In Japan, the effect of a society decided how a travelogue was described. A view of Korea made up by the government was spoken out by scholars and written by the public in their travelogues contributing it to be widely spread 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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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역, 『雲養集』, 구지현, 기태완, 김윤식, 도서출판 혜안, , 2013

    2. 역, 『동도일사』, 박상식, 이성주, 부산박물관, , 2012

    3. 「紳士遊覽團考」, 정옥자, 『역사학보』27호, 역사학회, , 1965

    4. 「사화기략연구」, 최덕수, 『사총』50호, 고려대학교 역사연구소, , 1999

    5. 「『동도일사』 해제」, 김석희, 『역사와 세계』6, 효원사학회, , 1982

    6. 「여행자 문학론 시고」, 이혜순, 한국비교문학회, 『비교문학』 24집, 한국비교문학회, , 1999

    7. 『調査視察團關係資料集』, 허동현, 1~14편, 국학자료원, , 2000

    8. 『여행 발견 타자의 표상』, 박찬승, 민속원, , 2010

    9. 역, 『명치시대 동경일기』, 이태직, 최강현, 서우얼출판사, , 2006

    10. 「서적중개상 宋申用연구」, 이민희, 『고소설연구』27, 한국고서설학회, , 2009

    1. 역, 『雲養集』, 구지현, 기태완, 김윤식, 도서출판 혜안, , 2013

    2. 역, 『동도일사』, 박상식, 이성주, 부산박물관, , 2012

    3. 「紳士遊覽團考」, 정옥자, 『역사학보』27호, 역사학회, ,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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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여행자 문학론 시고」, 이혜순, 한국비교문학회, 『비교문학』 24집, 한국비교문학회, , 1999

    7. 『調査視察團關係資料集』, 허동현, 1~14편, 국학자료원, , 2000

    8. 『여행 발견 타자의 표상』, 박찬승, 민속원, , 2010

    9. 역, 『명치시대 동경일기』, 이태직, 최강현, 서우얼출판사,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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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왜사일기 동경일기 해제』, 정찰렬, 한양대학교국학연구원, ,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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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추금 강위의 해외기행시 연구』, 배기표,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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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20세기 初 對日 使行歌辭 〈遊日錄〉의 世界 認識과 文學的 特 質」, 노요한, 김윤희,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한국어문학국제학술포럼 학술대회,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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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일본 시인 이시바타 사다(石幡貞)의 눈에 비친 19세기 부산의 모습」, 허경진, 『인 문학논총』 제15권 1호, 경성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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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수신사를 통해 본 개화기 한시의 위상-제1․2차 수신사의 창수시를 중심으로-」, 허경진, 조영심, 『동북아문화연구』제28집, 동북아문화학회, , 2011

    44. 「근대 초기 기행문의 전개 양상과 문학적 기행문의 기원-국토기행을 중심으 로」, 김현주, 『현대문학의 연구』16, 한국문학연구학회, , 2001

    45. 「紳士遊覽團 使行錄에 반영된 한일문화교류:『日槎集略』과 『東行日録』을 중심으로」, 한태문, 『일어일문학』제52집, 대한일어일문학회, , 2011

    46. 「개화기 조선 문사의 일본 문물 체험과 일본 인식 : 박대양의 『동사만록』 을 중심으로」, 김남이, 동양고전연구 제23집, 동양고전학회, , 2005

    47. 「일본인의 조선여행기록에 비친 조선의 표상-『大役小志』를 중심으로」, 『대구사학』 99, 이규수, 대구사학회, , 2010

    48. 「19세기 말 조선 외교관의 근대 일본의 도시체험과 그 서술의 특징 -<유일 록>을 중심으로-」, 정인숙, 한국시가학회, 『한국시가연구』 32권, , 2012

    49. 「독일 기행문학을 통해 본 타자인식과 자기이해-문화학과 기행문학의 접목 을 위한 시론-」, 이군호, 한국헤세학회, 『헤세연구』31집, 한국헤세학회, , 2014

    50. 「로쿠메이칸(鹿鳴館)의 유학자 - 박대양(朴戴陽)의 『東槎漫錄』과 메이지 일본의 표상 내셔날리즘-」, 황호덕, 『상허학보』 제11집, 상허학회, , 2003

    51. 雲養 金允植의 사행시를 통해 본 인식 변화 -「석진우역집(析津于 役集)」과 「동사만음(東槎漫吟)」을 중심으로-, 김해연, 『영주어문연구』제21집, 영주어문학회, , 2011

    52. 「1881년 朝士視察團의 明治 日本政治制度 理解 : 朴定陽의 內務省 『視察 記』와 『見聞事件』類 등을 중심으로」, 허동현, 『한국사연구』제8호, 한국사연구 회, , 1994

    53. 「19세기 말 일본인의 조선여행 관련 기록물 연구 - 1894년 출판 조선여행기 록을 중심으로」, 『동북아 문화연구』31, 문순희, 동북아시아문화학회, , 2012

    54. 「근대관광을 통해 드러난 일본의 제국주의; 년대 이후 일본의 조선관광 과 여행안내서를 중심으로」, 『미술사학』35, 전수연, 미술사학연구회 2010, , 1900

    55. 「『조선서백리기행(朝鮮西伯利紀行)』(1894)에 보이는 야즈 쇼에이(矢津昌 永)의 조선 인식」, 『동아시아 문화연구』44, 최혜주,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 소, , 2008

    56. 「관광지로서의 조선과 조선문화의 소비 -『관광조선(觀光朝鮮)』과 『문화조 선(文化朝鮮)』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 『일본학』30, 오태영, 동국대학교 일본학연 구소,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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