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왕실여성 칭호의 변천 과정을 통해 왕실여성의 지위와 역할의 변화를 고찰하였다. 신라사의 시기는『三國史記』에서는 上代․中代․下代로 구분하였고,『三國遺事』에서는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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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성균관대학교, 2014
학위논문(박사) --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 사학과 , 2014. 8
2014
한국어
900 판사항(22)
서울
(A) study on the changes of the female titles in the royal court of Shilla
v, 152 p. ; 30 cm
지도교수: 김영하
참고문헌: p. 14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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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왕실여성 칭호의 변천 과정을 통해 왕실여성의 지위와 역할의 변화를 고찰하였다. 신라사의 시기는『三國史記』에서는 上代․中代․下代로 구분하였고,『三國遺事』에서는 上古․中古․下古로 나누었다. 왕실여성의 칭호는 신라사의 시기 구분에 따른 변화 양상을 보인다. 본 연구에서는 왕실여성의 칭호가 시기별로 변화하는 양상을 단계별로 네 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첫 번째는 上古期의 ‘夫人’ 칭호의 수용이다. ‘夫人’은 한자식의 외래 칭호로, ‘夫人’ 칭호가 수용되기 이전에는 ‘ar’계 칭호가 있었다. ‘ar’계의 칭호는 특정 역할과 지위에 있는 인물들에게 쓰였던 존칭이었다. 그 대상은 주로 왕모, 왕비, 왕매, 왕녀 등 사제적 지위를 담당한 자들에 한정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왕을 비롯한 왕가의 여성들은 일군의 신성 가족으로서 종교적 역할과 그에 따른 위상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두 번째는 中古期의 ‘妃’ 칭호의 등장이다. 법흥왕대의 금석문인 <蔚州川前里書石>에서 乙巳銘의 ‘女郞王’은 물론 己未銘의 ‘太王妃’, ‘王妃’, ‘妹王’, ‘夫人’ 등의 칭호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왕실여성의 칭호인 ‘太王妃’, ‘王妃’가 보이는데, 그 배경으로써 법흥왕대 ‘大王’ 칭호의 등장을 주목하였다. <蔚州川前里書石>에서의 ‘妃’ 칭호는 기왕의 <名+夫人>에서 <名+妃>로 변경된 것이었다. 중국식의 칭호인 ‘妃’가 신라식 용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신라식의 칭호인 ‘女郞王’과 ‘妹王’의 칭호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왕실여성의 칭호는 왕실여성의 지위를 특화시킴으로써 중고기 왕권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를 하였다.
세 번째는 中代의 ‘王后’ 책봉과 王后-夫人 체계이다. 중대에 왕실여성 칭호로 ‘太后’․‘王后’ 칭호가 도입되었다. 아울러 왕실여성에게도 추봉과 책봉, 시호제정이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중대 왕실여성의 칭호는 중대 왕권의 한화적 내정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즉 중대 왕권의 안정과 강화를 목적으로 한 체계의 변화의 일환으로 왕실여성의 제도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신라 왕실여성의 제도가 중대에 ‘王后’ 책봉이 제도화되고, ‘正妃’ 개념이 도입됨으로써 王后-夫人 체계로 성립되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下代의 王后-夫人 체계의 변용이다. 중대에 성립된 왕실여성의 제도가 하대의 정치상황 하에서 제도적으로 변용되었다. 하대 전기는 원성왕계의 분지화된 가계간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였다. 이 시기는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왕의 직계에 대한 추봉 및 책봉이 많이 이루어졌다. 또한 왕실여성의 책봉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시기의 왕실여성의 지위는 매우 불안정하였다. 왕실여성이 안정된 지위를 획득하기 위하여 태자를 출산하거나 唐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신라의 王后-夫人 체계는 상고기 이래의 왕실여성의 칭호와 위계를 기반으로 중대에 당제인 후비제도를 수용함으로써 성립되었다. 즉 夫人의 칭호는 상고기 초부터 하대 말까지 기혼 여성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칭호였다. 상고기에 夫人 칭호가 수용되었고, 중고기에 夫人 칭호와 지위를 일컫는 妃 칭호가 사용된 이래 중대에서도 夫人 칭호는 王后, 太后, 王妃 등의 지위를 일컫는 칭호와 동시에 사용되었다. 다만 성덕왕대 이후 ‘夫人’ 칭호가 관등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이후 지배층 여성에게 夫人 책봉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던 것이다. 왕의 배우자가 출궁될 당시에 夫人 책봉을 받는 것은 일원적인 위계구조 내의 하강이라기보다는 왕실여성의 지위가 탈각됨에 따른 새로운 지위 부여를 위한 책봉이었던 것이다.
신라의 王后-夫人 체계는 당의 后妃制를 수용하였으나 당의 내직제와 같은 일원화된 위계제도를 정립하지는 않았다. 중대 이후 王后와 夫人의 책봉이 이루어졌는데, 왕후 책봉은 夫人과의 위상 차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중대에 왕실여성의 책봉을 통해 ‘대왕의 정식배우자 1인’으로서의 ‘正妃’ 개념이 정립되었다. 신라의 王后-夫人 체계는 왕의 正妃인 ‘왕후’가 왕실여성을 포함한 지배층 여성의 위계질서 상에서 최상위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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