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에서는 전기비파형동검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고조선이 주변 소국들과 연맹체를 형성하고 나아가 그들을 복속시키는 단계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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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2
2012
한국어
고조선 ; 비파형동검문화 ; 십이대영자유형 ; 정가와자유형 ; 고조선연맹체 ; 패수 ; 만번한 ; 위만 ; 외신관계 ; 예맥 ; Gojoseon ; mandolin-shaped dagger culture ; shiertaiyingzi type ; zhengjiawazi type ; Gojoseon league ; beishui ; manfanhan ; wiman ; outer subject relations ; Yemek
서울
(A) study of formation and development of Gojoseon
vii, 239 p. : 삽화 ; 26 cm
지도교수: 하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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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전기비파형동검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고조선이 주변 소국들과 연맹체를 형성하고 나아가 그들을 복속시키는 단계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고조선이 각 단계별로 어느 정도 발전단계에 있었는지를 파악해 보았다. 이로써 고조선의 국가형성 경험이 이후 삼국의 성립과 발전, 즉 한국 고대국가의 형성과정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이해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동북아시아 지역은 기원전 1000년기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청동기문화에 진입하게 된다. 대체로 내몽고 중부∼하북성 북부지역에는 有柄式銅劍을 사용하는 옥황묘문화가, 내몽고 동남부지역에는 ?柄式銅劍을 사용하는 하가점상층문화가, 대릉하∼서북한지역에는 이들과 달리 비파형동검을 사용하는 비파형동검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이 지역의 전기비파형동검문화는 지역별로 십이대영자유형·쌍방유형·강상유형·신흥동유형으로 구분되며, 각 유형은 토착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비파형동검·선형동부·다뉴기하문동경을 공반하는 비파형동검문화를 받아들였다. 이 문화의 담당자는 예맥족이었다.
이 문화는 청동기 부장묘의 등급에 따라 십이대영자유형을 중심지역으로, 쌍방·강상유형을 1차 주변지역으로, 신흥동유형을 2차 주변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이중 최고 지배층만이 사용했던 다뉴기하문동경이 부장된 A급 무덤은 십이대영자유형의 조양지역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이 지역이 전기비파형동검문화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예맥사회에서 가장 먼저 정치적으로 성장한 것이 고조선이라고 한다면 그 고조선은 바로 조양지역의 전기비파형동검문화를 기반으로 성장한 정치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성장한 고조선은 춘추 제와 문피 교류를 하였다. 패자였던 제환공은 조빙시 답례품으로 사용할 최고급 문피가 필요하였으며, 봉선을 위해서는 이민족의 조공이 필요하였다. 제환공은 이러한 문제를 고조선과의 교류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했다. 고조선은 중국과의 문피교류를 주도하면서 점차 예맥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체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예맥사회가 고조선을 중심으로 통일적인 힘을 발휘하는 단계는 아니었다.
기원전 5세기를 전후로 대릉하∼서북한지역은 후기비파형동검문화로 발전하였다. 이중 대릉하유역은 전국계 문화를 많이 받아들여 나름대로 발전을 꾀하였지만 그 결과로 비파형동검문화의 정체성을 점차 잃어갔다. 반면에 요동지역은 토광묘라는 전국계 묘제를 채택하면서도 비파형동검문화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심양 중심의 정가와자유형이 후기비파형동검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의 문헌상에 보이는 고조선은 바로 심양지역 후기비파형동검문화의 핵심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비파형동검문화의 중심이 전기의 대릉하유역 조양에서 후기의 심양지역으로 바뀌게 된 것이며 이 후기의 중심세력이 예맥사회의 대표성을 갖는 고조선을 칭하게 된 것이다.
고조선에는 부자상속되는 王과, 대부라는 관료와, 전국 연과 전쟁을 치룰 정도의 군대 등 국가의 기본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고조선의 주변에는 진번·임둔과 같은 소국과 그보다 규모가 작은 읍락규모의 예맥집단이 있었다. 고조선은 이들과 연맹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이 연맹체의 맹주국으로서 연과 대항하였던 것이다.
연은 변법에 성공한 후 제를 정벌한 다음 해인 기원전 282년에 동호와 제의 배후역할을 하였던 고조선을 공격하였다. 이로 인해 고조선은 연과 滿番汗[오늘날 蓋平과 渾河 하류지역의 海城과 營口 인근]을 경계로 삼았으며, 연은 대릉하유역과 천산산맥 이서지역에 요서군과 요동군을 설치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조선은 평양지역으로 중심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으며 연맹체의 구성원인 진번도 함께 이동하게 되었다.
고조선은 전국을 통일한 진에게 천산산맥 이동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지역을 빼앗겼다. 진은 그 땅을 遼東外?로 삼았다. 진이 통일 이전에 內屬한 지역을 外臣邦으로 삼고 이어서 군현으로 편제했던 것으로 보아 고조선은 진대 외신방의 마지막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조선은 한초에 요동지역을 공격하여 한과의 경계를 浿水[渾河]로 삼았다.
위만이 망명자들을 모아 고조선의 藩屛이 되겠다고 하자 고조선의 準王은 그를 博士로 삼고 西邊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은 이러한 지역적 기반을 통해 망명자들을 규합하여 고조선의 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위만은 遼東太守를 통해 한과 外臣 관계를 맺었다. 한은 내부적으로는 異姓諸侯들의 반란과 숙청이 있었으며 고조 사후 呂后 통치라는 불안한 시기를 거쳤고, 대외적으로 흉노와 대치상태에서 북방 이외의 변경으로 관심을 돌릴 여력이 없었다. 위만은 한과의 외신관계를 맺음으로써 국제적으로 왕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외신의 대가로 제공받은 병위재물을 통해 진번·임둔 등 주변 연맹세력들을 복속하여 광역의 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고조선은 상을 대표로 하는 재지세력들과 유이민을 주축으로 하는 왕권이 결합하여 중앙의 권력구조를 이루었다. 상이 속한 집단은 왕권에 의해 일정한 통제를 받았으나 대부적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고조선은 복속지역의 토착사회를 해체하지 않고 그 지역 최고 수장의 통치권을 그대로 인정하는 간접 지배 방식을 활용하였다. 고조선은 복속지역 특산품의 일부를 요동군을 통해 한과 교역을 하였다. 또한 고조선은 예군남려로 대표되는 예맥사회의 대한교섭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한반도 중남부의 辰國[衆國]과 漢과의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다.
고조선은 독립성이 강한 여러 지역집단을 느슨하게 묶은 累層的인 지배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것은 언제든지 지배집단의 이탈이 가능한 불안한 구조였다. 기원전 2세기 후반 한은 내정이 안정되자 흉노와 남월을 공격하여 군현으로 편제하였다. 이어서 한은 외신의 의무 불이행이란 명분으로 고조선을 공격하였다. 고조선의 성장 요인으로 작용했던 외신관계가 무제대에 이르러서는 침략의 명분으로 작용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