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병합 이후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신민’ 형성의 과정에서 총독부의 위생사업의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어떠한 정치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었는지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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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 연세대학교 대학원, 2010
2010
한국어
총독부 ; 신민 ; 위생 ; 청결 ; 위생조합 ; 강연회 ; 박람회 ; 공진회 ; 캠페인 ; government-general ; imperial subjects ; hygiene ; cleanliness ; hygiene cooperative ; lecture meeting ; exhibition ; Kongjinhoe(共進會) ; campaign
서울
The hygiene promotion projects of the Japanese government : general and the making of imperial subjects in the early colonial Korea(1910~1919)
ii, 78 p. ; 26 cm
지도교수: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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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본 연구는 병합 이후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신민’ 형성의 과정에서 총독부의 위생사업의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어떠한 정치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었는지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
본 연구는 병합 이후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 ‘신민’ 형성의 과정에서 총독부의 위생사업의 역할은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어떠한 정치적 의도와 관련되어 있었는지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본은 조선을 강제적으로 병합한 이후 동화와 차별이라는 상호 대립적인 두 가지의 지향을 모두 염두에 두면서 식민지 조선인의 像을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때문에 총독부는 동화주의의 원칙을 계속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조선인이 일본 본국의 신민과는 차별적인 또 다른 ‘신민’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문명을 근거로 하여 효과적으로 증명해내고자 했다.
위생은 청결한 일본과 불결한 조선이라는 도식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문명적 차이를 가시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총독부는 조선의 불결함을 강조하며 조선이 문명화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했다. 또한 불결한 조선이 위생적인 문명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총독부의 통치가 필수적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총독부의 논리 속에서 병합 이전까지 존재했던 다양한 위생론은 모두 부정되었고, 총독부의 위생론만이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와 같은 총독부의 태도는 위생행정에서도 나타났다. 병합 이후 총독부는 기존의 청결활동을 정례화·제도화하여 조선인들의 일상생활과 생활공간을 감시하고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에 대해 조선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서적 거부감은 제도 및 행정집행 속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
총독부는 지방의 위생사업을 보조하기 위하여 위생조합을 조직하고, 이를 통해 지방민들을 위생행정에 동원하고자 했다. 1915년 전염병예방령이 위생조합을 일종의 방역기관으로 규정하면서 조선인들은 조합을 통해 위생사업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인정받는 듯 보였다. 하지만 1917년 면제의 실시 이후 위생조합의 행정적 역할은 모두 면에 이관되었다. 따라서 조선인은 지방의 위생행정체계에서도 행정의 대상으로만 규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총독부는 파리, 쥐 등의 전염병 매개체를 제거하기 위해 캠페인을 실시하였다. 캠페인은 쥐와 파리를 잡아온 조선인에 대해 금전적인 보상을 하거나 혹은 전염병 매개체의 위험성을 반복하여 강조함으로써 조선인들을 위생행정 속으로 동원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캠페인의 계획과 운영의 권한은 사실상 당국에 의해 독점되었고, 따라서 조선인들은 단지 물질적 보상이나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총독부가 제시한 위생 캠페인의 목표에 수동적으로 동참하는 존재로 타자화되었다.
총독부는 위생 강연회나 박람회를 통해 질병과 관련된 지식을 조선인에게 제공함으로써 식민통치에 대한 호응도를 높이고자 했다. 총독부는 강연과 전시물을 통해 조선의 비위생적인 모습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총독부의 시정이 조선인들을 위해 필요한 것임을 각인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계몽활동 역시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식민권력에 의해 독점됨으로 해서 총독부와 조선인은 각각 지식의 시혜자와 수혜자로서의 위치에 고착화되었다.
총독부는 이와 같이 다양한 위생사업을 통해서 조선인의 지위를 일방적 지배를 받는 차별적인 존재로 규정하였다. 하지만 식민지 ‘신민’의 형성 과정에서 확인되는 이와 같은 정치적 의도는 총독부에 대한 조선인들의 거리감을 환기시키고 부정적 인식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특히 일제시기의 위생사업이 경찰의 무단적 행정력에 상당부분 의존했다는 점에서 더욱 증폭될 여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