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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朝鮮後期 山城 僧營寺刹 建築에 관한 硏究 = (A) Study on the architecture of military buddhist temples(Seungyoung-sachal) at mountain fortress in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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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조선후기의 주요 산성에는 대부분 僧營寺刹이 경영되었다. 승려들로 하여금 평시에는 성곽을 관리, 보수하고 비상시에는 담당 구역을 수비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僧營寺刹은 승군들은 일종의 군대조직인 僧作隊로 편성되어 總攝 또는 僧將에 의해서 통솔되었다. 명목상 佛寺였지만 실상은 兵營과 다름없었다.
    불교계의 군사 활동은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산성에 僧營寺刹을 설치한 것은 임란 후 이른 바 淸野戰法에 따라 각처의 산성을 수축하고부터다. 축성에 동원된 승려들을 守城軍으로 활용하는 ‘募僧建刹’ 방식에 따른 것이다. 산성 僧營寺刹은 종전까지의 불교계가 보여준 군사 활동과는 그 성격이 크게 달랐던 것이다.
    僧營寺刹은 축성과 함께 건립되는데, 官寺로 취급된 만큼 공사재원은 官府가 마련하고 감독관도 파견되었다. 건립 후에는 官軍 조직에 편입되어 성곽의 특정 구역을 信地로 삼게 된다. 각기 信地 근처에 대략 100여 칸 내외로 지어졌고, 소규모 佛殿 寮舍와 함께 화약고, 무기고 등도 갖춰졌다. 宗旨나 法脈은 그렇게 중시되지 않는 등 佛寺 본래의 종교적 기능보다 僧作隊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서 경영되었던 것이다.
    한편 전국에 산재했던 僧營寺刹은 산성의 기능 상실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해서 대부분 훼철된 후 폐사가 되고, 극히 일부는 일반 사찰로 전환되었다. 이는 조선후기 사찰건축에 있어 수적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주목받지 못하고 연구대상에 들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산성 僧營寺刹은 조선후기 佛敎建築史는 물론이고 城廓史的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본다. 이에 본 연구는 조선후기 산성 僧營寺刹을 대상으로 그 건축 특성을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문헌사료를 조사하는 한편, 실사를 병행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규명하고자 했다. 첫째, 산성축조 사례를 통해서 僧營寺刹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사찰조영에 대한 건축생산구조를 고찰하고자 한다. 셋째, 성곽 내에서의 사찰 입지와 규모, 건축적 특성에 대한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불교건축사 연구 및 성곽사 연구의 일환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
    This study aims to demonstrate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military Buddhist temples, so called Seungyoung-sachal, in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Seungyoung-sachal refers to a sort of Buddhist temples where monks were stationed as a troop. At that time, the government built a mountain fortress and they had the Buddhist monks run a couple of temples the fortress to defend it. Accordingly, Seungyoung-sachal had a close relation to the mountain fortress, and especially they have shown the military characteristics with their locations and arrang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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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후기의 주요 산성에는 대부분 僧營寺刹이 경영되었다. 승려들로 하여금 평시에는 성곽을 관리, 보수하고 비상시에는 담당 구역을 수비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僧營寺刹은 승군들은 일종...

    조선후기의 주요 산성에는 대부분 僧營寺刹이 경영되었다. 승려들로 하여금 평시에는 성곽을 관리, 보수하고 비상시에는 담당 구역을 수비토록 하기 위해서였다. 僧營寺刹은 승군들은 일종의 군대조직인 僧作隊로 편성되어 總攝 또는 僧將에 의해서 통솔되었다. 명목상 佛寺였지만 실상은 兵營과 다름없었다.
    불교계의 군사 활동은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산성에 僧營寺刹을 설치한 것은 임란 후 이른 바 淸野戰法에 따라 각처의 산성을 수축하고부터다. 축성에 동원된 승려들을 守城軍으로 활용하는 ‘募僧建刹’ 방식에 따른 것이다. 산성 僧營寺刹은 종전까지의 불교계가 보여준 군사 활동과는 그 성격이 크게 달랐던 것이다.
    僧營寺刹은 축성과 함께 건립되는데, 官寺로 취급된 만큼 공사재원은 官府가 마련하고 감독관도 파견되었다. 건립 후에는 官軍 조직에 편입되어 성곽의 특정 구역을 信地로 삼게 된다. 각기 信地 근처에 대략 100여 칸 내외로 지어졌고, 소규모 佛殿 寮舍와 함께 화약고, 무기고 등도 갖춰졌다. 宗旨나 法脈은 그렇게 중시되지 않는 등 佛寺 본래의 종교적 기능보다 僧作隊의 활동에 초점을 맞춰서 경영되었던 것이다.
    한편 전국에 산재했던 僧營寺刹은 산성의 기능 상실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특히 1900년대 초 일제에 의해서 대부분 훼철된 후 폐사가 되고, 극히 일부는 일반 사찰로 전환되었다. 이는 조선후기 사찰건축에 있어 수적으로 상당 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주목받지 못하고 연구대상에 들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산성 僧營寺刹은 조선후기 佛敎建築史는 물론이고 城廓史的으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본다. 이에 본 연구는 조선후기 산성 僧營寺刹을 대상으로 그 건축 특성을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문헌사료를 조사하는 한편, 실사를 병행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규명하고자 했다. 첫째, 산성축조 사례를 통해서 僧營寺刹의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사찰조영에 대한 건축생산구조를 고찰하고자 한다. 셋째, 성곽 내에서의 사찰 입지와 규모, 건축적 특성에 대한 고찰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조선후기 불교건축사 연구 및 성곽사 연구의 일환으로서 그 의의가 있다.
    This study aims to demonstrate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military Buddhist temples, so called Seungyoung-sachal, in the late period of Chosun Dynasty. Seungyoung-sachal refers to a sort of Buddhist temples where monks were stationed as a troop. At that time, the government built a mountain fortress and they had the Buddhist monks run a couple of temples the fortress to defend it. Accordingly, Seungyoung-sachal had a close relation to the mountain fortress, and especially they have shown the military characteristics with their locations and arrang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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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1. 서 론 1
    • 1.1. 연구 목적과 의의 1
    • 1.2. 연구 방법과 범위 3
    • 1.3. 선행연구의 고찰 4
    • 1. 서 론 1
    • 1.1. 연구 목적과 의의 1
    • 1.2. 연구 방법과 범위 3
    • 1.3. 선행연구의 고찰 4
    • 2. 僧營寺刹의 역사적 배경 6
    • 2.1 寺刹 兵營化의 유래 6
    • 2.2 三國 및 高麗의 僧營寺刹 11
    • 2.3 壬亂 후 僧軍의 군사적 활용 15
    • 3. 조선후기의 山城築造와 僧營寺刹 19
    • 3.1 淸野入保 전략과 山城 축조 19
    • 3.2 築城 및 守城에의 僧軍 활용 26
    • 3.3 주요 山城과 僧營寺刹 사례 30
    • 3.3.1 南.北漢山城의 僧營寺刹 30
    • 3.3.2 지역 關防의 僧營寺刹 37
    • 4. 寺刹造營과 官府의 지원 40
    • 4.1 募僧建刹 방식의 사찰 조영 40
    • 4.1.1 總攝과 僧將의 공사 주관 40
    • 4.1.2 僧作隊와 僧人工匠의 공역 43
    • 4.2 관부의 지원과 감독 46
    • 4.2.1 官給財源의 출급과 지원 46
    • 4.2.2 官府의 監董官員 파견 52
    • 5. 山城 내 사찰의 立地와 건축 내용 55
    • 5.1 山城 내 사찰의 立地 55
    • 5.1.1 守城 역할과 사찰 입지 55
    • 5.1.2 官軍 시설과의 관계 67
    • 5.2 사찰 규모와 軍用 시설 75
    • 5.2.1 방어개념의 변화와 사찰 규모 75
    • 5.2.2 佛殿건물과 軍用 시설 79
    • 5.3 僧營의 革罷와 현황 89
    • 6. 결론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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