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KCI등재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고구려 고분 연구와 성과: 강서대묘와 쌍영총을 중심으로 = A Study of Andreas Eckardt's Research and Accomplishments on Art of Goguryeo Tombs: Concentrated in Gangseodaemyo and Ssangyeongchong Tombs

      한글로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Andreas Eckardt(1884-1974), along with Japanese researchers like Sekino Tadashi(1867-1935) had excavated the ancient tombs of Goguryeo. Eckardt, not only was a member of this excavation processes, but led the entire site carrying managerial roles. He shared his expertise on modern European excavation methods. What is more important from the finding in this study is that Eckardt’s watercolor painting had been included in Volume 2 of Joseon Historical Remains Book. After the excavation, he published the article on the Great Tomb of Gangseo in 1926 titled, “Das große Königsgrab Yangwon’s: Ein Beitrag zur koreanischen Kunstgeschichte,” in a German academic journal, Ostasiatische Zeitschrif. In 1929, Eckardt published world’s first book on the Korean art history in Germany under the title, 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 and the U.K. as History of Korean Art.
      Eckardt claimed that the murals of the Great Tomb of Gangseo stood much different from the Chinese tomb murals. He added that the ceilings of Goguryeo tombs show some similar qualities from the art of Central Asia. As from the studies done today, it is evident these claims of Eckardt were accurate. This Eckardt’s view can be considered as formidable to the view of Sekino that the tombs were influenced solely by the Chinese.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when studies on the Korean art was seldomly done and difficult to find in Europe, Eckardt was one of the first scholars to introduce the Korean art to the European. And his works continues to be recognized by the reviews of fellow scholars from his time to latter days.
      As aforementioned, Eckardt and Sekino accomplished notable academic findings in the excavation of Goguryeo tombs, but the conclusions of the two scholars vary. Thus far, any research done by the Korean academia championed the conclusions and the studies done by Sekino and little was done on the works of Eckardt. From this study, it was shown that the importance of Eckardt’s views are as great as any other. With the findings shown in this thesis, future analysis of Eckardt’s research on Goguryeo tombs and more accurate evaluation of Andreas Eckardt as a Korean art historian should sufficiently follow.
      번역하기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Andreas Eckardt(1884-1974), along with Japanese researchers like Sekino Tadashi(1867-1935) had excavated the ancient tombs of Goguryeo. Eckardt, not only was a member of this excavation processes, but led the entire site...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Andreas Eckardt(1884-1974), along with Japanese researchers like Sekino Tadashi(1867-1935) had excavated the ancient tombs of Goguryeo. Eckardt, not only was a member of this excavation processes, but led the entire site carrying managerial roles. He shared his expertise on modern European excavation methods. What is more important from the finding in this study is that Eckardt’s watercolor painting had been included in Volume 2 of Joseon Historical Remains Book. After the excavation, he published the article on the Great Tomb of Gangseo in 1926 titled, “Das große Königsgrab Yangwon’s: Ein Beitrag zur koreanischen Kunstgeschichte,” in a German academic journal, Ostasiatische Zeitschrif. In 1929, Eckardt published world’s first book on the Korean art history in Germany under the title, Geschichte Der Koreanischen Kunst and the U.K. as History of Korean Art.
      Eckardt claimed that the murals of the Great Tomb of Gangseo stood much different from the Chinese tomb murals. He added that the ceilings of Goguryeo tombs show some similar qualities from the art of Central Asia. As from the studies done today, it is evident these claims of Eckardt were accurate. This Eckardt’s view can be considered as formidable to the view of Sekino that the tombs were influenced solely by the Chinese.
      During the early 20th Century when studies on the Korean art was seldomly done and difficult to find in Europe, Eckardt was one of the first scholars to introduce the Korean art to the European. And his works continues to be recognized by the reviews of fellow scholars from his time to latter days.
      As aforementioned, Eckardt and Sekino accomplished notable academic findings in the excavation of Goguryeo tombs, but the conclusions of the two scholars vary. Thus far, any research done by the Korean academia championed the conclusions and the studies done by Sekino and little was done on the works of Eckardt. From this study, it was shown that the importance of Eckardt’s views are as great as any other. With the findings shown in this thesis, future analysis of Eckardt’s research on Goguryeo tombs and more accurate evaluation of Andreas Eckardt as a Korean art historian should sufficiently follow.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4-1974)는 20세기 초 세키노 다다시(関野貞, 1867-1935)를 위시한 일본 학자들과 함께 고구려 고분 발굴에 참여했다. 그는 발굴 현장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발굴위원회 책임자 자격으로 고분 발굴 현장을 주도하였고 고분 복원에 대해 권고도 했다. 유럽에서 습득한 근대적인 고고학 발굴 방법과 동시대 중앙아시아를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알게 된 고고학적 연구 방법을 일본 학자들에게 조언하는 역할도 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에카르트가 발굴 현장에서 그린 수채화 그림이 『조선고적도보』제2권에 실렸다는 사실을 이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밝힌 것에 있다. 에카르트는 고분 발굴 연구 성과로 1926년 강서대묘를 조명한 논문 「위대한 양원왕의 묘」를 독일 동 아시아학술지에 게재했으며, 이 논문은 강서대묘의 벽화를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한 논문이다. 1929년에는 세계 최초의 한국미술사 통사인 『조선미술사』를 독일과 영국에서 동시에 출판하였고 저서에는 고구려 고분의 연구 성과도 잘 보여준다.
      현재까지 에카르트의 고구려 고분에 대한 연구가 간과되었던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국미술사 학계에서 제기되는 의문점들과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보았다. 우선 에카르트의 고고학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이 연구를 통해 그가 당시 세계미술사를 주도하였던 유럽에서 근대적인 미술사와 고고학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고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던 유럽 학자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새로운 연구를 섭렵한 결과, 당시 근대적인 고고학적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이었던 것도 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에카르트의 고고학적인 전문성을 인지하였고 근대적인 고고학 발굴 방 법을 전수 받고자 일본 학자들과 함께 고분 발굴 현장에 참여시켰다는 점도 상세히 조명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조선미술사』의 내용이 일본 학자와 『조선고적도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해 에카르트가 고분 발굴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조사한 것과 그의 수채화 가 『조선고적도보』제2권에 실렸다는 사실과 『조선미술사』에 삽입된 스케치에서 연구자가 그의 표식을 찾아냄으로서 저서 그림의 출처가 일본 학자의 것이라는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에카르트는 한국미술의 고유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고구려 고분 미술을 중국미술에 국한 시키지 않았고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 때로는 유럽까지 넓혀갔다. 이러한 에카르트의 관점은 ‘고구려 고분의 모든 것을 중국의 영향’으로만 결론을 지었던 세키노 다다시의 관점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20세기 초 에카르트는 한국미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유럽에 강서대묘에 관한 논문과 한국미술사 통사를 소개했다. 동시대와 후대의 유럽학자들은 당시 유럽인들이 에카르트의 연구를 통해 한국미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동아시아 미술에 한국미술의 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상과 같이 에카르트와 세키노 다다시는 고구려 고분 발굴을 통해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었다. 그리고 두 학자의 연구 결과에는 분명히 다른 시선이 존재했다. 현재까지 한국미술사 학계에서는 세키노 다다시의 관점에 의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었다. 그러나 에카르트의 관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이 논문을 통해 지적 ...
      번역하기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4-1974)는 20세기 초 세키노 다다시(関野貞, 1867-1935)를 위시한 일본 학자들과 함께 고구려 고분 발굴에 참여했다. 그는 발굴 현장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

      안드레아스 에카르트(Andreas Eckardt, 1884-1974)는 20세기 초 세키노 다다시(関野貞, 1867-1935)를 위시한 일본 학자들과 함께 고구려 고분 발굴에 참여했다. 그는 발굴 현장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발굴위원회 책임자 자격으로 고분 발굴 현장을 주도하였고 고분 복원에 대해 권고도 했다. 유럽에서 습득한 근대적인 고고학 발굴 방법과 동시대 중앙아시아를 연구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알게 된 고고학적 연구 방법을 일본 학자들에게 조언하는 역할도 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에카르트가 발굴 현장에서 그린 수채화 그림이 『조선고적도보』제2권에 실렸다는 사실을 이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밝힌 것에 있다. 에카르트는 고분 발굴 연구 성과로 1926년 강서대묘를 조명한 논문 「위대한 양원왕의 묘」를 독일 동 아시아학술지에 게재했으며, 이 논문은 강서대묘의 벽화를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한 논문이다. 1929년에는 세계 최초의 한국미술사 통사인 『조선미술사』를 독일과 영국에서 동시에 출판하였고 저서에는 고구려 고분의 연구 성과도 잘 보여준다.
      현재까지 에카르트의 고구려 고분에 대한 연구가 간과되었던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국미술사 학계에서 제기되는 의문점들과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보았다. 우선 에카르트의 고고학 전문성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 이 연구를 통해 그가 당시 세계미술사를 주도하였던 유럽에서 근대적인 미술사와 고고학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고고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던 유럽 학자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새로운 연구를 섭렵한 결과, 당시 근대적인 고고학적 지식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이었던 것도 확인했다. 일본 정부는 에카르트의 고고학적인 전문성을 인지하였고 근대적인 고고학 발굴 방 법을 전수 받고자 일본 학자들과 함께 고분 발굴 현장에 참여시켰다는 점도 상세히 조명했다.
      또 하나의 의문점은 『조선미술사』의 내용이 일본 학자와 『조선고적도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연구를 통해 에카르트가 고분 발굴 현장에 직접 참여하여 조사한 것과 그의 수채화 가 『조선고적도보』제2권에 실렸다는 사실과 『조선미술사』에 삽입된 스케치에서 연구자가 그의 표식을 찾아냄으로서 저서 그림의 출처가 일본 학자의 것이라는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에카르트는 한국미술의 고유성을 주장함과 동시에 고구려 고분 미술을 중국미술에 국한 시키지 않았고 중국을 넘어 중앙아시아 때로는 유럽까지 넓혀갔다. 이러한 에카르트의 관점은 ‘고구려 고분의 모든 것을 중국의 영향’으로만 결론을 지었던 세키노 다다시의 관점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20세기 초 에카르트는 한국미술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유럽에 강서대묘에 관한 논문과 한국미술사 통사를 소개했다. 동시대와 후대의 유럽학자들은 당시 유럽인들이 에카르트의 연구를 통해 한국미술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동아시아 미술에 한국미술의 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상과 같이 에카르트와 세키노 다다시는 고구려 고분 발굴을 통해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었다. 그리고 두 학자의 연구 결과에는 분명히 다른 시선이 존재했다. 현재까지 한국미술사 학계에서는 세키노 다다시의 관점에 의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조명되었다. 그러나 에카르트의 관점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이 논문을 통해 지적 ...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정석배, "한국 문화 원류와 알타이 신문화 벨트2"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7

      2 정병모, "중국 북조(北朝) 고분벽화를 통해 본 진파리 1・4호분과 강서중・대묘의 양식적 특징" 한국불교미술사학회 (41) : 313-334, 2013

      3 세키노 다다시, "조선미술사" 동문선 2003

      4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조선, 지극히 아름다운 나라" 살림 2010

      5 옥낙안(Andreas Eckardt), "제2의 조국 한국이여 빛나라!" 신태양사 69 : 1958

      6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 열화당 2003

      7 홍미숙,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에 관한 연구" 명지대학교 2019

      8 조현범, "분도회 선교사들의 한국 문화 연구" (재)한국교회사연구소 (33) : 167-222, 2009

      9 권영필, "미적 상상력과 미술사학" 문예출판사 2000

      10 서울역사박물관, "동소문별곡" 서울역사박물관 2014

      1 정석배, "한국 문화 원류와 알타이 신문화 벨트2"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7

      2 정병모, "중국 북조(北朝) 고분벽화를 통해 본 진파리 1・4호분과 강서중・대묘의 양식적 특징" 한국불교미술사학회 (41) : 313-334, 2013

      3 세키노 다다시, "조선미술사" 동문선 2003

      4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조선, 지극히 아름다운 나라" 살림 2010

      5 옥낙안(Andreas Eckardt), "제2의 조국 한국이여 빛나라!" 신태양사 69 : 1958

      6 안드레아스 에카르트,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 열화당 2003

      7 홍미숙, "안드레아스 에카르트의 『조선미술사』에 관한 연구" 명지대학교 2019

      8 조현범, "분도회 선교사들의 한국 문화 연구" (재)한국교회사연구소 (33) : 167-222, 2009

      9 권영필, "미적 상상력과 미술사학" 문예출판사 2000

      10 서울역사박물관, "동소문별곡" 서울역사박물관 2014

      11 정은영, "고구려 쌍영총벽화 안료의 연구" 고려대학교 2003

      12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의 문화유산적 가치와 의미" 한국문화연구원 34 : 123-149, 2018

      13 이종수, "關野貞의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조사 연구, 그 성과와 한계" 한국미술사학회 260 (260): 5-33, 2008

      14 이도학, "將軍塚과 周邊 高句麗 王陵 比定 問題" 역사문화연구소 (58) : 3-34, 2016

      15 Johannes Mahr, "”Wie meine Mutter den Sauerteig benützt hat" Benediktiner als Missionare in Korea und Nordostchina 1909~1954" (재)한국교회사연구소 (33) : 5-63, 2009

      16 Eckardt, Andreas, "History of Korean Art" Edward Goldston 1929

      17 Eckardt, Andreas, "Das große Königsgrab Yangwon’s : Ein Beitrag zur koreanischen Kunstgeschichte" 13 : 1926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예정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12-30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The Misulsahakbo(Reviews on the Art History) -> Korean Bulletin of Art History KCI등재
      2015-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평가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평가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6-01-01 평가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5-01-01 평가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3-07-01 평가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35 0.35 0.4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3 0.42 1.045 0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