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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어학회사건과 해방 후 어문운동의 상관관계—해방 후 조선어학회 어문운동의 원천이 된 조선어학회사건—

        정재환 한글학회 2022 한글 Vol.- No.338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Korean Language Society(KLS: 조선어학회) studied and disseminated the Korean language against the colonial government’s Japanese assimilation policy. Korean language education was conducted through Hangeul classes and the Korean Dictionary Compilation Society was formed and started compiling a Korean dictionary in 1929. They completed the Hangeul writing system, collected standard words, and created a way to write Korean in other languages. These activities were legally carried out for more than 10 years, but all of them were stopped when KLS members and supporters were arrested on October 1, 1942. Some of them were sentenced to many years of prison under Japan’s Public Security Act. The defendants’ claimed that the KLS’s activities were not related to the independence movement but were purely academic. It’s thought that this defense was raised to gain an advantageous position during trial. However, as revealed in a statement of the Joseon Language Dictionary Compilation Association and related records, the KLS was essentially engaged in a language independence movement. After Korea was liberated from Japan, Lee Geuk-ro, Choi Hyeon-bae, Lee Hee-seung, and Jeong In-seung immediately returned to Seoul and carried out various activities, such as reestablishing Korean, writing textbooks, conducting Korean language classes, and starting the Hangeul-only movement, to restore the Korean language. At the time, the media reported in detail on the language movement and how the KLS had suffer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uch that the KLS became respected and adored as independence fighters who were oppressed while defending the Korean language against Japanese colonial rule. The public’s support for the KLS became the foundation of the language movement promoted by the KLS, which achieved great results during the three years of the US military government. The Korean government, established in 1948, enacted the Hangeul-only Act, which was a remarkable achievement accomplished by the KLS.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는 일제의 동화정책에 맞서 조선어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어문운동을 전개했다. 한글강습회를 통해 조선어교육을 실시하고, 1929년에는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만들어 조선어 사전 편찬을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어문 정리와 통일을 기해 민족어 3대 규범인 <한글맞춤법 통일안>,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외래어 표기법> 등을 완성했다. 이와 같은 학회의 활동은 합법적으로 진행되었으나, 1942년 발생한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모두 중지되고, 학회 회원들과 후원자들은 일경에 검거되어 고초를 겪었으며, 일제 사법부는 학회의 어문운동을 독립운동으로 규정하여,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된 중심인물들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 학회의 활동은 독립운동이 아니고 순수한 학술 운동이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그것은 재판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일반적 변론의 형태였다. 또한 조선어사전편찬회 취지서와 관련 기록에서 드러나듯이 학회 어문운동은 본질적으로 언어 독립운동이었다. 해방이 되어 출옥한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등은 서울로 돌아오는 즉시 민족어 회복 운동으로서 우리말 도로 찾기, 교과서 편찬, 한글강습회, 한글전용 운동 등을 활발히 전개했다. 당시 언론은 일제강점기하 조선어학회의 어문운동과 수난사를 상세히 보도하여 학회는 일제에 맞서 우리 말글을 지키다가 탄압받은 단체 및 독립투사로서 민중의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로써 형성된 학회에 대한 민중의 지지는 학회가 추진한 어문운동의 동력이자 원천이 됨으로써, 학회는 미군정하 3년 동안 다대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특히 1948년 설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한글전용법을 제정하고, 한글전용 시대로 나아간 것은 학회가 거둔 눈부신 성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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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언에 대한 조선어학회 학자들의 관심과 연구 성과

        김정대(Kim Jung-dae) 한글학회 2017 한글 Vol.- No.316

        이 글에서 필자는 1920년대 초~1950년대 초라는 ‘30년 동안’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방언에 어떤 관심을 갖고 어떤 활동을 해 왔는지를 정리ㆍ평가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방언 관련 업적은 정열모 선생이 1927년 3월 『(동인지) 한글』에 발표한 「朝鮮語 硏究의 正體는 무엇?」을 비롯하여 모두 37건에 이른다. 절대 다수의 글이 『(동인지) 한글』과 그 후신인 『한글』에 실렸는데, 방언 관련 글을 발표한 회원은 모두 18명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열모(6건), 권덕규(5건), 정태진(5건), 최현배(4건), 이희승(3건), 최상수(3건), 이상춘(2건), 이극로(2건) 선생 등이 2건 이상의 글을 발표하였다. 30년 중 그 전반기인 1920년대 초부터 1935년 9월까지의 약 14년 동안은 이론적으로 방언에 접근하였고, 그 후반기인 1936년 6월부터 1950년 초까지의 약 15년 동안은 실천적으로 이에 접근한 특색이 뚜렷하다. 관심을 둔 주제로는 용어의 문제, 방언 성격(위상)의 문제, 표준어와의 관계 문제, 각 지역 방언 특색의 문제, 방언 수집의 문제 등이 있었다. 그 30년 동안은 우리 민족의 격동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어학회를 비롯하여 관심 있는 분들이 방언에 관심을 갖고 이론적 측면에서나 자료 제시의 측면에서나 나름대로 의미 있는 활동을 했다는 점은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것이 갖추어진 오늘날의 처지에서 보면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열악한 당시 상황에서 이분들의 업적을 평가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하면, ‘30년 동안’의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수행한 방언 관련 업적은 ‘눈부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n this paper the present author summarized and assessed a series of studies related to dialects by the researchers belonging to the academic circle of the Korean language(Joseoneohakhoe, 朝鮮語學會) during the 30 years from 1920’s to earlier 1950’s. The academic works dealing with dialects by the members of this academic circle amount to 37 cases including the paper, “What is the study of the Korean language?” contributed to Coterie Hangeul(Donginji Hangeul) by Jeong Ryeolmo in March 1927. Overall majority of the works were published in Coterie Hangeul(Donginji Hangeul) and its later self Hangeul, and authors or members who contributed dialect-related articles were 18 in all. Concretely speaking, the members who contributed two more articles were Jeong Ryeolmo(6), Kwon Deokgyu(5), Jeong Taejin(5), Choi Hyeonbae(4), Lee Huiseung(3), Choi Sangsu(3), Lee Sangchun(2), Lee Geukro(2), etc. The first half of 14 years from the earlier part of 1920’s to September 1935 saw theory-oriented works, and the last half of 15 years from June 1936 to the earlier part of 1950 practice (field work)-oriented works. The subjects in which they were interested were technical terms, the status of dialect, its relationship to standard language, the distinguished traits of each regional dialect, and the collection of regional dialects. Considering the fact that Korean people experienced the turbulent era in those 30 years, we could not overemphasize their interests in dialects and their significant activities in the related theories and in the dig of data. Although some of inadequacies are revealed from the present full measure viewpoint, the works of the above mentioned researchers should be highly evaluated from the poor conditions at that time. With the premises of the two claims, the works related dialects by the members during those ‘30 years’ could be said as ‘brilli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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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융합교육 ‘교수-학습’안에 대한 연구

        김슬옹(Kim Seul-ong) 한글학회 2018 한글 Vol.- No.320

        이 연구는 중 ․ 고등학교 한글 관련 단원의 연계 수업이나 한글 행사계기 수업용으로 한글 융합교육 ‘교수-학습’안을 제시한 것이다. 학습자는 이 수업을 통해 인문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한글 관련 융합 역량을 키워 이 분야의 꿈이나 진로 선택에 도움을 받을 수 있거나 한글 홍보전문가가 될 수 있다. 15세기 한글은 교과 지식 특성으로 보면 과학, 수학, 철학, 언어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융합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학습자는 이런 다중교과 특성을 7개의 인문 역량을 중심으로 융합하여 ‘한글 홍보대사’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 수업안은 한글의 보편적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홍보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게 3차시로 구성하였다. 이를 통해 학습자는 “한글학자, 한글 디자이너, 한글공학자, 웹 기획자” 등의 다양한 진로를 이룰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 This study presents a ‘teaching-learning’ plan for Hangeul convergence education for middle and high school students. Based on the core competencies of the humanities, the learner can develop the fusion competence related to Hangeul so that he can get help in choosing a dream or a career in this field, or he can become a specialist in promoting Hangeul. In the 15th century, Hangeul has various fusion elements such as science, mathematics, philosophy, humanities, music, and art in terms of subject knowledge. It is important for learners to develop their capacity as ‘Hangeul public relations ambassadors’ by fusing these multi-disciplinary characteristics based on seven humanities competencies. In this lesson, we organized the 3 rd class in order to promote activities in various ways based on understanding of universal science and excellence of Hangeul. Through this, the learner can develop the ability to accomplish various courses such as “Hangeul scholar, Hangeul designer, Hangeul engineer, and web pla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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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9세기한글간찰에서의처격형에대한고찰(Ⅰ)

        김성옥(Kim Seong-ok) 한글학회 2018 한글 Vol.- No.320

        본 연구는 16~19세기 한글 간찰을 대상으로 각 시기별 한글 간찰에서의 처격 양상과 처격의 변화 과정을 통시적으로 분석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16~19세기 한글 간찰에서는 처격이 ‘에’로의 확산이 아닌 처격 ‘의’로의 확산 과정을 보임을 살필 수 있었다. 일테면 16세기 중반 순천김씨 한글 간찰에서는 15세기의 처격인 ‘애/에/예’와 ‘/의’가 모두 쓰인 가운데, 1세대에서는 처격이 ‘:의=52.8%:15.8%’와 ‘애:에:예=7.7%:14.6%:8.9%’의 빈도율을 보이고, 2세대에서는 ‘:의=17.7%:46.6%’와 ‘애:에:예=4.4%:20.9%:11.1%’의 빈도율을 보인다. 이로써 이 한글 간찰에서는 15세기와는 달리 ‘애/에’보다는 ‘/의’가 더 많이 쓰인 가운데 1세대에서는 ‘’와 ‘의’ 중에 ‘’가 많이 쓰인 반면 2세대에서는 ‘의’가 보다 많이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17세기 초반 현풍곽씨 한글 간찰에서는 1세대에서는 ‘:의=1:57’의 빈도를, 2세대에서는 ‘:의=6:70’의 빈도를 보이는 등, 처격 ‘’는 1세대와 2세대 모두 약화됨을 보인다. 그리고 ‘애/에’ 또한 1세대에서는 ‘애:에=13.5%:34.8%’ 등으로 보이다가 2세대에 가서는 ‘애, 에’가 전체 5%의 빈도율만 보이는 등, ‘’와 함께 ‘애/에’도 급격히 약화됨을 보이는 데 반해, 처격 ‘의’는 전체 처격의 70% 정도가 쓰일 만큼 그 쓰임이 확산됨을 알 수 있었다. 17세기 중반~18세기 중반의 송규렴가와 송준길가 한글 간찰에서는 순천김씨와 현풍곽씨 한글 간찰에서 이미 생산성의 약화를 보인 처격 ‘애/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 처격 ‘의’는 전체 처격의 70~80% 이상의 빈도율을 보일 만큼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더 나아가 18세기 후반~19세기에 가서는 김성일파 종택 한글간찰에서의 19세기 초 · 중반 김진화의 딸들과 며느리인 진성이씨 한글간찰의 경우, 처격 ‘예’의 6.3%(9회)를 제외하고는 처격이 모두 ‘의’로만 쓰이고, 추사 김정희 한글 간찰에서는 처격의 98.8%가 ‘의’로만 쓰일 만큼 이 시기에는 처격이 대부분 ‘에’가 아닌 ‘의’가 쓰였음을 알 수 있었다. This study is intended to examine the shapes of locatives and the change process of the Korean Letters for each era during the 16<SUP>th</SUP> to 17<SUP>th</SUP> Centuries. Thus, in the Korean Letters during the 16<SUP>th</SUP> to 17<SUP>th</SUP> Centuries, it was examined that the locatives used not to be expanded to ‘에’, but to ‘의’. For example, in a Korean letter written by Mrs. ‘Kim’ from ‘Suncheon Kim Kindred’ during around the middle of Chosun Dynasty, all of the locatives of the 15<SUP>th</SUP> Century, that is, ‘: 의=52.8%:15.8% (Frequency)’ and ‘애:에:예=7.7%:14.6%:8.9% (Frequency)’ used to be used during the 1<SUP>st</SUP> generation. During the 2<SUP>nd</SUP> generation, ‘애:의= 17.7%:46.6% and 애:에:예=4.4%:20.9%:11.1%’ used to be used. Therefore, in the Korean letters, ‘애:의’ used to be used more frequently compared to ‘애:에’ unlike the 15<SUP>th</SUP> Century. During the 1st Generation, ‘’ was used more frequently than ‘의’ among ‘애:의’. On the other hand, during the 2<SUP>nd</SUP> Generation, ‘의’ was used more than ‘’. In the Korean Letters written by Mr. “Kwak” from the ‘Hyunpoong Kwak Kindred’, ‘애:의’ were used at the frequency of ‘1:57’ during the 1<SUP>st</SUP> Generation and at ‘6:70’ during the 2<SUP>nd</SUP> Generation. Thus, locative of ‘’ was less used during the 1<SUP>st</SUP> and 2<SUP>nd</SUP> Generations. And also, ‘애:에’ were used at the frequencies of 13.5%:34.8% during the 1<SUP>st</SUP> Generation, but at only 5% for both locatives during the 2<SUP>nd</SUP> Generation. So, the use frequencies of ‘애:에’ as well as ‘’ were reduced rapidly. On the other hand, the locative, ‘의’ was rapidly more used dominating around 70% of the total locatives during those eras. In the Korean Letters written by ‘The Family of Mr. Gyu-ryem Song’ and ‘The Family of Mr. Joon-gil Song’ during the period from the middle of the 17<SUP>th</SUP> Century to the 18<SUP>th</SUP> Century, ‘애:에’ which used to be less used in the Korean Letters by Mrs. Kim from ‘Suncheon Kim Kindred’ and Mr. Kwak from the ‘Hyunpoong Kwak Kindred’ were not used at all. On the other hand, the locative, ‘의’ used to be used at a frequency of 70 to 80% in their letters. Moreover, during late 18<SUP>th</SUP> Century to the 19<SUP>th</SUP> Century, in the Korean letters written by the nobles living in the head family house of the ‘Mr. Sung-il Kim Family Kindred’ and in the Korean letters written by the daughters of Mr. Jin-hwa Kim during early and middle of the 19<SUP>th</SUP> Century and by Mrs. Lee from ‘Jinsung Lee Family Kindred’ who was his daughter in law, except for the locative, ‘예’ at the frequency of 6.3%, only the locative, ‘의’ was used. And in the Korean letters written by Mr. Jung-hee Kim nicknamed by ‘Choosa’, 98.8% of the locatives was ‘의’. So, it was found that ‘의’ used to be mostly used rather than ‘에’ during that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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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아찌아족 한글 사용의 미래―문자사의 관점에서―

        전태현,조태영 한글학회 2012 한글 Vol.- No.298

        This paper investigates the background of the adoption of Hangeul by the Cia-Cia tribe and its meaning for the history of writing systems in Indonesia. Through this case study, the author examines the future viability of Hangeul as the writing tool in foreign countries. Hangeul is, genealogically and typologically, noted as the most unique and sophisticated writing system among the world writing systems. The adoption of Hangeul by the Cia-Cia tribe is by no means an unexpected incident when we think of the dynamics that in the past, the Indonesian local societies had shown in adopting foreign writing systems. The Indonesian societies had borrowed some Indian, Arabic, and Roman scripts and transformed those according to their own local needs. In this regard, the adoption of Hangeul is not but a part of the similar efforts to borrow the foreign scripts. Accordingly, it will be useful to examine the adoption of Hangeul with regard to the cases of the adoption of other foreign scripts. From the perspective of the history of writing system, this paper particularly investigates whether the Cia-Cia tribe will be able to use and develop the Hangeul as their own writing system. On the other hand, he author will argue that the utilization of Cia-Cia script is sorely dependent on the successful socialization of their writing system in the Cia-Cia communalities. In sum, Cia-Cia script should be the important heritage for the tribe to transcript its language and culture and to preserve them for the next generation. 본고는 찌아찌아족 한글 차용의 배경을 인도네시아 문자사 안에서 조명하고 한글 사용의 미래를 가늠해 보는 데 목적이 있다. 한글은 독창적인 문자이면서 동시에 세계 문자 발전사에서 주목할 만한 문자이다. 찌아찌아족의 한글 차용은 인도네시아인의 역동적인 문자 수용력의 관점에서 볼 때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인도네시아는 고래로 인도 문자, 아랍 문자, 그리고 로마자를 받아들여 그들의 문자로 재사용하였다. 이는 외래 문명이 인도네시아 군도에 유입되었을 때, 인도네시아인들은 차용된 문자를 각 지역의 언어 상황에 맞게 변용하여 사용한 문자사의 주역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찌아찌아족의 한글 차용은 현재 진행형의 인도네시아 문자사의 일환이자 동시에 세계 문자 발전사의 일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찌아찌아족의 한글 차용을 과거 전통 문자들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다. 특히 찌아찌아족이 지속적으로 한글을 사용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를 문자사 관점에서 고찰해 본다. 이를 바탕으로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의 미래는 찌아찌아족 내부의 사회화에 달려 있음을 밝힌다. 나아가 과거 인도네시아의 전통 문자들과 마찬가지로 찌아찌아족의 한글은 이들의 언어와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해야 할 찌아찌아 문자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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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 한글 표기법의 변천

        리의도 한글학회 2013 한글 Vol.- No.301

        This article discusses Changes of Korean Language Notation established and implemented in Korean peninsula from the early 20th century to today. Through examinations of the process, it was confirmed that all notations used in South Korea and North Korea from around 1930’s rooted from the “Hangeul Matchumbeop Tongiran”(한글맞춤법 통일안, Draft for Standardized Korean Orthography, 1933) established by Korean Language Society. Prior to the “Hangeul Matchumbeop Tongiran”, there was the “Eeonmun Cheoljabeop”(언문철자법, Hangeul Spelling Rule, 1912~1930) of 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but it was not established with Korean people’s independent will and was considerably insufficient in contents. The “Tongiran”(Draft) was truly a combination of free will, wish, and wisdom of the Korean people, and was a crystallization of notational rule found by the mentor Ju Sigyeong. Once established, the “Tongiran” became the universal notation for Korean people, and was recognized as the nation’s official notation after the establishment of Korean government. And there were several revisions to the “Tongiran”. As time goes by and with the changes in the society, Ministry of Education introduced the “Hangeul Matchumbeop”(한글맞춤법, Korean Orthography, 1988) separately, but it was merely a modified version of the “Tongiran” in part. Notational rule used in North Korea, also, is the modified version of the “Tongiran” in part. The ‘revision’ in general point of view, can be regarded as the changes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the Phoneme Based Orthography and the Morpheme Based Orthography. The “Joseoneo Sin Cheoljabeop”(조선어 신철자법, New Rule of Korean Orthography) applied the theory of Morpheme Based Orthography throughly, and on the other side of the horizon, there was “Eeonmun Cheoljabeop”(언문철자법). The “Tongiran”(한글맞춤법 통일안) and the “Matchumbeop”(맞춤법, Orthography) of North Korea position in the middle of two systems. The “Tongiran” is closer to Phoneme Based Orthography, and the “Matchumbeop” of North Korea is closer to Morpheme Based Orthography. Detailed contents of the regulations will be reviewed in the diagram of the discussion. 이 글에서는 20세기 초엽부터 오늘날까지 한반도에서 제정하고 시행한 ‘한국어 한글 표기법’의 변천 양상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을 통하여, 대체로 1930년대부터 남북에서 사용해 온 모든 표기법은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마춤법 통일안(1933)」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글마춤법 통일안」 이전에도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이 있었으나, 한겨레의 자유 의지로 제정한 것이 아닐뿐더러 부족한 내용이 적지 않았다. 「통일안」이야말로 한겨레의 자유 의지와 염원과 지혜가 융합된 결정체였다. 일찍이 주 시경 선생이 정립한 표기법 이론의 결실이었다. 「통일안」은 탄생과 함께 한겨레의 보편적 표기법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대한민국 수립 후에는 국가의 표기법으로 공인되었다. 그리고 몇 차례 수정도 거쳤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가 변하여 대한민국 문교부에서 따로 「한글맞춤법(1988)」을 고시했지만, 사실은 「통일안」을 부분 수정하거나 보완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갈라진 북한에서 사용해 온 표기법 또한 「통일안」을 일부 수정하거나 조정한 것이다. 그 ‘수정’이란 규정의 내용으로 보면 ‘음소주의 표기법’과 ‘형태주의 표기법’ 사이를 오가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형태주의 이론을 가장 철저히 적용한 것이 「조선어 신철자법」이고, 그 반대편에는 ‘언문철자법’이 있었다. 「통일안」과 북한의 「맞춤법」은 그 중간에 있는데, 「통일안」은 발음주의, 「맞춤법」은 형태주의 쪽에 각각 조금씩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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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후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의 내용과 성과

        정재환 한글학회 2012 한글 Vol.- No.296

        This article aims at investigating recovery campaign of mother tongue right after Korean liberation in 1945. Koreans naturally vented their aspiration to get back mother tongue with the liberation, so all the social organizations, Korean Language Society, and the Ministry of Education under the U.S. Military Government developed diversified activities to expel the language forced by Japanese colonial rule from Korea and to get back Korean language. As the results, ‘Seoul’, the name of the capital was recovered; Korean’s lost name which had been forced to adopt Japanese name was taken back; Many social terms used under colonial rule were abolished and they came to be reused in appropriate Korean language. Especially, Recovery of Our Mother Tongue[Urimal Doro- chatgi], which was published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in !948 June, was the valuable fruit from recovery campaign of mother tongue after the liberation. However, this campaign performed in policy by the Ministry of Education was possible due to devotion of Korean Language Society’s members such as Choi Hyeon-bae, Jang Ji-yeong, and Lee Geuk-ro. In addition, Korean Language Society played key role in the campaign by which all the social organizations as an adviser and leader. 이 글에서는 1945년 해방 직후 전개된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을 고찰하였다. 해방과 함께 우리말을 도로 찾자는 열망은 자연스럽게 분출되어 각 사회단체, 조선어학회, 미군정 문교부 등이 일제어를 구축하고 조선어를 되찾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수도 서울의 이름을 되찾았고 창씨개명에 의해 잃어버렸던 우리말 성명을 되찾았으며, 사회 각 분야에서 사용하던 일제어를 폐지하고 우리말로 적절한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특히 1948년 6월에 문교부에서 발행한 『우리말 도로 찾기』는 해방 이후 이루어진 우리말 도로 찾기의 값진 성과였다. 하지만 우리말 도로 찾기가 문교부에 의해 정책적으로 시행된 것은 문교부에서 활동하고 있던 최 현배, 장 지영, 이 극로 등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활약에 의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어학회는 각 사회단체에서 전개한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의 조언자 겸 지도자로서 활약함으로써 우리말 도로 찾기 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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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기 한글 간찰의 음운론적 고찰

        김성옥(Kim Seong-ok),김정태(Kim Jeong-tae) 한글학회 2015 한글 Vol.- No.310

        이 글은 동춘당 송 준길가 한글 간찰 중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간찰 80여 편을 분석하여, 개화기 한글 간찰에서의 음운론적 특징을 고찰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어두 ‘ㄹ’이 ‘ㄴ’으로 변동되고, 어두 ‘ㄴ’은 i/y 앞에서 대부분 유지되는 가운데, 소수이지만 ‘량식→양식’과 과도 교정형 등이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이로써 개화기 한글 간찰에서의 어두 ‘ㄹ’ 탈락 현상은 일반화되었음을, 어두 ‘ㄴ’ 탈락 현상은 일반화되어 가는 단계임을 추정하였다. 둘째, ‘파열음+ㄹ’ 연쇄에서의 ‘ㄹ’비음화는 ‘파열음+ㄹ→파열음+ㄴ→[비음+ㄴ]’의 중간과정인 ‘파열음+ㄴ형’으로 나타남을 확인하고, 이는 어중의 음절 초 ‘ㄹ’을 ‘ㄴ’으로 표기하려는 당시의 표기경향에 따른 것임을 논의하였다. 셋째, 구개음화와 원순모음화가 미실현형과 실현형으로 혼기됨을 확인하면서, 미실현형은 표기의 보수성으로 인한 이전 시기의 형태를 보인 것이고, 실현형은 당시의 실제 음운현상이 반영된 것임을 논의하였다. 그 외에 평파열음화, 어간말 ‘ㅎ’탈락현상, 반모음 첨가현상 등을 분석하였다. 이로써 개화기 한글 간찰에서는 실제의 언어 사실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표기의 보수적 경향에 가려 있는 음운론적 사실 또한 두드러짐을 확인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nalyze about 80 ganchals written in Dongchoondang Song Junkil’s family from the end of the 19<SUP>th</SUP> to the beginning og 20<SUP>th</SUP> century and consider the phonological features of Korean during enlightenment period. Its major contents ara as follow; First, it confirmed that though these Korean ganchals had the generalization that ‘ㄹ’ in anlaut changes to ‘ㄴ’. And through ‘량식→양식(1137)’ and interim correction form; ‘닐(事 1138), 니후(以後 1150)’ and etc., it was guessed that those days were an process of change where ‘ㄴ’ before i/y was shifting from being kept to being dropped out. Second, ‘ㄹ’-nasalization in ‘sibilant +ㄹ’ was not written as its actual phonetic form; [비음+ㄴ] but as ‘sibilant+ㄴ’ type, which is a middle stage of ‘sibilant+ㄹ→ sibilant+ㄴ→[nasal sound+ㄴ].’ Accordingly, it was discussed that ‘ㄹ’nasalization came in due to the then tendency to write ‘ㄹ’ amid a word as ‘ㄴ.’ Third, in vowel rounding and y-half vowel being dropped out behind sibilants, unrealized types and realized types were intermixed. Subsequently, unrealized types like ‘블의(不意 1066) and 셔모(1148)’ showed types used in their foregoing days due to the conservativeness of marking while realized types like ‘불분명(1151) and 서모(1189)’ showed the phonological phenomena of those days. Besides, it analyzed flat plosiveness, ‘ㅎ’ being dropped out at stem end, half-vowel formation, half-vowel being added and etc. were analyzed.

      • KCI등재

        초기 한글지 수록 광고의 분석적 연구

        여찬영 한글학회 2007 한글 Vol.- No.278

        In this paper we analyse various peculiarities of advertisement in Early HAN-GEUL from volume 1 to volume 50 for six years(1932~1937). HAN-GEUL published about 700 advertisements. They are about 130 kinds of different ones. There are 30 kinds of advertisement publish total 430 over repeated maximum 35 times. The major parts of advertisement are publications(books) for example magazine, dictionary, orthography, letter writing. children' song and nursery story, novels and collection of poem, Korean language studies and literatures and so on. There are a few block advertisements and the most effective way of whole space advertisements. Advertisement used the powerful words expression and frequently imperative or exclamatory endings. HAN-GEUL and it's advertisements contribute to enlightening supply for Korean language and literature and cultural improve ment. 올해로 한글 학회 99돌, 한글지가 1932년 창간호에서부터 278호가 발행된다. 이제 한글지 자체에 대한 한글사 즉 한글지에 대한 총체적 연구사를 정리해 봄직도 하다. 지금까지 한글지의 학술적 내용에 대한 연구는 부분적으로 있어 왔지만 한글지에 수록된 광고에 대한 분석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고의 내용이 학문적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간의 한글지의 학문적 기여도는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글지에 수록된 광고를 기술적 차원에서 분석하여 본 결과, 광고 자체의 여러 특성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흐름에 따른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새로운 인식, 철자법, 어법, 신학문 등의 계몽적 보급에도 일익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한글지는 우리 말글에 대한 자체의 학술적 내용은 물론이고 수록된 광고를 통해서도 우리 말글의 보급과 민족적 문화 향상에 크나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 KCI등재

        한글 맞춤법의 잉여성과 간결성

        연규동(Yurn Gyudong) 한글학회 2021 한글 Vol.- No.332

        이 글에서는 잉여성과 간결성이라는 관점에서 한글 맞춤법을 다시 살펴보았다. 한글 맞춤법은 한글로 한국어를 표기하는 여러 규칙을 모아 놓은 것이다. 맞춤법이 글을 쓸 때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 판단의 본보기이며 공동체 안에서 여러 사람이 다 함께 지키기로 정한 기준이라면, 이러한 규범과 규칙은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즉, 맞춤법의 여러 조항들을 논리적이며 명료하게 가다듬어서 내용이 혼동되지 않도록 적확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행 한글 맞춤법에는 표기법으로서는 불필요하거나 중복되는 조항 등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어를 표기하는 문자인 한글은 음소문자이므로, 원칙적으로 음소 하나에 대하여 대응하는 한글 자모만 기술하면 된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하면 한글 표기법은 매우 분명하게 구성될 수 있다. 또한, 한국어를 표기하는 원칙인 ‘형태음소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중복되는 여러 규정을 훨씬 단순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 아울러 어원 의식과 관련된 표기법 규정은 한글 맞춤법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하였다. In this paper, we review the redundancy and simplicity of the Hangeul orthography. Hangeul orthography is a collection of rules for writing the Korean language in Hangeul. Orthographies sets of rules for writing that people decide to collectively abide by and so should be structured such that they can easily be read and understood. In other words, orthographies’ contents should be presented clearly and logically so that users can understand them. However, the current Hangeul orthography contains many unnecessary or redundant provisions. Hangeul is a phonemic alphabet in which each letter corresponds to one phoneme in principle, giving it a clear structure. A good understanding of the morphological phoneme principle would allow for overlapping rules to be organized more simply. Orthographies do not address etymology-related notation ru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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