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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storic Urban Landscape Approach에 기반 한 전후복원 문화유산의 가치평가 연구 : 양양 디모테오 순례지 사례 분석을 중심으로

        권미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융합대학원 2021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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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적 맥락에서 역사도시경관으로써 문화유산이 가진 가치를 재해석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생성, 성장, 변화, 쇠퇴의 원인 및 과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전쟁, 무력충돌 등에 의한 도시 구조, 형태, 공동체 주요 공간 및 문화유산의 훼손, 파괴, 복구라는 역사적 경험은 도시공간에 특수한 물리적 심리적 층위를 남기게 된다. 도시 진화 과정에서 이러한 단절의 경험, 그리고 그 물리적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의 연속성을 이어가고자하는 하는 복원의 노력은 공간에 또 다른 켜를 축적하고 기존의 경관과 어우러져 그 도시만의 독특한 역사경관을 빚어낸다. 본 연구는 전후문화유산의 보존활용과 도시재생 있어 지자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Historic Urban Landscape Approach 및 Cultural Significance Assessment에 대한 이론연구 및 선행사례 분석을 수행하였다. Historic Urban Landscape Approach에 기반 하여 양양읍성을 중심으로 한 도시공간의 역사적 층위를 분류하고, 역사도시경관 전후 복원과정에 대한 해석을 통해 재구축된 공동체 정체성 및 도시의 장소성을 규명하였다. 양양이라는 도시의 Characterization을 기반으로 도시적 관점에서 디모테오 순례지 역사문화경관을 재맥락화 하고 전후 복원문화유산으로써의 가치를 재해석해 보았다. 양양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역사적 층위들과의 관계성 측면에서 바라볼 때, 디모테오 순례지는 전쟁 통에 지어진 초라한 단일 건조물에서 역사적, 종교적, 사회적문화적 가치를 가진 전후복원 역사도시경관으로 변모된다. 즉 18세기 후반 박해시대 쇄국과 개방, 개화기 보수와 개혁, 식민지시대 독립운동과 친일, 한국전쟁전후 이데올로기 갈등 그리고 전후 상처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공동체의 역사가 양양읍성과 천주교 순례지 간 공간적 관계에 켜켜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에서, 디모테오 순례지는 도시유산으로써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갖는다. 또한 순례지 공간 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역사의 켜를 발굴 기록하고 순례를 통해 도시의 장소성과 정체성을 지키고 재구축해 온 주체들이 바로 공동체의 평범한 구성원들이었다는 점에서 디모테오 순례지가 갖는 사회적 가치는 도시재생을 위한 동력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산의 지속가능한 보존활용을 통한 도시재생 방안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본 연구가 HUL접근법에 기반 한 전후 근현대문화유산의 재맥락화 및 가치평가를 통해 도출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전후 복원된 근대문화재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점, 선, 면적 접근을 넘어 도시적 맥락에서 문화유산을 재해석하고 도시의 역사적 층위들과의 관계성 안에서 Historic Urban Landscape으로서 문화유산이 갖는 가치가 재해석 되어야 한다. 특히 문화유산의 전후 복원 과정에 내포되어 있는, 문화유산과 도시에 대한 공동체의 사회 문화적 의미에 대한 해석을 기반으로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평가가 진행되어야 한다. 또한 근현대 문화재 보존활용을 통한 지속가능한 도시발전,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HUL 도시적 맥락에서 역사도시경관으로서 문화유산이 가지고 있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포함한 Cultural Significance에 대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유산에 대한 공동체의 Cultural Significance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때, 공동체 정체성 및 도시의 장소성에 대한 규명이 가능하며 도시재생의 필수요소인 ‘공동체의 공감과 주도적 참여’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후복원 문화유산의 경우, 전후복원 과정에서 재구축된 공동체 정체성 및 도시의 장소성에 대한 이해는 지속가능한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재생을 연계할 수 있는 핵심 요소로서 인식 고찰 연구될 필요성이 있다. 이에 본 연구의 HUL에 기반 한 문화유산 가치평가에 대한 접근법이 지속가능한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재생을 연계할 수 있는 심화연구의 토대가 되어 전후복원 문화유산의 올바른 가치평가를 통한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개발의 공존, 즉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실현을 고대해 본다.

      • 이코모스 헌장의 문화유산 개념 및 보존원칙의 변화와 그 의미 : 베니스 헌장의 영향을 중심으로

        심주아 韓國傳統文化大學校 文化遺産融合大學院 201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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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문화유산 보존과 관련하여 각 정부와 문화유산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규약 및 원칙 그리고 실무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회의와 문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1931년 「아테네 헌장(Athens Charter for the Restoration of Historic Monuments, Athens Conference, 21-30 October 1931)」을 시작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베니스 헌장(International Charter for the Conservation and Restoration of Monuments and Sites, The Venice Charter, 1964)」을 탄생시켰다. 이후에 등장한 많은 헌장과 문서들은 그 근거를 「베니스 헌장」에 두고 있으면서도 그 실제와 개념들은 많은 변화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베니스 헌장」의 영향을 중심으로 이코모스(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에서 채택된 14개의 헌장들(1964년 베니스 헌장~2011년 발레타 헌장)에 나타난 문화유산 보존과 관련된 규약 및 원칙들의 개념적 변화를 고찰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국외에서 이루어진 문화유산 보존관련 원칙들의 비교 연구에 사용된 방법을 토대로 문화유산의 정의와 가치 그리고 보존원칙의 세 가지 동일 항목을 적용하여 분석하였다. 또한 보다 체계적인 분석을 위해 각 항목에 해당하는 세부요소들을 설정하여 비교·분석하였다. 연구의 결과, 이코모스 헌장들의 원칙은 문화유산의 다양한 유형적 혹은 무형적 속성을 강조함에 따라 「베니스 헌장」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초기 헌장들과 최근 헌장들의 가장 큰 변화는 물리적 요소에 치중되었던 인식들이 문화유산이 지닌 문화적 의미를 해석하고 관련 맥락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과 보존에 있어서 유형적인 대상물인 문화유산과 연관되어 해석되는 무형적 속성들이 중요하게 작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변화된 관점은 어떠한 대상이 유산으로 고려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새롭게 제시하고 있었다. 동시에 유산이 가진 가치를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주었으며, 결국 이에 따라 세부적인 보존원칙들도 그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이코모스 헌장들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파악과 그 변화에 대한 인식은 각 국가 혹은 각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데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문화유산의 보존원칙에 대한 연구를 비롯한 개별적 문화유산의 정비 및 복원 방향설정과 관련된 연구의 기초적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제어 : 문화유산, 국제 보존원칙, 이코모스 헌장

      • 전통공예를 매개로 한 지역재생 사례연구

        고우리 韓國傳統文化大學校 文化遺産融合大學院 2017 국내석사

        RANK : 251711

        최근 지역이 내재하고 있는 고유성이 소중한 가치로 부상하면서 지역의 문화적·역사적 특수성과 정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나름의 독자성과 역동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지역의 역할과 지역이 가진 고유한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면서, 수많은 국가들이 역사와 문화에 기반을 둔 지역문화 자원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의 진전으로 획일화된 문화에 빠르게 익숙해지면서, 지역사회의 고유한 문화를 잃어버리며 지역의 해체라는 위기 상황에 당면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제의 본격적인 도입과 함께 지역사회의 붕괴, 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의 자원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 지역재생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최근 지역재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움직임 속에서 지역의 전통문화가 핵심 자원으로 대두되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전승되어 온 전통공예가 주목되고 있다. 본 연구는 지역의 재료, 기술, 문화 등을 기반으로 지역의 고유성을 강하게 내면화하고 있는 공예의 가능성에 주목하여, 전통공예를 매개로 한 지역재생이 지속 가능하게 작동되기 위해 필요한 기본방안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에 전통공예를 활용한 국내·외 지역재생 사례를 크게 국가 주도와 민간 주도로 나누어 조사·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었다. 국가 주도 사례의 경우,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으로 전통공예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사업 단계에 따라 정책 수립 단계의 도입기, 예산 지원형 지역 정책의 과도기, 질적 맞춤형 지역 정책의 성숙기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도입기 단계의 중국은 전통공예 등의 무형문화유산이 집중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지역을 지정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지역문화자원의 강력한 보호 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지역 재생에 활용하기 위한 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과도기 단계의 한국은 전통공예와 지역의 상호 연관성에 주목하여 지역 전통공예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으나, 거점 공간 건립 등 하드웨어 중심의 예산 지원으로 사업의 지속성에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성숙기 단계의 일본은 전통공예의 기술과 재료를 지역의 특화된 자산으로 인식하고, 지역의 전통공예품을 일상화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여 지역 전통공예 육성을 통한 지역산업 부흥을 도모하고 있었다. 민간 주도 사례의 경우 사업 주체에 따라 전통공예를 다양하게 바라보고, 저마다의 특화된 방식을 통해 전통공예를 지역재생에 적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역 공예 발굴, 지역 경제 발전, 지역 문화 확산 등 사례별 목표는 상이하나, 지역 인재 육성을 통한 지역재생 기반 마련, 공예문화 저변화를 통한 지역 경제 순환 등이 공통적인 특징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가 주도 사례에 비해 지역에 밀착된 사업 진행이 가능하여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다양한 세부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는 강점을 지닌 것을 확인하였다. 시사점을 바탕으로 전통공예를 매개로 한 지역재생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본방안을 다음과 같이 도출하였다. 첫째, 지역의 문화적, 생태적, 사회적 자원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전통공예가 만들어지고 전승될 수 있는 지역의 고유한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전통공예를 매개로 한 지역재생 사업의 토대를 구축하여야 한다. 둘째, 원료생산자, 공예제작자 및 예비제작자, 공예매개자의 세 가지 측면의 지역 인재 육성 방안을 통해 지역재생 성장 동력을 마련하고,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셋째, 지역 공예 저변화를 통해 지역 전통공예품의 소비가 지역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치소비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지역 공예가 원활하게 소비·확산되어 지역사회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지역 문화를 형성하여 지역의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역 공예문화 소비층을 형성하여야 한다. 넷째, 국가, 민간, 지역공동체의 긴밀한 공조체계 마련을 통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국가는 체계적인 정책과 재원을 확보하여 시스템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민간은 국가의 제도적 지원을 기반으로 지역공동체의 적극적인참여를 유도하여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사업을 기획·운영해야 한다.

      • 한국 비무장지대(DMZ)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적 가치에 관한 연구 : 전쟁·분단관련 유산을 중심으로

        김가영 韓國傳統文化大學校 文化遺産融合大學院 2016 국내석사

        RANK : 251711

        The research was conducted in order to understand the World Heritage value of the heritages of war and division in the Korean DMZ. A new term, ‘Remembrance Heritage’, was coined to limit the scope of heritages with “moral values” related to “negative history” such as war and division. In addition, the Outstanding Universal Value of the heritages of war and division in the Korean DMZ was analyzed by making use of the applicable World Heritage value strategic analysis obtained from reviewing the current state of heritages and analyzing other similar World Heritages. The results presented in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ly, although an official classification or definition of heritage that contain negative history such as Remembrance Heritage does not exist in UNESCO, this kind of heritage is clearly distinguished from current World Heritages and its significance is already being recognized. In analyzing the World Heritage examination of Remembrance Heritage, the presence of a universal value to mankind in the major historical background, which matters greatly in the criteria (vi), must be primarily reviewed before the historical, artistic, scenic, and academic value of the heritage. The criteria (iii) for slavery and (iv) for the era of Cold War are observed to be applied together as seen in the characteristics of the major historical background. Also, a direct or visible proof of interrelationship between the heritage and the universally significant event is thought to increase its possibility in being listed as a World Heritage Secondly, as a result of selecting a Cultural Heritage that witnessed the major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Korean DMZ namely, the Korean War and the division of Korea into North and South, Battlefields, Panmunjeom, Labor Party Office, Seungilgyo (bridge), Military Tunnels, and Observatorys are chosen. Thirdly, the Korean War and the division of Korea into North and South are the products of the Cold War and this is identified as a universally tragic incident that gave mankind a moral lesson. Therefore, it is likely to be listed as a World Heritage applying the World Heritage criteria (iv) and (vi). The value of the Korean DMZ as a witness of the war and division during the Cold War is deemed appropriate for the application of the criteria (iv) and the determination of the criteria (vi), upon emphasizing the tragic results and international impact of the Korean war and the division of the country into North and South. The study verifies the potential of the Korean DMZ which had been slightly neglected despite its natural and ecological value, to be part of the World Heritage as a war and Division Heritage. It is expected to contribute in the reflection of various perspectives on promoting the Korean DMZ to be part of World Heritage and be a great help in coming up with maintenance and administrative measures for the Korean DMZ. 본 연구는 한국 비무장지대 일원에 있는 전쟁·분단 유산의 세계문화유산적 가치를 파악하고자 실시하였다. 이를 위하여 전쟁·분단유산과 같이 “부정적인 역사”와 이와 관련한 “교훈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기억유산’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하여 유형을 한정하였다. 또한 이에 해당하는 한국 비무장지대 전쟁·분단 유산 현황 검토 및 유사 세계유산사례 분석을 통해 적용 가능한 세계유산적 가치 분석전략을 도출하여 한국 비무장지대 전쟁·분단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분석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나타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억유산과 같이 부정적인 역사를 지닌 유산에 대한 유네스코의 공식적인 분류나 정의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와 같은 성격의 유산이 기존 문화유산의 개념과 분명히 다른 성격으로 분류되며 그 중요성이 이미 인식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기억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분석에 있어서는 등재기준 (ⅵ)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유산 자체의 역사적, 예술적, 경관적, 학술적 등의 가치보다는 해당 유산이 갖는 주된 역사적 배경의 인류 보편적 의의 여부가 우선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주된 역사적 배경의 특성에 따라 노예제도의 경우 등재기준 (ⅲ), 냉전시대의 경우 등재기준 (ⅳ) 등을 함께 적용하여 등재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아울러, 보편적 의의를 갖는 사건과 유산의 직접적 또는 가시적 연관성의 증명을 통해 세계유산으로 등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둘째, 한국 비무장지대의 주요 역사적 배경이 되는 6·25전쟁과 남북분단의 역사를 증명하는 문화유산을 선정한 결과, 전적지, 판문점, 노동당사, 승일교, 땅굴, 전망대 등이 해당 역사를 포괄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전쟁·분단유산의 대표적인 사례로 판단된다. 셋째, 6·25전쟁과 남북분단의 역사가 냉전시대의 산물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비극으로 인류에게 교훈을 주는 사건임이 확인되며, 이에 따라 세계유산 등재기준 (ⅳ)와 (ⅵ)을 적용한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등재기준 (ⅳ)는 한국 비무장지대 전쟁·분단 유산의 냉전시대의 증거로서의 가치를, 등재기준 (ⅵ)은 6·25전쟁과 남북분단이 낳은 비극적 결과와 국제적인 영향력을 부각시킴으로써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이는 그동안 한국 비무장지대의 자연생태학적 가치에 비해 다소 외면되어온 전쟁·분단유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을 확인하는 연구로, 향후 한국 비무장지대 일원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있어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는 데에 기여하고, 한국 비무장지대의 보존관리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白磁 달항아리 製作技法 硏究

        강태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융합대학원 201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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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is a study of technical social characteristics and expression of 'White Porcelain Moon Jar' through its manufacturing procedure and a sense of beauty. As it can be known from former studies and documents, there is a lack of information and accuracy of White Porcelain Moon Jar despite its periodical closeness. Despite this fact, White Porcelain Moon Jar is still loved by ceramic artists along with the general public as it becomes transformed in different field. Ever since the Chosun dynasty, exactly where the beauty of the Moon Jar came from was a question that ought to be answered. The research was conduced to understand how the Moon Jar has captivated the people ever since the Chosun dynasty by looking at its manufacturing process, especially the 'Top-Bottom Joining Technique', a unique ceramic process To begin with, I arranged the organization process of the term 'White Porcelain Moon Jar', its birth, characteristics and transition process. In today's word, 'White Porcelain Moon Jar' represents the 17~18th century Chosun Dynasty white porcelain jar that is about 40cm in height with white colors and a round shape like a full moon. It has its widest diameter in the middle and the ratio of the maximum diameter and height is around 1:1. The name "Moon Jar" was created by famous modern age artists like Kim Hwan Ki and Choi Soon Woo. The phrase porcelain moon jar served as a momentum for the first exhibition of National Ancient Palace Museum in 2005, and in 2011 the name was changed from White Porcelain Big Jar to White Porcelain Moon Jar by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It is difficult to investigate exactly how the Moon Jar came about, but it is possible to assume by the similar name change procedure. Especially if you focus on the formal changes of the part of lip, it changed from a 45 degrees curved [>] shape to a longer and 90 degrees curved vertical shape. The importance of the white porcelain is assumed to have gained notice since the Japanese occupation. At that time, white porcelains were simply overlooked as household appliances or stolen goods from colonization. However, the porcelains started to rise in its importance as Japanese scholars such as Asawaka brothers, Yanagi Muneyoshi and Chosun artists, influenced by the Japanese scholars and started to take interest and discuss it as an artwork. Kim Hwan Gi and Do Sang Bong were renowned collectors of the white porcelain, and used it as the main subject of their works. This flow continued until the 60s and 70s, allowing Choi Sun Woo and Jung Yang Mo to give interpretations from a non-colonized view and activities centering the white porcelain such as the <The Exhibition of Lee Dynasty White Porcelainn Moon Jar>. This flow contributes in expanding the domain of art which leads to the re-interpretation and expression of the Moon jar. This has been observed through Kim Hwan Ki along with Do Sang Bong who fell in love with white porcelain jars during the modern age, and also Choi Young Wook and Gu Bon Chang who try to capture moon jars in different points of views in paintings and pictures. Also, as it can be seen in 2018 Gwang Ju international art fair, which shows the most recent artistic trend, the moon jar is being renewed in different ways. The beauty of the Moon Jar is created by the combination of necessary coincidences from its manufacturing procedure. Therefore, I looked into its manufacturing procedure, starting from soil gathering to reheating process by going through Choson Dynasty documents. Gathering the right soil with appropriate viscosity, white light degree was an fire-resistance capacity, and immensely important phase. According to 『Yukjeonjorye』 and 『Sokdaejeon』, white soil from Gwang-Ju, Jin-Ju, Yang-Gu, and Gon-Yang province was considered the best. After soil gathering, it goes through a filtering process to get rid of impurities. Then the ceramic surgery procedure to structure the shape follows. Usually the ceramic surgery is done at the potter's wheel, and even though there is no precise information about the Chosun Dynasty potter's wheel, it can be inferred from genre paintings by Kim Joon Geun that pottery artists used foot-based wheels. Also, since the Moon Jar is rather big, using the top-bottom joining technique—normally not used in white porcelain jars—is a noticeable procedure. This technique requires joining the top and the bottom part after molding them separately, and the origin of such a technique is unknown but it is mentioned in the book 『Cheongonggaemul』 written during the Myeong Dynasty of China by Son Eung Sung. The joined marks can be seen on the national treasure white porcelain moon jar and white porcelain jar excavated from Geum-Sa-Ri. After the ceramic surgery, set the form without any additional decoration and dry it long enough before burning it at about 800~900 celsius. Later on, the glaze is applied on to the pottery. During the Chosun Dynasty, the glaze was composed of three elements: Glaze stone, ash, limestone. According to the data collected from excavated shards, it shows that ever since 18th century when the moon jar was created, Kaliyu. was used instead which has less than 10 percent of calcium content. It is assumed that this was to use the talcum constituent to make snow-white and milky-white porcelain. The final stage is to reheat the porcelain in a high heat. . Furthermore, I looked into present ceramic artists such as Shin Bong Kang, Jong Young Kim, Soo Jong Lee, Soo Gul Jeon and examined present day moon jar manufacturing process and techniques, and the artists's philosophy contained within the moon jar. By expanding the concept of the Moon Jar, which went through these processes, we advance from the simple idea of a porcelain to the qualities the piece holds in terms of the background in which the sense of beauty was formed and the cases in which these have been applied. Hopefully this study will play an essential role in understanding white porcelain moon jars more deeply and widely. Furthermore, it is my wish that the white porcelain moon jar will be studied and applied in various fields. 본 논문은 백자 달항아리의 제작기법의 실제와 달항아리가 갖는 특징적인 제작기법인 ‘상하접합’ 기법을 속성적·기술적·사회적 측면에서 분석한 고찰이다. 선행연구나 기존 문헌사료와 발굴자료 등에서 알 수 있듯 백자 달항아리는 비교적 그 시기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양이나 정확성이 부족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항아리는 도예가는 물론이고, 수많은 분야에서 재해석되어 새로이 변모하고 있으며 대중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은 달항아리의 아름다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달항아리가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 달항아리의 특징적인 제작 기법인 ‘상하접합’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연구를 시작하였다. 오늘날의 ‘백자 달항아리’는 높이 40㎝ 내외의 보름달처럼 희고 둥근 17~18세기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로서 몸체 중앙부에서 최대경을 이루고 몸체최대경과 높이가 약 1:1의 비례를 이루는 기형을 말한다. 그러나 백자 달항아리를 지칭하는 명칭은 시대별로, 분야별로 혼재되어 있었으며 그 흐름은 백자 달항아리 미감의 형성 과정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때문에 우선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백자 달항아리’의 미감 형성과 용어 정립 과정을 살펴보고 달항아리의 현황 및 형태적 특징을 정리하였다. 백자의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로 추정된다. 당시 백자는 생활품 혹은 식민지의 약탈품으로 여겨지는 것이 전부였다. 이는 아사카와 형제, 야나기 무네요시 등의 일본인 학자와 이에 영향을 받은 조선인 문화예술인들의 관심과 논의를 통해 예술품으로서 그 중요성이 주목되었다. 특히 대표적인 백자 수집가이자 애호가였던 화가 김환기와 도상봉은 달항아리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기도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60, 70년대까지 이어져 최순우, 정양모 등의 미술사가 내에서도 식민지적 관점을 탈피한 해석과 ≪이조백자달항아리전≫ 등 조선 백자를 중심으로 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달항아리’라는 명칭 또한 1950년대 당시 김환기, 최순우 등 근대기 미술계 인사에 의해 붙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2005년 문화재청의 ‘백자대호 일괄 문화재 지정’과 국립고궁박물관의 첫 기획전인 ≪백자 달항아리전≫을 계기로 달항아리의 가치와 그 명칭이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2011년 문화재청의 ‘국가지정 동산문화재 지정명칭 변경 공고’를 통해 국보 및 보물의 문화재명 또한 백자대호에서 백자 달항아리로 변경되었다. 현전하는 달항아리는 지정문화재 7점(국보 제262호·309호·310호, 보물 제1437·1438·1439·1441호), 비지정문화재 17점이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달항아리 자료로는 출현배경과 정확한 원형을 찾기는 어렵다. 때문에 유사한 흐름을 보이는 백자 원호의 변천과정을 통해 추정해볼 수 있다. 특히 유의미한 변화를 갖는 구연부를 보면 초기에는 45도로 외반되어 「>」모양으로 깎였던 것이 점차 길어지고 90도에 가까운 수직을 이루는 형태로 변화하며, 이러한 특징은 지정문화재에서도 확인된다. 먼저 달항아리의 제작 과정을 조선시대 문헌사료를 통해 살펴보았다. 태토의 선정과 굴취는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는 중요한 단계였으며 금사리 시기의 성분을 보면 철과 티타늄의 함량이 낮아 높은 백색도를 보이는 양질의 태토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정제과정, 즉 수비 단계를 거쳐 발물레를 사용한 자기물레로 성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달항아리의 제작에는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하는 방식을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별도의 장식 없이 최소한의 정형을 거쳐 초벌과정을 거친다. 이어 시유는 크게 물토(수을토), 재,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유약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사리 시기의 유약은 마그네슘 함량이 높아 점착성과 내화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약 1250℃에서 환원염 재벌과정을 통해 완성한다. 문헌사료와 더불어 그리고 사기장 김정옥을 비롯하여 현재 달항아리 작업을 하고 있는 강신봉, 김종영, 이수종, 전수걸 총 다섯 명의 도예가와 본인의 제작사례를 통해 오늘날의 제작 기법과 그에 담긴 제작자의 사상을 살펴보았다. 작가마다 작업습관 및 방식이 다르다는 차이가 있지만 핵심은 상하접합 기법에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달항아리의 특징적인 제작 기법인 ‘상하접합’ 방식을 사용한 이유를 속성적, 기술적, 사회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는 당시 수비법의 진전으로 인한 태토의 개선 및 가소성 저하 등 백자 속성의 한계점의 극복, 무접합 제작 시 조형상의 차이점 및 숙련도와 소요시간 등 기술적 문제의 해결, 전통기법으로 인한 미감이 갖는 예술품으로서의 가치 확보 등을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 연구가 우리 고유의 백자 달항아리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측면에서 백자 달항아리가 연구되고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테라헤르츠를 이용한 회화문화재의 구조진단과 안료분석 연구

        백나연 韓國傳統文化大學校 文化遺産融合大學院 2016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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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화문화재는 채색층, 지지층, 배접층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에 사용되는 재료는 매우 다양하다. 이로 인하여 회화문화재는 구성에 따라 열화양상을 띠게 된다. 회화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물리적 특성과 기법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수집되어야 하므로 과학적인 분석을 진행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문화재에 손상을 입히지 않도록 비파괴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기존에는 회화문화재 진단을 위하여 육안관찰, 적외선촬영, X선 촬영 등을 활용하였으나 획득할 수 있는 정보의 한계점이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기존의 정보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테라헤르츠 이미징 분석을 적용하고 가능성을 평가하였다. 테라헤르츠 이미징 측정 결과 안료에 따른 반사도 차이가 감지되었으며 3D 이미징 분석을 통해 내부 층위 관찰이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이를 활용하여 내부 층위 간 이격에 대하여 형태와 범위, 손상 정도를 파악하였으며 이격 간의 거리를 산출할 수 있었다. 또한 주파수 분해를 통한 이미지 관찰을 통해 내부 층위의 균열 및 보강 부위를 감지하였다. 이와 같이 회화문화재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손상형태에 대한 이미지 정보를 획득함으로써, 실제 문화재 조사 시 복합적인 형태의 손상유형을 진단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채색된 안료에 대한 테라헤르츠 스펙트럼 측정 결과, 3 THz 이하의 영역에서 연단, 진사, 석청, 밀타승, 쪽에 대한 안료별 흡광특성이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무기안료 위에 유기안료를 사용하여 이중층위로 채색한 시료의 경우 하부층 무기안료의 흡광특성만이 검출되었다. 테라헤르츠 이미징 분석의 문화재 적용 결과, 유물의 특징과 환경에 따라 다양한 손상 형태가 나타날 수 있는 실제 문화재 조사에 대한 진단이 용이함을 확인하였다. 보광사 대웅보전 현왕탱화와 봉선사 비로자나삼신괘불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여 손상 형태와 지점 등에 대한 정보를 획득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최근 문화재 분야에서 적용되기 시작한 테라헤르츠 분석기술에 대하여 회화문화재의 비파괴 진단법으로써의 기초연구를 진행하였다. 테라헤르츠 이미지를 활용한 내부관찰은 기존에 사용되던 X선 촬영과는 또 다른 영역으로서, 관찰 가능한 영역에 대하여 의사시편 제작을 통해 손상 유형에 따른 이미지를 확인하였다. 현재 테라헤르츠 분석기술은 평면과 3D 이미지 획득이 모두 가능하여 지점에 대한 데이터 정보가 매우 방대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데이터 처리 및 활용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며, 문화재 분야의 적용 초기 단계로서 지속적인 응용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테라헤르츠 3D 이미지를 통한 대상물의 구조적인 조사 방법과 더불어 추가적인 안료 및 재질 분석을 위한 테라헤르츠 스펙트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일제강점기 부소산 영역의 인식과 공간변화에 대한 연구

        권오영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융합대학원 202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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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읍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부소산(扶蘇山)은 쌍북리・구아리・구교리 일대를 아우르고 있으며, 해발고도 106m 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이다. 북쪽과 서쪽으로는 백마강이 곡류(曲流)하여 부소산을 휘감아 흐르고, 남쪽과 동쪽으로는 비교적 넓은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완만한 경사면에 넓은 평지가 이어지는 남쪽 지역(관북리, 쌍북리 일원)은 오랜 기간 부여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웅진(熊津)에서 사비(泗沘)로의 천도(遷都)는 국력을 회복하고 다시 비상하고자 하는 백제의 계획된 천도였다. 백제는 부소산의 남쪽과 그 주변에 왕궁과 주요 관청을 건립하였고 그 북측의 부소산에 산성(山城)을 축조하였다. 도성을 에워싸는 외곽(外廓)인 부여 나성(羅城)의 조영과 더불어 백마강이 자연 해자(垓字)의 역할을 하는 부소산 일대는 최고의 방어조건을 갖추었다. 사비에 자리하였던 백제는 비록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였지만, 부소산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다. 부소산과 그 남쪽에서 당유인원기공비(唐劉仁願紀功碑), 당나라 계통의 기와, 신라 인화문 토기 등이 다수 출토되어 당나라와 통일신라의 주요 관청이 자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백제에 의해 처음 축조된 부소산성은 통일신라에 이르러 정비되고 새로운 성이 추가 된다. 이처럼 부소산은 통일신라 시대에도 군사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부소산의 남쪽 자락에 부여현 관아가 자리하게 된다. 당시 관아가 자리하였다는 것은 행정뿐만 아니라 지역의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였음을 의미한다. 특히『신증 동국여지승람(新增 東國輿地勝覽)』이나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부여의 진산(鎭山)과 주산(主山)으로 기록할 만큼 부여지역에서 부소산이 차지하는 상징성은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이후 부소산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일제강점기였다. 강점기 이전부터 일제는 백제의 고도 부여를 그들의 건국 신화와 전설을 토대로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일본과 관계가 밀접한 곳으로 인식하였으며, 동화정책을 통한 식민지배 합리화를 목적으로 부여에 집중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4년에는 군현 폐합에 따라 행정제도가 정비되는 과정에서 당시의 행정 중심지였던 부여현 관아에 대한 파괴와 전용이 이루어졌으며, 일본인들의 영향력이 증대됨에 따라 1924년에는 그들의 황조신(皇祖神)으로 숭상되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신 신명신사(神明神祠)를 부소산 중턱(부여읍 관북리 산1-3, 현재의 충령사 터)에 건립하였다. 고을의 진산으로 여겨지던 부소산에 신사를 건립한 것은 일본인들의 단합을 꾀함과 동시에 조선인들에게는 경외심을 갖게 하는 의도였다. 1920년대 말부터는 고대 일본과의 친연성을 바탕으로 부여를‘내선일체(內鮮一體)의 성지(聖地)’로 일컬으며 (재)부여고적보존회를 중심으로 한 부소산 공원화(문화재 개수, 휴게시설 설치와 수목 식재 등) 사업이 이루어졌다. 신명신사 설치 이후에 진행된 부소산 공원화 사업은 총독부 소유의 국유지를 무상으로 임대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그 무렵 일본인 거류지에 설치된 신사와 공원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으로서 경신(敬神)과 승지(勝地)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안으로 활용되었다. 1939년부터는 일제는 단순한 동화주의(同化主義)의 담론을 넘어 부여를 이른바 신도(神都)로 격상시키고 신사(神社)로서 최고의 사격을 가진 관폐대사 부여신궁(官弊大社 扶餘神宮)의 건립을 추진(부여읍 관북리 10-1 일원, 현재의 삼충사 터)하였는데 이는 정지공사와 기반 조성공사를 겨우 마친 상태에서 해방(1945년)에 이르러서야 모든 공역이 중단되었다. 그 후 7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유적의 진정성 탐색을 위한 발굴조사 외에 일제강점기 당시 그들에 의해 형성되었던 부소산의 경관은 본질적으로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본 논문에서는 부소산 영역의 물리적 경관이 형성된 발생론적인 시점인 일제강점기의 인식과 공간변화에 주목하였다. 일제강점기 부소산 영역에서 벌어졌던 문화재 정비와 공원의 조성, 부여신궁 조영 등의 행위들에 대한 조명과 해석을 통해, 세계유산 부소산 영역의 근대기 변천 과정을 고찰하고 그 이면에 감춰진 역사적 가치들을 읽어내는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고자 한다.

      • 전통 붓의 섬유 특성 및 보존 연구

        박상현 韓國傳統文化大學校 文化遺産融合大學院 2017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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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Korea, the brushes had been used not only for painting and calligraphy but also for the important means in daily life for a long time. As the massively produced brushes flew in from China, the demands to the brushes were reduced and also the numbers of artisans for making the brushes had rapidly been decreased. Moreover, the elderly brush artisans have been left and then it is difficult to cultivate the successors so that it is hard to maintain and preserve the existence of the Korean traditional brushes. Most preceded studies related to the brushes are mainly focused on the history, types and production methods for brushes and then there are insufficient studies on the materials and characteristics for the brushes. In this study, the characteristics of various raw hairs used for the Korean traditional brushes were examined. Also, the feature and deterioration aspects were compared with those made in Korea, China and Japan, and also quantitative evaluation was conducted to assess the brush performance. As a result of observation with hairs by animal species and sampling position of goats, tensile strength appeared to be high in proportion to thickness of hairs. Nevertheless, the shape and characteristics of hairs can be influenced according to life characteristic of animal so that the brush performance assessment can be effected as well as animal species and sampling positions. In the amino acid composition analysis with Korean goat hairs, Chinese goat hairs and Korean weasel hairs, the cysteine was most highly contained in Korean weasel hairs, followed by Korean goat hairs and Chinese goat hairs in order and this results were coincided with the result of elasticity measurement. Therefore, it could be found that hair brushes containing a large amount of cysteine would have the great elasticity, and also even the same animal species could show the hugh difference in the hair compositions depending on the country so that it will play an important role to select the hairs materials with adequate composition for making brushes. In deterioration experiment with actual using, the scales were partially peeled off by actual use of brushes and cross section became concave, which was more severe on artificially dried brushes than on naturally dried ones. This result coincided with that of infrared spectroscopic analysis. Through those results, it could be confirmed that hairs can be physically and chemically affected from temperature and ultraviolet rays, and that the brush performance and preservation expectancy can be directly influenced according to hair condition in making process and drying condition after using the brushes. In order to objectively evaluate brush performance, quantitative evaluation was conducted with absorbency, elasticity, and consistency. Brushes with great absorbency generally had the good consistency but they turned out to have relatively bad elasticity. As a result to compare the same type brushes made in Korea, China and Japan, they were found to have different characteristics depending on the country. In addition, compared to qualitative evaluation, it showed that brushes showing fair aspects in all the assessment items could be more diversely used and have better performance than those showing an excellent aspect in only one item. This study could specify the material scientific characteristics for brushes that brush artisans produced based on only their experiences and senses, and establish data needed for fiber identification. In the future, in collaboration with brush artisans and experts, following up studies will be needed with integrated performance evaluation embracing technical complement of evaluation methods, evaluation of additional assessment, and qualitative evaluation. In this study, results are expected to contribute to production of brushes with greater performance, and to be used as baseline data in remodeling brushes in the market or importing them upon the conservation treatment of cultural properties to produce brushes appropriate for the conservation treatment in the future. 붓은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회화나 서예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중국의 대량 생산 붓이 유입되고 수요가 감소하면서 필장의 수도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었다. 현재 남은 필장들은 대부분 고령인데다가 후계자 양성도 어려워 우리나라 전통 붓 제작의 명맥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붓과 관련된 연구는 대부분 붓의 역사, 종류, 제작법 등을 정리한 문헌 연구에 한정되어 있을 뿐, 붓의 재료적 특성이나 실제 사용에 관한 연구는 미비한 실정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 전통 붓에 사용되었던 다양한 원모의 특성을 확인하고 실제 사용에 따른 한국, 중국, 일본 붓의 특성과 열화 양상을 비교하였으며, 붓 성능 평가를 위한 정량적 평가를 실시하였다. 동물종별, 염소 부위별 섬유 관찰 결과, 섬유의 굵기에 비례하여 인장강도가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동물의 생활 특성에 따라 부위별 섬유의 형태 및 물성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이는 동물 종뿐만 아니라 어떤 부위의 섬유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붓 성능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양모, 중국 양모, 한국 황모의 아미노산 조성을 분석한 결과, 한국 황모, 한국 양모, 중국 양모 순으로 시스테인의 함량이 많게 측정되었는데 이는 탄력 측정 결과와도 일치하였다. 이를 통해 시스테인의 함량이 많은 섬유를 재료로 사용한 붓은 탄력도 좋으며, 같은 종의 동물이라도 국가별로 섬유의 구성 성분의 큰 차이를 보이므로 붓 재료를 선택할 때 어떤 성분을 가진 섬유를 선택하는지가 중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붓의 실제 사용에 따른 열화 실험 결과, 사용 후 붓 섬유의 표면에서 스케일이 부분적으로 박락되고 단면이 오목해지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열화 정도는 인공건조한 붓이 자연건조한 붓보다 더 심하게 나타났으며 이는 적외선 분광 분석 결과와도 일치하였다. 이를 통해 섬유는 온도와 자외선에 의해 물리·화학적 영향을 많이 받으며, 붓 제작 시 섬유의 종류나 상태, 사용 후 건조 조건에 따라 붓 성능과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붓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정량적 평가로 흡수력, 탄력, 지속력을 측정하였다. 흡수력이 좋은 붓은 대체로 지속력도 좋았으나 탄력은 좋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한중일 붓의 비교 결과를 통해 같은 종류의 붓이라도 국가별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정성적 평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일부 항목에서만 우수한 붓보다는 모든 항목에서 양호한 붓이 용도에도 제한받지 않으며 성능이 더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 본 연구를 통해 필장들이 그동안 경험과 감각으로만 제작해 왔던 붓의 재료과학적 특성에 대해 규명할 수 있었으며, 섬유 동정을 위한 자료를 구축하였다. 향후 필장과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평가방법의 기술적 보완 및 추가적인 항목의 평가와 정성적 평가를 종합한 붓의 종합 성능 평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더 좋은 성능의 붓 제작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며, 현재 문화재 보존처리를 진행할 때 시중에서 판매중인 붓을 개조하거나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보존처리용 붓 제작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 서울공예박물관 소장 모담(毛毯)의 제작기법 재현 연구

        문희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융합대학원 2019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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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논문은 현재 서울공예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모담(毛毯)> 유물 2점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모담의 조형적 특징을 살펴보고 제작기법에 대해 규명해보고자 하였다. 연구대상 <모담>은 평직의 모직물 표면에 직조 방식이 아닌 안료로 그림을 그려 문양을 표현하고 선단을 대어 방장(房帳) 형태로 꾸민 유물이다. 따라서 <모담>은 깔개와 휘장이라는 두 가지의 용도가 함께 보여지는 유물이다. 모직물로 꾸민 방장 유물은 비교적 드문 경우이며 회화적 장식 요소와 제직 기술이 복합된 특별한 사례의 유물이다. 본 유물은 본래 모담으로 만들어졌으며 후대에 방장으로 꾸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모담>은 국내와 국외에 소장된 모담 유물과 소재 및 조직, 외관 표현 등이 매우 유사하였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모담을 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깔개와 장막의 용도로 사용된 기록이 확인된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모담>은 조선시대 모담의 실상과 기법을 이해할 수 있는 가치가 큰 유물이다. 연구방법은 첫째, <모담>의 구성 분석과 함께 국내·외 모담에 대한 문헌 및 유물을 조사 연구하여 조선시대 모담의 조형적 특징과 시대성을 살펴보았다. 둘째, <모담>의 육안관찰 및 과학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연구대상의 재료와 제직기법, 문양 표현 등을 분석하였다. 셋째, 분석 자료를 종합하여 모담의 제작과정을 재현하였다. <모담>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모담 유물과 비교해 볼 때 방장으로 꾸미지 않은 모담으로부터 시원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대상의 유물은 선단 내부에 문양이 시문되어 있고 문양 방향과 방장 걸개 장식 방향이 상이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모담이 제작된 이후 전용(轉用)을 목적으로 방장이 추가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문헌에 기록된 모담은 다양한 종류와 명칭으로 분류되며 공통적으로 동물의 털로 만든 모직물로서 깔개 이외에 장막의 용도로 사용된 기록이 확인된다. 이러한 기록은 <모담>의 역사적 근거를 뒷받침한다. 조선시대 모담 유물은 국내를 비롯한 국외에도 소장된 것으로 확인되며 유물의 연대는 16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나타난다. 유물은 공통적으로 직물 표면에 회염(繪染)이나 인염(印染)의 기법으로 문양을 표현하였으며 <모담>과 동일한 양식은 총 7점으로 이들은 19세기에 주로 나타난다. 그중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모담과 일본에 개인 소장된 조선철 유물은 본 연구대상과 매우 유사한 양식으로 확인된다. 특히, 온양민속박물관 소장의 모담에는 통신사 꼬리표가 부착되어 있어 조선시대 후기 모담의 원류가 재확인된다. 일본에 전래된 조선철 유물은 섬유 품종, 실의 굵기, 조직 등의 제직 특징이 매우 유사하여 동일한 산지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담>의 제작기법 재현을 위해 육안관찰 및 정밀조사, 세부 현미경 촬영을 하였으며 과학적인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를 통해 유물의 소재, 조직, 염색 등의 제직 특성과 선묘, 채색 등의 표현 기법을 밝히고 제작 순서에 따라 분류하였다. 경사는 면사(綿絲), 위사는 모사(毛絲)를 사용하였고 모섬유는 굵고 편평한 겉 털이 함유된 산양이나 북방종 염소의 품종으로 판단된다. 또한, 모섬유는 현미경 분석결과 모섬유의 단면을 잘라낸 공통적인 특징이 관찰된다. 경사는 소색(素色)이고, 위사는 홍색으로 선염한 후 직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위사 염색에 사용된 염재는 소목으로 분석되었다. <모담>의 조직은 경사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위두둑직으로 제직되었다. 문양은 그림을 그려 표현하였으며 선으로 문양을 시문하고 내부를 채색하였다. 문양 표현에 사용된 안료는 주사가 사용되었으며 문양의 종류는 사자와 수구 문양을 비롯하여 연당문, 난초, 박쥐, 복숭아, 암팔선문 등의 길상문양이 표현되었다. 연구대상 유물 2점과 함께 8~9마리의 사자를 구성한 모담 유물이 다수 확인된다. 이는 사자문(獅子紋)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양식으로 생각된다. 제작 연구는 <모담> 2점 가운데 문양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유물을 대상으로 선정하여 진행했다. 유물에 나타난 위두둑직은 경·위사의 밀도와 장력의 차이에 따라 경사 방향으로 골이 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물 분석 연구결과를 통해 완성된 모담의 모섬유 잔털을 잘라내었다. 이는 직물의 표면을 매끄럽게 가공하여 안료가 잔털에 맺히는 현상을 방지하는 과정으로 생각된다. 더불어 교반수의 도포 유·무에 따라 표현된 문양의 선명도가 크게 차이 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서울공예박물관에 소장된 <모담> 유물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모담의 조형적 특징 분석·연구하고 재현 연구를 통해 재료 및 제직 특징을 고찰하여 제작기법을 규명한 것으로 향후 조선시대 모담이라는 문화유산의 재현과 활용에 기초자료로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사찰 토벽화 모사본 제작 연구 : 고창 선운사 영산전 내부벽화 모사본 제작을 중심으로

        이태정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융합대학원 2020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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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is paper selected three of the internal murals in Yeongsanjeon, Sununsa Temple in Gochang, and reproduced the traditional mud mural painting technique through the making of the replica of the mural paintings. In this research, examine the necessity and the significance of making the replica of mud wall paintings will be done. Recently, there has been a vigorous study of art history and conservation science on temple murals. Also, through scientific analysis of the structure, material, and fabrication method of wall structure, various materials related to mud wall painting are being very encouragingly accumulated. However, research on the production and reproduction of mud mural painting based on these data is insufficient. Therefore, this study synthesized the research cases in each area and proceeded to manufacture the replica of mud mural painting. The method of research was studied in the chronological order with a prior study on the internal murals of temple paintings and murals from the Seonunsa Temple in Gochang. In addition, a more authentic replica of the mud mural painting was to be produced through the study of the scientific analysis of the mud mural painting and the study of the internal mural of the Seonunsa Temple. With the development of modern digital technology, it is now possible to record and utilize using digital media, and the substitute for exhibitions serves as a replica for various cultural assets. The use of such digital media has also been applied to temple murals, and there are shown studies. But even in this era, the reason why this research is necessity, is because the digital media is capable of making facsimile version of certain assets but cannot fully contain the value of cultural assets. This is because it includes all the traditional materials, production processes, and technology of the time when cultural assets were enshrined. It is most appropriate to preserve cultural assets as they are, and no matter how reliable the replica is, they cannot contain all the values of the original cultural assets. However, in preparation for the future loss of mud mural paintings of cultural assets in Buddhist temples, various production experiments and studies on making replicas should be conducted based on humanities and scientific analysis for the succession of the traditional producing technique of mud wall painting. In addition, hopefully this study will diversify the research related to temple murals. Key-words : Temple murals, mud mural painting, Seonunsa Temple, replica, wall structure, producing technique. 본 논문은 고창 선운사 영산전 내부벽화 중 3점을 선정하여 토벽화 모사본 제작을 통해서 전통 토벽화 제작 기술을 재현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토벽화 모사본 제작의 필요성과 그 의의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한다. 근래에 들어 사찰벽화의 관한 미술사적·보존과학적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벽체의 구조 및 재료, 제작방법에 관한 과학적 분석 연구들을 통해 토벽화 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축적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토벽화 제작 및 재현에 관련한 연구는 미진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각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연구사례들을 종합하여 실질적인 토벽화 모사본 제작 연구를 진행하였다. 연구방법은 한국 사찰벽화 및 고창 선운사 내부벽화에 대한 선행연구와 함께 사찰벽화 모사본 제작사례를 시기 순으로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고찰하였다. 또한 그간 토벽화 제작과 관련한 과학적 분석조사 사례 및 선운사 영산전 내부벽화에 대한 과학적 조사 사례 연구를 통해서 보다 진정성 있는 토벽화 모사본을 제작하였다. 연구결과, 토벽화 모사본 제작을 통해서 원 벽화가 지닌 질감 및 색감을 반영할 수 있었고, 오염 및 훼손부분을 실제와 같이 표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서 토벽의 제작기법 및 재료 연구와 벽화 채색기법연구가 가능하고, 그간 과학적 조사와 실제 모사작업이 융합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모사제작 실험을 실시하고 객관적 결과를 제시할 수 있었다. 현대에는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기록 및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문화재를 대상으로 한 전시대체품이 모사본의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의 활용은 사찰벽화에도 적용되기 시작하여 관련 연구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매체의 경우에는 어디까지나 활용의 목적으로 제작되어 시각적 전달 사항을 위주로 제작되는 한계를 지닌다. 즉, 벽화 문화재가 갖는 전통 재료 및 제작기법을 포함하여 작품의 가치와 진정성을 완전히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는 현재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아무리 신뢰성 있는 모사본일지라도 그 문화재의 가치를 모두 담을 수는 없다. 하지만 향후 사찰 토벽화 문화재의 멸실을 대비하고, 전통 토벽화 제작 기술의 계승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인문학적·과학적 분석을 토대로 다양한 모사본 제작 실험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주제어 : 사찰벽화, 토벽화, 선운사, 모사, 재료, 제작기법,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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