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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동시대미술 속 군대 표상에서 드러나는 정치성 - 푸코의 권력이론을 통한 박경근, 서도호, 오인환의 작품 분석

          김영인(Youngin Arial Kim)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40 No.-

          해방 이후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군대 표상에 관한 연구는 한국전쟁기(1950-1953) 혹은 1960-1970년대 군사정권시기에 제작된 작품을 집중적으로 다뤄왔다. 한국전쟁기의 군대를 묘사하는 작품은 주로 전장의 상황이나 전쟁의 참상을 재현하며, 기록적 성격을 띤다. 나아가 박정희 정부(1961-1979)의 주도로 만들어진 기념 동상이나 민족기록화 속의 군대 이미지는 해당 정권이 내세운 국가건설과 민족문화진흥이라는 테제를 반영한다. 위 두 시기의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서술은 비교적 축적되어 온 반면, 군 표상을 다룬 한국 동시대미술 작품에 대한 종합적 연구는 흔치 않다. 이 논문은 한국 동시대미술에서 발견되는 군대 표상의 정치적 특성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탈냉전 시대에도 여전히 휴전 중인 분단국가로서, 헌법에 국방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남성 국민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와 같은 특수한 정치적 조건을 목도하거나 직접 경험한 동시대 미술가들은 다양한 형식의 미술실천을 통해 군대 표상을 다루어 왔다. 본고는 특히 박경근(1978- ), 서도호(1962- ), 오인환( 1965- )의 2000년대 이후 작품에서 군인, 군 조직, 병영문화, 군대문화 등 군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분석한다. 세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는 데 있어 본고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1984)의 권력이론을 개념적 틀로 사용한다. 푸코는 권력이 사회제도와 결합하여 개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에 천착했다. 본 연구는 푸코의 권력이론 중에서도 특히 그가 저서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1975)에서 논구한 규율권력 개념을 통해 박경근, 서도호, 오인환의 작품 속 군대 표상을 분석하고, 규율권력의 정치적 특성이 드러나는 부분을 규명한다. 정치철학 담론을 미술사 연구에 적용하고자 시도한 본 연구가 한국 동시대미술 작품 속 군대 표상에 대한 담론을 보다 확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This study delves into military images in Korean contemporary artworks, applying the theory of disciplinary power by French theorist Michel Foucault (1926-1984). It summarizes the history and various characteristics of disciplinary power and refers to them to analyze military images in the works of Kyung Kun Park (1978- ), Do Ho Suh (1962- ), and Inhwan Oh (1965- ). Identifying how they reflect the politics of disciplinary power, this paper also compares the artists’ varying perspectives regarding the disciplinary power in the army: ambivalent or critical. After Korea’s liberation from the Japanese colonization (1910-1945), research on military images in Korean art has mostly focused on the two historical periods: the Korean War period (1950-1953) and the military regime in the 1960s and the 70s. Military images from the former period are mostly limited to those of soldiers and troops fighting in the battlefields. Public monuments and the National Documentary Paintings promoted by the Park Chung-hee government (1961-1979) consist of military images from the latter period. Heroic soldiers and battles won were frequently portrayed, reflecting the regime’s agenda of nation-building and the promotion of national culture. While research on the military images from these two periods has been accumulated, few are available on those in Korean contemporary art. This paper investigates this so far overlooked topic. As the Korean War has not officially ended since the ceasefire in 1953, all males over the age of eighteen in South Korea are required to complete their military obligation. Korean contemporary artists affected or inspired by these circumstances have incorporated military images representing soldiers, military organization, and military culture in their artworks. This paper examines the examples in the contemporary works of Kyung Kun Park, Do Ho Suh, and Inhwan Oh since the 2000s. Employing the political theory of power to interpret their artworks, it aims to expand the academic discussion on military images in Korean contemporary art.

        • KCI등재

          김홍희의 페미니즘/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론과 이불의 역사적 위상

          박소현(Park Sohyun)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40 No.-

          본 연구는 민중미술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이행이라는 역사적 국면 속에서 페미니즘 미술이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기입되는 방식을 김홍희의 담론적 실천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미술사학자-평론가-기획자-미술행정가라는 복합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김홍희는 1990년대 초부터 한국 페미니즘 미술운동과 그 담론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을 아우르며 양자의 미술사적 위상을 정립해 왔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한국근현대미술사 속에서 페미니즘이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관계 속에서 서술되어온 방식을 김홍희의 담론적 실천의 성립 변화를 통해 분석하고, 그 담론적 실천 내에서 김홍희가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이자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평가해온 이불의 위상 변화를 함께 검토했다. 이를 통해 한국현대미술사 내에서 페미니즘 미술사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가 결합되는 방식을 추적하고, 통사로서의 양식사 또는 총체화하는 미술사로 기획된 페미니즘 미술사 및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사의 한계를 성찰하고자 했다. This study focused on Kim Hong-hee’s discoursive practice on how feminist art has been written within the history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amid the historical context of transition from Minjoong Art to postmodernism. Based on her complex identity as an art historian-critic-curator-art administrator, Kim Hong-hee has played a leading role in shaping the Korean feminist art movement and its discourse since the early 1990s, and has contributed to establish the art historical status of postmodernism and feminism. Therefore, in this paper, I analyzed the way feminist art history has been described in contemporary Korea through the establishment and change of Kim Hong-hee’s discoursive practice, and also reviewed the change of the historical status of Lee Bul, who Kim Hong-hee has evaluated as a representative feminist and postmodernist artist in Korea. By doing this, I intended to trace the way feminist art and postmodernism have been combined within the history of Korean contemporary art, and to reflect on the limitations of the history of style as a diachronic history.

        • KCI등재

          이승조의 <핵(核)> 연작 - 한국적 모더니즘의 또 다른 가능성

          조수진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39 No.-

          Lee Seungjio is well known for his <Nucleus> series — paintings comprised of various cylindrical forms resembling pipes. Throughout his lifetime, Lee devoted himself to these distinctively clear, rational and deliberate abstract pieces. Existing analyses of Lee Seungjio’s paintings often view the pipe-like forms in the <Nucleus> series as symbols of modernization unfolding in Korea at the time, and regard his work as a model example of Korean geometric abstract art. Additionally, some have associated the changes since the 1970s in Lee’s paintings with the conceptual art of group “AG” or Lee’s interest in phenomenology. In other analyses, Seungjio has been touted as one of the founding fathers of monochrome abstract art in Korea. However, in these previous studies, it is difficult to find detailed explanation regarding what exact features of the <Nucleus> series made it different from other geometric abstract art at the time — or what exactly Korean op art even was. Is there really no way of recognizing the significance of Lee Seungjio’s art, without referencing his core artistic features to specific organizations or art styles? This paper began from the above question. This paper aims to achieve two things: first, to regard Lee’s paintings as a visual indicator existing within the societal/cultural and political/economic climate of the time; second, to propose a new way to understand not only Lee’s art but also the history of Korean geometrical abstract art since the 1960s. This paper finds that Lee’s <Nucleus> series was born from the intersection of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avant-garde art group “Origin”, and industrial design — leading the paintings to simultaneously embody the contradicting qualities of avant-garde/ academic, and pure/applied arts. Furthermore, this paper also argues that the <Nucleus> series cannot be understood only in the confines of figurative painting, geometric or monochromatic abstract painting. This paper seeks to overcome the limitations of existing research methods in Korean art history, which has traditionally been rooted on nationalism and evolutionist views. As an alternative, this paper employs a new methodological framework to investigate geometric abstract art and Lee Seungjio’s works. As a result, this study finds that in his styles spanning across the figurative, the abstract, and the hyper-realistic, Lee’s only objective as an artist ultimately lied in the visual issues of paintings. In conclusion, Lee Seungjio’s <Nucleus> series successfully created a complete visual illusion by overcoming the resistance of medium, fulfilling the duty long carried by modernism abstract paintings. From this, we can discover from Lee’s abstract works a new possibility for Korean modernism — one that neither relies on tradition nor spirit. 이승조(李承祚, 1941-1990)는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통 형태를 다양하게 구성한 회화 〈핵(核, Nucleus)〉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작가는 특유의 명징하고, 이지적이며, 계획적인 성격의 추상회화를 평생 고집스럽게 선보여 작고한 뒤엔 “우리 화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의 세계를 추구한 화가”, “논리적인 작업의 전통이나 체험이 빈약한 우리의 현대미술 속에서 더없이 이채로운 존재”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승조 회화에 관한 기존의 연구들은 대체로 〈핵〉 연작에 나타나는 파이프 형상을 조국 근대화에 주력하던 한국 사회의 시대적 상징물로 바라보면서, 그의 작업을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새로운 전형을 구축한 것으로 여기거나, 한국 옵아트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간주한다. 또 1970년대 이후 이승조 작품의 변화를 그룹 ‘AG’의 개념미술 및 현상학에의 관심과 연계해 해석하거나, 그를 모노크롬 추상회화의 태동과 형성을 주도한 주요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연구들에서 정작 이승조의 〈핵〉 연작의 어떤 특징이 당대의 다른 기하학적 추상회화와 구별되는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는지, 한국적 옵아트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한 구체 적이고 상세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승조의 예술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적 특징을 특정 활동 단체나 회화 양식의 성격에 기대지 않고 고찰해 그 미술사적 의의를 찾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 본 연구는 이승조의 회화를 당대의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 자리하는 시각적 지표로 간주하고, 그의 작품뿐 아니라 1960년대 이후 한국 기하학적 추상회화의 역사 전반에 대한 기존 견해를 교정할 기회를 마련해 보고자 했다. 이로써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 옵아트의 시발점이 된 이승조의 〈핵〉 연작이 《국전》, 재야의 전위 단체 ‘오리진’, 산업디자인의 영역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탄생했음을, 그리하여 태생적으로 전위미술과 아카데미즘 미술,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음을 밝혔다. 또 이승조의 〈핵〉 연작을 구상, 기하학적 추상, 모노크롬 추상, 그리고 극사실회화의 어느 한 범주에만 국한해 이해할 수 없음도 피력했다. 본 연구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순혈주의와 진화론에 기반했던 기존 한국 현대미술사의 기술 방식을 극복하고, 기하학적 추상회화와 이승조 회화를 고찰할수 있는 새로운 미술사 방법론을 모색해 보고자 했다. 그 결과 구상에서 출발해 추상으로, 그리고 다시 극사실에 도달하기까지, 작가 이승조의 목표는 오로지 회화에 서의 시각적 문제의 추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승조의 〈핵〉 연작은 미술사에서 모더니즘 추상회화에 주어졌던 과업, 즉 ‘매체의 저항을 압도해 완벽한 시각적 일루 전을 창출하는’ 일을 완수해냈는데, 이로써 우리는 그의 추상회화에서 전통이나 정신에 기대지 않은 한국적 모더니즘의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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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1980년대 신형상 세대의 한국화 - 극사실 경향에서 민중미술까지

          이민수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39 No.-

          After the mid-1970s, a new atmosphere was created in the Korean art world by the formation of a unique figurative art. This stream is represented by the so-called Hyperrealism, which was mainly spread out through consecutively held large-scale private sponsored exhibitions such as The Grand Art Exhibition of Korea, Donga Art Festival, and Joongang Fine Arts Prize. These exhibitions all claimed to support ‘originality’ and ‘figuration.’ To begin with, they carry repellent meanings toward Informel, Dansekhwa, and other abstractive tendencies. These events were also called as ‘new figuration’ to be distinguished from existing and unchanging conceptions spread by The National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I highlight that the emphasis on this ‘new figuration’ brought great differences to trends in Hangukhwa (Korean painting). Artists who sought for their direction to modern Hangukhwas from traditional paintings were awarded not only in private exhibitions, but also in The Grand Art Exhibition of The Republic of Korea by submitting numerous hyper-real Hangukhwas. The combination of Hyperrealism and Hangukhwa seems incompatible in an instant, then what does this fusion mean? Such phenomenon cannot be interpreted solely by focused discourses on the existing combination of ink wash painting and abstraction. Therefore, this study retraces Hangukwha with the flow of ‘figuration’. In other words, it will compare and contrast how figure is expressed in traditional and modern Hangukhwas. This examination should be started from the hyper-real Hangukhwas. By this, the study analyzes and understands Real-Scenery Landscapes and urban landscapes in the 1970s, the ink painting movement in the early 1980s, and Hangukhwa affiliated with Minjung Art in the context of art of the same period.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우리 미술계에는 독특한 구상(具象)(figurative) 미술이 하나의 기류를 형성했다. 이른바 극사실주의로 대표되는 이 흐름은 당시 잇달아 개막한 《한국미술대상전》, 《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과 같은 대규모 민간 주최 공모전(이하 민전)을 통해 주로 전개되었다. 이들 민전이 표방한 것은 ‘새로움(New)’과 ‘형상성(Figuration)’이다. 여기에는 우선, 1960년대와 70년대 전반까지의 앵포르멜, 단색화와 같은 추상 경향에 대한 반발의 의미가 깔려 있었다. 또한 기존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만연한 구태의연한 구상과 구별하기 위해 ‘새로운 형상’으로 지칭되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새로운 형상성’의 강조가 당시 한국화의 경향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전통회화에서 현대 한국화로의 방향을 모색하던 화가들은 민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미술대전》에 극사실 경향 한국화 작품들을 대거 출품해 입상했다. 언뜻 봐도 어울리지 않는 듯한 극사실기법과 한국화의 결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같은 현상은 기존의 수묵과 추상의 관계에 집중된 논의를 통해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형상성’의 흐름으로 한국화를 다시 기술한다. 즉 전통회화에서의 형상 표현과 현대 한국화에서의 그것이 갖는 공통점과 차이를 극사실 경향 한국화를 기점으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1970년대 실경산수화와 도시풍경화, 이후 1980년대 전반기의 수묵화운동, 그리고 민중미술 계열 한국화를 동시대 미술의 문맥에서 분석하고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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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량 이미지 시대와 동시대 미술 현장의 변화

          문혜진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21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42 No.-

          This essay analyses the shifts in the contemporary art scene that are prompted by contemporary condition of images characterized by its overflow and algorithm governmentality based on correlational statistical patterns. The quantitative soar of image is influencing every dimension of contemporary art, ranging from the sense of accepting, selecting and reconstructing images; concepts and methodologies required for its analysis and interpretation; the modus operandi of online platforms including social networks; the process related to the production, distribution and reception of image; to procedures of institutional approval and systems of value attribution. The quantitative increase of images indicates how rapidly the logic of quantity––that assigns value based on measurable numbers including data frequency, correlation and preference––is permeating into the logic of quality in the existing art field that attributes value conforming to the quality of contents. This essay proposes that the logic of quantity based on mass image generates new protocols and induces shifts to the conventional value system within contemporary art fields in South Korea. The discussion will be forked to three specific considerations. Firstly, regardless of how non-fungible token (NFT) suggests diverse possibilities of freedom, transparency and liberation from materiality, I will observe how its boom in the art market is anchored to a ground incompatible to previous concepts of art and how it operates from the perspective of information capitalism. This will be analysed from four angles: the question of authenticity, the terrain and structures for NFT, its relation to platform capitalism and the modes of generating capital value. Secondly, I will examine the timeline and ways in the South Korean art scene, as it started engaging with the dynamics of mass image and data capitalism in the 2010s. This began with the increase of the number of artists as raw data, kind of representing the logic of quantity overwhelming the logic of quality, as well as the politics of social networks as a novel protocol producing, circulating and evaluating mass image that resulted from such increase. During this process, the rise of young project spaces around 2015 and their co-organized exhibition and art fair GOODS (2015) played a key role. These independent spaces are directly proximate to mass data, in terms of their founding motivations, catalyzed by the desire of recognition and responded by their influence on the structural change in the entire art scene. The structural cause that motivated those project spaces was the generation’s institutionalized exclusion due to the increase of the number of artists, while the physical impetus that established them as a new wave and triggered shifts in the art scene was facilitated by smartphones and social networks. By means of these, the agencies and modes of operating the field could undergo changes. Lastly, I will investigate the aspect of how such changing protocol shifts the art value system from a more fundamental dimension. The amount of exhibitions/images exceeding the quantity of biological perception enables only atomized experiences as per individual interests, resulting in the decrease of common grounds for discussions about the fields of contemporary art. This aspect shows that the system of qualitative values, which used to be based on individuality, uniqueness and originality advocated by contemplation, has started shaking. In this regard, I will scrutinize the shifts in the value system predominantly from four perspectives: the validity of selecting criteria, the change in the principles of approval, the decline of criticism and discourses, and the economy of presence and promotion. The basic principle applying to all this is the epistemology of search engine, according to which only the most often-repeated is selected by the institution, rather than the best in quality surviving. At this point, it ... 본 논문은 이미지 범람으로 묘사되는 동시대 이미지 환경과 상관관계에 기반한 통계학적 패턴의 알고리즘 통치학이 동시대 미술현장에 미치는 변화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미지의 폭증은 이미지를 보고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감각, 이미지 분석과 해석에 필요한 개념 및 방법론, SNS 등 온라인 플랫폼의 작동 방식, 이미지의 생산·유통·수용과 관련한 프로세스, 제도적 승인 절차와 가치 부여 체계 등 동시대 미술현장의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지의 양적 증가는 데이터의 빈도, 상관도, 선호도 등 계측 가능한 수치로 가치를 부여하는 양의 논리가 콘텐츠의 내용에 기반해 가치를 부여하는 기존 미술장의 질의 논리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 글은 동시대 한국미술 현장을 대상으로 대량 이미지에 기반한 양의 논리가 새로운 프로토콜을 창출하고 기존 미술의 가치체계를 전환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논의는 구체적으로 세 가지 갈래로 진행된다. 먼저, 최근 미술 시장을 강타한 NFT가 자유로움과 투명성, 물성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여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기존 미술의 개념과 얼마나 상이한 지반에 기반해 있으며 정보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본다. 이는 크게 원본성, NFT의 지반 및 구조, 플랫폼자본주의와의 관계, 자본가치가 생성되는 방식의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된다. 다음으로, 2010년대 이후의 한국미술계가 대량 이미지와 데이터 자본주의 역학에 연루되기 시작한 시점과 방식을 살펴본다. 이는 일종의 양의 논리가 질의 논리를 압도하게 만든 로 데이터로서의 작가 수의 증가와 이렇게 발생한 대량 이미지를 생산 및 유통, 평가하는 새로운 프로토콜로서의 SNS 정치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2015년 즈음 대두된 신생공간 및 이들의 연합전이자 아트페어 《굿-즈》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신생공간은 발생계기부터 인정의 추동력과 이후 미술계에 끼친 구조적 변화까지 대량 데이터와 직결되어 있다. 신생공간을 추동케 한 구조적 원인은 작가 수 증가에 따른 제도적 소외고, 이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미술계에 알리고 변화를 일으킨 물리적 동력은 스마트폰과 SNS다. 이를 통해 장을 움직이는 작인과 작동방식이 변화한다.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것은 이와 같은 프로토콜의 변화가 보다 심층적 차원에서 미술의 가치체계를 전환하는 측면이다. 생물학적 용량을 초과한 전시/이미지의 양은 각자의 관심사에 따른 원자화된 경험만을 가능케 하며, 이는 동시대 미술 현장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동의 지반을 사라지게 만든다. 이 같은 측면은 관조로 대변되는 개별성과 독창성, 유일 무이성에 기반한 질적 가치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이와 관련해 크게 네 가지 관점에서 가치 체계의 변화를 분석한다. 선별기준의 타당성, 승인 원리의 변화, 비평과 담론의 소멸, 참석과 홍보의 경제가 그것이다. 이 모든 것에 작용하는 원리는 가장 좋은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제일 많이 회자된 것이 제도의 선택을 받는 검색 엔진의 논리다. 중요한 것은 차이를 오류로 인지하고 동질적 조화와 합의를 상정해 갈등을 삭제하며 차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알고리즘의 역학이 다름과 무용성을 비판적 성찰을 위한 토대로 활용해 온 미술의 토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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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이브를 통해서 본 근대기 영국의 한국 도자 수집 - 르 블론드 컬렉션을 중심으로

          최효진(Choi Hyojin)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40 No.-

          본 연구는 1914년 영국에 처음으로 소개된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컬렉션에 관한 연구이다. 20세기 초 상당한 규모의 한국 도자 컬렉션을 형성한 서양인 수집가들이 등장하였는데, 대표적으로 영국인 부부 오브리와 엘리자베스 르 블론드가 있다. 르 블론드 부부가 직접 한국을 여행하며 수집한 100점이 넘는 다량의 도자 컬렉션은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에 기증·판매되어 영국 최초의 한국 도자 전시의 토대가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도자를 주제로 한 도록이 처음 출간되기도 하였다. 1900년대 이후 르 블론드 부부를 비롯한 수집가들의 열렬한 활동결과, 일본과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의 한국 도자가 영국에 반출되었고 현재까지도 많은 수의 우리 도자가 영국의 다양한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유물들이, 어느 기관에, 누구에 의해, 왜 그곳에 소장되었는지 구체적인 양상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도 미비한 상태이다. 기존 연구들은 이러한 사실을 거시적 관점으로 역사적인 흐름에 대해 서술하고 있지만 사료의 한계로 수집과 반출의 구체적인 양상 과정에 대해 다루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 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까지 발표된 바 없는 1차 사료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였다. 르 블론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의 아카이브를 직접 방문하여 업무 일지, 유물 입고 목록, 각종 서신을 일일이 해독하고, 수집가의 자서전을 참고하여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컬렉션의 수집 경위, 양상, 수집 대상을 확인하고, 당대 신문기사를 분석하여 한국 도자에 대한 평가를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 현재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소장 한국 도자 중 르 블론드 컬렉션으로 입고된 작품이 어떻게 세기 초 한국에서 영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곳에서 어떻게 전시되고 평가 받았는지 등 작품 분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This paper examines the Le Blond Collection of Korean pottery that was first introduced in England during the early 20th-century. At the turn of the 20th-century, there were collectors who turned their eyes to Korean potteries such as Goryeo celadon and Joseon porcelain. Aubrey Le Blond(1869-1937) was one of those avid collectors of Korean wares who formed a sizeable collection from these objects. The collection was displayed at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and became the first Korean pottery collection ever to be introduced to the English public. Moreover, The Catalogue of the Le Blond Collection of Corean Potteries was published after this very collection in 1918, being the first published book on the subject of Korean pottery in England. Yet, not much is known about this collection, let alone the catalogue. Thus, this article aims to reveal the specific historical records of the Le Blond Collection, from how it was formed, why it was loaned and gifted to the V&A Museum, and how people back then assessed the collection and Korean potteries. The main resources for this research were the actual correspondences kept in the V&A Museum Archive in London, the autobiography of Mrs. Elizabeth Le Blond published in 1928, and several news articles dealing with the Le Blond collection in 1918. This paper has its meaning in that it went through untapped archives of the Le Blond Korean collection now stored in the V&A Archive and shared its discoveries to the field of history of Korean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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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미술교육과 근대화단의 재편

          김소연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19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38 No.-

          This study attempts to take a new perspective of art education and research on the art world of the 1920s; it focuses on the nature and the members of art institutes to investigate the changes and courses which the art world experienced, based on the new standards of Eastern and Western paintings[東洋畵, 西洋畵]. The first Joseon Art Exhibition held in 1922 caused a great change in the landscape of the art world; the contesting subjects of Eastern painting, Western painting, and calligraphy officially defined the concept of art. The art world had experienced the new concepts of Eastern and Western paintings, grown under a complementary relationship with art education, and adapted to a new form : art for exhibition. In 1923 and 1924, Society of Painting and Calligraphy(書畫協會) and Goryeo Art Institution(高麗美術會, 高麗美術院) almost simultaneously established education institutions with the system of 3 departments that were also shown in the contesting subjects. This study focuses on this aspect first to reveal the correlation between the art world and art education. Materials on the teaching staff and the researchers were gathered to present the nature and the significance of the education institution; as those two institutions were coteries with functions of education and exhibition, the causal effect on the members to gather and promote a new artistic movement was investigated. Also, the aspect of the growth of Western painting was emphasized as an important feature of the art world in the 1920s. The establishment of Sakseonghoe Painting Institute(朔星會) as an education institution of a considerable size for Eastern and Western painting could be observed in Pyeongyang. The focus was on the passion for education of Western painting by the regional art world, intent on revival of the art in Pyeongyang and involving early study-abroad students of Western art, such as Kim Gwanho and Kim Chanyeong. Additionally, art institutes of various school systems, including the Department of Art in YMCA and Gyeongseong Women’s Art School, replaced the absence of a government art school and prospered the art world; it is undeniable that the art education is the most significant contributor to the rapid expansion in size of Western art production in 1920s. The system of art institute, the character of the students and the members of coteries, their role in the art world, and the features of the art world in the 1920s were investigated through this pro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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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계로 보는 해방 전 재일본 조선인 미술유학생

          김지영(Kim Jiyoung)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0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40 No.-

          한국에 근대적 ‘미술’의 개념이 수용되고 정착한 데에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미술가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술유학생에 대한 연구는 몇몇 특정 학교나 단체의 인물들이 다뤄진 적이 있지만, 그들의 전체상을 파악한 시도는 없었다. 지금까지 조사된바, 1900년대 초부터 종전까지 약 40여 년간 일본의 미술학교에 재학한 적 있는 조선인은 총 10개교에 5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429명은 선행연구에 의한 결과로, 한일 양국의 기관에 의한 공동조사였기 때문에, 자료의 정확성뿐 아니라 조사효율 또한 높았다. 나머지 7개교 71명은 필자가 2011~17년간 해당 학교 방문조사결과 및 학교기관지, 한일의 신문, 잡지, 도록 등에서 수집한 것이다. 아직 완성된 집계는 아니지만, 조사 완료된 학교들을 비교기준이자 대상으로 삼으면서 현시점에서 알 수 있는 근대기 미술유학의 상황과 특성을 논하고자 한다. 본고의 목적은 미술유학생이 언제 어느 기관에 얼마만큼 있었고, 무엇을 배웠는지, 귀국 후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 학교별, 연도별, 전공별, 출신지별로 분류하여 그 규모와 분포상황을 파악하는 데 있다. 나아가 유학생들의 활동 범위를 당시 일본화단 속에서 살피고 귀국 후에 어떤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는지 그룹별로 정리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근대기 미술유학이 젠더와 장르, 지역 등이 지니는 계층구조(hierarchy)와 얽혀 다중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음을 밝히고, 또한 유학생들의 유학경험이 귀국 후 한국에서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귀결했음을 지적한다. Korean artists, who studied in prewar Japan, played an important role in introducing modern concept of fine arts to Korea. However, previous scholarship has predominantly focused on only a few students from certain schools or groups. There has been no attempt to understand them in totality. According to my research, around 500 Korean art students attended ten art schools in Japan during the 40 years from the beginning of the 1900s to 1945. Previously, organizations from Korea and Japan cooperated to research students at three major art schools. As a result, they created a list with names of 429 students. The accuracy of their data is very high. From 2011 until 2017, I have collected information on the remaining 71 students at seven schools through visits to these schools and research in journals, newspapers, magazines, and catalogs in both Korea and Japan. My list with 500 names of art students is not complete. However, it allows me to analyze the overall situation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art students in Japan in the prewar period.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dentify the number and distribution of Korean art students; the time and place of their studies, what they learned, and what they did after returning to Korea. To do so, I classify them by school, period of attendance, majors, and the regions in which they were born. Furthermore, I examine the scope of their activities in the Japanese art world at the time and investigate their roles after their return to Korea. I argue that studying fine arts in Japan in the colonial period reflects multiple hierarchies of gender, artistic genres, and place. I also demonstrate that artists, who were affiliated with the avantgarde or academic painting during their period of study, affiliated with similar artistic circles in the Korean art world after their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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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매체와 매스 미디어의 피드백 - 1980년대 박현기의 비디오 작업을 중심으로

          박혜연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구 한국근대미술사학회) 2021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42 No.-

          This paper examines how Park Hyunki’s video works in the early 1980s demonstrate an investigation of video as an artistic medium through a critical appropriation of mass media. While Park’s Video Stone Tower series (1979-1980) are well known to the public, his multifaceted experimentations that explored video’s potential by bringing it contact with installation and performance have been under-recognized. This paper analyzes Park’s works in relation to the development of television broadcasting environment in South Korea and positions them within the art-historical discourse on the relation between artistic medium and mass media. First, by examining societal changes brought on by the arrival of color television broadcasting in Korea in the early 1980s, I demonstrate the socio-cultural context in which Park began his experimentation with moving image. Next, I examine Rosalind Krauss’s analysis of video as “post-medium” and David Joselit’s concept of a “parallel relation” between artistic medium and commercial media, as well as the artistic debate in Korea to discuss how a formal experimentation with medium can be understood within the larger context of media that emphasizes communication with the masses. Focusing on two works by Park – Pass Through the City (1981) and Media as Translators (1982) - this paper illustrates how Park appropriated the logic of moving image technology in mass media and reoriented video as a process that mediates the relation between man, nature, and technology. 본고는 1980년대 초 박현기(朴炫基, 1942-2000)의 비디오를 포함한 일련의 작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매스 미디어에 대한 비판과 매체에 대한 성찰이 어떻게 그의 작업을 통해서 드러났는지 살펴본다. 박현기가 1979년 발표한 《비디오 돌탑》 연작은 잘 알려져 있지만, 1980년대 들어서 박현기가 시도한 비디오 설치 및 퍼포 먼스와 같은 다양한 미술적 실험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본고는 박현기의 작업을 한국의 텔레비전 방송 환경과의 접점에서 고찰하고, 영상 매체와 매스 미디어에 대한 미술사적인 담론 속에 자리매김한다. 먼저, 국내 미디어 시대의 개막을 개관함으로써, 박현기가 비디오와 같은 새로운 영상 매체를 실험하게 된 당대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어서 비디오 아트를 포스트-매체 조건과 피드백의 논리로 정의한 서구의 미술사 담론과 미술의 매체 실험을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는 미디어와의 관계에서 논의한 한국 미술계의 논쟁을 통해서 박현기의 예술적 문제의식을 추적하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초박현기의 두 가지 작업―《도심지를 지나며》(1981)와 《전달자로서의 미디어》(1982) ―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박현기가 어떻게 매스 미디어에서 영상 테크놀로지가 작동하는 논리를 다른 방향으로 전용하여, 비디오를 자연의 물질과 인공물, 그리고 인간의 신체를 매개하는 프로세스로 새롭게 재구성했는지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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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국진 초기 판화의 행위성과 산업주의

          안진국(Ahn Jinkook)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1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41 No.-

          강국진(1939-1992)은 1965년 《논꼴동인전》으로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하여 해프닝부터 오브제·설치미술, 회화, 판화까지 폭넓은 예술적 스펙트럼을 보여준 예술가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해프닝이 처음 시도되었던 1967년과 1968년 사이 대부분의 해프닝에 참여했고, 나무나 흙, 한지나 천뿐만 아니라, 비닐이나 로프, 스테인리스 스틸, 네온 등의 산업재료까지 작업의 매체로 끌어들임으로써 그 당시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앵포르멜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술을 선보였다. 이러한 선도적인 활동은 그를 우리나라 해프닝(행위미술)과 테크놀로지아트의 주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강국진은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기까지 실험성이 높았던 작업 활동을 보여주었다. 그의 미술 활동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이 시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시기의 판화 작업에 관한 연구가 미진한 점이다. 그는 이 시기 실험적인 판화 작업을 선보이며, 의미 있는 활동을 보여줬다. 강국진이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이던 1960-1970년대는 판화가 국내에서 새로운 매체로 주목을 받았던 시기다. 강국진은 국내 최초의 사설 판화교실을 개원할 정도로 한국현대판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특히 판화의 ‘매체 형식 실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71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판화형식을 실험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 시기의 판화는 해프닝(행위미술)과 테크놀로지아트 및 오브제·설치미술과 약간의 시차를 두고 중첩되어 나타났다. 이번 연구에서는 판화의 ‘매체 형식 실험 시기’라 칭할 수 있는 이 시기에 판화가 해프닝과 테크놀로지아트 및 오브제·설치미술과 맺는 관계를 탐색한다. 김차섭은 강국진의 판화와 회화가 해프닝이나 오브제·설치 작업 및 테크놀로지아트 등의 전위적인 작업과 “동일한 관점으로 실행한 매체 형식 실험”이라고 말했다. 미술사학자인 크리스틴 스틸스(Kristine Stiles)는 퍼포먼스아트를, ‘연결’과 ‘위탁’으로서 ‘이음매’를 통해서 ‘행위한다는 것’과 ‘했던 것’을 모두 재현하는 ‘사이 연속체’라고 말했다. 판화는 비물질적인 ‘행위’의 순차적인 과정이 겹겹이 층을 쌓아 이룬 ‘작품(thing)’으로, 순차적인 ‘과정’에서 ‘연결’, ‘위탁’, ‘행위함’, ‘재현’ 등이 발생한다. 이는 퍼포먼스아트의 행위성과 판화의 행위성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연결’과 ‘위탁’의 ‘과정’과 ‘행위’가 중요한 판화의 작업 특성은 강국진에게 해프닝의 연장선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판화는 순차적 진행, 반복적 행위, 동일한 이미지의 다수 제작 등 산업주의적인 면모가 강하다. 육중한 철제 프레스기와 금속판(동판), 금속 도구 등을 사용하는 작업장은 소규모 공장과 같은 인상을 준다. 강국진은 ‘현대의 기물’을 소재로 하고, 테크놀로지에 주목하는 등 ‘산업주의’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관심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판화 작업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판화에서 산업주의적 양상은, 알루미늄 호일과 LP 레코드판, 기성품 돗자리 등을 사용하는 ‘소재적 측면의 산업주의 양상’, 소규모 공장의 인상을 주는 판화 작업실의 ‘공간적 산업주의 양상’, 순서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나 반복적 행위, 동일한 이미지의 다수 제작 등의 ‘양식적 산업주의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강국진은 1971년 합정동 작업실로 옮긴 후 본격적으로 판화 작업을 시작하여 작고 시까지 평생토록 판화 작업을 선보였다. 따라서 그의 삶 전반에 걸친 판화 연구가 필요하다. 강국진의 판화 연구는 빈 곳이 많은 한국현대판화사를 풍성하게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As an artist who started his artistic activities in earnest with the 《Nonggol Group Exhibition》 in 1965, Kang Kukjin showed a wide artistic spectrum from performance art to object and installation art, painting and print. He participated in most of the happenings between 1967 and 1968, when such happenings were first attempted in Korea, and by introducing not only wood, soil, Korean paper, and cloth, but also industrial materials such as vinyl, rope, stainless steel, and neon as the medium of his work he presented a new art that went beyond Informel, which was the mainstream of the art world at that time. These leading activities have established him as a major artist in Korea’s Happening (Performance Art) and Technology Art. Kang Kukjin showed highly experimental work activities from the mid-late 1960s to the early 1970s. His research on art activities is mostly focused on this period. Unfortunately, compared to other art activities in this period, research on print is insufficient. During this period, he exhibited experimental prints and showed meaningful activities of print. The 1960s and 1970s, when Kang Kukjin showed experimental works, was a period when contemporary prints drew attention as a new medium in Korea. Kang Kukjin played a pioneering role in Korean contemporary prints, to the degree of opening the first private contemporary print class in Korea. In particular, he presented the works that experimented with various print formats from 1971 to the mid-1970s, the period of ‘medium format experimentation’ of contemporary prints. His avant-garde prints presented during this period overlapped with Happening (performance art), technology art, and object and installation art with a slight time difference. This study explores the relationship between contemporary print’s happenings, technology art, and object and installation art in this period, which can be called the ‘medium-form experiment’ of print. Kim Chaseop said that Kang Kukjin’s prints and paintings are “experiments in media form from the same perspective” as avant-garde works such as happenings, objects and installations, and technology art. Art historian Kristine Stiles describes performance art as ‘to do’ and ‘done’ through ‘commissure’ as ‘connection’ and ‘entrustment’, which is said to be an ‘interstitial continuum’ that reproduces everything. Print is a ‘thing’ formed by accumulated layers of sequential processes of immaterial ‘movements’, with occurrences such as ‘connection’, ‘entrustment’, ‘movements’, ‘re-presentation’, etc. This is the point where the movements of performance art and the movements of print intersect. For Kang Kukjin, the characteristics of prints, in which the ‘process’ and ‘movements’ of ‘connection’ and ‘entrustment’ are important, may have come from an extension of performance art. In addition, print has a strong industrialist aspect, such as sequential progression, repetitive actions, and multiple productions of the same image. Workshops using heavy iron press machines, metal plates (copper plates), and metal tools give the impression of a small factory. Kang Kukjin shows interest in ‘industrialism’, such as taking ‘modern objects’ as the subject and paying attention to technology. His contemporary prints show the industrialist aspect is, according to the order of the ‘industrial aspect in terms of material’ using aluminum foil, LP records, and ready-made mats, and the ‘spatial industrialism aspect’ of the print studio that gives the impression of a small factory or ‘aspects of stylistic industrialism’, such as proceeding with work, repetitive actions, and multiple productions of the same image. After moving to his studio in Hapjeong-dong in 1971, Kang Kukjin began contemporary prints in earnest, and showed his works throughout his life until his death. Therefore, it is necessary to study his contemporary print work throughout his life. Kang Kukjin’s print research will greatly contribute to enriching the history of 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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