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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우리나라 공연문화 연구동향의 의미연결망 분석

        황동열 ( Dong-ryul Hwang ),권예지 ( Yae-ji Kwon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8 공연문화연구 Vol.0 No.37

        본 연구는 공연문화분야의 학문적 정체성과 특성을 파악하고 변화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의미연결망 분석을 활용하여 연구동향을 파악하였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공연분야 연구의 대표적 학회지인 한국공연문화학회에서 발행하는 <공연문화연구>에 수록된 455편의 논문을 대상으로 공연문화분야의 연구동향과 추세를 분석하였다. 세부연구과제로는 2000년부터 2017년까지 학회지에 수록된 논문명을 대상으로 <고전희곡연구>에서 <공연문화연구>로 제호변경 전후의 연구수요 변화현상을 파악하였다. 다음으로 2005년부터 2017년까지<공연문화연구>의 논문명, 주제어, 초록을 대상으로 <공연문화연구>의 시기별 연구동향을 파악하여 공연문화분야의 변화현상을 파악하고 미래예측을 통한 발전방향을 제시하였다. This study used semantic network analysis to understand the academic identity and characteristics of the society of korean performance art and culture and to grasp the trend of the research. For this purpose, this study analyze the research trend of korean performance art and culture related papers based on 455 whole articles in the Journal of The Society of Korean Performance Art and Culture by the Korean Performance Art and Culture Association from 2000 to 2017. Through this research, the trends of The Society of Korean Performance Art and Culture in the period of time were identified, and the phenomenon of the performance culture field and the future development direction were suggested.

      • KCI등재

        우리나라 다목적 공연장의 탄생배경에 관한 소고

        김경아 한국공연문화학회 2020 공연문화연구 Vol.0 No.41

        The current state of performance halls in South Korea is closely related to the performance art and culture of the nation as the culture of putting on and enjoying a performance is deeply rooted in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representing each area at the local government level. Today,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have multiple management purposes, and the subjects of their management are in the public domain including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or investment and donation foundations in overwhelming cases.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thus have close correlations with the institutional aspect of cultural policies as the objects of culture and art policies at the central and local government level. The full-blown era of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pened up in the 1980s〜1990s, during which multi-purpose performance halls of a similar structure became universal around the nation.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f the uniform shape were distributed around the nation with no premise of genre characteristics or local environments for arts, and this was attributed to the cultural policies of the military regime. The Park Chung-hee regime proclaimed Yusin that was beyond the Constitution and enacted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September, 1972), which was the first culture and arts act in the nation. Based on the act, a five-year plan for the promotion of culture and arts(1973) was made and led to the construction of cultural facilities.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or “culture” halls were built to serve multiple purposes around the nation because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which is called the starting point of the nation's legal system for culture and arts, defined “culture and arts” as “matters regarding literature, art, music, entertainment, and publications.” The definition became a ground for the current “multi-purpose” concept. The organization of Ministry of Culture and Public Information set up a culture and administration system to state its supervision of “culture and arts” and distinguish popular culture from the promotion of arts. During the period, former President Park exhibited his perception of “culture=arts=culture and arts” in his speeches. Arts belonged to the category of culture, but it was considered as “culture and arts.” There was no department devoted to arts policies when the act was enacted with a broad scope of culture accepted. This ambiguity worked as a mechanism to mobilize arts in ideological utilizations as a policy. Against this backdrop, the Sej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a multi-purpose performance hall, was established in 1978 based on the Culture and Arts Promotion Act under the supervision of Ministry of Culture and Public Information. There were, however, conflicts of value over the issue of accepting the popular music among the “culture and arts = multiple purposes” of the system, “culture ≠ arts” of the cultural organization that pushed forward its establishment, and “culture and arts = arts” perceived by the powerful class. The new military regime seized power after Coup d'état of December 12, 1979 and failed at its culture policy of bringing the resistance force within the system. It tried to differentiate itself from the Park regime by converting the perception into “expansion of opportunities for the people to enjoy culture” to gain people's supports both from the side of resistance and that of support. For the Chun Doo-hwan regime, differentiating itself from the previous regime was to secure legitimacy. Expansion of opportunities to enjoy culture was pushed forward at the level of national distribution. This approach thus failed to settle down as a long-term policy of arts development, and the military regime tried to secure its legitimacy through the symbolism of hardware. During the period, the institutional ground for public culture and arts halls was based on the definition of “cultu... 이 연구는 군사정권의 권력 전개양상에서 드러나는 문화정책이념이 ‘다목적 공연장’의 개념형성으로 발현되는 과정을 살펴보는데 있다. 한국의 공연장 현황은 우리나라 공연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회관(문예회관)을 중심으로 한국의 공연문화와 향유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예회관들은 다목적홀로 운영되고 있으며 운영주체는 절대다수 정부와 지방정부 또는 출자출연기관의 재단법인 등 공공영역에서 운영한다. 따라서 정부와 지방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의 대상이며 제도적 측면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가지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초헌법적인 유신을 공포하고 우리나라 문화예술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문화예술진흥법」(1972.9)을 제정한다. 이법을 근거로 「문예중흥5개년계획」(1973)을 수립하고 문화시설들을 짓기 시작했다. 전국의 ‘문화예술’회관, 또는 ‘문화’회관이 다목적홀로 지어진 데에는 문화예술진흥법의 “문화예술”에 대한 정의를 “문학, 미술, 음악, 연예 및 출판에 관한 사항”으로 명시함으로써 지금의 ‘다목적’개념의 근거가 된다. 한편, 문화공보부의 조직직제는 “문화와 예술”을 관장함을 명시하고 대중문화와 예술진흥을 구분 짓는 문화행정체계를 갖춘다. 그러나 이시기 대통령의 연설에 나타난 박정희의 화법은 ‘문화예술=예술’로 인식하고 있다. 예술은 문화에 포함되는 개념이지만 문화예술=예술로 인식함으로써 정치적 시국이나 시행부서에 따라 그 해석을 달리하였고, 이러한 모호성은 예술이 이데올로기적 활용에 정책적으로 동원되는 기제가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문화예술진흥법에 근거하고 문화공보부의 관장 하에 1978년 다목적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이 개관한다. 그러나 제도상의 문화예술=다목적과 설립을 추진했던 정부조직의 문화≠예술, 권력이 인식했던 문화예술=예술은 대중음악의 대관문제를 두고 가치충돌로 표출된다. 1979년 12·12사태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민족문화를 앞세운 국풍81을 통해 저항세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정권의 의도는 실패하였고, 저항과 지지의 양축에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국민의 문화향유 기회확대 정책에 방점을 둔다. 이는 앞 정권의 문화예술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며 박정희 정권과의 차별화를 추구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에 있어 앞 정권과의 차별성은 곧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향유기회의 확대는 문화영역의 분배 차원에서 추진되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의 예술발전으로 자리매김 되지 못했고 하드웨어의 상징성으로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오늘날 다목적 공연장의 개념은 유신체제하에 만들어진 법체계의“문화예술”의 정의에 기인한 것이며 이를 근거하여 공공 공연장의 운영목적으로 ‘다목적’의 개념이 탄생한다. 군사정권을 이은 전두환 정권은 프로시니엄 구조의 다목적 공연장을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표출하였고, 전국적으로 재생산 되어 오늘날 한국의 공연문화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KCI등재

        1950년대 〈춘향전〉 중국공연의 자료적 고찰

        장정룡 ( Jung Ryong Jang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4 공연문화연구 Vol.0 No.29

        춘향전은 조선후기에 발생한 가장 한국적인 판소리계소설로 영화, 연극,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로 시도되고 있다. 춘향전의 최초 중국공연은 한국전쟁 속에서 그 싹이 터서바로 이어서 공연되었다. 북한공연 화극(話劇)춘향전의 중국개편활동이 시작된 것은1950년대 초부터이다. 월극단원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인민해방군과 북한인민군을대상으로 공연을 하였다. 1953년 4월부터 8개월 동안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을 대상으로 선무활동(宣撫活動)을 하였다. 1953년 7월 26일 북한 개성에서 춘향전을 본 상해화동월극단 제2단원들은 상해로 돌아와 월극으로 춘향전을 개편하여 공연하였다. 번역, 개작, 복색, 미술 등 어려움을 극복하고 1954년 8월 2일 월극춘향전이 공연되었으며 9월 25일부터 11월 6일까지 상해대회에서 1등상을 차지하고, 북경, 소주 등지에서도 공연하였다. 월극춘향전의 공연을 필두로 1955년에 경극(京劇)춘향전, 1956년에 평극(評劇)춘향전이 중국에서 공연되었다. 또한 1954년 북한 국립민족예술극단 방화(訪華)공연단이 춘향전을 북경에서 공연했다. 이후 1959년 북한영화 춘향전을 번역판이 중국에서 상영되었으며 1961년 상해월극단은 다시 북한을 방문하여 월극춘향전을 공연하였다. 이와 같이 춘향전은 1950년대부터 북경을 비롯하여 상해, 운남, 소주, 요령 등지에서 월극, 경극, 황매희, 조극 등으로 중국에서 다시 태어났다. 특히 광동성의 에 근거를 두고 있는춘향전 창곡집 표지에 1938年 3月 이라고 쓰였는데 그 공연여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중국의 춘향전 공연을 통한 문화교류활동은 전통극의 전파에도 기여하였다. 춘향전 중국공연의 각종 자료를 살필 때, 1950년대 비극적인 한국전란 중에 그 예술적 싹이 터서 바로공연활동이 진행되었다. 따라서 중국에서 펼쳐진 춘향전 공연활동과 국제화과정이 갖는의미는 특별한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Chunhyangjeon, the story of Chunhyang based on the most Korean style pansori Chunhyangga written in the late Joseon Dynasty, has been performed in various genres such as films, plays, dramas, and so on. The performance of Chunhyangjeon in China had been started while the Korean War was happening. The performance of Chunhyangjeon as a drama and opera in North Korea has been started in the early 1950s. The members of Yueh opera, a form of Chinese opera, presented for the Military of the People``s Liberation Army of China and the North Korean Army participating in the Korean War. They have done the pacification activities to the Army of China for eight months from the April of 1953. The second members of Shanghai Huadong Yueh Opera performed Chunhyangjeon changed into yue opera style after returning to Shanghai from Gaesung, North Korea where they watched a Chunhyangjeon in the 26th of July, 1953. Overcoming difficulties about translating, remaking, the color and style of a uniform, fine arts, the yue opera Chunhyangjeon was performed in August 2, 1954 and the opera members could get the Grand Prix in the contest of Shanghai the 25th of September to the sixth of November. The opera was also performed in Beijing, Suzhou and other places. Starting with the performance of the yue opera Chunhyangjeon, the ping opera Chunhyangjeon performed in China in 1956. Banghwa Group Performances of North Korean National Ethnic Theatrical Troupe performed Chunhyangjeon in Beijing in 1954. Since then, the translated North Korean film Chunhyangjeon was shown in China in 1959 and Shanghai Huadong Yueh Opera visited to North Korea and performed Yueh Opera Chunhyangjeon in 1961. Similarly, Chunhyangjeon has been reborn since 1950s in the areas of Shanhai, Yunnan, Suzhou, Liaoning as well as Beijing as Yueh Opera, Peking opera, Huangmei Opera, Chaozhou opera. Little of the performances were known even though the "March of 1938" had been written on the song book cover of Chaozhou opera Chunhyangjeon based on the Southern drama in Guangdong Province, China. Such cultural exchange activities in China through the performances of Chunhyangjeon contributed greatly to the spread of the traditional drama. The performances of Chunhyangjeon in China were staged while the tragic Korean War was happening in 1950s. Therefore, such performances might show the unique phenomenon with the process of internationalizing Chunhyangjeon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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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조선후기 관서지방의 공연 시공간과 향유에 관한 연구

        송혜진 ( Hye Jin Song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1 공연문화연구 Vol.0 No.22

        본고는 조선후기 관서지방 공연문화의 시공간과 향유에 관한 연구이다. 관서(關西) 지방은 중국 대륙과 인접한 접경지대로 군사적 요충지이자 대외무역과 상업의 발달로 재화가 풍부한 문화의 중심지였다. 조선후기에는 중국과 조선을 오가던 수많은 사신과 역관, 상인들이 이 지역을 경유하였고, 1~2년 간격으로 관찰사가 교체되었으며, 지역 인재 선발을 위한 도과(道科)과 빈번하게 시행되면서 환영과 전송 의례, 위로, 향연에 따른 공연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여러 문헌자료와 읍지(邑誌), 그림 자료로 전하며, 문학, 음악, 무용, 민속학 분야의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관서악부>를 비롯하여 평양, 성천의 자연과 풍류를 노래한 가사문학작품, 연행록 등을 문학작품을 세밀하게 읽다보면, 기존의 연구에서 주목해 온 공연의 종목과 악기편성, 음악기구, 음악인 등 뿐 만 아니라 공연활동의 주체와 시공간, 향유방식에 대한 유용한 정보들이 매우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공연이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언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공연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는지, 관객과 공연주체가 어떻게 소통하였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음악과 춤에 관한 단적인 정보 외에 ``공연``, ``사람``, ``시간``, ``공간``의 관계성에 관한 연구는 지금까지 미진했던 ``전통공연예술 양식`` 연구의 기반이 되리라고 판단된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관서악부> 108편, 한글 가사 작품 8편, 한문연행록 9종에 표현된 공연관련 정보를 ``주요어`` 에 주목하여 분석한 결과 조선후기 공연문화의 시공간과 향유 양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공연의 시기와 시간, 전체 소요시간에 대해서는 별도의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는 않았다. 사신연의 경우, 국가나 개인의 상례(喪禮), 기일(忌日) 등의 ``금지사유``가 없는 한, 더위나 추위를 무릅쓰고라도 진행되었다. 그 외에 계절을 선택하여 ``놀음``을 벌일 경우, 계절적으로는 ``삼사월 좋은 때``, ``춘풍`` 불고 ``일기 화창``한 날과 ``가을 물결`` 아름다운 ``추강(秋江)``의 계절이 선호되었다. 공연 시간 대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포시(오후 4시경)``, ``석반을 물리치고~``, ``야심(夜深)``, 의 예에서 처럼 매우 가변적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밤에 열리는 야연(夜宴)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공연의 지속시간은 ``잠깐보고``부터 ``전날 오전부터 다음날 낮까지`` 차이가 컸다. 공연시간대와 전체 소요시간은 사신일행의 일정에 영향을 받았다. 공연 공간은 자연, 누정이나 관아의 건축 공간, 선유놀음의 선상 공간, 영송(迎送)의 행차음악이 연주된 연도(沿道)로 구분해볼 수 있었다. 평양의 연광정, 부벽루, 성천의 백상루, 선천의 의검정, 천연정, 의주의 통군정 등의 건축공간과 강상에 배를 띄운 선유놀음의 크고 작은 선상공간은 관서지방 공연문화의 중심이었다. 공연 공간에는 공연주체와 좌상(座上)객의 필요에 따른 주물상, 다담상, 찬을 갖춘 상, 병풍, 의자, 향로 등이 구비되었으며, 야연에서는 청사초롱, 홍촉대, 횃불이 갖춰졌다. 약산동대 등, 자연 공간에서의 공연도 선호되었다. 공연 향유와 관련하여 공연주체와 관객, 공연내용, 향유자의 소감과 비평 등을 살폈다. 공연주체는 기생과 무동, 악공, 전악, 취타군, 무동, 가아(歌兒) 등 수많은 명칭이 사용되었다. 특히 공연에서 춤과 노래, 연주를 담당했던 기생에 대해서는 기생의 수, 연령, 역량, 이미지 등을 알 수 있는 아주 많은 이칭(異稱)이 조사되었다. 공연에서 향유자는 유객(遊客), 좌상(座上)으로 불렸고, 특정 작품에서는 ``풍류 태수``, ``학탄 신선`` 등의 표현도 사용되었다. 향유자들이 즐긴 공연은 정재류의 춤과 관서지방의 민속무, 이에 따른 삼현육각 편성의 음악, 12가사, 한문 낭송조, 잡가, 민요, 광대소리 등의 노래, 거문고, 가야금, 양금, 피리, 해금, 퉁소, 옥저 등의 기악 독주, 혹은 병주. 행차에 따른 연주 등이었다. 세부곡목에 주목해보면 조선후기 관서지방에서는 궁중 예술과의 교섭이 매우 활발하였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홍문연>, <항장무>, <선유락> 등의 레퍼토리를 탄생시켰는가 하면 고유의 민속가무도 함께 향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공연의 규모는 ``대연``, ``크게 벌이다``, ``수삼 동기``, ``성천기 7명``, ``60기생``, ``기생 2~3명``, ``삼자비`` 등으로 표현되거나 독주, 독창, 독무인 경우 이름으로 표기하였다. 역시 공연 계기와 장소에 따라 공연의 규모가 매우 유동적이었음을 알려준다. 공연자의 연령은 10대 초반부터 늙은 기생까지 다양하게 소개되었는데, 특히 어린 기생들의 가무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공연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지만, 반대로 ``잡악(雜樂)``, ``졸렬``, ``웃음거리``로 분류되어 외면당한 예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여러 지역에서 유사한 공연종목을 관람한 뒤, 이를 ``비교(比較)`` 평가한 예가 있는데, 이는 관서지방 공연문화 향유양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된다. 공연은 주로 사신맞이. 사신연, 순행에 따른 연회 등 공적인 성격을 띤 것이 많았고, 그밖에 사적인 향유 차원에서 이루어진 예도 적지 않게 조사되었다. 관서지역의 사신맞이는 대동강의 관선을 이용한 도강(渡江)의례가 특징적이다. 이는 관찰사, 부사, 감사 등의 관리의 이임과 부임뿐만 아니라 정례적으로 중국에 오가던 사신일행의 행차가 끊이지 않았으므로 이와 관련된 공연문화의 지속성이 탄탄하게 확보될 수 있었다. 이와같이 ``주요어 추출``을 중심으로 조선후기 관서지방의 공연 시·공간과 향유양상에 관해 살핀 본 연구는 향후 관서지방의 재정과 경제, 생활문화의 측면과 관련지어 ``관서지방 특유의 공연문화``를 밝히는 연구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지금까지의 연구가 미진한 전통공연예술의 시공간과 공연양식에 관한 연구의 외연을 넓히는데 풍부한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This paper studies the time-space and appreciation of the performance culture of Gwanseo region, which is considered to have formed a characteristic culture in late Joseon period. For this purpose, 4 gasa written in hangeul (Korean alphabet), as well as 4 yeonhaeng gasa, 108 articles of Gwanseoakbu were examined. Plus, among the 9 types of yeonhaengrok (Documents of Performance culture) written in Chinese character, those parts which describe the performance traits have been analyzed. Then, ``main list of terminology`` has been deduced based on the categorization according to the following points:1) subjects of performance and appreciation 2) time and period of performance 3) space of performance 4) contents of performance 5) background and motive for performance and 6) method of performance. Through this process, various ``nouns`` and ``predicate verbs`` in relation to performance culture emerged, which were systemized according to types of performance elements and categories. Major terminology includes predicate verbs and symbolic verbs such as ``nokuihongsang,`` ``baekdaehongjang,`` ``jeolsaekgeumga,`` ``cheonga,`` ``hwaryu,`` ``gamuja,`` and ``tongsoja,`` as well as the terms already known such as gisaeng, iwon, yangbang, akgong, and jeonak, which refer to musicians and dancers. Subjects of performance were divided into performers and listeners, categorized into concert, music, and dance, according to performance form. In the case for music, it was divided into instrumental or vocal, solo or accompanied (byeongju, self-accompaniment). In the case for vocal music, noteworthy was the inclusion of profesional artist`s singing (called gwangdae or uchang). The record of 23 names of popular artists from Gwanseo region, with mention of special talents for each person, reflects the degree of activeness and artistic level of the province. Depending on the appreciating patrons, the audience were indicated as the terms including ``yugaek (party guest),`` jwasang,`` ``on jwaseok,`` and ``sonnim (guests).`` It seems that appraisal for a certain performance was very much affected by the tastes, views, and disposition of the appreciating patrons. Therefore it is interesting to observe different comparative reviews of concerts of different regions given by literary figures, offering various criticism on identical performance. In terms of performance space, it has been divided into natural or architectural space, doing justice to special performance sites such as a famous pavilion or an on-the-boat performance. Specific terms related to the scale and brightness of stage, as well as stage props and cast, based on descriptions of performance space were found. The performance space, including famous pavilions; Yeongwangjeong, Bubyeokru, Baeksangru, Wolparu, and Uigeomjeong, which are all well-known tourist sites of Gwanseo province, have been often visited by viceroys. governors, and envoys during a tour or trip. This, and the fact that full-scale performances were regularly held here, and that more than 15 different kinds of boats which were used for boat concert are mentioned, all confirm the general popularity of boat concerts at the time. Performance time, categorized by season or time of day (am/pm/night) and analyzed in terms of time of occurrence and duration, there were no special limitation as to when to have a performance. Most morning concerts were held as part of official duties for the envoys, after their meeting session, whereas evening concerts were more lengthy in duration, with a greater number of people in the audience. In the case of boat concert, samples include day-time concert and performances that began during the day and which lasted till later in the evening. Major terminology related to performance time and season includes descriptions of time of day (morning, evening, night) and mention of sunset, twilight, moonlight, stars, candles, and lamps. Such terms which reflect the flow of time contributed in making a concert more lively. Terminology for the contents of performance was mostly words like ``instrumental,`` ``pungak,`` or ``pungnyu.`` Besides, contextual expressions gave hints as to whether there were dance, singing, ensemble, solo, and duets. Words for dance and singing used in Gwanseo province were almost identical to those used for gasa and jeongjae in the capital, Hanyang. However, many sentences reveal that performances of ``hangjangmu`` of hongmunyeon, sword dance, and baettaragi were on a top-quality level. Moreover, chants in hanmun Chinese character and folk songs, which are characteristic for this region, show unique features of local musical performance. It is judged that understanding the purpose and background of a performance is important in grasping the foundation and continuity of local culture. Concerts were usually either related to official protocol for ``greeting,`` ``sending-off,`` ``reports,`` and ``patrols`` or for private enjoyment. The rituals for Gwanseo province characteristically features river crossing ceremony on the Daedong river, which has been closely documented by many. What is more, the Gwanseo region featured continued coming and goings of Pyeongan envoys and local officers, as well as ambassadors to and fro China, which required an organized and full-scale performance of music and dance. The method of performance varied from a large-scale, official ones, for which female entertainers and a great banquet in addition to musicians were required, to private gatherings that are more intimate. A performance may take the form of ``taking turns`` or ``a competition,`` reflecting the dynamic nature of the musical culture at the time. This study, which is deduction of terminology in relation to the time-space and appreciation culture of musical performances of Gwanseo region in late Joseon period, should be expanded in the future into research on ``the performance culture unique to Gwanseo region,`` in relation to the financial and administrative aspects of the province, as well as everyday lifestyle. Furthermore, it could proceed to a more intensive research by a comparative study with related literary documents and pictorial data, which could serve as the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the use of space and stage, as well as the performance format characteristic to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 KCI등재

        기획논문 : 한국 무당굿의 학제적 통섭적 연구 -서울진오기굿을 중심으로 ; 무당굿의 공연학적 특성: 서울 진진오기굿의 경우 -"밀양손씨" 진진오기굿의 사례를 중심으로

        김익두 ( Ik Doo Kim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1 공연문화연구 Vol.0 No.22

        본 연구는 무당굿의 공연학적 특성을 구체적으로 구명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두 가지 무당굿 양식인 남부 세습무 무당굿과 중북부 강신무 무당굿을 비교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대표적인 남부 세습무 무당굿인 ``진도 씻김굿``과 중북부 강신무 무당굿인 ``서울 진오기굿``의 공연민족지를 작성하여, 이 두 가지를 비교·대조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첫째, 두 공연 양식은 같은 무당굿이면서도 공연학적으로는 서로 매우 다른 공연 양식임이 드러난다. 둘째, 공연요소 상의 특징으로는, 진도씻김굿이 ``청각중심의 공연미학``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는 데 비해, 서울 진진오기굿은 ``시각중심의 공연미학``을 지향하는 경향이 강하다. 셋째, 공연 양식상의 특징으로는, 진도씻김굿이 ``서사적 공연 양식``인 반면에, 서울 진진오기굿은 ``연극적 공연 양식``이다. 이 점은 같은 무당굿이라고 하더라도 양식적인 측면에서 혹은 공연학적인 측면에서는 그것들이 얼마나 서로 다를 수 있는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측면이다. 넷째, 공연 중에 일어나는 변환/변신의 측면에서는, 특히 서울 진오기굿이 ``일시적 변환``과 ``지속적 변환``을 적절히 융합하는 매우 조화로운 공연 양식임이 드러난다. 다섯째, ``사회극-무대극``의 관계상의 특징으로는, 서울 진오기굿이 ``사회극(social drama)``과 ``무대극(stage drama)``의 조화로운 융합 관계를 성취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여섯째, 공연의 본질적 특성으로는, 진도 씻김굿이 ``삶과 죽음을 서사적으로 통합``하는 공연 양식이라면, 서울 진오기굿은 ``삶과 죽음을 현전적으로 통합``하는 공연 양식이라는 점에 가장 근본적인 특징이 드러난다. Performers of ``Seoul Jinjinokigut`` point to aesthetics of performance centered on sense of sight, not sense of hearing. ``Seoul Jinjinokigut`` is a kind of theatrical mode of performance, not narrative mode of performance. Performers of ``Seoul Jinjinokigut`` succeed in making of relationships of harmonious fusion between ``social drama`` and ``stage drama`` through performing of Jinjinokigut. ``Seoul Jinjinokigut`` is a kind of mode of performance that fuses life and death, not narratively but theatr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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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물굿의 해외 문화이주 현상에 관한 연구 - 캐나다 토론토의 풍물패 활동을 중심으로 -

        이용식 한국공연문화학회 2020 공연문화연구 Vol.0 No.41

        Samul nori/Pungmul-gut is the symbol of ethnic identity for the Koreans abroad. It is the representative diaspora musical genre which is performed many cultural events held by Koreans. It is, at the same time, a global music which is appreciated by not only the Koreans but also the foreigners. Many musical communities in various countries exhibit the cultural migration through the discourse of ‘tradition/variation’ and ‘authenticity/hybridity’ in the course of the acculturation and enculturation of samul nori/pungmul-gut. The pungmul-pae ‘Bichoe June’ active in Toronto, Canada was organized by a foreign performer. For the foreigners pungmul-gut is easy to access as a genre of world music. As a percussion ensemble, it is easy to learn for the foreigners. The pungmul-pae ‘Bichoe June’ is a ‘music community’ consist of the Koreans and foreigners. The band tries to preserve the traditionality and authenticity of the Korean music. There is no variation or hybridity in its music since the member still learns the authentic music through various available textbooks and internet sites. Through the participation of the Koreans and foreigners, the band stimulates the globalzation of the pungmul-gut. The enculturation of the pungmul-gut is exhibited in two performances held by the band. One was host by the Canadian progressive group and the other was by the Korean conservative community. The former understood the nature of pungmul-gut as the music of the common people. The latter, however, accepted the music as the representative traditional music but was not easy to enjoy the ‘noisy’ music. In other words, the positive/negative acceptance of the pungmul-gut depends of the ideological nature of the listeners rather than the ethnical nature. 사물놀이/풍물굿은 해외 한인들에게는 민족정체성의 상징이다. 한인사회의 각종 행사에서 사물놀이/풍물굿은 한국문화의 대표적 디아스포라 음악으로 자리매김한다. 한편으로 해외에서 사물놀이/풍물굿은 한국인뿐만 외국인도 즐기는 글로벌음악으로 성장했다. 해외에서 결성된 각종 음악공동체를 통해 사물놀이/풍물굿은 ‘전통과 변형’, ‘정통성과 혼종성’의 담론을 통해 문화변용과 문화적응의 문화이주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활동하는 풍물패 ‘비춰주네’의 문화적·음악적 정체성을 통해 풍물굿의 문화이주 현상을 밝혔다. 이 글에서 논의하는 캐나다 토론토의 풍물패 ‘비춰주네’는 외국인 상쇠에 의해 조직된 단체이다. 외국인들에게 풍물굿은 월드뮤직의 한 갈래로서 쉽게 배울 수 있는 음악이다. 그렇기에 월드뮤직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풍물굿은 접근이 어렵지 않다. 현재 이 단체는 외국인과 한인이 함께 어우러지는 개방적 ‘음악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러면서도 풍물굿의 전통성과 정통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각종 교재와 인터넷 시청각자료를 활용하여 가락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변형과 혼종성이라는 문화변용이 작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함께 참가하면서 한국음악의 세계화를 촉진시킨다. 풍물패 ‘비춰주네’의 공연 사례를 통해 캐나다에서의 풍물굿의 문화적응을 살펴보았다. 진보적 주류사회에서 주최하는 공연과 보수적 한인사회에서 주최하는 공연의 대비를 통해 풍물굿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진보적 외국인 감상층은 풍물굿의 민중적 본성을 이해한다. 보수적 한인 감상층은 풍물굿의 전통적 본질을 받아들이지만, ‘소란’한 음악적 · 음향적 요인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결국 풍물굿의 긍정적/부정적 수용은 외국인/한인이라는 민족적 요인보다는 진보적/보수적이라는 사상적 성향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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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논문1- 주제: <주제: 한국무형문화재와 공연문화> : 한국 동남부 탈놀음과 공동체와의 상관성 고찰

        정상박 ( Sangbak Chung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6 공연문화연구 Vol.0 No.32

        한국의 동남부 지역의 탈놀음과 공동체와의 상관성을 따지고 그 존재양상을 살펴보았다. 우리 민속 탈놀음은 전통사회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잘 살기 위하여 행하고 즐기는 문화행위였다. 21세기에 탈놀음을 공연하더라도전통사회의 삶의 양상이 담겨져 있을 뿐 아니라 전통사회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 기법과 기능도 현대의 것이 아니라 전통사회의 유산이다. 탈놀음의 예능과 놀이양상이 비교적 온전히 전승된 것 중에서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인위적으로 전승시키고 있다. 한국 동남지역, 즉 경상도지방은 여러 장르의 탈놀음이 전승되었다. 즉, 지역공동체가 행하는 하회별신굿탈놀이 등의 굿탈놀음, 고을공동체가 행하는 통영오광대 등 토박이오광대, 고을공동체가 행하는 수영야류 등 토박이탈놀음인 들놀음, 밤마리 대광대패 등 연희공동체가 행하던 떠돌이오광대등이 전승되고 있었다. 광대패, 사당패, 남사당패 등 지역공동체와 관계없이 유랑하는 연희집단은 인적 결합을 한 특수한 공동체다. 이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연희를 하면서 떠돌며 사는 특수집단이다. 이들은 생산적 활동과 집단적 생활을 공유하는 연희공동체다. 한국 동남지역의 탈놀음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각광을 받으니까, 합천밤마리오광대, 김해오광대, 마산오광대, 거제영등오광대 등 소위 복원하는 것이 생겨났다. 탈과 대사가 전하고 있어도 과거에 놀았던 사람이 없으면 행위 전승, 즉 예능의 전수가 이루어 질 수가 없으므로 놀이가 전승되었다고 볼 수 없다. 공연물의 동영상을 보고 그대로 모방하여도 예능의 전승이 아니고 복원이다. 이런 복원은 이미테이션(imitation)이다. 과거의 놀이양상을 알 수 없어서 다른 탈놀음을 참조하여 만들면 창작을 한 것이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복원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전통사회의 공동체와는 무관하여 무형문화재의 범주에 들기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지난 예술을 복원 혹은 모방한 것이라도 성행하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것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방안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The interrelationship of Korea southeast region community related to a mask dramas in depth. The Folk mask dramas are, for traditional community members to live well and enjoy cultural practices in society. Even if a mask drama would be performed in the 21st century, it would be the one of traditional society. It shows the life of traditional society and proposes the issue of traditional society. The thing is handed down well with technology of a mask drama assigned as intangible cultural asset. The Korea southeast region, Kyongsang Provinces, or Yeongnam area has been handed down several kind of mask dramas. These are Byeolsingut Talnori with religious, the Ogwangdae of wandering play team, the Ogwangdae of local residents, and the Dulnorum of local residents. The mask dramas of Korea southeast region are specified as intangible cultural asset, many traditional mask play were restored. The restoring is imitation. These things are difficult to assigned as the intangible cultural asset. But though it is the imitation of the mask dramas, it is culture phenomenon. So we need to make the fostering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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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로봇 배우를 활용한 공연예술 활성화 방안 연구: “에버” 중심으로

        이유선 ( Yoo Sun Lee ),김동언 ( Dong Eon Kim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1 공연문화연구 Vol.0 No.22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의 문화 흐름에 있어 공연예술은 그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상상력과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표현양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현대의 변화된 테크놀로지 환경은 최첨단 기술력을 뒷받침으로, 새로운 경험에 의한 사유의 확장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예술표현에 대한 디지털 매체의 직접적인 개입은 공연예술 주체인 인간의 신체성을 확장시키고 있다. 디지털에 의해 가상화된 신체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상호 작용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세계 최초의 전문 로봇 배우인 ``에버``를 중심으로 탈신체화 된 공연예술의 표현주체와 디지털화된 움직임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디지털 신체라는 새로운 표현매체의 변화에 따라 등장한 로봇 배우는 테크놀로지적 가치 뿐 만 아니라, 문화 예술적 활용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이론적 배경으로 ``에버``의 개발과정과 기능을 조사하고,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지니는 역사적 중요성과 함께 인간을 대신한 배우로서의 역할을 어떠한 방식으로 수행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 사례연구로 공연예술 분야의 판소리 극 “에버가 기가 막혀(2009)”와 어린이 연극 “로봇공주와 일곱 난쟁이(2009)”를 조사하고, 그 외 다양한 활동분야에서의 활약을 통해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이를 통하여 로봇 배우의 발전적인 진화 방향 탐구와 공연예술에 미칠 영향력을 예상하고, 적극적인 문화 콘텐츠화 방안 추진으로 나아가 로봇 배우의 대중화와 활성화를 통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을 그 목적으로 한다. 로봇 테크놀로지가 융합된 공연은 예술적 실험의 한 형태로, 인간신체와 기계인간이 어우러져 기술적 상상력을 현실화시키며 미래형 공연예술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공연예술과 로봇 테크놀로지와의 만남이 현 시대가 추구하는 하나의 총체적 문화 현상으로 공연예술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다양한 영역으로의 확장을 향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In the twenty first century of rapid cultural change performing art requires new mode of expression based on imaginative power and creativity as well as establishing its own identity. The modern technological environment support this with advanced technology and bring about the expansion of reason from new experience. The introduction of digital media on artistic expression in particular, expands the physical ability of human body which is the main subject of performing art. A virtual body from digital technology is freed from physical boundaries and goes over space and time. It also suggests the possibility of new mode of communication with audience. This study aims at examining the subject of performing art and its digitalized movement focusing on EveR, the world`s first professional robot actor. The robot actor which came on stage according to the new expression medium, a digital body, stands in need not only of technological value but also of cultural and artistic application for expression in art. In this endeavor to meet the demand, this study examines the development process and function of ``EveR`` the robot actor. Also it searches into the performance of Ever which replaced human being as well as the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title: the world`s first. To be more specific, there is a example research on two performances: a pansori play “EveR is simply stunning(2009)” and children`s play “The Robot Princess and Seven Dwarfs(2009).” Through this example research, it is enabled to anticipate the influence of robot actors on performing arts and to search for the better way of them to evolve. Furthermore, it aims at finding ways to create high value through promoting robot actors to be familiar to the public as well as supporting them to become active cultural contents. The performance with robotic technology is one of the artistic experiment that may cause the change of the future of performing art by actualizing technological imagination together with human body and machinery. As a consequence, it is expected that the meeting of performing art and robotic technology gives positive influence on activating performing art as one of the integrated cultural phenomenon which satisfies the taste of modern era. Moreover, this study may also be the beginning of the expansion of performing art to stretch to diverse 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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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이해랑의 리얼리즘과 연출 관점에 대한 소고 -텍스트 "햄릿" 공연 연출을 중심으로-

        안장환 ( Jang Whan Ahn ) 한국공연문화학회(구 한국고전희곡학회) 2011 공연문화연구 Vol.0 No.22

        셰익스피어의 텍스트 "햄릿"이 한국에 최초에 소개된 것은 현철에 의해 1920대 초 『개벽』지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전막 공연이 이루어진 것은 한국전란 중이던 1951년 9월 대구 키네마극장에서 이해랑연출(한로단 번역)에 의해서였으며, 이후 196, 70년대와 8, 90년대를 통하여 수많은 공연예술가와 공연집단에 의하여 다양한 공연이 이루어져왔다. 이에 본고에서는 한국의 셰익스피어 텍스트 "햄릿" 공연사에 나타나는 수많은 공연예술가와 공연들 중에서 1950년대 이후 한 축을 이루었던 이해랑의 텍스트 "햄릿"에 대한 연출관점을 분석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이해랑이 연출한 공연 중에서 1951년 텍스트 "햄릿" 공연을 중심으로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공연, 1985년과 1989년 호암 아트홀 공연의 공연대본과 공연비평 등을 참고하여 먼저, 2장에서는 그의 일생의 연극 활동에 바탕이 되었던 리얼리즘의 개념과 그의 리얼리즘에 대한 관점 및 배경을 살펴보고, 3장에서는 그의 텍스트 "햄릿"에 대한 연출관점 분석에 앞서 텍스트의 전통적 개념과 현대적 개념을 개괄하면서,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견해를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그의 연출관점을 분석 고찰함으로써 이해랑연출의 셰익스피어 텍스트"햄릿" 한국공연사적 위치와 공연미학 논의 단초를 제시하고자 한다. Shakespeare`s text "Hamlet" was first introduced in Korea in the first part of 1920s by Hyeon Cheol via 『Gaebyeok』. Its performance of whole acts was realized in Kinema Theater in Daegu by the direction of Lee Hae-Rang (translated by Han Lo-Dan) in September, 1951, during the Korean War. Since then, a variety of performances were carried out by numberless performing artists and performing groups in the 1960s, 1970s, 1980s and 1990s.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among numberless performing artists and performances appeared in the history of performance of "Hamlet", to examine Lee Hae-rang`s direction standpoint of "Hamlet", which has been one of the mainstays since the 1950s. For this, among many performances directed by Lee Hae-rang, the investigator referred to the performing scripts and performance criticisms for the opening performance of Drama Center in 1962 and the performances in HOAM Art Hall in 1985 and 1989, focusing on the text "Hamlet" performance in 1951. In the second chapter, the concept, standpoint and background of realism, the base of his theatrical activities in his lifetime, were examined. In the third chapter, before analyzing his direction standpoint for text "Hamlet", the traditional and modern concept of text was summarized and a variety of standpoints and viewpoints for the text were analyzed. And based on the above summary and analysis, his direction standpoint was analyzed and examined, thus presenting a clue for the discussion on the position of Shakespeare`s text "Hamlet" directed by Lee Hae-rang in the Korean history of performance and its performance aesth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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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춤의 색과 공간에서의 문화철학적 표상에 관한 이미지 재고

        김지원 한국공연문화학회 2020 공연문화연구 Vol.0 No.41

        It illuminates the representation of Korean dance in the sense of color. The unique color and light of Korean dance reflects the essence of Korean art and the consciousness of Koreans. Therefore, analyzing Korean art, colors and meanings can provide the principle of aesthetic interpretation to re-examine Korean colors. This means that it is necessary to pay attention to the possibility of developing original contents as a humanistic basis, asking the origin of Korean art. The Korean thought and philosophy in which color and life become cultures remain the roots for another re-creating vision of Korean art. Therefore, it is time to establish a system of Korean identity as an art with the expansion of various interpretations of various aesthetic attitudes that recognize Korean dance. 한국춤의 표상을 색채라는 의미에서 조명한다. 한국춤의 고유한 색과 빛은 한국예술의 정수이자 한국인의 의식을 투영한다. 그러므로 한국예술, 색과 의미를 분석한다는 것은 한국의 색을 재조명할 수 있는 미학적 해석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한국예술의 근원을 묻고 인문학적 기반으로서 독창적 콘텐츠의 개발 가능성에 주목해야 함을 뜻한다. 색과 삶, 그것이 문화가 되는 한국적 사상과 철학은 한국 예술의 또 다른 재창조적 시야를 위한 뿌리로 남는다. 따라서 한국춤을 인식하는 여러 가지 미적 태도는 다양한 해석의 확대와 함께 예술로서 한국적 정체성의 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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