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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획 : 고창과 판소리 문화 ; 고창의 판소리 문화적 기반

          정병헌 ( Byung Heon Chung ) 판소리학회 2005 판소리연구 Vol.0 No.20

          고창은 전라북도의 서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동리국악당과 판소리박물관이 건립되어 판소리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조선 후기 판소리 사설을 집대성하고, 판소리 연차의 한 규범을 만든 신재효가 이 지역을 기반으로 자신의 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신재효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고창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판소리적 기반을 충분히 활용하고, 이를 한 단계 성숙한 문화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그런 판소리적 기반으로 우리는 그 지역에 존재하고 있던 민속 예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의 음악과 관련된 기록은 백제로부터 비롯된다. 그 시대의 노래로 알려진 <선운산>, <정음>, <방등산> 등을 통하여 이 지역의 음악적 기반이 다른 지역과는 구별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의 민요는 비옥한 평야지역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전라남도 지역의 해안을 따라 이루어진 이 민요권은 판소리의 서편제 전승지역과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적 기반이 고창의 판소리 흥성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고창지역에서 발달한 농악의 전통도 판소리의 중요한 기반 문화이다. `호남우도농악`에 속하는 고창의 농악은 이 농악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양면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재효의 판소리 종합에 중요한 기반을 제공하였다. 판소리의 각 유파가 이 지역에 모여 서로의 조화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비옥한 농토를 배경으로 하는 부농들의 풍류와 민속예술에 대한 후원도 이 지역의 판소리를 흥성케 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서민들의 민속예술과 부유층의 풍류가 한데 어우러짐으로써 판소리의 중요한 특성인 양면성은 더욱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 지리적 기반을 어떻게 활용하고 전승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이 지역이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전통예술의 전승 의지와 끊임없는 실험 정신은 신재효가 이 지역에서 펼쳤던 사업이다. 이러한 정진을 현대의 것으로 변화시켜 실천하는 것이 이 지역을 다시 판소리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하는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다. Kochang is located on the southwest of Jeollabookdo province. A museum of Pansori and Dongri Art Center in Kochang shows that this region is closely related to Pansori. The most important reason is that Shin Jaehyo, who compiled the Pansori of late Chosun dynasty and made rules of the performance of Pansori, worked actively based on this region. However, Shin Jaehyo did not create everything from "nothing". He made use of Kochang`s established base of Pansori, and sublimated it into a greater culture. One of the examples of established base of Pansori in this region is folk art. The records related to the music of this region go up to Baekje period. We can see that the base of music in this region differs from that of other regions through <Seonunsan(仙雲山>, <Chungeup(井邑)>, <Pangdeungsan(方登山)>, all of which are known as songs of that period. Folk song in this region has its nature in fertile meadows, so it has various musical characteristics. This range of folk song which follows the seasides of Jeollanamdo province correspond with the area where Westside Mode is passed down. This diverse musical base is one of the factors that made Pansori possible to prosper in this region. The tradition of agriculture music which developed in Kochang is also an important basic culture of Pansori. Agriculture music in Kochang, which belong to `Right Wing agriculture music`, offered Shin Jaehyo an important basis for synthesizing Pansori because it stands in the middle and tries to harmonize both sides. That`s because each sects of Pansori gathered in this region and pursued harmony. The donations made by rich farmers for music and folk art was another factor that made pansori prosperous in this region. As the folk art of common people and the elegance of the rich joined together, an important characteristic of Pansori, ambivalence, could bloom. How to make use of and pass down this historical and geographical basis is the task which this region will have to solve in the future. The will to pass down folk art and constant experimental spirit are the projects which Shin Jaehyo developed in this region. To change this devotion into modern one and to practice it will be the key for this region to become center of Pansori again.

        • KCI등재

          근대 여창(女唱) 판소리의 문예적 특질

          이유진 판소리학회 2015 판소리연구 Vol.0 No.40

          This paper discusses the view of pansori and the consciousness of transmission which the female pansori singers of modern times had, and analyzes the literary characteristics of their pansori texts. While the male pansori singers of modern times were the successors to gwangdae, the female pansori singers of modern times were the successors to gisaeng. The female pansori singers of modern times considered pansori as vocal music which was the continuation of the traditional gisaeng culture. The ideal pansori, they aimed for, was the changak which could touch the audience delicately as the traditional gisaeng vocal music did. Accordingly, the greatest female pansori singers such as Park Rokju, Park Chowol, Kim Sohui re-edited and modified their pansori texts, and due to their efforts the female singers' pansori of modern times gained the dignity and the lyrical beauty as its literary characteristics. 본 논문에서는 근대 여성 명창을 대표하는 박록주, 박초월, 김소희의 판소리 텍스트가 동시대 남성 명창들의 판소리 텍스트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 근대 여성 창자들의 판소리관 및 전승의식과 관련지어 그 문예적 특질을 고찰했다. 근대 남성 판소리 창자들이 광대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판소리를 전승했던 것과 달리, 근대 여성 판소리 창자들은 기생문화의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판소리를 전승했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여성 창자들은 판소리를 ‘놀음’이 아닌 ‘창악(唱樂)’으로 인식했는데, 그것은 전통적으로 기생들이 연행해 온 가악(歌樂)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청중의 마음을 섬세하게 건드리는 창악을 지향하면서 근대 여성 창자들은 판소리의 음악적 기교와 성음을 세련했고, 문학적인 면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일으켰다. 그들은 판소리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터무니없는 이야기, 어리석은 대화, 음란한 말장난 등으로 청중의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들을 배제하거나 그러한 대목들에 담긴 비속한 내용을 순화했으며, 판소리 작품의 주인공들을 품위 있는 인물들로 형상화했다. 그리고 서사성 또는 극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대목의 텍스트를 과감히 요약하거나 삭제하여 기존 판소리에 비해 서사성과 극성은 약화되고 서정성은 더욱 강화된 판소리를 탄생시켰다. 또한, 그들은 서정적 창 대목을 새로 만들어 넣거나 당시에 전승되고 있었던 창 대목의 텍스트를 섬세하게 다듬어 그 서정미가 더욱 빛나도록 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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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 명창의 생애와 예술 활동

          김석배 판소리학회 2015 판소리연구 Vol.0 No.40

          Kim Yeonsu(1907-1974) is an artist that is remarkable in the history of modern pansori. He became famous as a pansori singer, changgeuk actor and producer, and art administrator. He began to learn pansori at an older age in 1927 at his hometown Goheung. He mastered the five traditional pansori, and contributed greatly to the development of pansori and changgeuk through a variety of activities. This paper explored his life and art activities as an artist. The result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Kim Yeonsu did not graduate from Joongdong school, and learned pansori from Oh Seongsam and Park Bokseon at Goheung. Second, Kim Yeonsu contributed a great deal to the development of pansori and changgeuk through a variety of activities. (1) After he went up to seoul in July, 1937, he held various heads of Joseonseongakyeonguhoe, Joseonchanggeukdan, Urigukakdan, Gukribgukgeukdan, and so forth. (2) He made his debut in Heungbojeon in 1936 in Seoul. He performed as a protagonist in Chunhyangjeon, Baebijangjeon, Onggojibjeon, and he also made a lot of songs used in changgeuk. He showed his talent of pansori in a variety of Myeongchang concerts. (3) He made 62 SP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some LPs which recorded Changgeuk Chunhyangjeon. (4) He appeared as a pansori singer in JODK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five traditional pansori was broadcasted by DBS in 1967. (5) He completed Dongchoje pansori in 1967. Pansori saseol was published in the title of 『Changbon Chunhyangga』 in 1967, and 『Changbon Simcheongga Heungboga Sugungga Jyeokbyeokga』 in 1974. 동초 김연수(1907-1974)는 현대 판소리사에서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명창으로 한평생을 판소리 창자, 창극 배우 및 연출가, 예술행정가로서 당당하고도 거침없이 살았다. 동초는 1927년 고향 고흥에서 늦깍이로 판소리에 입문하여 1935년부터 유성준 송만갑 정정렬에게 판소리 다섯 바탕을 익혀 소리꾼으로서 입지를 굳힌 이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판소리 및 창극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본고에서는 김연수 명창의 생애와 예술활동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연수가 중동중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소리공부도 축음기로 독학한 것이 아니라 고흥에서 오성삼과 박복선에게 판소리를 배웠다. 둘째, 김연수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판소리 및 창극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 1937년 7월에 상경한 후 조선성악연구회, 조선창극단, 우리국악단, 국립국극단 등 여러 국악단체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2) 1936년 11월 <흥보전>에서 서울 무대에 등장한 이래 <평화의 쇠북소리>, <심청전>, <춘향전>, <수양과 육신>, <배비장전>, <옹고집전> 등 수많은 창극에서 작곡과 연출을 하는 한편 주인공 등 주요 배역을 맡아 열연하였고, 명인명창대회, 판소리유파발표회 등 다양한 판소리 무대에서 기량을 유감없이 펼쳤다. 3) 일제강점기에 유성기음반(SP판)에 ‘고고천변’ 등 62매(124면)를 취입하였고, 해방 후에도 장시간음반(LP판)에 <창극 대춘향전> 등을 취입하였다. 4) 일제강점기에 JODK의 국악방송에 출연하였고, 1967년에 동아방송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을 방송하였다. 5) 1967년에 판소리 다섯 바탕을 자신의 판소리 이론에 맞는 이상적인 소리(동초제 판소리)로 완성하였고, 판소리사설은 『창본 춘향가』(1967)와 『창본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1974)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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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에 대하여 -중국 曲藝와 관련하여-

          지수용 판소리학회 2012 판소리연구 Vol.0 No.34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에 관한 논의는 판소리의 질서나 미학적 원리의구명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작업으로서 판소리 연구에서 선행되어야 할부분이다. 사실상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에 관한 문제는 판소리 연구의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으로 되어왔다. 이러한 논란을일으키게 된 데는 판소리 자체의 복합적인 성격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판소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지 않을까생각한다. 본고는 우선 판소리 구성 요소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통하여 기존 연구에존재하였던, 판소리 구성 요소의 어느 한 측면에서 판소리 장르의 단서를찾아내던 문제점을 지적하고, 판소리 장르의 성격을 구명하기 위해서는판소리를 문학적 요소, 음악적 요소, 그리고 연극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공연예술 양식으로 보고, 그것에 대한 통합적인 조명을 진행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판소리와 다른 공연예술 양식과의 차이점을밝히기 위하여 판소리의 근본적 예술특징을 이루는 구두(口頭)로 된 배우의‘설창’ 연기에 초점을 맞추어 판소리 장르의 단서를 찾아내고자 하였다. 한편, 판소리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하여 ‘판소리는 한국만의 독특한 예술 장르’라는 기존 관념을 극복하고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의 양식 자체는 다른 민족, 다른 지역에도 보이는 보편적인 양식이라는 전제 하에 중국 ‘곡예’와의 비교 검토를 시도하였다. 중국 ‘곡예’와의 공시적및 통시적 차원에서의 비교 검토는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 구명에 유익한방법론을 제시해 주었는 바, 양자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판소리는 한국의 오랜 설창예술 전통 속에서 싹트고 성장해 오다가18세기에 비로소 꽃을 피운 한국적 특색이 짙은 설창예술임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본고는 지금까지의 판소리 연구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하고, 앞으로의 판소리 연구에서는 어디까지나 설창예술의 미학적 원리에 좇아 판소리 구성 요소에 대한 분리적 연구와 통합적 연구를 진행함으로써판소리로 하여금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판소리와 기타 나라의 유사한 예술양식과의 비교 검토도판소리의 미학적 특징을 구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Ascertaining the genre features of Pansori is directly related to the research of structure and aesthetic principle of Pansori. Therefore, ascertaining the genre features bears the brunt of the research of Pansori. Actually, arguments about the genre features have never ceased since Pansori became the object for study. An important reason of these arguments is compound factors of Pansori and we hold the opinion that the root cause is the deviation in the view of investigating this artistic form. This paper points out some problems existing in discussion of the genre features that investigating the genre features of Pansori from structure factor of one Pansori through analysing several structure factors of Pansori. We emphasize that Pansori should be known as a performing art including literature, music, drama and we should investigate its genre features as a whole. Then this paper focuses on the most fundamental artistic characteristic that actors giving verbal performances-“Shuochang”(說唱, the Style of song-narrative) and tries to find the pointcut of ascertaining the genre features of Pansori for clearing the difference between Pansori and other performing arts. Meanwhile,this paper breaks the inherent concept that Pansori only belongs to Korea and considers Pansori as a widespread art around the world for expanding the vision of investigating Pansori. On this premise,we make a comparison between Pansori and chinese quyi from different aspects and find a methodology of ascertaining the nature of genre of Pansori. We conclude that Pansori is a “Shuochang” art fulling of korean characteristics that matured in the 18th century and inherit the traditional Korean “Shuochang” art. Finally, this paper points out some problems in formerly research of Pansori. We emphasize that the research of Pansori should be followed to aesthetics rules no matter individually or integrally to revert its origin. The comparative research of Pansori and other national “Shuochang” art will contribute to the discussion of specific aesthetic features of Pan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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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리돌판 <적벽가>를 통해 본 관우 위엄 대목의 존재 양상과 그 의미

          김상훈 판소리학회 2010 판소리연구 Vol.0 No.30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seek the way that oriental traditional thought paradigm such as harmony of yin-yang and circular cosmic view are expressed in compositional components of Pansori, and is to draw oriental aesthetic elements of Pansori through the inference from the oriental traditional thought paradigm. There are two aspects in Pansori ; one is following aspect of oriental thought paradigm in Confusion tradition, the other breaking away from the oriental traditional thought paradigm. The background of the breaking aesthetics in Pansori is the compound of several factors, that is, deviative tendency from Korean Neo-Confusion in pursuit of practicality and everyday life and trivial things, the revival and reexamination of Taoistic tendency including Lao-Tzu and Chuang-Tzu, and the floating of shamanistic tendency on official culture with the expression of intense feeling. There are traces of oriental thought paradigm in Pansori, espicially four compositional components of Pansori, that is, story structure, characterization, discursive way, and performative dramaturgy. Through the phenomenon engraved in the compositional components, oriental aesthetic basis of Pansori could be investigated. In conclusion, Pansori is distinctive being unified dialectically the normative aesthetics and the breaking aesthetics of oriental aesthetic system. 이 연구는 한편으로는 동양의 유가적 규범 미학적 전통이 판소리의 내용과 형식에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를 밝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전통적인 규범미학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파격적 지향을 보여주는 미학적 사유체계가 판소리에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밝히고자 했다. 즉, 판소리에 규범지향 미학과 탈규범지향 미학이 어떻게 변증법적 통일을 이루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판소리는 음양의 조화와 순환론적 세계관이라는 동양의 전통적인 사유체계를 바탕에 깔고 있다. 동양적 이상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규범적이고 전아하고 조화를 추구하는 미학적 사유체계를 다른 전통 예술양식들과 마찬가지로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미학적 사유체계는 판소리의 서사구조에도, 인물의 성격과 인물의 배치방식에도, 사설이 구성되는 방식에도, 공연 현장의 연행 기법이나 방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동양 전래의 그러한 미학체계는 선진 유학과 송대 유학, 그리고 그것을 수용한 조선성리학이 지속적으로 내함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판소리에는 동양의 전통유학적 미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있다. 그것은 음양의 조화나 순환론적 세계관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상당히 다른 관점에서 거기에 커다란 변화를 가함으로써 파격적인 미학을 추구한다. 물론 그러한 파격미도 판소리의 서사구조와 인물성격, 사설의 담화론적 측면, 그리고 현장 연행술 등 판소리 구성요소 곳곳에 구현되어 있다. 이처럼 판소리 구성요소들은 규범지향적인 측면과 탈규범지향적인 측면을 함께 탑재하고 있으므로 대단히 복잡한 양상을 띤다. 판소리 미학의 이탈적 국면은 동양 전통의 미학체계에서 마련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미학을 추구한, 우리의 자생적인 사유체계에서 비롯되었다. 즉, 탈성리학적 움직임과 병행한 실학적 사유, 노장사상과 도가적 사유에 대한 재평가와 재음미 경향, 기층문화 저부에 침잠해 있었던 무교적 사유체계의 부상과 인출 경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판소리의 서사구조와 인물성격이라는 서사론적 차원, 사설구성의 담화론적 차원, 그리고 연행술이라는 현장연행론적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규범지향 미학과 탈규범지향 미학이 충돌 또는 접합하는 모습을 조망하고, 그 사유체계적 배경으로서 동양 전래의 미학과 당대의 신흥 미학적 변화의 조짐을 주목함으로써 판소리의 미학적 정체를 캐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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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변동과 판소리

          최동현 판소리학회 2011 판소리연구 Vol.0 No.31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disclose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ulture of pansori performance and the pansori itself. In this study the results of former studies were fully adopted. Therefore in this study I am going to concentrate on the description of being. But the declining period that covers the period from 2,000 to present, will be divided into declining period before 1964 and the preservation period after 1964 in this study. The first period is the formative period of pansori. In this period, the pansori was enjoyed as a play in the rites. The pansori performance was held to celebrate the special events for example passing of civil service examination. The place of performance was a court. The second period is the period of prosperity. This period is from the end of the first period to 1902. In this period pansori was enjoyed as a song in the middle and upper class's pleasure and amusement. The pansori was highly developed as an art. In this process, many singers became famous as a pansori myeonchang(maestro). The place of performance was changed from a court to a room. The third period is the period of declining. This period is from 1902 to 1964. In this period the pansori performance was held in the theater. The major form of performance was the changgeuk(pansori theater) or hyeopryulsa (package performance of traditional performing art). The class of audience was the mass of people. The pansori became an popular entertainment. And pansori was considered as a goods. At the end of this period the pansori was throughly declined and lost the value of a goods. The fourth period is the period of preservation. In this period the government intervened in the transmission and preservation of pansori. The pansori was reevaluated as a major national cultural asset. The place of performance was a theater. But the form of performance was wanchang (singing a pansori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Many provincial governments established the changgeuk company. So the most of the performance were held for free. The audience of this period were the intellectuals and the students. It is very distinguishing that pansori is taught in many art schools. Now the pansori throughly lost the power of self-existing. The pansori is preserved by the financial support of government. But the future of pansori is very uncertain. Because the pansori had lost its value as a goods and there are not so many positive audiences who can feel the emotion of pansori. 이 논문은 판소리의 공연문화의 변동과 판소리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목적으로 씌어졌다. 이 논문에서는 이전의 연구 결과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현상을 기술하는 데 그치고자 하였다. 다만 20세기 이후 전체를 아우르던 쇠잔기는 1964년을 기준으로 쇠잔기와 보존기의 둘로 나누어 각 시기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첫째 시기는 판소리의 형성기인데, 이 시기의 판소리는 제의에서 놀이로 존재했다. 문희연을 비롯한 특별한 행사에 그 행사를 빛내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가지 놀이 중 하나로 판소리가 향유되었던 시기였다. 공연장소는 전정이었다. 두 번째 시기는 전성기로서 1902년까지인데, 이 시기의 판소리는 중상층의 오락과 유흥에서 노래로 향유되었다. 판소리가 그 자체로 향유되기 시작하면서, 판소리는 예술적으로 크게 발전하였고, 이 과정에서 이름을 얻은 사람들이 명창으로 이름을 남겼다. 공연장소는 방중으로 바뀌었다. 세 번째 시기는 쇠잔기로서 1902년부터 1964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판소리의 공연장소는 극장이 되었으며, 공연 종목은 창극, 또는 협률사 형태로 다른 공연 종목과 함께 공연되었다. 향유층은 일반 대중이 되었고, 판소리는 흥행 예술이 되어 상품으로 존재했다. 이 시기의 끝에 판소리는 여성국극을 끝으로 판소리는 완전히 몰락하였다. 그리하여 판소리는 상품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네 번째 시기는 보존기로서 국가가 판소리의 보존과 전승에 관여하게 된 시기이다. 이 시기의 판소리는 민족문화 유산으로 그 가치가 재발견되어 고급예술이 되었다. 공연장소는 극장이었으나, 완창발표회라는 양식이 도입되어 판소리 단독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형식이 유행하였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설립된 기관에서도 판소리와 창극을 공연하였다. 이 시기 청중은 각성된 지식인과 학생이 주류를 이루었고, 원형 유지를 중요한 원칙으로 삼아 사진소리가 유행하게 되었다. 각급 교육기관에 판소리 전공을 두어 학생을 가르치게 된 것도 이 시기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 시기 판소리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은 무료 혹은 거의 무료로 공연된다는 점이다. 이제 판소리는 자생력을 완전히 잃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지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잃고, 더불어 판소리로부터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적극적 향유층도 갖지 못한 판소리가 언제까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에 힘입어 생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판소리 관련자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 KCI등재

          일반논문 : "전승"과 "창작"의 관점에서 본 판소리 정체성의 재규정과 제언

          최기숙 ( Key Sook Choe ) 판소리학회 2012 판소리연구 Vol.0 No.34

          판소리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서, 멀티 미디어를 통한 장르 변경과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면서 글로벌 차원의 하위문화(subculture), 또는 민속 음악·공연의 지위를 형성했다. 판소리의 세계화와 현대적 장르로의 확산은 전통 판소리와 균열 지점을 생성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재정의를 요청하고 있다. 사설 짜기의 측면에서 판소리의 본질을 재조명한다면 이는 ‘다성성’의 구현으로 정의할 수 있다. 판소리는 향유층, 언어생활, 교양문화, 예술 향유 등 다층적의 차원에서 다성성의 요소가 삼투되어 있는 복합적 문예 장르다. 따라서 전통 판소리를 계승하거나 장르 변형을 할 경우, 또는 새로운 창작 판소리를 제작할 경우, 판소리의 사설 짜기의 원리를 활용하여 판소리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판소리의 사설이 지닌 다성성은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구성된다.: 첫째, 시간성과 창작의 차원에서 판소리는 역사성과 당대성, 전통과 유행을 포용한다. 둘째, 공간성과 수용 층 차원에서 판소리는 지역성과 세계성, 토속성과 보편성을 통섭한다. 셋째, 사회성의 차원에서 판소리는 신분·젠더·세대·지식 위계를 둘러싼 갈등을 포착하고 카니발적 화해를 구현한다. 넷째, 정보성의 차원에서 판소리는 서민과 상층부의 일상생활을 백과사전처럼, 풍속정보지적 망라하여 보여준다. 다섯째, 감정과 감성 의 차원에서 판소리는 사람이 일생동안 겪는 감성을 만화경적으로 재현한다. 또한 감정의 수사는 감정 상태의 육체적 반응을 재현하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여섯째, 수사학의 차원에서 판소리는 다성성·혼종성·대화성의 요소를 유희적으로 재현하며, 이는 열거법을 활용한 치레 구성으로 구현된다. 이와 같은 이러한 판소리의 사설 구성 원리는 앞으로 판소리를 ‘창작’하고 ‘전승’하는 실제 작업에 활용할 수 있다. 판소리 창작자나 전승자는 새로운 스토리를 짜면서 세대·젠더·지역·민족·국적·인종 등의 차이를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창작 판소리를 통해 세계적인 유행가가 탄생될 수 있으며, 전통 판소리가 팬덤 문화를 형성한 것과 같은 새로운 문화 유형을 창안할 수 있는 역량이 판소리의 정체성 안에 잠재되어 있다. As a representative of Korean cultural heritage, p`ansori has expanded its scope by engaging in multi-media and attempting to change the genre. The modern adaptation and globalization of p`ansori endows it with a reputation as a “subculture” and an “ethnic performance” of Korean culture. The expansion of its genre, however, also has a negative side. It produces a growing chasm between traditional and contemporary p`ansori. This problem appeals for a definition of the authenticity of p`ansori. In discussing authentic features in the narrative of p`ansori, I find it useful to employ the concept of “polyphony,” a Bakhtinian term. Based on this term, I show that polyphonic features permeate the p`ansori text, and I suggest that the polyphonic features of p`ansori should constitute contemporary p`ansori in the ongoing process of adaptation and re-creation. Also, this paper analyzes the polyphonic aspects of p`ansori by categorizing them into six elements: time, space, reality, knowledge, emotion, and rhetoric. First, I contend that p`ansori engages in temporal expression by juxtaposing the past and the present and combining tradition and contemporary fashion. Second, p`ansori not only describes the landscape and geographical background but also expresses locality and universality by mingling native culture with worldwide perspective. Third, p`ansori deals with the description of social reality by manifesting the tensions in social stratification, but it also reveals a reconciliatory process by commingling and reversing hierarchical relationships, thus taking on the form of “carnival literature.” Fourth, p`ansori contains encyclopedic knowledge and memory on every level of society. Fifth, p`ansori deals with various kinds of feelings that every human being experiences in one`s lifetime. The emotional landscape, however, is represented by the description of physical reactions and conditions rather than through direct expression. Sixth, the rhetoric of p`ansori demonstrates polyphony, hybridity, and dialogue. For instance, by the narrative skill of ch`ire, a singer can enumerate various words without any syntactic or grammatical restraint. These aspects should be considered in the re-creation and transmission of p`ansori. I argue that the new p`ansori producers and singers must engage the differences of generation, gender, region, ethnicity, and culture, but the new compositions need to be based on the features that I have found in the text of p`ansori. Despite concerns and problems, contemporary p`ansori has great potential. Through the modernizing process, p`ansori is gaining recognition as a well-known genre and a popular song, and I wish to see the newly created p`ansori not only widely consumed but also creating a fan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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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에 대하여 -중국 곡예(曲藝)와 관련하여-

          지수용 ( Ji Su Yong ) 판소리학회 2012 판소리연구 Vol.0 No.34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에 관한 논의는 판소리의 질서나 미학적 원리의 구명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작업으로서 판소리 연구에서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다. 사실상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에 관한 문제는 판소리 연구의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란의 대상으로 되어왔다. 이러한 논란을 일으키게 된 데는 판소리 자체의 복합적인 성격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 였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판소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고는 우선 판소리 구성 요소에 대한 분석적 접근을 통하여 기존 연구에 존재하였던, 판소리 구성 요소의 어느 한 측면에서 판소리 장르의 단서를 찾아내던 문제점을 지적하고, 판소리 장르의 성격을 구명하기 위해서는 판소리를 문학적 요소, 음악적 요소, 그리고 연극적 요소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공연예술 양식으로 보고, 그것에 대한 통합적인 조명을 진행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판소리와 다른 공연예술 양식과의 차이점을 밝히기 위하여 판소리의 근본적 예술특징을 이루는 구두(口頭)로 된 배우의 ‘설창’ 연기에 초점을 맞추어 판소리 장르의 단서를 찾아내고자 하였다. 한편, 판소리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 위하여 ‘판소리는 한국만의 독특한 예술 장르’라는 기존 관념을 극복하고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의 양식 자체는 다른 민족, 다른 지역에도 보이는 보편적인 양식이라는 전제 하에 중국 ‘곡예’와의 비교 검토를 시도하였다. 중국 ‘곡예’와의 공시적 및 통시적 차원에서의 비교 검토는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 구명에 유익한 방법론을 제시해 주었는 바, 양자의 비교검토를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판소리는 한국의 오랜 설창예술 전통 속에서 싹트고 성장해 오다가 18세기에 비로소 꽃을 피운 한국적 특색이 짙은 설창예술임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본고는 지금까지의 판소리 연구에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하고, 앞으로의 판소리 연구에서는 어디까지나 설창예술의 미학적 원리에 좇아 판소리 구성 요소에 대한 분리적 연구와 통합적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판소리로 하여금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판소리와 기타 나라의 유사한 예술양식과의 비교 검토도 판소리의 미학적 특징을 구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Ascertaining the genre features of Pansori is directly related to the research of structure and aesthetic principle of Pansori. Therefore, ascertaining the genre features bears the brunt of the research of Pansori. Actually, arguments about the genre features have never ceased since Pansori became the object for study. An important reason of these arguments is compound factors of Pansori and we hold the opinion that the root cause is the deviation in the view of investigating this artistic form. This paper points out some problems existing in discussion of the genre features that investigating the genre features of Pansori from structure factor of one Pansori through analysing several structure factors of Pansori. We emphasize that Pansori should be known as a performing art including literature, music, drama and we should investigate its genre features as a whole. Then this paper focuses on the most fundamental artistic characteristic that actors giving verbal performances-“Shuochang”(說唱, the Style of song-narrative) and tries to find the pointcut of ascertaining the genre features of Pansori for clearing the difference between Pansori and other performing arts. Meanwhile, this paper breaks the inherent concept that Pansori only belongs to Korea and considers Pansori as a widespread art around the world for expanding the vision of investigating Pansori. On this premise, we make a comparison between Pansori and chinese quyi from different aspects and find a methodology of ascertaining the nature of genre of Pansori. We conclude that Pansori is a “Shuochang” art fulling of korean characteristics that matured in the 18th century and inherit the traditional Korean “Shuochang” art. Finally, this paper points out some problems in formerly research of Pansori. We emphasize that the research of Pansori should be followed to aesthetics rules no matter individually or integrally to revert its origin. The comparative research of Pansori and other national “Shuochang” art will contribute to the discussion of specific aesthetic features of Pan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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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송만갑과 근대 판소리

          배연형 ( Yeon Hyung Bae ) 판소리학회 2012 판소리연구 Vol.0 No.34

          본고는 송만갑의 판소리 유성기음반을 재구성하여 송만갑 제 춘향가의 내용과 특징을 고찰한 것이다. 송만갑은 동편제 판소리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명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판소리는 유성기음반에 도막소리만 남아있어 전체적인 면모를 알기 어려웠다. 본고 에서는 송만갑과 그의 아들 송기덕의 유성기음반을 통해 송만갑 제 춘향가의 면모를 파악하고, 현행 동편제 판소리와의 관련성을 고찰하였다. 송만갑의 판소리는 중머리 장단 중심의 판소리이다. 1913년에 녹음된 송만갑의 판소리 음반의 진양 장단 역시 모두 중머리 속도로 부르는 빠른 진양 장단으로 짜여있다. 이는 판소리가 타령(자진머리) 장단에서 중머리 장단 중심으로 변화하는 동편제 판소리의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송만 갑의 소리는 고제/중고제→동편제→서편제(현대 판소리)로의 이행 과정에서 판소리의 양식이 완성되는 동편제 판소리, 즉 중머리 중심의 소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준다. 또한 송만갑의 소리 중 ‘사랑가’, ‘이별가’, ‘옥중가’등을 통해 지금은 전승이 끊어지거나 변화되기 이전의 고제 판소리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송만갑의 춘향가는 현행 박봉술의 소리와 사설이나 음악적 구성에서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나, 창법이나 장단 운용을 보면 직접적인 전승으로 보기는 어렵다. This paper examines Song Man-gap`s varieties of Chunhyang song based on his phonograph records of Pansori. Song Man-gap is a famous singer known to have best performed Dongpyeonje narrative song. Nonetheless, his narrative songs remained only a form of Domaksori song in phonograph records, making it difficult to identify the whole of them. This study identifies Song Man-gap`s varieties of Chunhyang Song based on his and his son`s phonograph records and examines their relevancy to modern Dongpyeonje narrative songs. Song Man-gap`s narrative songs focus on Jungmeori beats. Song Man-gap`s narrative records produced in 1913 also consist of fast Jinyang beats with fast Jungmeori speed. This suggests that narrative songs were changing from the Taryeong (Jajinmeori) beat to the Jungmeori beat, which change shows the old style of Dongpyeonje narrative song. Song Man-gap`s tunes undergo the process of Goje/Junggoje→Dongpyeonje→Seopyeonje (modern narrative song), best showing the performance of Dongpyeonje narrative song (where the narrative song style was perfected), namely, Jungmeori tune. Also, of Song Man-gap`s tunes, Sarangga (love song), Ibyeolga (parting song) and Okjungga (in-prision song) give a look at old narrative songs which have now discontinued their transfer. Song Man-gap`s Chunhyang Song are very similar to Bak Bong-sul`s tunes, Saseol and musical composition, but a direct transfer of such skills does not appear to have been conducted, given the vocalization method and operation of b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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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광대’와 ‘판소리’에 대한 몇 가지 논의들

          손태도 판소리학회 2013 판소리연구 Vol.0 No.36

          I guess Kim Dong-uk, Lee Bo-hyeong, and me importantly discussed ‘Gwangdae and Pansori’ in the history of Pansori. As extension of my studies, the issues about ‘Gwangdae and Pansori’ are as follows. 1. The Reason that the Pansori Singer was Called ‘Gwangdae’ : Originally ‘Gwangdae (광대, 廣大)’ meant ‘big mask’. Only the lowest people wore that sort of the mask. And the people that wore the mask themselves were called ‘Gwangdae’ too. The reason that Pansori singer was called ‘Gwangdae’ was that they were the lowest statue people like the ones that wore the mask. 1. Hwageuk (화극, 話劇), the Previous Performance of Pansori, and the People Who Charge It : Hwageuk looks like a farce performed by one jester. It was performed by simple mimics and jokes. Originally it was made for king in palace in Confucian East Asia for the purpose of having him know better about the things outside of palace. And the office musician was institutionalized to do that performance. Hwageuk was developed as Jaedam-sori in later Joseon dynasty. Jaedam-sori was developed as Pansori. Therefore Pansori was on the line of Hwageuk and Pansori singer was basically office musician too. 1. Narrative Shaman’s Songs Sung by Hwarang-i (화랑이) : Pansori has the aspect of narrative song. In this case, we usually talk about the female shaman’s narrative song. The Hwarang-i (the man of hereditary shaman family) has sung narrative shaman songs like <Gunung-nojeonggi (군웅노정기)> and <Sonnim-nojeongi (손님노정기)> in village shaman ritual in Gyeonggi-do. This Hwarang-i could be a Pansori singer. So the Hwarang-i’s narrative shaman song was closer to Pansori than the female shaman’s one. We should have concern on this Hwarang-i’s one today. 1. Yang Ju-ik, the Author of <Chunmongyeon> the Original Text of <Chunhyang-ga> : Kim Dong-uk denied the opinion that Yang-Jinsa (양진사) wrote <Chunmongyeon> the original text of <Chunhyang-ga>. That opinion had been widely handed down in Namweon area. He said there was Ryu Jin-han’s <Manhwabon Chunhyang-ga> already at 1754 when Yang Ju-ik passed Gwageo (과거, 科擧. the government exam) at 1754. Yang Ju-ik’s annual report shows that <Chunmongyeon> was written in 1756 too. But Yang Ju-ik passed Gwageo first at 1753 and became Jinsa (진사, 進士), after he passed the last Gwageo as a chief at 1754. So he wrote <Chunmongyeon> and got Gwangdae sing that work as Pansori in 1753. Meanwhile, Ryu Jin-han visited Jeonra-do area in 1753 and enjoyed the jester’s <Chunhyang-ga> in that area. After that excursion, he wrote the long poem <Manhwabon Chunhyang-ga>. In these aspects, the widely spreaded opinion that Yang Ju-ik was the original author <Chunhyang-ga> in Namweon can be considered as the fact. 1. Seseup-mu (세습무, 世襲巫) Family; Lee Yong-u’s Case : Hwarang-i group, the men of the Seseup-mu (hereditary shaman) family in the southern part of Han River, had played a key role in the establishment and handing down Pansori. This group was Gwangdae group because this group members became the men of the Seseup-mu family, musicians at offices and Gwangdae (the official and hereditary entertainer in traditional Korea) at the performance place. However, can we confirm the existence of Seseup-mu family in Joseon Dynasty through the object file like census registers? Im Hak-seong showed six generations Seseup-mu family, Park Jin-myeong, five generations one, Choi Un, Jo Song-hak, Kim Eo-seon, and so on by the census registers of Danseong Prefecture in Gyeongsang-do province. Lee Yong-u (1889~1987) family, the representative Seseup-mu family in Gyeonggi-do shows eight generations Seseup-mu family by the documents that came down to this family and the genealogy book. We can prove the existence of the Seseup-mu family in traditional Korea. Pansori was one of the Gwangdae’s songs, so we also should know the fact of the Gwangdae group and Gwangdae’s t... 그동안 판소리사에 대한 연구들 중 ‘광대와 판소리’에 한정시켜 논의한 것들은 김동욱, 이보형, 필자의 것들이 아니었나 한다. 김동욱은 경기이북의 광대와 경기이남의 광대가 다르다고 하고, 판소리에 있어 중요 집단인 경기이남의 광대들이 판소리 광대 외에도 무부(巫夫), 관아의 악공, 국가의 산대희에 동원되는 재인(才人) 등의 역할도 한 것을 논의했다. 이보형은 판소리는 하나의 신분 집단으로 경기이남의 광대집단인 화랑이집단이 부른 것이기에, 판소리는 이들이 부르는 다른 광대소리들과 관계해서 논의해야 된다고 했다. 필자는 광대집단으로 기존에 알려진 경기이남의 세습무 집안의 남자들인 화랑이집단 외에도 경기이북의 재인촌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새로이 설정하고, 이들의 공통점은 악공집단인 것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판소리는 이들 광대집단 사람들이 판소리 이전에 가졌던 화극(話劇), 재담소리의 맥락에서 성립했다고 했다. 여기에서는 그동안 필자가 하여왔던 연구들의 연장선상에서 오늘날 주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광대’ 혹은 ‘판소리’와 관련되는 몇 가지 사실들을 제시해 본다. 1. ‘광대(廣大)’는 원래 ‘큰 가면(假面)’ 뜻하던 말이었고, 고려·조선시대는 이러한 가면들을 신분이 낮은 천민(賤民)들이나 썼다. 그래서 그런 가면들이나 쓰는 천민 부류의 사람들을 ‘광대’라 하기에도 이르게 된다. 판소리 창자를 전통사회에서 흔히 ‘광대’라고 한 것은 판소리 창자들도 원래는 이러한 가면들이나 썼던 천민들이었기 때문이다. 1. 동아시아 유교권의 다른 나라들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적어도 고려시대부터는 대궐 안에서만 살아 대궐 밖의 일들을 잘 모르는 임금을 위해 한 명의 연희자가 중심이 되어 간단한 흉내내기와 재담을 동원하여 하는 1인 소극(笑劇) 형태의 화극(話劇) 공연의 전통이 있었으며, 그 화극의 담당자는 악공집단으로 제도화되어 있었다. 판소리는 적어도 고려시대 이래의 이러한 화극의 연장선상에서 성립했다. 곧 재담극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화극에 조선 후기에는 소리까지 곁들여진 이른바 재담소리가 성행했고, 그 재담소리가 판소리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판소리 광대도 원래는 화극을 담당한 악공집단이었던 셈이다. 1. 판소리는 재담소리들 중 서사시적 재담소리의 연장에서 성립한 일종의 광대 서사시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광대들의 서사시적 노래의 원류로 흔히 무당들의 서사무가를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경기도당굿에는 오늘날에도 무부(巫夫)인 화랑이가 ‘군웅거리’와 ‘손님거리’에서 <군웅노정기>, <손님노정기> 같은 일종의 서사무가를 부른다. 이러한 화랑이들이 부르는 서사무가들이 무당의 서사무가보다 판소리에 더 가깝다 볼 수 있다. 이들 굿판의 화랑이가 다른 자리에서는 판소리 광대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화랑이가 부르는 서사무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1. 김동욱은 남원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던 <춘향가>의 원작으로서의 양주익의 <춘몽연>설을 부정했다. 그가 그 사실을 부정하게 된 것은 양주익은 1954년에 과거 급제를 하고 그의 연보(年譜)에도 1756년에 <춘몽연>을 지은 것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판소리사에서는 1754년에 이미 류진한의 <만화본 춘향가>가 나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나 ‘양진사 소작설’이라고 해서 양주익은 1753년 과거 때 진사에 입격했고, 1754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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