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인기검색어 순위 펼치기

    RISS 인기검색어

      검색결과 좁혀 보기

      • 좁혀본 항목

      • 좁혀본 항목 보기순서

        • 원문유무
        • 음성지원유무
          • 원문제공처
          • 등재정보
          • 학술지명
          • 주제분류
          • 발행연도
          • 작성언어
          • 저자

        오늘 본 자료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더보기
        • 무료
        • 기관 내 무료
        • 유료
        • KCI등재

          1970년대 한국문학전집의 발간과 소설의 정전화과정 : 어문각 『신한국문학전집』을 중심으로

          이종호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2 한국문학연구 Vol.0 No.43

          This paper shows the canon formation of Korea Literature in 1970s by analyzing the distinctive composition of The New Complete works of Korean Literature. The New complete works of Korean Literature was circulated by a big publishing company, A-Mun-Gag to mark the 60th anniversary for the emergence of New Literature. This literary anthology is differentiated from other Korean Literary anthologies in South Korean book market, regarding its planning and sizable volume. Claiming to stand for pure literature, which had been worked as an absolute value since the division of Korea into north and south, editors of anthology tried to embody the identity of South Korean literary circle. However, institutionalization of pure literature, especially led by Modern Literature (Hyundae Munhak), was incompletely strengthened by illogical process, which is worked through selection/exclusion of writers and works. Actually historical novel genre, which had been dismissed once because of its popularity in the field of Choseon literature of 1930s, was included in the planning of anthology. Such process suggests the canon formation of South Korean literary field in 1960~70s was based on two contradictory projects: exploring the origin of Pure literature and finding narrative style of nationalism. This means that the narrative plausibility of The New complete works of Korean Literature could be reached only through logical jump. Also, this implies that cracks in this collected works were sutured by ideological nationalism. In other words, Korean literature"s canon formation was worked through the combination among the selective oughtness of Pure Literature, the exclusive illogic dividing popular or yellow-covered literature, and conservative history of south Korean literature in 1960s. 본 연구는 신문학 60주년을 기리며 1970년대 남한 출판시장에 등장한 어문각 『신한국문학전집』의 구성적 특수성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문학선·전집의 발간을 통해 촉발되는 한국문학의 정전화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문각 『신한국문학전집』은 기획 및 규모에 있어, 출판시장에 등장한 여타 선·전집들과 확연히 구별되었다. 전집의 편집주체들은 남북 분단 이래로 남한 문단 내에서 일종의 거대서사처럼 기능하며 절대적 가치로 부상하였던 ‘순수문학’이라는 당위적 명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남한문단의 문학적 정체성을 구현해 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대문학』에 의해 주도되는 순수문학의 제도화 과정이란, 순문학 작가와 작품의 선택이면에 작동하는 비논리적 프로세스를 통해 강화되는 것이었으며, 이는 『신한국문학전집』이 보여주는 정전화 기획이 불완전한 것임을 보여준다. 특히 1930년대 조선문학 장내에서 문학적인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폄하되었던 역사소설 장르가 전집의 기획에 포함되는 일련의 과정은 1960·70년대 남한문학 장내부에서 전개된 한국문학의 정전화 과정이 순수문학에 대한 기원의 탐사와 민족주의적 서사양식의 발견이라는 2중의 모순된 기획에 기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는 순수문학=민족문학=『신한국문학전집』이라는 서사적 그럴듯함이 논리적 비약을 통해서만 가능한 명제이며, 전집내부의 균열들이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봉합된 상태임을 드러낸다. 순문학이라는 당위적 선택과 대중·통속문학을 가르는 비논리적 배제, 그리고 논리적 비약에 기반을 둔 1960년대 남한문단의 보수주의적 문학사의 결합을 통해 한국문학의 정전화 과정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 KCI등재

          문학이 자본을 만났을 때, 한국 문인들은? : 1930년대 문예면 증면과 문필가협회 결성을 중심으로

          한만수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2 한국문학연구 Vol.0 No.43

          근대 들어서면서 인쇄문학이 정착됨에 따라서 작가는 자본이 장악한 문자매체를 떠나서는 독자와 소통할 수단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1924년 민간신문에 문예면이 설치되고 동인지문단 시기가 끝나면서 발표지면은 신문자본이 장악하게 되었으며, 문학은 상품적 성격이 강력해졌다. 자본은 원고를 일종의 원료로 간주하여 선별적으로 매입하고, 이를 다시 상품의 형태로 유통시켰다. 결국 신문자본은 어떤 필자에게 어떤 글을 쓰게 하고 얼마에 이를 매입해서 어떤 방식으로 가공(편집)하여 판매할 것인가의 문제, 즉 문학 출판유통의 모든 과정에서 거의 지배적인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는 자발적인 것이라기보다 청탁에의 한 ‘주문생산’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신문자본의 힘이 이렇게 비대해진 것은, 1930년대 일제의 만주침공과 중일전쟁을 두 핵심적 계기로 삼는 조선 및 일본경제의 성장에 힘입은 것이었다. 전쟁기를 맞아 검열 역시 강화되었는데, 신문자본은 늘어난 광고를 소화하기 위해서 검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지면 즉 문예면을 집중적으로 강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문인들은 이러한 문학장(場)의 물질적 토대가 어떤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대체로 부족했다. 이 논문은 1930년대 문예면증면에 대한 문인들의 반응, 그리고 문필가 협회 창립과 관련된 논의를 살핌으로써 이를 확인했다. 문예면증면에 대해서는 발표기회 증대라며 환영하거나, 수준 저하가 우려된다며 승인권의 약화를 걱정하는 반응이 주조를 이뤘다. 문인단체의 창립과정에서는 정당한 원고료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견해가 압도적이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비교적 풍족했던 일본문단의 물질적 토대에 대한 부러움을 강력하게 나타냈다. 그러면서 그 물질적 토대가 전쟁 고원 경기에 힘입은 것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식을 보여 주지 못했다. 한편 문필가협회는 검열 문제는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이는 1920년대 일본에서 문학단체가 출범할 때 적극적으로 검열 반대운동을 펼쳤음과 대조적이다. 이렇듯 문학장의 정치경제적 토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판매부수나 원고료 등 일본문학의 현상을 ‘선진의 모범항’으로 상정함으로써 한국문인들의 인식에는 일정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문학과 사회의 관련성을 그 정신적 차원에서만 인식하면서 문학텍스트의 물질적 존재가 맺는 관련성에 눈 돌리지 않는다거나, 또는 아예 문학을 고립적이고 자족적인 것으로만 인식하는 편향은 이와 관련될 것이다. 오늘날 원고료 없는 문학을 상상하기 어렵다. 원고료의 수준과 그 잡지의 문학적 권위를 비례해서 생각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며, 베스트셀러에의 욕망은 내남없이 지니고 있다. 오늘의 한국문인들은 1930년대적 한계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Entering the modern times, with the establishment of literature, writers lost independent methods of communication to reach out to readers, with exception to written media controlled by capital. In the case of Korea, the art & literature pages were first introduced in the private newspapers in 1924 and caused printing capital to dominate the press release pages and as a result, literature came to hold a stronger commoditylike characteristic. Capital regarded manuscripts as a form of raw materials, purchased them selectively and distributed them in the form of commodity. In the end, printing capital gained dominant decision rights as to demand what topic of writing from which writers, to buy the manuscripts at what price, how to edit and manufacture the writing and therefore how to control the entire publishing distribution process. Writing literature moved from voluntary writing to a process of ‘ordered production’ upon request. Entering the modern times, with the establishment of literature, writers lost independent methods of communication to reach out to readers, with exception to written media controlled by capital. In the case of Korea, the art & literature pages were first introduced in the private newspapers in 1924 and caused printing capital to dominate the press release pages and as a result, literature came to hold a stronger commoditylike characteristic. Capital regarded manuscripts as a form of raw materials, purchased them selectively and distributed them in the form of commodity. In the end, printing capital gained dominant decision rights as to demand what topic of writing from which writers, to buy the manuscripts at what price, how to edit and manufacture the writing and therefore how to control the entire publishing distribution process. Writing literature moved from voluntary writing to a process of ‘ordered production’ upon request. of pages in order to absorb the surging demand for advertisements arising from the booming economy and intensely reinforced the literature and art section, which was relatively free of censorship. Despite the increase in art & literature pages, Joseon writers lacked a general interest as to how the foundations of literature had come about and from what type of political economic situation had caused it. This study confirms this through examination of the writers' reactions regarding the increase in art & literature pages in the 1930s and the foundation and related discussions on the Writer's association at that time. Korean writers in this period only expressed concentrated interest in the manuscript fee and the press release page. In addition, they showed great envy towards the Japanese literary-field which had much more abundant foundations during that time. Like this, the Korean writers did not recognize literature in context with relation to outside the literary world but rather regarded it as a substitute, and therefore it inevitably caused a limitation within their cognition. Can we be free of such limitations today?

        • KCI등재

          한국현대문학과 김환기 예술의 상호 관련성 연구

          김진희 ( Kim Jin-hee )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20 한국문학연구 Vol.0 No.62

          한국 예술사에서 김환기는 1930년대 문인과 화가와의 예술적 교류를 해방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로 계승 확장한 가장 대표적인 예술인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김환기와 문인들의 교류는 그 특성이나 수준에 있어서 현대문학 발전의 동력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김환기는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문장』, 『문예』, 『현대문학』 등 현대문학 발전의 주춧돌이 되었던 문예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화가이며, 서정주나 김광섭은 물론 1930년대 이후 현대시 작품과 시인들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예술가이기도 하다. 본 연구는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그동안 조명되지 못했던 김환기와 문인들의 교류 상황에 주목하고 그 사상적, 문학적 근거와 문학사적 의의를 탐구했다. 『문장』과 김환기의 관련성 연구에서는 전통과 고전을 재해석 하려는 『문장』의 예술적 이념과 방향이 김환기의 예술과 맺는 관련성을 논의했다. 그리고 조연현과 김환기의 교류에 주목함으로써 『문예』와 『현대문학』이 김환기를 매개로 『문장』과의 문학사적 연속성을 실제로 계승할 수 있었음을 밝혔다. 다음으로 서정주와 김환기의 교류에 관한 논의로, 그간 다루어지지 않았던, 다수의 시화 분석을 통해 시와 그림의 상호 관련성을 볼 수 있었고, 두 예술가에게 조선 백자 항아리의 이념이 영원의 시학으로 정착되는 과정 역시 밝혔다. 김환기와 문인 및 문단 간의 교류 연구를 통해 현대문학에 영향을 미친 『문장』의 문학사적 위상을 다시 재고할 수 있었고, 서정주의 시학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관점, 그리고 현대문학 발전을 이해하는 방법론으로 예술 간의 교류의 중요성 역시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This study, from a comparative literary point of view, focuses on the exchange situation between Kim Hwan-ki and the literary people who have not been illuminated, and explored the ideological, literary grounds, and literary history. In the study of the relationship between Moonjang and Kim Hwan-ki, the artistic ideology and direction of Moonjang, which attempts to reinterpret traditions and classics, was discussed. In addition, by paying attention to the exchange between Jo Yeon-hyun and Kim Hwan-ki, it was revealed that Literary Art and Modern Literature were able to actually succeed in literary historical continuity with Moonjang through the mediation of Kim Hwan-ki. Next, a discussion on the exchange of Seo Jeong-joo and Kim Hwan-ki. Through the analysis of a number of poems that have not been dealt with, we can see the interrelationship between poetry and painting. Through this, it was also possible to understand the process of transforming the ideology of eternity and aesthetics that appeared in the poems of Seo Jeong-joo. Through the exchange studies between Kim Hwan-ki and the literary people and the literary, it was possible to reconsider the status of literary history of Moonjang, and to recognize the importance of exchange between arts in another perspective of understanding the poetry o fSeo Jeong-joo and the development of modern literature.

        • KCI등재

          한국 근대 희곡과 제도 1 : 춘원 이광수의 희곡 인식을 중심으로

          박노현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9 한국문학연구 Vol.0 No.59

          It's only been around one hundred years since dramas were established as a genre of literature like the present. This is closely associated with the formation of modern literary concept. Literature was adopted as a translated language corresponding to literature of Western language around the 1910s and in the process of accepting the relevant literary theories, dramas or plays were able to enter the chapter of literature. But dramas are often treated as a periphery in the place of discourse of reality surrounding literature, compared to poems or novels. This situation is discovered almost anytime throughout the field of Korean literature, including creation and critique, research and education, and publication and reading. Regarding this marginalization of dramas as a singularity created while Korean modern literary system was built, this paper aims to examine the progress. Choonwon Lee Gwang-soo is the starting point of the tracking. At last, the declaration of dramas as a kind of literature was triggered by ‘What is Literature? (「文學이란 何오」)’ announced by Choonwon in Maeil Shinbo in 1916. Besides, he created two dramas; <Gyuhan (閨恨)> and <Soon-gyo-ja (The Martyrs)> as well as the conceptual declaration. In this context, Lee Gwang-soo exerted considerable influence on the formation of genre identity of initial dramas in modern literature. But his writings regarding dramas while going through the Japanese colonial era overshadowed the early influence. He even behaved as if he left dramas unattended on the fringes of literature, giving up his pioneering declaration for dramas by himself. Given his power in the literary circles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this might be a substantial motivation for marginalization of dramas. As stated above, the ambiguous position of dramas in the field of Korean literature was based on Choonwon's superficial genre recognition. 한국에서 드라마가 현재와 같은 문학 장르로 설정된 것은 불과 백 년 정도이다. 이는 근대적 문학 개념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1910년대 전후 서양어 리터러처에 조응하는 번역어로 문학이 채택되고 그와 관련한 문학론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극내지는 희곡이 문학 장 속으로 인입될 수 있었다. 하지만 문학을 에워싼 현실의 담론장에서 희곡은 종종 시나 소설에 비해 주변부적 취급을 받는다. 이러한 정황은 창작과 비평, 연구와 교육, 출판과 독서를 망라한 한국 문학 장 곳곳에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된다. 이 글의 목적은 희곡의 이와 같은 주변화를 한국의 근대적 문학 제도가 구축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특이점으로 보고 그 추이를 살피려는 데에 있다. 그리고 그 추적의 시작점을 춘원 이광수로 삼는다. 드라마는 춘원이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文學이란 何오」를 통해 비로소 문학임이 선언되었다. 게다가 그는 개념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규한>과 <순교자> 등 두 편의 희곡을 창작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대 문학 초기 희곡의 장르 정체성 형성에 끼친 이광수의 영향력은 작지 않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통관하는 동안 그가 희곡과 관련해 남긴 글들은 초기의 영향력을 무색케 한다. 심지어 그는 희곡에 대한 자신의 선구적 선언을 스스로 포기한 채 희곡을 문학의 주변부에 방치하는 것 같은 태도마저 취한다. 일제강점기 그가 차지하고 있던 문단권력을 고려했을 때 이는 희곡의 주변화와 적지 않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 문학 장에서 희곡이 딛고 있는 어정쩡한 위치의 시원에는 춘원의 피상적 장르 인식이 작동하고 있었다.

        • KCI등재

          재미한국인 문학에 나타난 한국 여성상

          김춘식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1997 한국문학연구 Vol.0 No.19

          재미한국인 문학에 나타난 한국여성상'이라는 주제에 대한 논의는 먼저 비교의 기준과 범주에 관한 문제를 설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재미한국인 문학이 다른 재외한국인 문학 또는 한국문학과 다른 변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변별성을 확인하는 척도 중의 하나가 '한국여성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 주제의 배후에 담겨진 의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재미한국인 문학에 나타난 한국여성상'의 특징에는 다른 재외한국인 문학 또는 한국문학과의 변별점만이 아닌 공통점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기정의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같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미세한 차이의 문제이다. 커다란 공통원리 내부에 존재하는 세부적 차이가 지닌 의미를 밝히는 작업은 바로 재외한국인 문학과 한국문학의 상호 연관성을 찾는 행위이다.

        • KCI등재

          문학지리학을 위한 출발선상의 토론

          조동일 ( Cho Dong-il )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04 한국문학연구 Vol.0 No.27

          문학지리학은 문학사학과 대조가 되는 개념이다. 문학을 문학사학에서는 시간, 문학지리학에서는 공간을 주축으로 이해한다. 지금까지는 문학사학만 일방적으로 중요시했다. 이제 문학지리학도 진지하게 연구해야 한다. 문학지리학의 취급대상은 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지방문학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문학이다. 지방문학은 고을문학, 산천문학, 사원누정문학 등으로, 여행문학은 국내여행문학, 한국인 외국여행문학, 외국인 한국여행문학 등으로 나누어 진다. 그 가운데 나는 지방문학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지방문학사 연구의 방향과 과제』라는 책에서 에서 다음 사항을 검토했다. 1. 왜 지방문학사인가? 2. 외국의 사례 검토 2.1. 시대 변화에 관한 논란 2.2. 인도 2.3. 중국 2.4. 미국 2.5. 영국 2.6. 프랑스 2.7. 독일 2.8. 일본 2.9. 비교론. 3. 국내의 사례 검토 3.1. 전반적 동향 3.2. 제주 3.3. 영남 3.4. 호남 3.5. 중부지방 3.6. 서울. 4. 새로운 시도 4.1. 제주도문학사의 연원: 탐라국 건국서사시를 찾아서 4.2. 영남문학사의 특성: 인물전설에 나타난 상하관계 역전 4.3. 호남문학사의 맥락: 남성시가의 여성화자 4.4. 지리산문학사의 영역: 조식의 시문에 나타난 지리산의 의미. 5. 지방문학사 어떻게 쓸 것인가? 그 가운데 제주도문학에 관한 서술의 개요를 구체적인 연구의 본보기로 여기서 들었다. Literary geography is an antithesis to literary history. Main perspectives to understand literature are different in two cases, space in the former and time in the latter. Until now we attached one-sided importance to literary history. Now it is the time to study literary geography sincerely. Literary geography is divided into two parts: regional literature and travel literature. Regional literature is composed of the literature about native land, the literature about natural scenary, and the literature about historical relic. Travel literature is produced from domestic travel, Korean's overseas travel, and foreigner's travel in Korea. I payed a special attention to the regional literature. In a book with the title The History of Regional Literature, Its Perspectives and Problems, I discussed following items: 1. Why the history of regional literature? 2. Examples of the other countries. 2.1. Discussions about the changes of the times. 2.2. India. 2.3. China. 2.4. United States of America. 2.5. United Kingdom. 2.6. France. 2.7. Germany. 2.8. Japan. 2.9. Comparison. 3. Korean situation. 3.1. General view. 3.2. Cheju. 3.3. Yeongnam. 3.4. Honam. 3.5. Central part. 3.5. Seoul. 4. New attempts. 4.1. The origin of the history of Cheju literature: In search of the founding epic of Tamra kingdom. 3.3. The characteristics of the history of Yeongnam literature: The upside down stories in the legend of historical persons. 3.4. The contexts of the history of Honam literature: The tradition of female narrators in the works of the male poets. 3.5. The area of the history of Chiri Mountain literature: The meaning of Chiri Mountain in Cho Sik’s works. 5. How to write the history of regional literature? The chapter on origin of the history of Cheju literature is summarized in this paper as an example of concrete study.

        • KCI등재

          문학이 자본을 만났을 때, 한국 문인들은? - 1930년대 문예면 증면과 문필가협회 결성을 중심으로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2 한국문학연구 Vol.0 No.43

          <P>&nbsp;&nbsp;근대 들어서면서 인쇄문학이 정착됨에 따라서 작가는 자본이 장악한 문자매체를 떠나서는 독자와 소통할 수단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1924년 민간신문에 문예면이 설치되고 동인지문단 시기가 끝나면서 발표지면은 신문자본이 장악하게 되었으며, 문학은 상품적 성격이 강력해졌다. 자본은 원고를 일종의 원료로 간주하여 선별적으로 매입하고, 이를 다시 상품의 형태로 유통시켰다. 결국 신문자본은 어떤 필자에게 어떤 글을 쓰게 하고 얼마에 이를 매입해서 어떤 방식으로 가공(편집)하여 판매할 것인가의 문제, 즉 문학 출판유통의 모든 과정에서 거의 지배적인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이제 글쓰기는 자발적인 것이라기보다 청탁에의 한 ‘주문생산’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P><P>&nbsp;&nbsp;식민지 조선에서 신문자본의 힘이 이렇게 비대해진 것은, 1930년대 일제의 만주침공과 중일전쟁을 두 핵심적 계기로 삼는 조선 및 일본경제의 성장에 힘입은 것이었다. 전쟁기를 맞아 검열 역시 강화되었는데, 신문자본은 늘어난 광고를 소화하기 위해서 검열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지면 즉 문예면을 집중적으로 강화했다.</P><P>&nbsp;&nbsp;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문인들은 이러한 문학장(場)의 물질적 토대가 어떤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대체로 부족했다. 이 논문은 1930년대 문예면증면에 대한 문인들의 반응, 그리고 문필가 협회 창립과 관련된 논의를 살핌으로써 이를 확인했다. 문예면증면에 대해서는 발표기회 증대라며 환영하거나, 수준 저하가 우려된다며 승인권의 약화를 걱정하는 반응이 주조를 이뤘다. 문인단체의 창립과정에서는 정당한 원고료를 받아야 마땅하다는 견해가 압도적이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비교적 풍족했던 일본문단의 물질적 토대에 대한 부러움을 강력하게 나타냈다. 그러면서 그 물질적 토대가 전쟁 고원 경기에 힘입은 것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별다른 인식을 보여 주지 못했다. 한편 문필가협회는 검열 문제는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이는 1920년대 일본에서 문학단체가 출범할 때 적극적으로 검열 반대운동을 펼쳤음과 대조적이다.</P><P>&nbsp;&nbsp;이렇듯 문학장의 정치경제적 토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판매부수나 원고료 등 일본문학의 현상을 ‘선진의 모범항’으로 상정함으로써 한국문인들의 인식에는 일정한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문학과 사회의 관련성을 그 정신적 차원에서만 인식하면서 문학텍스트의 물질적 존재가 맺는 관련성에 눈 돌리지 않는다거나, 또는 아예 문학을 고립적이고 자족적인 것으로만 인식하는 편향은 이와 관련될 것이다.</P><P>&nbsp;&nbsp;오늘날 원고료 없는 문학을 상상하기 어렵다. 원고료의 수준과 그 잡지의 문학적 권위를 비례해서 생각하는 경향도 없지 않으며, 베스트셀러에의 욕망은 내남없이 지니고 있다. 오늘의 한국문인들은 1930년대적 한계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P>

        • KCI등재

          无涯 梁柱東의 文學論 硏究

          張榮遇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1988 한국문학연구 Vol.0 No.11

          이상으로 필자는 전충주의로 지칭되는 무애의 민족문학론을 개괄적으로 살펴 보았다. 무애가 논쟁을 벌인 시기는 민족․ 계급문학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계급문학은 자체내의 문열과정을 겪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때 무애는 시의 적절하게 조화와 지양의 미학으로서 절충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의 절충론은 물론 당대 시대적 상황에서 야기된 일시적 필요의 산물이었으나, 지양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正 혹은 合을 이루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은 사태의 진전을 희망하는 발전적 태도로 이해해야 할 터이다. 더욱이 아직 일천한 한국 현대문예계에서 형식과 내용에 대한 개념을 정의한 것이라든지, 문학과 사회학의 엄정한 구분을 요구한 것 등은 무애의 공적이라 보아 대과 없을 것이다. 또한 그가 프로문예계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앞으로의 전개방향에 대해 암시와 시사를 던져준 것도 절충론이 가져다 준 조그만 성과라 할 것이다. 무애의 절충론은 민족문학에서 시작하여 그것으로 귀결된다. 그가 민족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인상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으며, 후에 국학연구에 몰입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무애의 비평문을 일독하면서 필자가 느낀 것은, 당시의 상황이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우리 문학계에서, 특히 「창비」계열과 「문지」계열의 소장 평론가를 중심으로, 주요 이슈로 쟁점화되고 있는 민중(민족)문학 논의는 그 기점을 1920 년대로 소급해야 마땅하며 당시의 문제점들을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논의 전개의 도약을 가져와야 하리라 생각한다. 즉 민중(민족)문학에의 관심은 문학에 종사하는 모든 이에게 일종의 계조와 같은 것이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면, 문학연구가들이 통시적 관점에서 이를 파악함으로써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 역시 현재의 민중(민족)문학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까닭에 이러한 견해는 단편적인 수준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필자의 연구과제로 유보하면서 좀더 체계적인 분석을 해 보일 것을 약속한다.

        • KCI등재

          ‘예술가의 죽음’과 ‘죽음’에 대한 문학적 기억의 방식 - 1920년대 예술적 초상의 탄생과 예술장의 규범 -

          김춘식 ( Kim Chun-sik )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07 한국문학연구 Vol.0 No.33

          예술가라는 특화된 존재의 탄생은 문학장이라는 자율화된 공간에서 활동하는 주체에 대한 구체적 모델을 생산하고 규범화하는 문제에 해당된다. 이 논문은 1920년대 문학장에서 예술가라는 특화된 존재가 탄생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자화상’, ‘초상’의 문제를 ‘죽음’이라는 관념의 인식에 비추어 접근하고 있는 연구이다. 1920년대는 죽음, 소외, 고독, 동경 등 추상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정서의 울림이 큰 새로운 관념이 중심을 차지한 시대였다. 이런 관념은 추상적인 만큼 그러한 관념을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주체와 감각화하는 주체의 능동적인 반응이 그 의미에 대한 궁극적인 결정권을 갖게 된다. 이 점에서 1920년대 시에 나타나는 ‘죽음’의 이미지는 전근대적인 공동체성 혹은 집단성이 탈각된 개체화된 죽음의 양상을 보여준다. 이런 개체화된 ‘죽음’은 주체로 하여금, 소멸에 대한 위기감, 불안, 단절감 등을 부여하며 동시에 ‘영원성’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불러 일으킨다. 군중으로부터 격리됨으로써 개체화된 단자의 소외와 죽음을 감지한 근대 예술가에게 죽음이란 삶에 대한 열정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좌절, 충동적인 자살을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원인이다. 자아의 낭만적인 확장 욕구를 ‘열정’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그 자아의 낭만적 확장의 전제가 되는 ‘개체성’, ‘군중과의 격리’로부터 오는 소외, 불안감, 외로움, 무기력을 느끼는 신청년의 양면적인 모습은 1920년대 시의 전형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요건이다. 특히, 식민지 지식인에게 개체의 독립은 거대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더불어 미미하고 무력한 식민지 지식인의 근원적 결핍을 깨닫게 하는 원인이다. 1920년대 시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는 이 점에서 식민지 청년 예술가의 ‘자아’가 놓인 한 극단적 상태를 보여주며, ‘죽음’을 미학화하는 자아의 형상화는 식민지 예술가의 ‘자화상’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규범, 미적 기억의 방식 등을 구성하는 전범이 된다. 예술의 존재 방식과 문학장의 자율성 원리가 ‘죽음’, ‘불안’, ‘소외’를 특화하면서 예술적 삶의 한 정점에 ‘죽음’을 위치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미학적인 실천’에 해당된다. 즉, 이장희와 같은 한 예술가의 죽음에 대한 의미부여는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려는 문학적 신념의 공유에 의해서 ‘예술적 순교’, ‘미의 완성’으로 종결된다. 이런 죽음에 대한 기억의 방식은 1920년대 문학장의 한 아비투스로 자리잡음으로써 시, 미, 예술에 대한 신념을 단단하게 구축할 뿐만 아니라, 삶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새로운 미적 형식으로 구성한다. 즉, 일상의 미학화 혹은 문학의 일상화는 ‘죽음’, ‘고독’, ‘소외’ 등을 ‘미적인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초상’ 즉 ‘예술적 삶’의 유형을 고안하고 창출하는 것이다. The birth of a object particularized as we call artist is something producing and normalizing actual model on a subject working in a autonomic literary sphere. This treatise studied literary 'Ja-wha-sang(自畵像, self-portrait)', 'Cho-sang(肖像, portrait)' connected with concepts of death, which has very important meaning on a process of artistes's births in the literary field, in 1920s. In 1920s, death, alienation, isolation, aspiration, etc which were abstract and sensible idea were centered. The death images of poetry in 1920s showed individualizing death to get rid of modern community. This individualized death invoke sense of crisis, feeling of isolation, anxiety on extinguish, at the same time to make endless aspiration to permanence. Independence of individual, in case of a colonial intelligence, make them realize basic famine and new awakening about huge world. The meanings of deaths in 1920s poetry showed a extreme status of colonial young artist's ego. At last, the method of memory about 'death' was a 'Habitus' on literary field in 1920s.

        • KCI등재

          냉전의 포크너, 냉전 너머의 포크너: 1950년대 한국에서의 수용 양상과 문학적 가능성

          권보드래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21 한국문학연구 Vol.- No.65

          This article is a survey about how William Faulkner influenced on Korean culture and literature in the 1950s, through which we can see the impact of the cultural-psychological war of the Cold War era. I used the major magazines such as Literature and Art (『文學藝術』), Thoughts (『思想界』), Literature of Freedom (『自由文學』) and Contemporary Literature (『現代文學』) as well as translations of Faulkner’s monographs. I tried to reconstitute a role of the U.S. State Department, USIS (United States Information Service), and civil foundations in tracing the course of Faulkner translations, which brought me to discover the forgotten translators and mediators. In fact, many regions in the Third World experienced the arrival of American literature and Faulkner’s novels in a similar way that Korea has experienced. The Cold War was intertwined with the postcolonial situation, and the task to represent the harsh reality of the semi-colonial difficulties was entangled with the opaque reality and censorship issues. William Faulkner’s novels could have a complex significance and influence on the Third World writers under this circumstances. 이 글은 포크너 번역을 중심으로 본 1950년대 지식․문화장에 대한 풍속도인 동시 한국전쟁기에 본격화된 냉전의 영향력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 보고서다. 이를 위해 『문학예술』, 『사상계』, 『자유문학』, 『현대문학』 등 주요 잡지들을 통해 포크너 수용의 양상을 조사하고, 단행본 출판시장과 영어영문학회 중심 아카데미를 함께 살핌으로써 자료의 토대를 마련했고, 미국의 국무부와 공보원, 민간재단이 포크너 수용에 개입한 경로를 살핌으로써 ‘냉전의 포크너’의 일단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 ‘남부의 항의’를 전달한 작가이자 혼돈의 모더니즘의 소설가로서, 포크너는 냉전의 자장에만 갇히는 존재는 아니었다. 그는 ‘전 지구적 남부’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제3세계 작가들을 자극했고, 그럼으로써 제3세계들이 ‘자유 세계’의 미학적 표준이 된 모더니즘을 냉전 속 후기 식민지적 조건 속에서 변용할 수 있게끔 영향을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포크너는 미국 발 문화-심리전의 구성물인 동시 ‘냉전 너머의’ 존재이기도 했다.

        맨 위로 스크롤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