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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신약성서와 신학함, 그리고 신약학

        이승현(Lee, SeungHyun Simon) 한국신약학회 2019 신약논단 Vol.26 No.3

        이 논문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쇠퇴와 AI시대에 직면한 21세기 현대 신약학의 정체성과 그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자 한다. 신약학의 가장 중요한 분석 대상이 신약성서이므로, 신약성서의 본질에 대한 바른 이해는 현대 신약학이 가져야 할 방향성을 설정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긴급한 문제가 될 것이다. 신약성서는 크게 구약을 배경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설정한 유대 공동체와의 대화 속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탄생시킨 예수전통과 이어지는 사도들의 목회적 신학적 적용을 담은 사도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음서는 유대 공동체들과의 긴밀한, 그러나 긴장에 찬 대화를 통해서 형성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신학함의 현재적 표현들을, 그리고 서신서들은 이방인들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예수의 복음을 적용할지에 대한 제자들의 다양한 신학적 문제들과 해결책들을 담고 있다. 이처럼 그 시작부터 제자들의 치열한 신학함의 과정 속에서 탄생한 신약성서는 이어지는 정경화의 과정에서 초대교회의 삶과 신앙을 규정할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인식되었고, 계속되는 교회사에서 교회들의 예배와 신앙을 정의할 예수와 사도들의 가르침을 담은 궁극적인 원천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현대 신약학은, 비록 비평적인 방법론으로 성서에 대한 비판적인 읽기를 추구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신약성서를 통해서 자신들의 신앙 정체성을 규정하는 과거와 현재의 해석 공동체들과의 긴밀한 대화를 시도 유지해야 한다. 또한 신약학은 역사비평을 비롯한 과학적인 방법론들을 학자들의 신약성서 해석에 대한 주요 도구로 사용하데, 성도들의 종교적 체험과 신약성서에서 보존된 신앙적 고백의 문제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신약학은 신약학의 분석 대상의 범위와 영역을 신약성서의 일부 책들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신약성서의 직 · 간접적인 배경을 담고 있는 신ˑ구약 외경들과 초대교회 교부들의 사상, 그리고 영지주의 문서들에까지 확장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신약성서의 배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의 신약성서 이해를 한층 더 깊게 해 줄 것이고, 신약학자들의 학문적 대화들을 더욱더 풍부하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In this article, we will explore the nature of the modern New Testament (NT) study and its direction. Since the New Testament is the primary object of its analysis, our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NT will help clarify the direction of its study. NT is consisted of the Jesus tradition, which came into existence in the dialogue between Jesus and his disciples and the Jewish communities, and the apostolic traditions, which contain the apostles’ application of Jesus’ Gospel to the new Gentile situations. In this way, NT contains the current theological expressions of Jesus and his disciples regarding who Jesus is, who his disciples are, and how they should live. In the following generations, NT became acknowledged as the most authoritative books for the churches’ definition of the canon; and in the following church history, NT was considered the ultimate source for accessing Jesus’ teaching about their identity and ethical behavior. This observation recommends that NT study should not avoid conversing with the ancient and modern interpretative communities of NT. While NT study will continue to resort to scientific methods like historical criticism in terms of its methodology, it should still pay attention to religious experiences and faith confessions found both in NT and in the lives of the believers. Moreover, NT study should not limit the scope of its analysis only to some major books of NT. But it should extend its analytic scope to the books and cultures which may reflect the background of NT, including Pseudepigrapha, NT apocrypha, early Church Fathers, and the Gnostic writings. For our deep understanding of the NT background will help us understand NT better, and moreover, will make our scholarly discussion more fruitful and productive.

      • KCI등재

        바울의 복음에 대한 로마서 1:18의 γάρ와 하박국 2:4의 해석학적 기능, 그리고 새 관점

        이승현(Lee, Simon SeungHyun) 한국신약학회 2020 신약논단 Vol.27 No.3

        한글 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은 채 공백으로 남아있는 로마서 1:18의 γάρ는 단순히 과도적인 요소로 간주되어 공백 속에 묻히기에는 그 해석학적 기능이 너무 크다. 헬라어 접속사 γάρ는 하나님의 진노로 표현되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소개를 통하여 로마서 1:18-3:20을 바울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는 1:16-17에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나님의 신실함의 표현으로서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의(3:21-4:25)의 개념과 함께 왜 바울의 복음이 구원을 주는 능력인 하나님의 의의 계시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왜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유를 제공한다. 사실 로마서 1:18의 γάρ에 담긴 이와 같은 해석학적 중요성은 1:17에 인용된 하박국 2:4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자세히 설명해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하박국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그의 신실함은 그들을 향한 미래의 구원을 제공한 데서 발견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신실함으로 표현되기에 앞서, 그들의 죄에 대한 의로운 심판으로 먼저 표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하박국의 의인은 하나님의 심판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을 굳게 신뢰하고 믿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로마서 1:16-4:25에서 바울은 이러한 하박국의 예언의 빛 아래서 자신의 복음이 품은 하나님의 의의 계시를 심판과 구원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신실함의 표현으로서 가져오는 종말론적 구원을 경험할 바른 방식으로 성도들의 믿음을 요구한다. 하박국과 유사하게, 바울에게 이 믿음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죽은 것과 같은 몸에도 불구하고,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한 아브라함의 인내하는 믿음에서 가장 잘 보여진다. 물론 바울은 성도들과 아브라함의 공통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그 약속의 자손’인 예수를 제시한다. 로마서 1-4장에 대한 이러한 관찰을 중심으로 본 논문은 소위 새 관점 학자들이 제시한 다양한 해석학적 도전들과의 비판적이고도 생산적인 대화를 시도한다. 이 시도는 옛 관점과 새 관점이라는 단순하고 경직된 이분법적 갈등의 도식 아래서 동일한 결론들만을 반복해서 재생산하는 ‘해석학적 수용소’(hermeneutical ghetto) 현상을 넘어서, 보다 더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바울을 해석하도록 격려할 것이다. The Greek particle γάρ in Romans 1:18, which is left untranslated in the Korean Bible translations, has so much hermeneutical importance that it should not be left untranslated in blank, simply considered as a transitional particle. The Greek conjunction γάρ connects Romans 1:18-3:20 to 1:16-17, where the key idea of Paul’s Gospel is found, through introducing the idea of God’s righteousness as an expression of God’s wrath. Moreover, through the idea of God’s righteousness as an expression of God’s faithfulness, it offers a reason why Paul’s Gospel reveals God’s righteousness as the power of salvation and why he is not ashamed of the crucified messiah Jesus’ Gospel. The hermeneutical significance of γάρ in Romans 1:18 is because it explains how Paul interprets Habakkuk 2:4 quoted in Romans 1:17. In Habakkuk’s context, God’s faithfulness toward his people is found in his offering of future salvation for them. However, Habakkuk claims that before God’s righteousness is expressed as his faithfulness to his people, it should be first expressed as God’s righteous judgment of their sins. In this context, Habakkuk’s righteous man appears as Israel’s remnant who endures the coming judgment of God through his firm belief in God’s promise of future salvation. Likewise, in the light of Habakkuk’s prophecy of God’s salvation in the midst of coming judgment, Paul in Romans 1:16-4:25 offers the revelation of God’s righteousness through the Gospel from the perspectives of God’s judgment and salvation. Then, Paul encourages the believers to show faith as a right way of experiencing God’s eschatological salvation as an expression of his faithfulness. Similarly to Habakkuk, for Paul this faith is best shown in that of Abraham. Abraham trusted and believed in God’s promise of the descendant, while facing ‘dead bodies’ of Sarah and himself. Of course, Paul presents the promised seed of Jesus as the object of the faith of Abraham as well as the believers. After having analyzed Paul’s hermeneutical development of Habakkuk 2:4 in Romans 1-4, we will then try to engage in short, but positive and productive dialogue with various aspects of the New Perspective on Paul. Through this dialogue, we try to overcome the phenomenon of hermeneutical ghetto in which scholars keep producing and reproducing same conclusions on and on based upon a strict dichotomy between the Old and the New Perspectives. We will encourage scholars to go beyond this strict dichotomy to interpret Paul in a more positive and productive manner.

      • KCI등재

        Luke and the Pentecostal Spirit

        Simon SeungHyun Lee(이승현)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연합신학대학원) 2015 신학논단 Vol.82 No.-

        한스 폰 베어 이후로 누가의 성령은 예언의 영으로 이해 됐다. 예언의 영을 근거로 오순절 계통 학자들은 누가의 성령을 선교를 위한 능력 부어주심이라고 주장하곤 하였다. 이들의 견해에 반하여, 제임스 던은 누가의 성령은 선교를 위한 예언자적인 능력 부어주심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아들 됨과 새로운 언약에 속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두 가지 상호 대치되는 주장을 조화롭게 유지하고자 맥스 터너는 누가의 영은 유대인들의 사상인 예언자의 영을 토대로 하되, 선교적인 능력을 넘어서 성도의 구원과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 저자의 견해로는, 누가의 성령을 단지 예언의 영이라고 못 박아 지칭할 수 있는지 깊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구약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영을 예언의 영으로 정확하게 규정지어 불렀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이해에서 구약의 하나님의 영은 능력을 부어주심과 더불어 새로운 창조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 등의 역할을 통해서 이해 됐지, 한 번도 예언의 영이라고 특별하게 지칭되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누가의 독자들은 그가 설명하는 성령을 예언의 영이라고 규정하기에 앞서서, 누가가 어떻게 자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서 성령의 정체와 역할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선입관 없이 조사해 보아야 한다. 누가는 자신의 성령에 대한 이해를 이러한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영에 대한 다양한 이해에 근거를 두데, 예수님의 성령 세례와 능력으로 덧입혀주실 것에 대한 약속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과 이방인 선교 그리고 그들이 경험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새로운 삶을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누가는 유대인들의 성령 이해를 뛰어 넘는 성령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이방인들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확증으로서의 성령의 역할이다. 한스 폰 베어 이후로 누가의 성령은 예언의 영으로 이해 됐다. 예언의 영을 근거로 오순절 계통 학자들은 누가의 성령을 선교를 위한 능력 부어주심이라고 주장하곤 하였다. 이들의 견해에 반하여, 제임스 던은 누가의 성령은 선교를 위한 예언자적인 능력 부어주심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아들 됨과 새로운 언약에 속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두 가지 상호 대치되는 주장을 조화롭게 유지하고자 맥스 터너는 누가의 영은 유대인들의 사상인 예언자의 영을 토대로 하되, 선교적인 능력을 넘어서 성도의 구원과 삶에도 영향을 미치는 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 저자의 견해로는, 누가의 성령을 단지 예언의 영이라고 못 박아 지칭할 수 있는지 깊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구약의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영을 예언의 영으로 정확하게 규정지어 불렀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이해에서 구약의 하나님의 영은 능력을 부어주심과 더불어 새로운 창조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 등의 역할을 통해서 이해 됐지, 한 번도 예언의 영이라고 특별하게 지칭되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누가의 독자들은 그가 설명하는 성령을 예언의 영이라고 규정하기에 앞서서, 누가가 어떻게 자신의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통해서 성령의 정체와 역할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선입관 없이 조사해 보아야 한다. 누가는 자신의 성령에 대한 이해를 이러한 유대인들의 하나님의 영에 대한 다양한 이해에 근거를 두데, 예수님의 성령 세례와 능력으로 덧입혀주실 것에 대한 약속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과 이방인 선교 그리고 그들이 경험하게 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새로운 삶을 포함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누가는 유대인들의 성령 이해를 뛰어 넘는 성령에 대한 새로운 생각들을 제시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이방인들의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확증으로서의 성령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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