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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예배 안에 나타난 영적 황홀경(Spiritual Ecstasy)에 관한 연구 :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하비 콕스(Harvey Cox), 베른하르트 랑(Bernhart Lang)을 중심으로

        정주영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RANK : 247403

        이상으로 필자는 제반 종교에 나타난 영적 황홀경의 경험(Spiritual Ecstatic Experience)을 종교심리학, 문화사회학, 그리고 기독교 역사학 -예배의 역사- 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심리학은 종교적 경험을 종교적 경험자 개인의 내면의 범위 안에서 연구한다. 즉 종교를 외형적으로 객관화시키지 않고, 심리적 현상으로써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종교 경험자가 종교 경험 안에서 느낀 감정적이고 신비로운 경험의 순간에 주목한다. 이러한 종교적 경험은 개인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이기적 삶의 포기, 신적 존재에게 순종하는 삶, 안정된 영혼의 상태, 이웃에 대한 관용적 태도 등을 불러일으킨다. 제임스는 이를 ‘성인다움’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이러한 종교적 삶의 결과를 연구하면서 모든 종교적 경험은 ‘분리된 자아의 통합’, 즉 ‘회심’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 안에는 분리된 의식적이지만 현실적 자아와 무의적이지만 이상적인 두 개의 자아가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데, 종교적 경험은 상호 투쟁 관계인 두 자아들을 통합하여 조화로운 평형의 상태를 이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통합의 과정은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주관적인 성격은 신비적 의식 상태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종교적 경험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형언 불능적(ineffable)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이 갖는 신비주의적 특성을 의미와 중요성으로 충만하며(noetic quality), 일시적(transient)이고, 수동적(passive)이라고 설명한다. 하비 콕스는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영적 황홀경의 경험은 대부분의 제반 종교들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특히 20세기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경험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고 주장한다. 교회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현시대에 기독교의 본질이 세상 속에서 계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종교적 경험을 통한 영적 성숙을 지향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 속에서 경험은 첨예한 논쟁의 주제였다. 때로는 신앙 체계의 우위성을 강조하여 기독교 교리가 득세하던 시기가 있었으며, 때로는 개인 경험의 우위성을 주장하여 경험을 중시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비 콕스는 현대인들은 일차원적인 모더니티적인 종교 의례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현대는 사고적이기보다는 직관적, 분석적이기보다는 직감적이며 유비적 성향을 지닌다. 이러한 현대인의 정신적, 종교적 필요를 효과적으로 채워준 기독교 내의 운동이 20세기 초 미국 아주사 스트리트(Azusa street)로부터 시작된 오순절 성령운동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종교적 경험을 강조한 성령운동의 특징을 원초적 언어, 원초적 신앙심, 원초적 희망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의 방언이 성령의 역사로써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제반 종교에서 볼 수 있는 무아적 소리의 표현으로 이해한다. 원초적 신앙심이란 전 근대사회와 근대사회의 거리를 극복시켜주는 동인(動因)으로써 이해한다. 특별히 그는 신유를 원초적 신앙심의 본질적 표현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몸과 정신을 단지 관찰, 분석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근대사회의 협소한 시각의 한계를 벗어나, 환상과 무아적 도취 상태, 성령의 춤과 감격의 울음의 현상을 지향하여 성경에 나온 이적과 기사를 긍정한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러한 특징이 원초적 신앙심이다. 원초적 희망이란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의 통치가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리라는 희망이다. 성령운동 참여자들은 현 세계 안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제도적 악, 갈등과 전쟁이 하나님의 나라의 통치를 통해 해소될 것이라는 임박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베른하르트 랑(Bernhart Lang)은 고린도전서 연구를 통해 초기 바울이 세웠던 원시 기독교회들의 예배는 황홀경적 예배였다고 주장한다. 고대 헬라적 문화의 영향 하에 있었던 원시 기독교회는 당시 헬라 세계의 저녁 연회였던 심포지움(symposium)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심포지움은 식사를 한 후 포도주를 마시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원시 기독교회의 성찬 성례전도 먼저 빵을 나눈 후 잔을 나누는 가운데 방언과 예언을 자유롭게 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린도전서에서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 발생한 다양한 은사들과 그 은사들의 사용과 관련한 사도 바울의 답변을 통해 방언과 예언을 하는 예언자 그룹은 사도들의 권위 아래에 있었으며, 사도들과 회중들의 검증을 통해서 그들의 방언과 예언이 통제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랑(Lang)은 고린도전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고린도교회의 예배의 가장 큰 특징을 황홀경적이고 은사주의적인 요소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리스의 문화가 지배하던 초대 교회 교인들의 삶의 자리에서 성만찬 예전은 심포지움의 형태를 빌려 발전되기 시작했다. 고린도교인들에게 있어서 빵은 영적인 음식이었고, 포도주 역시 영적인 음료였다. 빵과 포도주는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가 사람들과 연결됨을 의미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마술적인 경향 속에서, 빵과 포도주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써 취급하였던 것이다. 랑은 바울이 이러한 황홀경적 경험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바울 이후의 공동체에서 이러한 황홀경적 예배의 요소들은 쇠퇴하고 만다. 대신 그 자리를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대한 강조가 차지하였다. 즉 경험의 자리를 이성이 대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과 초기 바울 공동체에서 활발히 일어났던 황홀경적 예배와 성찬 성례전의 황홀경적 요소들이 점차 쇠퇴되었고, 또한 이는 후기 바울 계열의 공동체에 의해 점차 형식화된 예배와 설교와 성경 교육으로 대체되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지성화된 예배 형태는 기독교의 주류로 전해졌으며, 나아가 기독교의 전통이 되었다. 황홀경적 예배가 다시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여 주목 받게 된 것은 1906년 로스엔젤레스(Los Angeles)의 아주사 거리(Azusa street)에서 였다. 랑(Lang)은 요셉 시무어(Joshep Seymour)에 의해 시작된 오순절 성령운동의 뿌리가 18,19세기 유럽과 미국 곳곳에서 일어났던 대각성 운동의 열광적 감정주의적 요소와 17세기 말부터 미국에 유입된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의 종교 문화 전통의 혼합에 있다고 분석한다. 백인과 흑인의 열광적 종교가 혼합되어 독특한 황홀경적 기독교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예배는 자발성과 즉흥성이었으며, 기성교회의 형식화된 예배를 배격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배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경험을 목표로 했고, 이러한 경험의 수여자는 성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배의 형식으로 성령의 역사하심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초기의 열광적이었던 오순절 운동의 열기는 곧 쇠퇴하게 된다. 현대에 접어들어 초기의 오순절 운동은 다양한 은사의 의미와 기능에 주목하는 은사주의 운동으로 변형되으나 점차 조직화된 형태의 교회로 변화되어 갔다. 영적 황홀경은 수도원 신학에서 ‘관상’(contemplation)으로 이해된다. 관상은 하나님과의 하나되는 직접적인 경험으로써 영성수련에 있어 최종 단계이자 영성수련의 목표이다. 본 논문은 먼저 제반 종교에 나타나는 영적 황홀경의 경험(spiritual ecstatic experience) 대해 살펴본 후, 이 경험이 기독교 예배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발견되며, 또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종교심리학 및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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