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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8년 通信使行 筆談唱和集 󰡔星軺餘轟󰡕에 관하여

        황현우(,鉉堣,) 동양한문학회(구 부산한문학회) 2016 동양한문학연구 Vol.45 No.-

        본고는 1748년 通信使行의 筆談唱和集 󰡔星軺餘轟󰡕의 구성과 내용적 특징에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星軺餘轟󰡕은 나고야시 호사문고(名古屋市 蓬左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로 「附錄」을 포함하여 1권 2편(전편, 후편) 의 필담창화집이다. 󰡔星軺餘轟󰡕의 저자는 키노시타 란코(木下蘭皐, 1681~1752)이며, 오와리 번(尾張藩, 지금의 나고야 지역)의 藩士이며 通信使 접대의 역을 맡은 인물이다. 그리고 란코와 그의 아들 希元과 함께 筆談唱和를 나눴던 조선측 문사는 제술관 박경행과 삼사 서기 이봉환, 이명계, 유후 등이다. 󰡔餘星해 나고야에 도착했을 때의 이틀 간의 筆談唱和를 기록한 책이다. 󰡔星軺餘轟󰡕의 구성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筆談과 唱和詩를 따로 분리하여 筆談을 앞에 배치하고 詩를 뒤쪽에 배치하는 편찬기준을 택하고 있다. 또, 필담창화 상대에 따라서 내용이 분리되어 있는데, 란코와 조선문사 간의 筆談唱和를 한 내용이 앞쪽에 배치되어 있고 그의 아들 希元과 조선문사 간의 筆談唱和를 한 내용이 뒤쪽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의도적으로 란코와 조선문사들과의 필담창화, 希元과 조선문사와의 필담창화를 의도적으로 분리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星軺餘轟󰡕의 내용적 특징을 몇 가지 언급하자면, 란코는 1748년 사행의 문사들에게 이전 通信使行인 己亥使行(1719) 때 통신사 제술관인 신유 한과 삼사 서기 강백, 장응두, 성몽량과 筆談唱和를 했었던 인연을 소개하 면서 당시에 시문창화를 했던 기록들을 엮은 필담창화집을 주었다. 란코는이 두 가지를 통해 통신사의 경계심를 허물고 필담창화가 원활히 이루어질수 있는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筆談唱和集은 간행 당시의 관심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星軺餘轟󰡕 의 필담을 살펴보면 이와 같은 관심에 대한 흔적을 읽을 수가 있다. 17~18 세기 이전까지는 단지 몇 명의 신분의 증명이나 서화 따위로 인식되던 印 章과 印譜가 문인들 사이에서 점점 收藏과 趣味, 硏究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흐름에 대한 기록이 筆談唱和集에서도 출현하는 것이다. 攝生이나 養生에 대한 언급도 당시 의학관련 筆談唱和集의 출판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때의 시기적 배경과 문인들의 攝養에 대한 관심이 함께 맞물리면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17세기 초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던 筆談唱和集이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쏟아지듯이 출간되었다. 17세기의 완벽하지 않았던 구성과 문인들의 시문창화에만 몰려있었던 주제가 18세기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구성적 측면에서도 어느 정도 정형의 형태를 띄기 시작했으며, 주제도 문학 뿐만이 아니라 의학, 음악, 회화로 다양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필담창화집의 변화 안에 󰡔星軺餘轟󰡕이 자리잡고 있고, 󰡔星軺餘轟󰡕을 통해 18세기의 필담 창화집의 주제나 구성의 변화 등에 대한 측면을 어느 정도 추정해 볼 수있을 것이다. 本稿は1748年通信使行の筆談唱和集󰡔星軺餘轟󰡕の構成と内容的特徴に 簡単に紹介したい。󰡔星軺餘轟󰡕は名古屋市蓬左文庫に所蔵されている資料 で 附錄 を含めて1冊2編(前編、後編)の筆談唱和集である。 󰡔星軺餘轟󰡕の著者は木下蘭皐(1681~1752)であり、尾張藩の藩士であ り、通信使の接待を担当した人物である。そして蘭皐と彼の息子希元とと もに筆談唱和をした朝鮮側の文士は、通信使製述官朴敬行(1710~?)と三 使書記李鳳煥(?~1770)、李命啓(1714~?)、柳逅(1690~1780)である。󰡔 餘星軺轟󰡕は、彼らが名古屋に初めて到着した時と再び朝鮮に帰るために 名古屋に到着した時の二日間の筆談唱和を記録した本だ。 󰡔星軺餘轟󰡕の構成を簡単に見れば、この本では両国の文士の筆談と唱和 詩が一緒に載せているが、筆談と唱和詩を別に分離して筆談を前に配置し て詩を後に配置する編纂基準を選んでいる。 また、筆談唱和相手によって 内容が分離されているが、蘭皐と朝鮮文士間筆談唱和をした内容が前に配 置されていて、彼の息子希元と朝鮮文士の間の筆談唱和をした内容がの後 に配置されている。これは意図的に蘭皐と朝鮮文士たちとの筆談唱和、希 元と朝鮮文士との筆談唱和を意図的に分離しようとする意図と見ることが できる。 󰡔星軺餘轟󰡕の内容的特徴をいくつか言及すれば、蘭皐は以前通信使行の己亥使行(1719)際、通信使製述官だった申維翰(1681~1752)と三使書記 だった姜栢(1690~1777)、成夢良(1673~?)、張應斗(1670~1729)と筆談 唱和をした縁を紹介し、当時に筆談唱和をした記録をつづった筆談唱和集 を与えた。蘭皐はこの二つを通じて、通信使の警戒心を崩して筆談唱和が 円滑に行えるような効果を狙っているのだ。 筆談唱和集は刊行当時の関心を反映する場合が多いが、󰡔星軺餘轟󰡕の筆 談を見ると、このような関心についた痕跡を読むことがある。17~18世紀 以前まではわずか数人の身分の証明や書画などと認識された印章と印譜 が、文人たちの間でだんだん收藏と趣味、硏究の対象になっており、こう した流れに関する記録が筆談唱和集でも出現することだ。摂生や養生に対 する言及も、当時医学関連筆談唱和集の出版が活発に行われた時の時期的 背景と文人たちの摂養に対する関心が一緒にあいまって、行われるように なったのだ。 17世紀初期から登場し始めた筆談唱和集が18世紀に入ってから降るよ うに出版された。17世紀の完璧ではなかった構成と文人たちの筆談唱和に 集中していた主題か18世紀に入り始めてから構成的側面でもある程度定型 の形をし始め、主題も文学だけでなく医学、音楽、絵画として多様化され 始めた。このような筆談唱和集の変化の中に󰡔星軺餘轟󰡕が形成されてい て、󰡔星軺餘轟󰡕を通じて18世紀の筆談唱和集の主題や構成の変化などに対 する側面をある程度推定できる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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