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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선교의 대행자로서의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청년목회방안 연구

        황병환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2008 국내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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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선교이다. 우리가 참여하는 선교운동의 근원은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다.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시요, 교회의 선교의 근원이시요, 지탱자시다. 하나님은 선교적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선교적 백성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교회는 이 사역을 겸손히 대행해야 한다. 선교는 교회의 핵심적인 본질이다. 동시에 교회는 선교의 핵심이다. 교회가 선교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선교는 형편에 따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대행자임을 늘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회개하여야 하고 계속적으로 갱신과 변혁을 하면서 늘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선교와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도구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면서 계속적으로 갱신, 발전되어야 한다. 교회는 철저하게 선교에 의해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교회는 계속 갱신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선교적인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선교는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도 변화시킨다. 선교는 교회 갱신을 가져올 뿐 아니라 교회의 갱신이 올바른 선교를 인도한다. 올바른 선교를 위해 교회의 본질과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선교는 교회의 본질적 과제이며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한다. 선교하는 특권은 교회를 살리는 힘이다. 선교는 본질적으로 교회가 자기 주변의 세상을 정복하려고 교회의 능력과 지혜를 확산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의 구원을 원하시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역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교회는 교회다워지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경계선을 넘어서 활동해야 한다. 교회 안으로 모든 활동이 모아지는 것은 교회가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요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보내심을 받은 교회의 사도직으로부터의 이탈이다. 성서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봉쇄하려는 종교인들의 노력을 좌절시킨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교회의 역할이 축소될 수는 없다. 교회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셨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있어 핵심적인 본질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선교의 핵심적인 대행자이다. 그러므로 선교 역시 교회를 등한시 할 수 없다. 선교는 교회가 자신의 본연의 자리를 떠나지 않도록 늘 지침을 제공하며 교회는 이로 인해 자기 갱신과 변혁을 통하여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방법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까지 온 인류를 선교하고자 하신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인 선교를 해체시켜서는 안 되는 것처럼 교회를 해체시켜서도 안 된다. 미래 없는 교회가 심각한 문제이듯이 교회 없는 미래 역시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가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주장하는데, 반대로 교회 없는 선교는 선교하지 않는 교회처럼 괴물 같은 기형아일 뿐이다.”고 지적한 뉴비긴의 말은 매우 적절하다. 교회의 역사는 개혁의 역사였고, 앞으로도 개혁의 역사가 될 것이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선교의 표준모델은 바울이 아니다. 그 어느 선교단체도, 선교사도 아니다. 가장 완전한 선교사는 바로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서 성육신하시고 그 모든 사명을 완벽하게 감당하신 예수님이시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매우 치밀하게 선교적인 측면에서 다루어냈다. 예수의 하나님과 성령에 대한 이해와 예수만의 독특한 방식의 하나님 나라운동과의 인과관계, 역사와 평화에 대한 이해가 가져다 준 하나님 나라 운동의 포괄성, 예수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적인 정황과 무관하지 않은 예수의 선교의 역사책임성, 선교의 대상을 당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공적 죄인들로 대변되는 잃어버린 자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를 땅 끝을 지향하는 선교의 대상과 영역에 대한 선교사로서의 예수의 선교청사진,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성육신, 복음을 세일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함께 삶을 함께 하는 공동체적인 삶을 통한 선교의 방식과 대안공동체의 창조와 역량강화, 하나님 나라 설교와 그의 행적이 보여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집중력, 예수의 선교의 하이라이트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등 많은 부분들이 우리의 선교의 현주소를 심각하게 재고하게 한다. 선교적인 교회의 선교적 갱신을 위해서는 그 어떤 다른 연구와 성찰보다도 선교의 원본이요 표준모델인 예수의 선교를 깊이 재해석하고 연구하여 그것을 오늘 교회와 선교의 삶의 자리에서 복원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선교적인 청년목회가 자기 비만과 영적인 불임증에 빠진 한국교회에 가장 강력하고 희망찬 변혁에너지를 불어 넣을 수 있다. 위르겐 몰트만은 “오늘날 교회의 신학적인 개념의 갱신을 향한 가장 강력한 충격은 선교신학으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했다. 이는 선교신학의 역동성이 신학과 교회의 갱신에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통찰한 매우 의미 있는 지적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몰트만의 지적에다가 역동성의 모체인 하나님 나라를 자행하는 강력한 청년운동이 손을 잡으면 그 에너지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21세기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보는 하나님 나라의 전 지구적인 도래와 세계변혁을 위한 한국교회 변혁을 위한 방안은 지금까지의 교회갱신운동의 문제를 극복하고, 다음의 네 가지를 붙드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첫째, 하나님 나라 백성의 존재방식인 ‘공동체적인 교회’를 회복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갱신 과제는 개교회주의이다. 교회의 내적 일치와 성령의 코이노니아로 말미암은 사도행전적인 교회로의 철저한 복원 없이 교회는 결코 새 부대가 될 수 없다. 둘째, 교회의 존재이유인 ‘하나님의 선교에 집중’하는 것이다. 세계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선교는 세계를 구원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회 스스로가 사는 길임을 사도행전은 변함없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선교는 세계만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하는 교회를 살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한국 교회에 보편화된 복음주의적인 편향성을 극복하고, 지역교회 속에 건강한 에큐메니즘을 정착시키는 것이 참으로 시급하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배타심을 넘어 성서신학에 입각한 건강한 에큐메니즘이 정착되어야 한국교회는 그 편향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일구어 가셨던 예수의 길, 그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청년들이다. 통전적인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입각한 청년운동에 한국교회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개척자적인 정신을 가지고 한국교회가 세계 변혁을 위한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수행하는 교회로 갱신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원들이 바로 청년들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포기한 교회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 새로운 천년에는 교회의 위상이 더욱 실추될 것이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새 천년의 주역이 NGO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지난 세기에 대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NGO들은 현재 사회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새 천년에는 그 영향력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적십자나 앰네스티 그린피스, 대인지뢰금지협정, 국경 없는 의사회와 같은 국제적인 NGO들 뿐 아니라 참여 연대, 경실련, 참 교육을 위한 학부모 연대 등 국내 NGO들이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교회를 압도하는 사회적 양심과 희망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교회는 사회의 양심과 도덕의 기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불신자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교회는 주변부로 전락하고 있다. 교회는 다시금 역사의 중심에서 인류와 세계의 한 복판에서 자신들이 떠맡은 책임과 과제들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 청년목회도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더 이상 공교롭게 꾸며낸 프로그램이나 감성적인 이벤트에 의존하는 사역에 집중하기 보다는 광활한 세계 현실 속으로 청년들을 보내서 고통과 슬픔에 빠져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경험하도록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게 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청년들을 위한 진정한 교사시다. 그분은 지금도 전쟁과 기아 재난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세계 현장 속에서 그 분이 얼마나 이 세상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이며 또 평범한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신다. 세계는 인간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학교다. 교회는 이제 사랑하는 자녀들이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배우도록 그들을 이 감동적인 학교로 보내야 한다. 21세기 한국교회에 요청되고 있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도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역사 책임적이고 대안적인 교회공동체, 한국교회에 팽배해 왔던 근본주의의 한계와 복음주의의 편향성을 극복하고 통전적이며 역동적인,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부여된 산적한 세계에 대한 책임을 수행하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교회’를 함께 꿈꾸며 각자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눈물을 흘리며 겸손히 씨를 뿌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선교와 건강한 에큐메니칼 운동의 빛에서 조명된 선교지향적인 청년목회가 한국교회를 살리며, 하나님의 선교의 대행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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