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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회보장제도〉 중국 사회보장제도의 중국 사회보장제도의 발전과 그 성격
최진백 한국노동연구원 2003 국제노동브리프 Vol.1 No.3
2002년 전세계 경기는 상승과 하락의 반복세를 보였으며 이라크 전쟁 발발로 2003년에도 세계 경제전망이 여전이 불투명한 상태로 미국, 유럽과 일본의 경기 또한 낙관할 수 없다. 중국 경제의 경우 발전은 내수시장을 원동력으로 하고 있고, 2002년에도 중국경제는 연초 전망치 7%를 크게 상회하여 80%의 경제성장을 기록했으며, 세계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2003년에도 순조로운 정권교체로 중국의 집단 지도체제 및 개혁ㆍ개방정책이 계속되며 경제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실업문제와 소득 불균형 사회보장제도 미비 등의 문제가 산재해 있고, 중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들은 단기간 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본지에서는 중국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지난 호부터 5회에 걸쳐 중국의 실업문제, 노사관계, 사회보장제도, 노동정책과 노동법, 직업훈련 및 직업검정을 주제로 관련 전문가들의 기고를 싣는다. 이번 호에는 ‘중국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논문을 준비중인 연구원의 중국통신원 최진백씨의 글을 소개한다.
청조(淸朝)의 제국 통치와 신해혁명, 그리고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
최진백 한국정치외교사학회 2023 한국정치외교사논총 Vol.45 No.1
For all an era of domination under the Manchu immigrants Qing history is recognized as a part of Chinese history with a scheme of “unitary multi-national state.” Beyond the traditional Hanhwa idea, which refers to Sinicization of non-Han groups, this involves a new idea of historical formation of the ‘Chinese Nation’ out of historical unifying process of Han and non- Han ethnic groups including Manchus. The Qing fashioned its national identity as a ruling group through a unique organization called the Palgi (Eight Flags) system, and assumed the leadership of broad nomad area from Manchuria to Central Asia. The Qing also constructed a governance system in China where majority of population was Han Chinese based on the traditional Chinese culture. However, the problem of the Palgi system became salient through the Opium War and the Taiping rebellion, and the Qing Dynasty formed a virtual Manch-Han coalition government for its modernization push through the Yangwu and the Bianfa movements. Yet, the coalition regime collapsed by the revolution of 1911. The new republic promoted the “Five Nation Republic” scheme, which included various non- Chinese groups within the Qing Empire as its citizens. This was not because the Han and non-Han ethnic groups had a common identity as the “Chinese people,” but because they wanted to form the territory of the new Republic following the broad areas of Qing Empire. The problem is that the scheme accepts those non-Han ethnic groups on the Sinicization premise which supposes full cultural enlightenment of Chinese authenticity, and denies the political recognition that they got under the Qing Empire. This means that the framework of China’s “unitary multi-national state” needs close review process. 오늘날 중국은 한족만이 아닌 여러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통일적 다민족국가’임을 주장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중국사를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만주족에 의해 지배받았던 청의 역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전통적인 한화(漢化)의 입장을 넘어 만주족을 포함한 여러 비한족 집단이 한족과 역사적 융합의 과정을 통해 ‘중화민족’을 구성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논의의 역사적 사실 부합성이다. 청조는 팔기(八旗)라는 독특한 조직을 통해서 지배집단으로서 만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여 이를 바탕으로 만주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드넓은 유목지역의 통합자이면서, 동시에 한족이 다수인 중원지방을 전통적 중화질서에 기반으로 하는 지배체제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을 거치며 팔기 제도의 문제가 노정되면서 청조는 “만한(滿漢) 연합정권”을 구성하여 양무운동과 변법운동을 통해 나름의 근대화를 추진하였지만 만한 사이의 갈등이 접점을 못 찾고 결국 신해혁명으로 붕괴되었다. 새로운 중화민국은 ‘오족공화(五族共和)’를 내세우면서 청 제국 내부의 여러 비한 종족을 그 구성원으로 포함하고자 하였으나 이는 당시 한족과 비한족들이 ‘중화민족’으로 하나의 정체성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생 중화민국의 영토를 드넓은 청 제국의 판도에 걸쳐 구성하고자 이들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포괄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비한족 집단들은 이전 청조 아래 주어졌던 정치적 승인이 철회되고 한화의 대상으로서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이 부정되었다. 따라서 한화를 넘어 융합을 전제로 한 오늘날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국가’ 논의에 대한 진지한 역사적 검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