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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東歌」 考

        鄭奉澤 조선대학교 외국문화연구소 1994 外國文化硏究 Vol.17 No.1

        동가는 제도와는 거리가 먼 동지방에서 불리워져 만엽집에 제14권에 모아서 가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 지방사람들은 모두가 글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 또 학문을 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른 노래이기 때문에 동 노래는 가인의 이름이 기재되어있는 노래는 한 수도 없다. 흔히 만엽집의 노래는 귀족문학인가 민중문학인가하는 논란이 있는데 귀족의 편에서 보면 귀족문학이라고 볼 수 있고 서민 편에서 보면 민중문학이라고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방대한 양과 각계각층의 노래가 오랜 세월 동안 불리워졌기 때문에 다른 문학작품과는 달리 다양성이 있는 성격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동가의 노래는 귀족의 노래와는 전혀 다른 노래이다. 문자가 있던 없던 문자를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문자의 존재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동인들은 자연 속에서 농경을 하는 사람들로 주위 모든 환경은 그들의 생활 자체이기 때문에 자연의 경이로움 보다 오히려 자연에 순응하는 생활과 의식속에서 문학이전의 생활의 모든 것들을 읊은 생활의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노래들을 검토해 본 결과 어느노래에서도 가식이나 겉치레 같은 면은 없고 솔직하고 또는 직선적으로 그 상황에 다라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하는 노래들이다. 이들 노래는 인간의 심정을 자연과 생활을 풍물과 대비하여 「서사」라는 형식을 빌어 읊은 노래들이 많지만 이런 서사의 사용 기법을 문학적 기교에서가 아니고 집단 문학이 개인 문학으로 바꾸어가는 다시 말해서 민요적 요소를 자신의 상황으로 끌어 들여 비유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동가는 동인들의 솔직한 마음의 언어로서 노래 속에는 그들의 혼이 깃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 「萬葉びと」 의 意識

        鄭奉澤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소 1984 外國文化硏究 Vol.7 No.1

        고대 일본의 의식을 논술함에 있어서 외부적인 것과 고유적인 한계를 규정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며 최고서인 「고사기」의 성립에 있어서 외부문화 즉 불교문화가 전입된 이후 성립된 것으로써 외부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다. 본문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왜곡되지 아니하고 자연발생적으로 민간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신앙이야말로 일본고유신앙의 진수이다. 「고사기」 「만엽집」에 깔려 있는 신의 형태를 크게 나누어서 둘로 나눌 수 있다. 즉 자연신과 인간신이다. 「萬葉びと」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자연신은 산이나 강을 지배하는 절대신이며 인간신은 사람 곁에 있는 속신인 것이다. 「萬葉集」에는 신 자체를 직접 표현한 노래는 없다. 신을 신봉하는 노래가 많다. 「萬葉びと」의 의식 속에는 항시 존재하였고 생활 속에 신을 끌어들여 주술적 형태로 나타났다. 영은 분리되는 것이며 자신의 영이 다른 사람의 영과 교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영이 인간의 육체로 영원히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고 이 영은 인간의 육체를 떠나서 멀리 가는 것이 아니고 일본 국토 내에 있다고 믿었다. 「萬葉びと」은 신앙의 기본인 내세관을 이 영으로 표현했다고 본다.

      • 枾本人麻呂의 사랑과 죽음과 自然

        鄭奉澤 조선대학교 인문학연구소 1983 外國文化硏究 Vol.6 No.1

        인마려의 천황·황자에 대한 「만가」가 기록의 신화적인 면을 전승한 시문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은 인마려가 기록의 천손강림신화를 만엽집에 투영을 시도한 것이라고 하겠으며 고시황자의 잔국의 노래등에서 나오는 전투양면의 묘사등은 한적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아진다. 본 고에서 고찰한 인마려의 여인에 보내는 노래등은 자신의 경험적이 사실에 대하여 시인의 정감이 작용하여 현실과 비현실을 문예적인 세계관으로 끌어들여 충동적인 사실들을 하나의 자각속에서 문학론적인 면으로 발전시켰다고 생각된다. 인마려는 많은 여인을 사랑하는 가운데 사랑하는 여인이 현실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경험함으로써 이러한 충동적인 사실들을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과 융합시켜 서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인마려의 시의 세계를 창출하였다. 인마려는 인간의 극한 상황에서의 애절함 속에서도 가장 소박하게 사실을 표현하고 있으며 시적인 허구감은 배제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근본에 있어서 경험적으로 인간의 무상함을 문예적 세계관으로 끌어들여 시적 감동으로 승화시켰다고 본다.

      • 萬葉人의 靈에 關한 意識

        鄭奉澤 조선대학교 외국문화연구소 1989 外國文化硏究 Vol.12 No.1

        이제까지 고대일본인의 민간신앙의 종교기능을 고찰한바 먼저 고대일본인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은 자원에 대한 자연종교이다. 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그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물의 숭배이며 또는 자연현상의 근저에 영감적 실재를 상정하는 정체신앙이다. 이들 만엽인의 눈에 비친 위대한 존재의 자연은 자연물신앙과 자연현상을 2가지 형태로 비쳤다. 즉 전자는 산과 바다와 강을 다스리는 신이여 후자는 비, 불, 일월 성진의 신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자연물신앙과 자연현상 등은 별개의 것이 아니고 자연적원시신앙으로서, 같은 원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산신이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그 근저에 산령의 실재를 인정하며, 불에도 화영, 사람에게는 인령(혼), 언령 등이 있다고 믿는 고도의 영혼관을 갖게 되었다. 이 영혼관에 대한 의식이 만엽가요에 꾸밈없이 나타나 있으며 이는 곧 만엽인들의 마음의 표현이며 그들의 의식이 기저에는 이 영혼사상이 짙게 갈려 있음이라고 본다. 인간의 영은 무수히 분리하는 것으로 자기의 영이 타인의 영과 효갑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죽은 사람의 영과도 교합한다고 믿었다. 이 영의 주술적 행위는 「袖振る」라는 행위로 나타났다. 그리고 집을 떠날 대는 자기의 영을 두고 간다고 믿었으며 그 장소(淸ふ)를 설치하여 부정을 타지 않도록 하였다. 만엽인들은 인간이 죽으면 그 영은 산중으로 간다고 믿었다. 따라서 사람이 죽게 되면 마을과 산과의 경계에 「喪屋」을 짓고 일정기간동안 초혼의 양식행위가 있었다. 또 일본에 불교가 공전된 것은 538년으로 2백년 가까이 흐르고 있지만 만엽가요중에는 불교적인 타계관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은 7백년대의 일본이 민속사유를 바꾸어 놓을 정도로는 영향을 주지 못하였음이라고 사려된다. 그러나 정책적인 호국불교와 몇몇 지식층에 의하여 점차로 불교적인 무상의 사상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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