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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철학 : 자강기(自强期) 신구학체용론(新舊學體用論)의 논리구조에 대한 비평적 연구

        박정심 ( Jeoung Sim Park ) 동양철학연구회 2012 東洋哲學硏究 Vol.71 No.-

        근대 자강기(自强期) 신구학체용론(新舊學體用論)은 전근대와 근대의 이론적 간극과 유학과 서구 근대학문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근대담론이었으며, 근대적 시의성(時宜性)을 준거(準據)로 하여 유학과 서구근대학문을 성리학의 체용론으로 접목시킨 이론체계였다. 신구학체용론은 구학을 도덕적 본체로, 신학을 이용후생을 실현할 용수(用殊)로 구분하여 ``구학-本體/신학-用殊``란 이론체계를 정립하였다. 구학과 신학이 이질적인 사유체계였지만 체용론으로 접맥될 수 있었던 것은 체용론이 지닌 독특한 논리구조에 기인한다. 성리학적 체용론의 요점은 본체의 유행과 발현이란 작용을 통해 형이상학적 본체를 체인[因用指體]하는데 있다. 즉 일상생활 속에서 천지만물이 생성화육하고 사람들이 도리에 맞게 생활하는 것을 통해서 본체를 체인할 수 있다는 것이니, 드러난 것을 통해 드러날 수 있게 한 것을 보는 것이다. 또한 근대란 새로운 시간성을 리선기후(理先氣後) 체선용후(體先用後)란논리구조로 해명함으로써 유학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었다. 구학인 유학은 형이상학적 본체로서의 의미는 상실했지만 여전히 私德의 영역에서는 본체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신학은 근대적 문명화를 구축할 현실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이해하였다. 신구학체용론이 신학 수용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 초점이 있었지만, 유학과 서구 근대학문의 접맥을 논리화했다는 점에서 사상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구학본체론은 유학의 도덕본체인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사덕(私德)의 영역으로 국한시킴으로써 유학적 도덕론이 가지고 있던 풍부한 사회적 정치적 자산을 상실한 측면도 있었다. 특히 신구학체용론을 이론화했던 지식인들은 맹목적인 문명화논리에 매몰되어 일본의 동양의 문명선진국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일본의 문명지도론을 용인하였으니, 이것은 친일논리의 전초(前哨)였다. 문명화가 곧 제국주의 침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문명화에 매몰된다는 것은 곧 제국주의침략을 비판할 수 없는 결과를 낳았다. 신구학체용론이 유학의 도덕본체론에서 사회적 영역을 탈각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유학이념이 제국주의 침략과 근대적 야만성을 비판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기회를 차단하는 한계를 노정(露呈)하였다. 비록 구학본체론이 유학의 근대적 역할을 논리적으로 구축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논리적 정합성과 시대적 타당성을 갖추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in the Era of Modern strenuous effort(近代自强期新舊學體用論) shows the theoretical differences between premodern era and modern era and the dramatical meeting between Confucianism and the western modern science.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uses the Old as main ethical body and the New as the tools the New to fulfill the public welfare. But A Study of the logical structure of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New and the Old in the Era of strenuous effort exposure the theoretical limits that Confucianism couldn`t criticize Imperialism by elimination of the social era in the ethical main stream. So though the Theory of the thing and its functions of the Old establish the role of the Confucianism in the modern era, we can`t evaluate the Old have logical compatibility and valid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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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화파(開化派)의 문명의식(文明意識)과 타자인식(他者認識)의 상관성(相關性)에 관한 연구

        朴正心 ( Park Jeoung-sim ) 한국유교학회 2010 유교사상문화연구 Vol.41 No.-

        한국근대는 이질적인 보편문명간의 충돌적 만남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서구 근대문명이 새로운 전범으로 떠오르면서 유학적 보편이념은 해체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문명’이란 개념을 중심으로 근대 한국의 사상적 전환을 분석하였다. 번역된 문명, 그리고 보편문명의 전환은 근대 한국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civilization’은 유럽이 세계문명 진보의 가장 높은 단계에 서 있다는 유럽중심주의와 유럽인으로서 자부심어린 집단정체성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따라서 유럽적 동일성을 갖지 못한 비서구는 곧 야만적 타자일수밖에 없었다. civilization의 번역어로서 문명은 이러한 근대유럽의 문명의식을 고스란히 전이하였다. 서구열강처럼 부강한 문명국이 되어 제국주의침략에 맞서 독립해야 한다는 열망은 서구근대문명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하였다. 서구근대문명을 새로운 전범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성리학적 세계관의 해체를 의미하였다. 華夷論에 근거한 중화문명이 붕괴되고 기술문명[civilization]이 보편문명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서구근대문명은 문명성과 동시에 침략적 야만성을 지닌 야누스적 타자였다. 따라서 서구 근대문명성의 수용에 매몰되면 침략의 부당함을 비판할 수 있는 논의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개화파가 결과적으로 일본의 침략을 문명지도론으로 오인하고 친일의 길로 들어섰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문명다운 문명이 무엇인지 다시 성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문명적 중심주의를 문제삼아야 할 것이다. 즉 유럽중심주의적 근대시선은 반드시 再考되어야 한다. 서구문명이 야만에 대조되는 ‘단수’의 보편이념이라는 자명한 근대인식이 갖는 폭력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Modern era of Korea can be summarized as the crash between Heterogeneous Cultures. In this paper I analyze the thought transformation of the modern Korea with the concept of Civilization. The transformation of the common civilization had an effect on the life of Korean. Civilization had roles on the magnifications of the group identities in Europe. Now in this time to introspect the meaning of real civilization, first of all we have to think Western civilization. And also we have to rethink the Western civilization in the Moder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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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의 근대 주체의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

        박정심 ( Jeoung Sim Park ) 한국철학사연구회 2015 한국 철학논집 Vol.0 No.45

        이광수(李光洙)는 서구 근대문명성과 그를 재생산한 일본중심주의를 내면화한 지식인이었다. 그는 서구 근대문명과 기독교 그리고 근대학문을 보편으로 인식하였으며, 서구 열강을 모방한 일본 제국주의 논리 역시 그 연장선에서 수용하였다. 따라서 문명이 부재한 조선인은 ‘그들처럼 되기’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보았으며, 그 출발점으로서 개인 즉 신문명화된 조선인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이광수는 일본학자들이 조선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창한 유학망국론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는 조선이 파산상태에 이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유학에 있다고 평가하였다. 심지어 유학의 무정신성 때문에 ‘조선은 죽었다’ 고 선언하였다. 따라서 주체적 자각과 행위는 유학의 무정신적인 상태와 중화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즉 그는 천년의 민족 유산을 부정하고 밖으로부터 온 근대문명을 내면화하는 것이 주체를 정립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신에 대한 자각이 가능해진 개인, 즉 ‘조선인’은 근대 지식과 생활양식 등을 갖춘 인텔리겐치아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개인은 민족을 개조할 수 있는 선구자로서 민중을 계몽해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광수가 정립하고자 한 ‘조선인’은 정신적 문화 영역에 국한된 비정치적 주체였다. 식민기 모든 문제의 근원은 망국에 있었는데도 민족개조를 문화에 국한시킴으로써 식민지 현실을 외면했다. 유럽중심주의와 동양주의를 재생산한 문화적 개인[조선인]은 보편타자의 중심주의의자장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비주체적인 주체의식으로는 식민지 현실을 직시할 수도 없었으며, 현실을 직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미래를 지향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광수가 발견한 주체는 주체가 아니며 문화적 민족은 민족이 아니다. 그가 민족개조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근대적 조선인은 허구적 주체였으며, 사이비적 주체였다. Lee Gwang-su(李光洙) was the intellectual who internalized the Western modern civilization spirit and the Japan nation-centrism. He accepted generally the Western modernism, the Christian religion and Western modern profound learning. And also he accepted the Japan Imperialism as a similar logical process. So he regarded that the Joseon Dynasty had to follow the Japan modernization process to be modernized country, and also he tried to set new modern Joseon person. He followed a national peril of Confucianism which is build to justify the Joseon invasion. And he evaluated the root cause of ruined Joseon as Confucianism. He argued that Joseon person have to study Modern knowledge and life-style to be intellectual. But such non-subject person could not evaluate and look accurately colonial imperialism of Joseon. So we can conclude his modern Joseon person that he tried to fulfill with racial remod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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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신문의 ‘동양(東洋)’ 인식에 관한 연구

        박정심 ( Park Jeoung-sim ) 한국철학사연구회 2018 한국 철학논집 Vol.0 No.59

        이 논문은 황성신문의 ‘동양’ 인식에 관한 분석이다. 이질적 보편성과의 만남은 전통적 가치 체계와 지배 구조를 붕괴할 만큼 강력했다. 비서양으로서의 ‘동양’은 중화주의의 해체 및 일본중심주의의 생성을 담지한 지리개념이었다. 황성신문은 아한은 동양의 일원으로서 중국과 일본과는 순치보거(脣齒輔車)의 정족(鼎足)관계에 있다고 인식하였다. 또 황인종인 동양 삼국은 서양 백인종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할 문명적인 지역 권역으로 보았다. 특히 문명 선진국인 일본을 동양 평화를 실현할 맹주로 용인하였다. 황성신문은 근대를 인종대결시대로 파악하고 백인종인 서양의 이문(異文)에 대항하여 동종동주동문론(同種同洲同文論)을 이론화하였다. 하지만 서양중심주의를 재생산하고자 했던 동양주의는 일본이 자국을 중심으로 지역질서를 재편하고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성신문은 일본 중심의 연대를 통해 독립과 동양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파악하였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되었지만, 황성신문은 일본이 동종상수(同種相愛)와 인국(隣國)의 우의(友誼) 및 동양 맹주로서의 덕의(德義)를 실천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데 그쳤다. 이는 황성신문이 일본의 동양주의가 제국주의 침략을 은폐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음을 간파하지 못한 한계를 노정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제국주의침략에 대한 통절한 자기비판 없이 반복되는 일본의 동양주의는 아시아공동체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걸림돌이다. 자국중심주의에 대한 성찰 없이 아시아공동체를 논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 중심의 군국적(軍國的) 동양주의와 중국의 자국 우월적 중화주의가 궁극적으로 팽창적 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이라면 그것은 유학적 본질인 인(仁)에 위배된다. This paper study about the Perception of Orient in Huangseong-Shinmun(皇城 新聞). The Orient as a Non-Western is recognized as a geographical concept which represented Japanized culture and which breaked up Sinocentrism. Huangseong-Shinmun thought Korea, China, and Japan as the main countries which constitute Orient. And this paper regarded these three countries which is Yellow race are main area which countervail Western. Especially this paper thought Japan as the leading power which fulfilled Oriental peace. So Huangseong-Shinmun theorized nations of the same race, region and language(同種同州同文論). But Orientalism is just means which Japan used to rationalized the imperialistic invasion. Nevertheless Huangseong-Shinmun thought that periods are the era of racial competition. This is the limit Huangseong-Shinmun did’nt recognize the strategy which Japan concealed the imperialistic inva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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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식 『왕양명선생실기(王陽明先生實記)』의 사상적 특징에 관한 연구

        박정심 ( Park Jeoung Sim ) 한국철학사연구회 2021 한국 철학논집 Vol.- No.69

        박은식은 근대 격변기에 직면하여 성리학에서 양명학으로 사상적 전환을 단행한 근대 사상가이다. 『왕양명선생실기』는 왕양명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양명학에 대한 박은식의 이해를 체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특히 그의 사상이 축약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30여개의 안(按)은 주목할 만하다. 이를 통해 박은식의 양명학에 대한 이해와 특징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의 다른 논설들과 연관하여 양명학적 사유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박은식의 사상적 전환은 근대적 격변에 직면한 유학의 역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양지적 근대주체는 서구의 계몽이성을 마주하고 있었으며, 이성과 다른 관점에서 근대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들과 다른 역사적 문화적 경험을 토대로 하여 ‘지금 여기 나’를 성찰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박은식은 양명학의 사상적 특징을 근대적 맥락에서 통찰하고 더 나아가 유럽중심주의적 세계관에 매몰당하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하등자나 무문자, 혹은 공정한 감찰관 등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는 모두 치양지를 실현한 참된 인간주체인 ‘진아’였다. 진아는 근대적 격변과 망국의 위기에 직면하여 한국이 직면한 문제는 물론 인간다운 삶을 모색하였다. 박은식도 신학의 효용성과 과학기술의 편리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열강의 국가적 힘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어, 제국의 통치와 착취의 수단으로 전락한 부분을 비판하였다. 과학적 방법으로 자연을 탐구하고 활용하여야만 부국강병과 자본주의의 발달을 도모하여 생리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이 종국에는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로 전락했다면, 과연 과학기술이 인류의 삶에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것 또한 당연하다. 견문지에 대한 본연지적 성찰과 과학자에게 발본색원할 것을 요구한 것이 박은식의 양명학 사상의 큰 특징이다. Park Eun-sik was a modern thinker who made an ideological transition from Neo-Confucianism to Yangmyunghak(陽明學) in the face of the modern upheaval. "Mr. Wang Yang-myeong's Practical Practice" abbreviates Park Eun-sik's understanding in Wang Yang-myeong. The ideological shift to Yangmyonghak is a critical reflection on the role of Confucianism in the face of modern upheaval. Park Eun-sik had an insight into the ideological features of Yangmyunghak in the modern context, and further pursued an independent life without being buried in a European-centered worldview. At the center was Jin-ah. Jin-ah is a true human being who realized the place of healing as a modern subject different from reason. The two-pointed modern subjects faced the Western reason for enlightenment, and looked at modern times from a different point of view from reason. In the face of modern upheaval and crisis of destruction, Jin-ah sought not only the problems facing Korea but also a human life. The biggest feature of modern times is the development of science and technology. Park Eun-sik recognized the utility of Western modern university literature and science and technology. However, he argued that moral reflection on scientific knowledge, which has been reduced to a means of imperial rule and exploitation, is necessary. Park Eun-sik's moral reflection on the paper and his request for scientists to find the source of the paper are a big feature of Yangmyunghak's 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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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은식 格物致知說의 近代的 含意

        박정심(Park Jeoung-sim) 한국양명학회 2008 陽明學 Vol.0 No.21

        한국근대는 서구근대문명과 밀접한 영향 하에 발달했다. 특히 근대자연과학은 성리학적 자연인식을 해체하면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객관사물에 대한 객관적 인식은 성리학의 격물치지론과 유사한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서구 자연과학을 格物致知學으로 번역하였다. 그 용어는 유사했지만, 그 철학적 함의는 동일하지 않았다. 성리학은 천인합일적 사유에 근거하여 가치판단과 사실판단영역이 유기적 연관성을 갖지만, 자연과학은 객관적 자연인식을 근간으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서구문명이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것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에 서구 자연과학을 적극 수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군국주의적 침략의 도구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들처럼 문명국이 되고자 하는 열망과 함께 군함을 앞세운 군국주의 침략에 따른 국권상실은 양면적이었다. 즉 위정척사파처럼 자연과학을 맹목적으로 거부할 수도 없었으나, 그렇다고 전폭적으로 수용할 수도 없는 이중적인 문제였다. 박은식은 성리학이 시대정신으로서 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다는 판단 아래 양명학을 근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는 서구 자연과학을 견문지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견문지의 영역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見聞知가 윤리적 영역에 대한 해답을제시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다. 견문지가 인간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그것이 仁道와 平和를 실현하는데 기여하기보다는 군국주의 침략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였다. 그는 견문지에 德性知的 省察을 통해 당시 자연과학의 수용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Korean Modernity is developed by the close influence of the Western modern Civilization. Especially Modern natural Sciences have great effect to dismantle of the Sung Confucianism’s perception of the nature. So Objectivity is translated Western Science as the science of Ko- Wu Chih-Chih. But though the terminology is similar, but it is different from the philosophical meaning. Because Sung Confucianism is based on the thought of one between heaven and man(天人合一) value judgement and fact judgement has the organic relation bur natural science is based on natural science perception. Then intellectuals conceived western culture as the result of the development of science, so they tried to accept western natural science. But western natural science used as the instrument of the western militarism. Park Eun Sik thought Sung Confucianism didn’t adequate roles as the spirit of the time, so tried to solve these problems by analyzing Wang Yangrning as the modern method. He recognize the western natural science as Learning by Seeing and Hearing(見聞知), but he regarded this scientific knowledge didn’t solve the moral knowledge. So he granted Learning by Seeing and Hearing (Learning by Morality, he tried to solve the problem raised by accepting the natur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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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근대지식인의 "근대성" 인식 1 -문병,인종,민족담론을 중심으로

        박정심 ( Jeoung Sim Park ) 東洋哲學硏究會 2007 東洋哲學硏究 Vol.52 No.-

        근대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사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유럽근대문명은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과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인종주의적 세계인식과 맞물려 있었다. 그리고 유럽근대문명은 세계적 보편으로 자리잡았다. 한국 근대 지식인은 근대성을 이루고 있는 문명·인종·민족담론을 중심으로 다음 세 가지 문제를 고민하였다. 첫째, 세계적 문명성을 수용하는 문제이다. 둘째, 백인우월주의적 허위의식을 비판할 수 있는 논리를 새롭게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서구적 근대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민족적 근대주체를 정립하는 것이다. 유길준과 윤치호는 서구문명과 접촉하면서 서구근대 문명성을 수용하고자 노력한 대표적인 근대지식인이다. 그들이 서구문명을 至善과 當爲로 받아들이는 순간 전근대적 삶의 양식은 야만이 되고, 우리는 문명화를 실현하기 위해 서구를 이식해야만 했다. 서구근대문명을 보편으로 받아들이는 한 지금 야만적 상태로는 서양과 대등한 권리를 누릴 수 없음은 자명하며, 우리 목표가 문명화를 통한 부국강병 실현에 있음 또한 자연스럽다. 유길준은 ``문명``을 본격적으로 사유하고 체계화한 한국인이었다. 그는 인류가 개화정도에 따라 야만→미개→반개→문명의 단계로 진보한다는 발전적 문명관을 제시하였다. 유길준은 한국은 아직은 반개 상태라고 파악하였다. 그가 조선을 반개의 단계로 상정한 것은 우리가 그들처럼 문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결핍된 야만으로 단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의식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문명성이 결핍된 반개에 해당한다면 우리보다 앞선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문명국이 되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윤치호는 기독교 개종과 미국유학을 통해 서구문명을 내면화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던 윤치호는 타자에 대한동일화를 시도했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분열적인 자기 확인은 힘의 논리로 귀착하고 만다. 문명적 시선은 주체와 타자를 선명하게 구분하는 선이었지, 그들과 하나되는 지점을 확인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치호는 기독교 중심주의와 인종주의적 사회진화론을 준거로 하여 근대를 인식하였다. 그에게 사회진화론은 한편으로 인종적 민족적 열등감을 부추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화의 절박성을 깨닫게 해주는 양날의 칼이었다. 일본을 한국문명화의 전범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가 일본을 예찬하고 친일협력을 정당화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하겠다. The modern age is the point to start the genuine world history. European modern civilizations are organized as the theory of social evolution, also a Caucasian superiority and racism. And these European modern civilizations have the position of the world universalism. It is the problem how Korean modern intelligentsia accepted and recognized these Western modern civilizations. Then the problems that modern Korea confronted with are classified as three problems. First the most important was the problem how to accept these world universal civilizations. Second it is to reconstruct the logic to criticize a Caucasian superiority and racism. And finally it is to make theses of modern national entities. Yoo Gil-Jun(兪吉濬) and Yun Chi-Ho(尹致昊) were representative modern intellectuals to tried to accept that civilization by contact with Western culture. By accepting Western culture as the highest goodness(至善) and what one should do(當爲), our premodern way of thinking and living changed as the uncivilized manners, and so to realize the modernization we had to accept and transplant Western culture. If we accepted Western modern culture as the universality, it is self-evident that we couldn`t enjoy the right as equal to Western culture. And so it is natural that our goal is the wealth and military power of nation by modern civiliz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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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채호의 근대적 ‘도덕(道德)’에 관한 연구

        박정심 ( Park Jeoung Sim ) 동양철학연구회 2016 東洋哲學硏究 Vol.87 No.-

        자강기 갑오개혁 등 사회적 변화로 유학의 도덕이념을 실현할 현실적 場은 붕괴되었다. 이에 따라 신구학론을 통해 유학은 구학으로 치부되었으며, 유학의 도덕은 사덕으로 그 영역이 국한되었다. 그리고 근대체제의 건립을 위해 요구되었던 것은 공덕이었다. 신채호의 도덕론은 성리학적 도덕체계의 해체와 민덕 정립의 필요성에 대한 사상적 부응이었다. 신채호는 당대를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대결 시대라고 규정하였으며, 서구 열강의 강한 힘의 원천은 도덕이라고 진단하였다. 근대적 도덕은 ‘지금 여기’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결코 정립할 수 없는데, 일차적 으로 망국이란 역사적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도덕은 민족 생존에 위배되거나 타자중심적인 세계관을 맹종 해서는 안 된다는 제한성을 가졌다. 또 도덕은 시대적 문제에 대한 주체의 자각과 실천에 관한 담론이므로, 시의성을 담지하지 못한 도덕은 痛斥해야할 사회적 악이라고 규정지었다. 일차적으로 신채호는 근대적 맥락에서 유학적 遺習의 폐해를 지적하였으며, 유학이 사덕의 영역으로 축소된 당대의 평가를 인정하였다. 그는 도덕이 국가적 공공도덕인 민덕이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국민동포에게 필요한 도덕만을 논한다고 한정지었다. 신채호는 도덕 판단의 준거로서 생존과 이해를 제시하였다. 그는 인류는 생존 이외의 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이해’일뿐 이라고 단언하였다. 조선의 근대 주체인 대아는 개인적 생존만을 위하는 사욕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유나 계급적 평등 혹은 인류 평화와 같은 보다 고차원적인 도덕이념과 같은 적극적 이해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공공의 도덕인 민덕 실천에 한결같이 留意하는 자를 ‘애국군자’라고 표현하기도 하였으며, 제국주의 침략이란 시대적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원천적 힘인 도덕을 실천하는 신국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히 1920년대에는 무산대중의 대아적 생존인 자유와 평등의 향유를 강조하였다. 선각한 민중은 도덕적 시의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자각 능력이 있으므로 사적 차원의 이해타산에 집착하지 않고 민족적 차원의 생존과 세계적 차원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는 민족적 도덕을 견지하되 그것이 ‘인류로써 인류를 억압하지 않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다. Shin Chaeho prescribe that period as the struggle period between imperialism and nationalism, and thought the source of the western powers are Ethics. If we could nte know the ‘Now Here’ we never prescribe the modern Ethics. So we have to look straightly the ruined people. Shin Chaeho firstly thought the cause of the ruined people. Old customs of Confucianism, he premised the ‘Ethics“ function as a national public Ethics. He present the right to survive and interests as the standard of the Ethics. Because humankind has only the object to live and survive, he thought the source of all problem is the relation of gain and loss. And he thought as the modern main agent to judge modern morality as global Ego or Nationalist and thought as new nationalist in the side of Modern national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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