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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의 불교시(佛敎詩) 연구(硏究):-승려와의 교유시를 중심으로-

        김재욱 ( Chee Wook Kim ),송혁기 ( Hyok Key Song ) 근역한문학회 2014 漢文學論集 Vol.38 No.-

        불교는 고려의 후기로 갈수록 영향력이 약화되지만, 고려 사회를 지탱해 주는 주된 사상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민간에서는 중요한 의례를 불교식으로 거행했으며, 고려 후기에는 선종과 정토사상 역시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陶隱 李崇仁(1349~1392)의 불교시 창작은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한시 440여 수 중에는 불교의 취향이 드러나는 작품이 다수 있으며, 51편의 산문 가운데에서도 불교의 색채가 보이는 작품이 눈에 띈다. 고려 후기 문인의 문학은 성리학을 제외하고 논할 수 없다. 대부분의 문인들이 성리학에 정통했고, 이후 그들이 조선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현재 그들의 문학에 대한 연구도 성리학을 중심에 두고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반면 불교는 부분적으로 언급하거나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고려가 불교의 나라였음을 감안할 때 다소 일방적인 연구 경향이 아닌가 한다. 이숭인의 경우도 이런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불교만으로 이숭인의 문학과 사상을 설명하여 기존의 경향에서 다소나마 벗어나 보고자 했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文을 통해 그의 불교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았다. 살펴본 결과 이숭인은 비록 불교의 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불교에 호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불교의 가르침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불교의 지나친 세속화는 비판했지만, 불교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고려 후기에는 선종의 일파인 임제종의 선풍이 크게 유행했다. 이숭인은 임제종의 선승인 태고 보우를 비롯하여 환암 혼수, 천봉 만우 등과 직간접적으로 교유하였다. 이러한 교유는 작품의 창작으로 이어졌다. 그의 불교시 안에는 선의 중심사상이 충실이 반영되어 있었으며, 불교의 교리도 함유되어 있었다. 이숭인은 불교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불교를 통해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불교의 출세간적인 경향에 공감하여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고, 불교적 수행을 통해 마음의 안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이숭인의 시를 살펴본 결과 그는 불교에 상당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고, 불교를 대하는 태도 역시 호의적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는데 본 논문이 다소나마 보탬이 될 수 있으리라는 점에 의의를 둔다. During the final phase of Korea dynasty, Buddhism had remained as the fundamental social philosophy, though its influence had steadily diminished. Still, important social ceremonies followed the instructions of Buddhism. Also the Zen Buddhism and the Pure Land Idea were deeply rooted in the Korean society. Lee Soong-In’s Buddhist poetry should be understood in relation to this historical background. Many of his 440 poems were influenced by Buddhism, and so do some of his 51 essays.The literature of the gentry class in the late Korea dynasty is inseparable from the Neo-Confucianism. Most of the gentry scholars, who later founded the Chosun dynasty, had deep understanding of Neo-Confucianism. For this reason, most of the studies on the gentry class literature of the Korea dynasty have focused on the influence of Neo-Confucianism, while the context of Buddhism is rarely mentioned. This study aims to view Lee Soong-In’s poetryfrom the perspective of Buddhism to close the gap.Through his literature, this study tries to explain Lee Soong-In’s thought on Buddhism. He did not specifically talk about the Buddhist principles in his writings, but it was very obvious that he maintained a friendly attitude toward Buddhism and also that he had profound knowledge about Buddhist philosophy. He criticized the over-secularization of Buddhism, but acknowledged positive role that the Buddhism was playing on the Korean society. Buddhism provided Lee Soong-in with an escape from the hard reality and a spiritual peace. Lee Soong-In was on good terms with important Buddhist monks, such as Bo-woo, Hon-Soo, and Man-Woo. This relationship with Buddhist monks was also reflected on his poe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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