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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I등재

        기관장(부서장)의 변혁적·거래적 리더십이 조직구성원의 창의성 발휘 및 연구성과물에 미치는 영향

        김병기(金秉基),이도선(李道善) 한국지방자치학회 2011 韓國地方自治學會報 Vol.23 No.3

        This study aimed to figure out what kinds of influence a head of an organization (a head of a department)"s transforming leadership (charisma, individual consideration and intellectual stimulus) and transactional leadership (conditional compensation and exceptional management) have on display of creativity and a R&D products of members of research organizations. The result of this study as follows. First, charisma and intellectual stimulus, sub-factors of transforming leadership of a head of an organization, has a statistically positive influence on display of creativity and a R&D products (p<.001), and as charisma and intellectual stimulus increases, display of creativity and a R&D products is also enhanced. Second, conditional compensation and exceptional management, sub-factors of transactional leadership of a head of an organization has a statistically significant positive influence on display of creativity and a R&D products of the organization members(p<.001), and as conditional compensation and exceptional management increases, display of creativity and a R&D products is also enhanced. Third, it was shown that display of creativity of the organization members had a statistically significant positive influence on a R&D products (p<.001), and as display of creativity increased, a R&D products also increased by .656. In conclusion, charisma and intellectual stimulus is main sub-factors of transforming leadership, and conditional compensation and exceptional management is main sub-factors of transactional leadership of a head of an organization in research institutions. And in order to deduct display of creativity and many R&D products from the organization members, it is necessary for the head of the organization to combine transforming leadership with transactional leadership appropriately.

      • KCI등재

        金生傳稱 筆蹟의 眞僞問題와 新評‘韓國書藝의 典型’에 대한 검토

        김병기(金炳基) 한국서예학회 2012 서예학연구 Vol.20 No.-

        본 연구는 통일신라시대의 명필로 알려진 金生의 眞品 筆蹟은 「太子寺朗空大師 白月栖雲塔碑」와 「田遊巖山家序」뿐이라는 선행연구의 바탕위에 그 외의 傳稱 작품「送賀賓客歸越」시와 「望廬山瀑布」시 필적의 진위 문제와 김생의 서예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검토하였다. 검토한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➀李白 詩文集의 成書와 출판 과정을 통해서 볼 때 김생이 이백의 시집을 보고서 이 시를 작품으로 썼을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➁중국 문화의 東漸에 약200년의 시차가 있었음을 고려할 때 이백의 「送賀賓客歸越」시나 「望廬山瀑布」시를 쓴 이 필적은 고려 중기 이후에 김생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에서 나온 글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➂김생의 傳稱 작품 「望廬山瀑布」시와 「送賀賓客歸越」필적을 수록하고 있는 大東書法에는 宋 王秋江의 시와 中唐 시인 白居易의 詩도 김생의 필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백거이가 作詩를 당시 김생은 112세이고 왕추강의 시는 김생 사후 400년에 지은 시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대동서법에 수록된 김생의 다른 전칭작품 「望廬山瀑布」시와 「送賀賓客歸越」시를 김생의 眞蹟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➃ 대동서법에 수록된 김생의 전칭작품 「望廬山瀑布」시 필적은 두 수 이상의 시가 원래 시문과 완전히 다르게 뒤섞여 있어서 문장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에 김생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후대의 누군가가 2편 이상의 시를 쓴 작품에서 부분적으로 채취ㆍ판각했기 때문이다. ➄「望廬山瀑布」, 「送賀賓客歸越」시 필적은 김생의 다른 필적과 筆劃, 結字, 章法 면에서 너무나 많은차이가 있다. 조선시대 이후에나 나올 법한 글씨이다. 이것을 김생의 진적으로 속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➅중국 서예사를 통관해 볼 때 최초의 詩卷 작품은 晩唐 詩人 杜牧이 自作詩를 쓴 「張好好詩卷」이고, 타인의 시를 卷의 형식의 서예작품으로 창작하는 풍조가 盛한 것은 宋 黃庭堅 시대 이후이다. 황정견(1045-1105)보다 334년 전의 김생이 당시에 아직 詩集도 출간되지 않은 상태였던 他人 李白의 시를, 중국에서 조차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卷형식의 서예작품으로 창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김생의 작품으로 傳稱 해오던 「望廬山瀑布」시와 「送賀賓客歸越」시 필적은 이제 완전한 위작으로 판정해야 한다. ➆김생의 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와 「田遊巖山家序」둘 뿐인데 새로운 자료를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생의 서예에 대해 ‘한국서예의 典型’ 혹은 “통일신라 이전의 삼국 글씨를 토대로 王法과 唐法까지 하나로 녹여내어 華嚴佛國의 圓融無碍한 金生體를 창출해냈다.”는 평을 하는 것은 무리이다. “結構에 있어서는 陰陽向背의 묘를 느낄 수 있게 하여 과거 어떤 사람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서법을 창안하였다.”는 평도 무리이다. 근거 자료를 가지고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以往的研究中指出金生的真品笔迹只有太子寺朗空大师白月栖云塔碑与田游巖山家序。本研 究将通过这些先行研究讨论传为金生作品的两首诗送贺宾客归越与望廬山瀑布笔迹的真伪问题, 并指出如何对金生书法的评价问题。研究结果的简要如下: ➀通过李白诗文集的成书与出版过程来看,金生看了李白诗集后写了此作品的可能性全无。➁因存在与中国文化东渐大约有200年的时差,李白的诗送贺宾客归越或望廬山瀑布流入韩半岛可能是 高丽中期以后事,所以把这两首诗看为金生真迹的看法是不可取的。➂ 大东书法里记录了诗望廬山瀑布与送贺宾客归越是金生的笔迹。在大东书法里也记录了宋人王秋江的诗与中唐诗人白居易的诗是今生的笔迹。而白居易作诗当时金生是112岁,王秋江的诗则是金生死后400年之后的作品。从这些情况分析,判定大东书法中记载诗望廬山瀑布与送贺宾客归越是金生的真迹,这一说法是非常不合道理。➃ 大东书法中所记载望廬山瀑布诗是两首以上的诗文混在一起而顺序颠倒,不成文章。是因为那些笔迹并非是金生的,而是后代的某人从两篇以上的诗中取之部分版刻的。➄诗望廬山瀑布与送贺宾客归越从笔划、结字、章法上与金生的笔迹有很大的差异。这些可能是中国宋朝以后,韩国朝鲜时代以后出现的笔迹。因此断定这些为金生的笔迹是非常危险的想法。➅从中国书法史来看,最初的试卷作品是晚唐诗人杜牧的自作诗张好好诗卷,而借取他人诗作以卷的形式创作的风潮, 盛行于宋朝黄庭坚时代。金生是新罗时代的人物,早于黄庭坚(1045-1105)334年。当时李白的诗集还没有发行,在中国卷形式的书法作品也不是很普遍,因此说是金生的真品笔迹是不成立的。那幺可以知道传为金生作品的诗望廬山瀑布与送贺宾客归越的笔迹是伪作。➆今天有人突然称金生的书法是“韩国书法的典范”或“以统一新罗以前的叁国字体为基础,将王法与唐法混为一体,创作出华严佛国之圆融无碍的金生体”。这是很奇怪的说法, 因为金生的真迹只有太子寺朗空大师白月栖云塔碑与田游巖山家序两个作品,在没有新证据之前,对金生书法进行以上评价是不合乎道理的。“在结构上叫人体会到阴阳向背的感觉,是前所未有的新创作。”的评价也是牵犟的,因以证据进行正确的评价。

      • KCI등재

        21세기 韓國書藝, 流派 形成의 必要性과 哲學的 指向點 試論

        김병기(金炳基) 한국서예학회 2010 서예학연구 Vol.16 No.-

        어느 장르의 예술이건 그 활동이 활발해지고 활동하는 작가가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流派를 형성한다. 그리고 그 유파가 성장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다보면 그유파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藝術思潮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동안 아시아 지역에서는 세계적인 예술 사조를 형성해 본적이 없다. 특히 서예는 사조를 형성하는 것은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대부분 도제식 교육에 의해 형성된 師承關係에 근거한계파만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서예는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의 예술로 확산되어 나가야 한다. 서예를 세계의 예술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사승관계에 바탕을 둔系派 개념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깊은 사상에 기초하여 특색이 있는 작품들을창작하고 그러한 사상과 특색에 따라 ‘流派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그 유파가 성장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예술 사조를 형성할 때 비로소 서예는 세계의 예술로서확고한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한국의 서예계는 유파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이상과 같은 한국 서예계의 상황에 비추어, 본고는 맨 먼저 한국의 서예계에 형성되어 있는 계파의 양상을 대강 살펴봄과 동시에 한국 서단의 당면문제를 짚어보았다. 그러한 후에 계파와 유파의 차이점과 유행과 사조의 개념차이, 그리고 21세기형 書藝觀의 정립 등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서예계가 계파를 떠나 유파를 형성해 나가야할 필요성을 진단해 보았다. 나아가 한국의 서예가 유파를 형성하기 위 해서 견지해야할 철학적 사고에 대해, 「先王之法服」을 통한 Fashion 문화의 淨化’,‘老子의 정신을 통한 「五感滿足」 意識의 정화’, ‘「無常形」을 배제한 蘇東坡 예술론을 통한 예술의 實化와 淨化 등을 예로 들어 試論해 보았다. 不管是什么类型的艺术,如果越来越活跃,创作者越来越多,那么就自然而然地形成流派。而当流派形成,并风靡一个时代,那么这一流派也可能成为代表这一时代的艺术思潮。近来,亚洲地区未曾形成世界级的艺术思潮,尤其是书法艺术,更是没有想过要形成思潮,而是大多依靠师徒式教育,形成师承关系,只存在有师承关系基础上的派系。现在,书法应该走出亚洲,发展成为世界的艺术。为了将书法艺术推向世界,我们不能拘囿于师承关系基础上的派系概念。我们应该在深厚的思想基础上,创作出有特色的作品,并根据这一思想和特色形成“流派”。当这一流派不断发展壮大,成为一个时代风靡的艺术思潮时,书法艺术才能作为世界的艺术站稳自己的脚跟。而韩国的书法还没能形成流派。对此,本文首先大致考察了韩国书法界的派系情况,同时指出韩国书坛所面临的问题,然后针对韩国书法界形成流派之必要性,从派系和流派的区别、流行和思潮的区别、二十一世纪型书艺观的确立等三个角度去分析。分析结果概括如下。➀ 要将韩国书坛派系划分清楚并非易事,因为怎样划分因人而异。在不排斥其他分法的前提下,我们以光复后第一代书法家为中心,对韩国书坛的派系进行分类,大致可分为20多个派系。最近第一代书法家大多已经去世,现今的韩国书坛派系以第二代书法家为中心来划分,一部分第三代书法家也正在形成派系。➁ 光复后韩国书法大多靠师徒式教育,同门学生很容易结成派系,但以其哲学追求和作品倾向而结成的流派却未曾形成。这样,以派系为单位开展活动的韩国书法界在举办作品征集活动时,会因评审问题而产生很多问题。因此,韩国书法界要想解决这些问题,必须为形成流派而努力才行。➂ 鉴于派系和流派概念的区别,韩国书法界有必要摆脱派系而形成流派。因派系是根据出身、交情、利益等而结成的排他性的集团,因此从根本上回避与其他组织的沟通和交流,固守自己的身份意识;而流派则如随地形变化而改变的水流,随世界的变化而自然顺应,同流的人们处于近似的环境,怀抱近似的思想,为追求共同的方向而结成团体。要想形成一个流派,至少必须有共同追求的哲学基础。➃ 鉴于流行和思潮概念的区别,韩国书法界有必要摆脱派系、形成流派。没有哲学主张和基础,一段时间后就消失无踪,这就是流行。而与之相反,思潮一开始就将哲学作为基础,其哲学思想就好像潮水一般流进一个社会,从而形成思潮,而派系却没有自己所追求的哲学。因为流派一开始就以哲学为基础,因此要想将来形成一种思潮,韩国书法界有必要在现在形成流派。➄ 要形成思潮,光靠韩国一国之力也许是不够的,东亚汉字文化圈,即书法文化圈国家应该付出努 力,相互观摩、相互沟通、共

      • 문학적 견지에서 본 한국서예의 독창성

        김병기(金炳基) 한국서예학회 2008 서예학연구 Vol.13 No.-

        本稿是通过对隶属古代金石文的廣開土太王碑文·百濟武寧王誌石文·朝鲜后期的書藝家蒼巖李三晩的書藝作品与書論文章的分析研究,完成了关于韩国書藝的独创性初步考察。考察的要略如下:➀ 统一新羅之后,即在对中国的事大之前的原始的韓民族書藝時期,韩民族所特有的书藝与中国的书法有着较大区别,即独创性。这种独创性可以简单的概括成为‘无意图性’。所谓的’无意图性‘包含了自由性,自然性,豪放性,質朴性等深意。我们的民族从书法流入的初期开始便形成了一种非纯粹模仿 中国书法的模式,与有意图的临摹相比,我们更注重无意图性的自由书写。我们民族的这种性急的卓越创意性可以用‘卽創性’来加以形容。所谓‘卽創’中的‘學卽創’即在学习的同时进行思考并进行创造。➁ 从朝鲜后期完成朝鲜眞體的李三晩的作品,廣開土太王碑,百濟武寧王誌石,新羅的冷水里碑及赤城碑中也可以寻找到韩民族式書藝的無意圖性。➂ 廣開土太王的諡號被封为‘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意为将国家建立在丘陵之上并广泛开阔国土,造福百姓的好太王。这个諡號与后来受中国影响被称为‘眞平王’,‘武烈王’,‘文武王’的这些諡號在结构上完全不同,因此通过这个諡號也可以窥探出高句丽在文化上的独立以及其文化的独创性。➃ 廣開土太王碑文中所涉及的:"掃加城, 敦拔城, 婁賣城, 牟婁城, 于婁城,....."等虽是借助汉字来记录的,但也只是对纯粹高句丽语言的音译。由此可以看出廣開土太王碑中所体现的独创性。➄ 在廣開土太王碑中出现的‘屬民’一词在中国的许多典籍中无法找到。在『魏書』,『晉書』, 『宋書』,『梁書』等典籍中则未出现过‘屬民’一词。儒家的經典『周禮』中曾出现的‘屬民’一词也与廣開土太王碑中的‘屬民’之意不同。这又一次证明了高句丽文化的独自性。以上➂➃➄点通过廣開土太王碑的独自性可以看出廣開土太王碑的書藝与中国的书法相比具有自己的独创性。➅ 百濟武寧王誌石中‘百濟斯麻王’, ‘登冠大墓’, ‘立志如左’, ‘錢一万文, 右一件’, ‘故立券爲明’等是百濟人使用的独特的表现方法。由此可以推测百濟的書藝与中国的书法有着明显的差异。➆ 李三晚的书法作品自作文与他编写的書論文章也与中国的書論及文章有所差异,具有独特的内容及特别的文章形式。因此,独特的文章构成方式造就了与中国书法不同的朝鲜真体。 본고는 고대 금석문인 광개토태왕비문과 백제무령왕 지석문, 그리고 조선 후기의 서예가인 창암 이삼만의 서예작품과 서론문장을 중심으로 문학적 견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국서예의 독창성에 대해서 초보적인 고찰을 하였다. 고찰하고 증명한 바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➀ 신라가 통일을 이룬 후, 중국에 대해 事大를 하기 이전인 삼국시대, 즉 원형 적 한민족 서예시기에는 우리 민족만이 구사한 중국과는 판이한 독창성이 분명히존재하였는데 그 독창성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무의도성’이다. 이 ‘무의도성’이라는 말 안에는 자유성, 자연성, 호방성, 질박성 등의 의미가 포함됨은 물론이다. 우리 민족은 서예가 유입된 초기부터 중국의 서예를 의도적으로 모방하여 중국 서예와 닮게 잘 써보고자 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무런 의도가 없이 그저 ‘우리 식’으로자유스럽게 쓰고자 하였다. 우리 만족의 이러한 성급하면서도 탁월한 창의성은 ‘卽創性’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卽創’이란 ‘學卽創’, 즉 배움과 동시에 창작을생각한다는 뜻이다.➁ 조선 후기에 자각적 조선진체를 완성한 이삼만의 작품에도 원형적 한민족 서예시기의 광개토태왕비나 백제 무령왕 지석, 신라의 냉수리비나 봉평비, 적성비에서 느낄 수 있는 무의도성을 느낄 수 있다.➂ 광개토태왕의 시호인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은 “나라의 언덕 위에(國岡上) 묻히신 나라의 경계를 널리 넓히시고(廣開土境) 백성들을 평안하게 한(平安)좋고 위대한 왕(好太王)”이라는 뜻인데 이 시호를 통해서도 고구려의 독자적 문화와 문학의 독창성을 발견할 수 있다. 후대에 중국의 영향을 받아 부르게 된 ‘眞平王’이니 ‘武烈王’이니 ‘文武王’이니 하는 시호와는 완전히 다르다.➃ 비록 한자를 빌어 기록했지만 掃加城, 敦拔城, 婁賣城, 牟婁城, 于婁城 등은순수 고구려 말이란 점을 통해서 볼 때 광개토태왕비문은 중국과 다른 문학적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➄ 광개토태왕비 이외에 중국의 다른 典籍에서는 광개토태왕비에서 사용한 의미와 같은 의 ‘屬民’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魏書』,『晉書』,『宋書』,『梁書』등에는 아예 ‘屬民’이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儒家의 경전인『주례(周禮)』에서 더러 ‘屬民’이라는 말이 보이나 그 뜻은 광개토태왕비문의 그것과는완전히 다르다. 고구려 문학의 독자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다. 이상 ➂, ➃, ➄와 같은 광개토태왕비의 독자성을 통해서 볼 때 광개토태왕비의 서예도 중국서예와는 다른 독창적인 서예를 구사했다는 점을 간접 증명할 수 있다.➅ 백제 무령왕 지석에는 ‘百濟斯麻王’, ‘登冠大墓’, ‘立志如左’, ‘錢一万文, 右一件’, ‘故立券爲明’등 백제인들만이 구사한 독특한 문장 표현법이 있다. 이를 통하여백제의 서예 또한 중국의 서예와 뚜렷한 차이를 보였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➆ 이삼만의 自作文 서예작품과 그가 지은 書論문장에도 중국의 문장이나 중국의 서론과는 다른 독특한 내용과 특이한 형식의 문장이 들어있다. 이처럼 독특한문장을 구사한 그였기 때문에 중국서예와는 다른 자각적 조선진체를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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