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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 침묵」에서의 ‘님 찾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구연상 한국하이데거학회 2010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23

        This paper aims to analyze a Korean poem, “The Silence of My Love” written by Manhae Han Yong-un, with a frame of Shim-oo-do, also called as “The Ox-herding Paintings.” It is a series of Buddhist paintings describing a story of an oxherd, from his seeking out a lost ox to bringing it back to his hometown. The paintings and songs of getting back the lost ox help people understand the nature of Buddha easily. In a Korean poem titled “The Silence of My Love”, it is “Nim (or “my beloved” in English)” which corresponds to the nature of Buddha. Nim refers to everything that is formed in love between Nim and “me”. To Manhae, “Girum (or “love” in English)” is a willingness to take care of something, to show every kindness to others, as he always longs for something. Nim, the object of “my” affection, is the one whom “I” can meet and leave, the one who can give “me” both pain and hope, and the one who can be different from “me” but become one with “me”. According to this paper, the ultimate nature of Nim can be found in the process of “becoming one.” Also, this paper explains the poem “The Silence of My Love” in four stages, comparing each stage with that of “The Ox-herding Paintings”. To sum up, the first stage of “finding Nim” is “my” wandering to getting back Nim who has left me, the second one is “my” re-tracing Nim’s step. “I” manage to discover Nim but lose Nim’s love again and that is the third stage. “I”, however, end up reuniting with my Nim creating a touching scene in the final fourth stage, after realizing the order of nature and the ties between people. These four stages can be compared to those of “The Ox-herding Paintings” respectively: In the paintings, the ox-herd wanders in the mountains to find his lost ox (The first state). He discovers the ox’s footprints, follows them (The second stage), and finally regains it (The third stage). He tames the ox, concerned losing it again (The fourth stage). Through these four stages, “I” deeply understand the nature law and accept that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life and death as they are basically “the same thing”. Based on this realization, “I” get to have the hope and confidence that “I” would meet Nim again and can live on hugging Nim in “my” mind, as if “I” am with Nim. The process of “my” reaching such spiritual stage is also described in “The Ox-herding Paintings,” as the song of an oxherd’s going home riding his ox. 이 글의 목적은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심우도의 틀에 비추어철학적으로 성찰해 보는 데 있다. 심우도는 잃어버린 소를 되찾는 과정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사람들은 ‘소 되찾기 그림’과 ‘소 되찾는 노래’를 보고 읽음으로써 불성의 본질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님의 침묵」에서 불성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은 ‘님’이다. ‘님’은 ‘나’와 기룸의 관계에 의해 맺어진 모든 것을 말한다. 만해에게서 기룸은 아끼고 보살피려는 마음, 그리고 늘 그리워하고 더 베풀지 못해아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기룸의 대상으로서의 ‘님’은 만나거나 헤어질 수 있고,고통이나 희망을 줄 수 있으며, ‘나’와 다르거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 글에서 ‘님’의 본래적 정체성은 이러한 ‘하나 됨’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이 글은 「님의 침묵」을 네 단계로 풀이하면서 각 단계를 심우도의 진행 단계와 비교한다. ‘님 찾기’의 첫 단계는 ‘나’가 ‘떠나버린 님’을 다시 되찾기 위해 길을 헤매는과정이고, 둘째 단계는 그 ‘님’의 발자국을 되쫓는 단계, 셋째 단계는 ‘님’은 가까스로 다시 찾았지만 ‘님의 기룸’을 끝내 다시 잃어버리는 단계, 그리고 마지막 넷째단계는 ‘나’가 자연과 인연(因緣)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님’을 감격적으로 다시 만나는 행복의 단계이다. 이러한 단계는 심우도가 나타내는 심우(尋牛), 견적(見跡),견우(見牛)와 득우(得牛), 그리고 목우(牧牛)에 견줄 수 있다. 이러한 네 단계를거친 ‘나’는 자연의 이치를 깊이 깨닫고, 헤어짐과 만남 그리고 삶과 죽음이 ‘하나’임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러한 깨달음과 받아들임에 기초하여 ‘님’과의 만남을 확신할 뿐 아니라, 이미 그 만남의 세계 속에서 ‘님’과 하나 된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경지는 심우도에서 기우귀가(騎牛歸家)의 노래로 그려진다.

      • KCI등재

        낱말 풀이를 통해 본 존재론적 차이

        구연상 한국하이데거학회 2009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19

        Der Zweck dieses Artikels liegt darin, um die Wesensherkunft von der ontologischen Differenz herauszufinden. Zu diesem Zweck müssen wir erst einmal analysieren die Bedeutung der Differenz. Das Analysieren besagt im Sinne von Kant das, etwas von der Quelle zu erklären, von der es herkommt. Weiter wollen wir auch begrenzen den Sinn der Ontologie. Die Ontologie als die Wissenschaft vom Sein ist von der Strutur der Onto-Theo-Logik(Metaphysik) charakteriesiert. Um zu erklären den Ursprung der ontologischen Differenz will ich fragen nach das Wesen der Metaphysik. Ich analysiere die Ontologie von Platon und Hegel, um die Art der ontologischen Differenz zu unterscheiden. So können Wir verstehen besser die Behauptung von Heidegger, daß die ontologischen Differenz wird im Hinblick auf den Grund(Logos) verstanden. Ich interpretiere den Austrag, den Heidegger den Namen der Wesensherkunft von der ontologischen Differenz heißt. Schließlich denke Ich das Problem der koreanischen Übersetzung von den Austrag. 이 글의 목적은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론적 차이”의 본질 유래를 밝히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차이의 의미를 분석한다. 이때 분석(分析)한다는 것은 칸트적 의미에서 어떤 것을 그것의 본질 내지 근원에로 되돌려 주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또한 존재론의 의미도 나름대로 한정하고자 한다. 존재론이 존재에 대한 학문을 뜻하는 한, 그것은 “형이상-학”을 일컫는다. ‘자연 너머’에 대한 학문으로서의 “메타-피직”이 자연과 그 너머의 구별, 즉 존재자와 존재의 구별에 터하는 한, “형이상-학”의 본질을 밝혀내는 일은 존재론적 차이의 본질 유래를 해명하는 것과 같다. 나는 존재론적 차이의 종류를 밝히기 위해 선행적으로 플라톤과 헤겔의 존재론을 분석한다. 그로써 우리는 존재론적 차이가 근거의 관점에서 이해되어 왔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하이데거가 존재론적 차이의 본질 유래에 대한 이름으로 제시했던 “아우스트락(der Austrag)”의 의미를 풀이해 본다. 그 과정에서 “아우스트락”의 번역어 “내어나름”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새로운 옮김말 “날라내기”를 대안으로 제시해 본다.

      • KCI등재후보

        글쓰기와 논술

        구연상 한국하이데거학회 2008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17

        Writing is usually explained “logical writing”, but it means ‘statement arguing about something’. To argue is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in the proposal at question. To distinguish is to ask someone the reason, why he puts his assertion over the problem, and to discriminate right between wrong in given reasons according to own’s criterion. ‘Statement’ is the sentence, that reveals something from predication itself and we talk about it each other. The aim of compositing the sentence is writing itself. Composition has the process, that makes words into sentence, and sentences into paragraph. But this process is regulated through the structure of writing already. Composition is the action that make new writing. The action itself has purposes that intents to share the meaning each other. Writing is the work to write down with writing instrument using own body. Writing is the way to arrange ideas in order to share it together. Writing is the processing, that selects suitable forms for composition. Writing is making a work of words which can be variously interpreted. “논술”은 흔히 “논리적 글쓰기”로 풀이되지만, 낱말 자체로 보자면, “어떤 것에 대해 논하는 진술(陳述)”로 풀이하는 게 마땅하다. “논(論)”이란 “어떤 문제에 대해 누군가의 말이나 방법으로써 그것의 의미나 옳고 그름 등을 따지는 것”을 말한다. 따지기는 주어진 문제에 대해 누군가에게 이유를 캐묻고, 나름의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는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진술”이란 숨겨져 있던 어떤 것을 서술된 것 그 자체로부터 밝게 드러내어 서로 함께 나누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글짓기는 집짓기의 보기에서 알 수 있는 바처럼 글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글짓기의 과정은 낱말들로써 문장을, 문장으로써 문단을 이루어나가는 순서를 밟지만, 이 과정은 이미 “글의 얼개(구상)”을 통해 설계된다. 글짓기는 주어진 재료들을 활용하여 새로운 글을 만들어내는 행위이지만, 그 행위 자체는 다시금 의미와 같은 것을 서로 함께 나누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글쓰기는 자신의 신체와 도구들을 사용하여 글을 적어 나가는 일을 말한다. 글쓰기는 생각들을 정돈하여 서로 함께 나누기 위한 방식이다. 글쓰기는 글짓기의 목적에 적합한 형식들을 선택해 나가는 과정이다. 글쓰기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안고 있는 말의 작품화이다.

      • KCI등재후보

        ‘오늘날’(das Heute)에 대한 하이데거의 현상학적-해석학적 탐구

        구연상 한국하이데거학회 2006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14

        Heideggers phnomenologische-hermeneutische Untersuchung vom Heute In dieser Abhandlung handelt es sich in Hinsicht auf die hermeneutische Phänomenologie um Heidegger's Diagnose vom Heute in Deutschland am Anfang 20's Jahrhundertes. Erstens darstellet sich, wie Heidegger die Geschichte der Hermeneutik von der ursprünglichen Hermeneutik von Heraklit zu der Lebenshermeneuntik von Dilthey erfaßt. Zweitens erklären wir die durchschnittliche Alltäglichkeit hinsichtlich des Heute, von dem Heidegger seine Philosophie beginnt. Das damalige Heute wird durch das Geschichtsbewußtsein bei Spengler und die philosophische Erfassung bei Sprange als die universale Gestaltung aufgewiesen. Diese Gestaltung wird durch das Neugier durchherrscht. Die Geschichte und Philosophie stellt das Heute als Selbstausdruck des Geistes vor. Das Heute bedeutet die zeitige Alltäglichkeit, die durch die Erfassung vom Menschen und die Aufklärung der Welt konstituiert wird. 문】본 연구는 20세기 초 독일의 ‘오늘날’에 대한 하이데거의 진단을 해석학적 현상학의 관점에서 탐구한다. 먼저 철학의 방법론으로서의 해석학과 현상학을 통합시키고 있는 하이데거의 해석학의 역사적 위치를 검토한다. 하이데거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근원적 해석학으로부터 딜타이의 삶의 해석학에 이르는 해석학의 역사를 간략히 검토함으로써 자신의 해석학을 정초한다. 다음으로 본 논문은 하이데거 해석학의 출발점인 평균적 일상성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사례 제시적 방식으로 해명한다. 이를 위해 당시의 오늘날에 대한 슈펭글러의 역사의식과 슈프랑에의 철학적 파악에서 드러난 근본 경향을 보편적 형태화로 제시한다. 당시의 오늘날은 주관성을 넘어 객관화로 나아가는 시대로서 규정되고, 삶의 보편적 체계화는 당시의 일상성을 각인해 준 호기심에 의해 주도된 것으로 규정된다.역사학과 철학이 호기심에 이끌려 형성한 ‘오늘날에 대한 당시의 관념’은 인간과 그의 세계를 삶과 정신의 관계에서 파악하고자 했던 경향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인간은 삶과 정신과 영혼 등의 복합체라는 관념과, 문화란 정신의 자기표현이라는 입장 등이 한데 어우러져 당시의 ‘오늘날’이 형성된 것이다. 오늘날은 인간에 대한 파악과 그가 머물러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해명이 함께 작용하여 불러일으키는 ‘시대적 일상성’을 뜻한다.

      • KCI등재후보
      • KCI등재후보

        말의 얼개와 특징들어가기

        구연상 한국하이데거학회 2005 현대유럽철학연구 Vol.0 No.11

        In dieser Abhandelung wird die Grundverfassung und die einigen Kennzeichnungen der Sprache bertachtet. Heideggers Denken nach, die Rede wird als ein Existenziales des Daseins von das Worüber, das Geredete als solches, Mit-teilung, Bekundung als Sichaussprechen konstituiert. Diese Abhandelung ergänzt die Verfassung der Rede. Der Redner und der Hoerer wird in erster Linie vervollständigt. Und dann 'Rede-Situation', 'die Rede(Sprache) selbst', und das Reden(Sprechen) sind eingesetzt. Das Letzte teilt sich in 'das Geredete als solches', 'das Worumwillen des Redens', 'das Mit-haben' ein. Die vergleichende Sprachwissenschaft und die Sozialsprachewissenschaft hilft mir die Kennzeichnung der Sprache geben. "Es gibt nichts ein Wort", das heißt die Ungewißheit und Offenheit des Sinnes von Sprache, "die Sprache ist lernbar und lehrbar", das meint das Gemeinschaft und Geschichtlichkeit und Universalität der Sprache, "Die Sprache spricht", das sagt das Eigentlichkeit bzw. Selbständigkeit(das In-sich-sein) der Sprache selbst, "Die Sprache ist anders als die ausgeführliche Landkarte", das zeigt die mannigfaltigen Möglichkeit der "Vertretung für...(stand for...)" an. Durch diese phänomenologische Erörterung über die Kennzeichnung der Sprache versucht ich es deutlich zu machen, daß die Sprache die Materie, das Zeug und der Entwurf zum Stiften der Sinnwelt ist. 이 논문은 말의 근본구성틀과 몇 가지 특징들에 대한 탐구이다. 하이데거에 따를 때 말은 실존범주의 하나로서 ‘말의 대상’, ‘말해진 것 그 자체’, 전달, ‘자기를 말함’에 의해 구성된다. 본 논문은 그에 대한 일종의 보완이다. 무엇보다 ‘말하미와 들으미’에 대한 분석이 보완되었다. 그리고 ‘말-자리’와 ‘말-자체’ 그리고 ‘말하기’ 등의 요소들이 첨가되어야 함도 증명되었다. ‘말하기’ 현상은 ‘말해진 것 그 자체’(뱉은말)과 ‘말하기-까닭’, ‘함께-갖기’와 ‘말속’ 등의 세부 현상들로 구성됨도 보였다. 본 논문은 비교언어학과 사회언어학의 도움으로 말의 주요 특징들을 제시했다. “하나의 낱말은 없다”는 말로써 규정된 말의 특징은 말의 의미의 불확실성 또는 개방성을 뜻하고, “배우고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의 특징은 말의 공동체성과 역사성 그리고 보편성을 나타내고, “말이 말한다”는 특징은 말 자체의 고유성 내지 독자성(그 자체로 있음)을 일컬으며, 정밀사진과 다르다는 특징은 말의 다양한 차원의 ‘대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논자는 말이 의미세계를 건립하기 위한 재료이자 도구이며 그 청사진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 기술시대의 근본기분 ―하이데거의 기술강연을 중심으로―

        구연상 한국현상학회 2002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19 No.-

        이 논문은 기술시대로서의 현대를 조율하는 세 가지 근본기분인 경악과 경이 그리고 초연함에 대한 분석을 제시합니다. 기술시대는 기술의 본질에 의해 규정된 시대를 말합니다. 하이데거에 따르자면, 기술의 본질(“몰아세움”/Ge-stell)은 존재와 인간을 각각의 본질로부터 이탈시키는 위험입니다. 본 논문은 이러한 위험에 대한 하이데거의 사유를 기분의 측면에서 해설 합니다. 기술은 경악의 대상입니다. “경악거리”는 “위험하지만 가까운(친숙한)것”입니다. 이 친숙함 속에 숨겨진 위험성, 그것이 경악을 자아냅니다. 경악 속에서 우리는 이미 가깝게 지내던 기술품들로부터 멀어지려 하면서 그것들의 위험이 어떠한 위험이고, 그 위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의심과 숙고에 빠져듭니다. 기술은 또한 경이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경이-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던 것”입니다. 이 먼 낯섦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새로움, 그것이 경이로움을 자아냅니다. 경이는 어떤 것의 본래적 가능성이 두드러져 나올 때의 충격입니다. 기술에 대해 경악하는 사람은 기술의 위험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고, 기술에 대해 경이를 느끼는 사람은 그 기술의 본질 속에 간직된 존재 진리의 피어오름에 대해 감사함을 느낍니다. 기술의 본질에 대해 숙고하는 사람은 기술의 위험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본래적 존재진리에 대해서는 긍정합니다. 초연함은 이러한 “긍정과 부정의 동시성”을 말합니다. “초연함”은 기술품들의 받아들임(einlassen)과 동시에 그 기술품들이 강요하는 관계 방식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는(Ioslassen) 태도 또는 기분을 말합니다. 기술의 위험을 위험으로서 감지하고, 그 위험 속에 간직된 기회를 발견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경악과 경이 그리고 초연함의 근본기분이 앞서 개현 되어 있어야 합니다. 위험은 경악을 통해, 기회는 경이를 통해 드러나며, 기술에 대한 본질적 태도는 이 두 기분의 동시성으로서의 초연함을 통해 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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