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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淸阿克敦<<奉使圖>>初探

        黃有福 韓國暻園大學校아시아文化硏究所 中國中央民族大學韓國文化硏究所 1999 亞細亞文化硏究 Vol.3 No.-

        경원대학교 아세아문화연구소와 중국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는 한중문화교류사 사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재 중국민족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나라 아극돈의 《봉사도》를 발견하였다. 아극돈은 1717(숙종43)년, 1718(숙종44)년, 1722(경종2)년, 1725(영조1)년에 걸쳐 네차레 조선을 다녀간 청나라 사신이었다. 1725년 3월에 영조대왕 책봉식에 부사자격으로 참여하고 돌아가 그해 6월에 마지막 사행을 토대로 《봉사도》를 만들었다. 《봉사도》는 20폭의 그림으로 된 그림책과 시와 발문으로 엮은 글책 두권으로 되어 있는데 책의 크기는 모두 가로 29㎝, 세로 46.5㎝ 이고 매폭의 그림은 가로 51㎝, 세로 40㎝이다. 20폭의 그림은 앞의 두폭을 제외한 나머지 18폭은 모두 조선의 풍경이다. 논갈이하는 농부에서부터 궁중의례 및 사행, 연희, 도성 등 여러가지 내용을 중국화풍으로 생생하게 재생시키고 있다. 21명의 그 당시 유명했던 화가, 서예가, 문인, 관료들이 시나 발문의 형식으로《봉사도》글을 남겨 놓았다. 《봉사도》는 아극돈이 기획했고 그의 설계에 따라 조선조 왕궁의 화원과 청사신중 화공이 공동으로 그림을 작성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봉사도》는 18세기 초엽 조선왕조의 역사, 사회, 민속, 문화 연구의 중요한 그림자료로 사료될 뿐만 아니라 청나라 초기 회화, 서예 예술 및 시문학 연구의 보귀한 자료로도 평가되고 있다. The institute of Asian Cultural Studies at Kyungwon University and the Institute of Korean Studies at the Central University for Nationalities University jointly found "Bongsado" by A-Keuk-don in the process of investigating the historical documents of the cultural exchange between Korea and China. "Bongsado" is in 중앙 민족도서관`s collection for the present. A-Keuk-Don was a ch`ing envoy who visited Korea four times, in 1717(King Sookjong 43), in 1718(King Sookjong 44), in 1722(King Kyungjong 2), and in 1725(King Youngjo 1). He made "Bongsado" in June, 1725, on the basis of his experience as an envoy of King Youngjo`s enthronement in March, 1725. "Bongsado" consists of a 20 page picture book and two books made up of poems and extracts. The size of the books is 29㎝×46.5㎝. The size of the picture book is 51㎝×40㎝. All the pictures, with the exception of the first two, are vivid representations of Korean Iandscape, such as farmers plowing in the field, ceremonies in the Royal court, trips of the envoys, banquets, and the palaces-the capital city. The celebrated contemporary Chinese artists, calligraphers, men of letters and government officials made a contribution to "Bongsado" "Bongsado" is presumed to be jointly produced by artists of Korean Royal court and the Chines artists among Ch`ing envoys, under the superintendence of A-Keuk-Don. "Bongsado" is a precious historical material not only about the early 18th century Korean history, society, folk customs and culture but also about the art, calligraphy and poetry of the early ch`ing dynasty.

      • 《奉使圖》成??始末

        黃有福 韓國 暻園大學校 아시아文化硏究所 中國 中央民族大學 韓國文化硏究所 2000 亞細亞文化硏究 Vol.4 No.-

        한국 경원대학교 아세아문화연구소와 중국 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가 실시하고 있는 학술협력연구의 결실인 《봉사도》가 정리, 출판되었다.(중국 요녕민족출판사, 1999년, 심양) 《봉사도》는 지금까지 발견된, 중국측 사신이 그린 조선에 관계되는 유일한 화책으로서 청나라와 조선조 전기 문화교류사, 정치외교사 및 18세기 조선조 역사, 사회, 민속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동시에 중국에서는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년간 회화, 서예 및 시가문학에 대한 중요한 연구자료로 알려지고 있다. 《봉사도》는 조선을 네차례 다녀간 청나라 사신 아극돈이 1725년 3월에 영조대왕 책봉식에 부사자격으로 다녀가면서 기획했고 그의 의도에 따라 조선조 왕궁 화원과 청나라 화공이 선후하여 그림을 작성하였다. 아극돈은 매폭의 그림에 시를 써 넣었는데 그 시들은 《동유집》에 수록되었던 28수의 시를 그대로 그림의 경우에 따라 옮겨놓은 것이다. 《봉사도》그림이 작성된 후 21명의 그 당시 유명했던 화가, 서예가, 문인, 관료들이 시나 발문의 형식으로 그림 앞뒤에 글을 남겨놓았다. 본 논문은 《아세아 문화연구》 제3집에 발표된 "청나라 아극돈의 《봉사도》에 관한 연구"를 이어 《봉사도》작성과정과 유전과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One of the products of cooperation between the Asian Cultural Studies at Kyungwon University and the Institute of Korean Studies at the Central University for Nationalities was the discovery, compilation and publication of the "Bongsado." "Bongsado," written and painted by the Qing envoy A-Keuk-Don, with newly added annotations, was published by the Liaoning Nationalities Publishing House at Shenyang in 1999. "Bongsado" was the only book with pictures painted and written about Korea by a Chinese envoy in ancient times. It is the only and precious material for the study of the early cultural exchanges and the political and diplomatic history between the Qing Court and Korea. It provided very precious scenes for the study of the history of Korean royal dynasty at the beginning of the 18th century. Besides, it also provided precious material for the study of the art of painting and calligraphy and poetry and literature of the Kangxi, Yongzheng, and Qianlong periods of the Ch'ing Dynasty. The discovery of "Bongsado" has attracted widespread interests in the Chinese and Korean academic circles. Its publication would bring the interests to a higher level of study. I have published two theses about the study of "Bongsado." The first one "On the Newly Discovered Bongsado" was published at the Second International Academic Symposium sponsored by the Institute of Asian Cultural Studies at Kyungwon university, while the second one "A Tentative Probe into the Bongsado by A-Keuk-Don of the Ch'ing Dynasty" was published in the third issue of the "Asian Cultural Studies." This thesis will focus on the making of the original version of "Bongsado" and the process of its circulation.

      • ‘조선족’은 누구인가? - 조선족의 정의 및 개관

        황유복 동덕여자대학교 한중미래연구소 2013 한중미래연구 Vol.1 No.-

        본고는 조선족에 대한 정의를 살펴봄과 동시에 이들을 어떻게 호칭해야 되는 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현재 중국에는 한국외교통상부가 ‘재중동포’라고 분류한 사람들이 260만 명 거주하고 있다. 한국의 700만 재외동포 중에서 한 나라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 숫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명확한 한국내에서 통일된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 여러 혼란 을 야기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2장 조선족의 정의에서는 조선족의 이주경향과 활동상에 대해 정리하 였고, 3장 조선족과 한국계미국인 부분에서는 ‘한국계중국인’이란 호칭과 ‘한국계 미국인’이란 호칭의 상호 관련성을 살펴보았으며 4-5장에서는 조선족사회의 형 성 과정과 현재 당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本文在考察朝鲜族定义的同时,也考察对他们的称呼。目前,有260万名被韩国 外交通商部归类为‘在中同胞’的人居住在中国。是韩国的700万海外同胞中居住人 数最多的一个国家。尽管在中居住的人口如此之多,但目前在韩国没有统一的称 呼,造成许多混乱。在本文中也指出了这些问题。在第2章中,整理了朝鲜族的移民 趋势和活动情况. 第3章主要区分朝鲜族和美籍韩裔部分里,中籍韩裔和美籍韩裔称 呼的关联性。第4,5章考察了朝鲜族社会的形成过程和现在面临的各种问题。

      • 중국에서의 이순신장군 관련 사료와 연구

        황유복(黄,有福)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 2005 이순신연구논총 Vol.- No.4

        중국과 한반도와의 관계를 담론할 때, 중국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소위〮〮 “입술과 이가 상호의존”한다는 “순치상의(脣齒相依)”라는 성구이다. 그런데 중한관계사에서 “순치상의”라는 말이 가능케 했던 최초의 역사사건이 바로 “임진왜란”이였다. 16세기 이전까지 한반도국가의 군사적 위협은 주로 대륙세력이었으나 1590년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통일된 일본이 1592년 조선에 대한 대규모 침공을 감행함에 따라 조선은 해양세력의 위협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의 조선 침략의 이유가 “명나라를 정복하기위해 길을 빌리는(征明假道)”것이었기 때문에 명의 입장에서는 “조선과 중국은 순치지국(脣齒之國)”이였다. 따라서 1592년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했다가 7년만인 1598년에 조명 연군에 의해 격퇴된 “임진왜란”당시 명나라는 8만 여명의 원군을 파견하여 왜구를 몰아내는 전투에 투입시켰다. 명나라는 “喪師數十萬, 糜餉數百萬” 이라는 표현과 같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전 국력을 소모하면서 “援朝御倭”의 역사사명을 다하였다. 그러한 관계로 “임진왜란”을 치른 7년간은 중국역사상 조선관련 기록을 제일 많이 남긴 시대였다. 1368년(명 홍무원년)에서 1644년 명나라가 멸망할 때까지의 방대한《명실록〮〮》의 조선관련 기록가운데서 임진왜란 7년간의 기록이 거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谈论中国和韩半岛关系时,中国人普遍使用“唇齿相依”这个成语。这个成语来源于“壬辰倭乱”。16世纪以前韩半岛主要受着大陆的威胁,随着1950年丰臣秀吉统一下的日本对朝鲜进行大规模的侵略,朝鲜面临着海洋势力的威胁。 因为日本侵略朝鲜的理由是“征明假道”,所以在明朝看来朝鲜和中国是“唇齿之国” 《明经世文编》卷402, 宋应昌《慎留撤酌经权疏》。。1952年日本侵略朝鲜后1958年被朝明联军击退,这时期即“壬辰倭乱”时期是在中国历史上有关朝鲜的纪录最多的时期。 1. 在中国有关李舜臣将军的史料 从《明史》和《明实录万力实录》中可以找到有关李舜臣将军的记载。 《万力实录》卷252和卷253中以朝鲜国王的报告形式记载了“壬辰倭乱”初期由李舜臣将军指挥的朝鲜水军的战胜情况。 山东巡按御史题:朝鲜国王咨报,本国兵将烧毁倭船一百一十艘,斩级三百二十颗,夺获器械,资粮无算,并将首级,盔甲,刀铳等解验。命兵部议奏。 《明实录万历实录》卷252,万历二十年九月乙亥条 兵部复辽镇督抚郝杰等题称:朝鲜国王咨报,官军斩获倭级一千二百五十有奇,烧毁倭船一百二十艘,夺获达马九十七匹,器械称是。夫倭寇猝至,朝鲜举国奔逃,兹幸各道陪臣鼓勇截杀,斩级千余以泄义愤。 《明实录万历实录》卷253,万历二十年十月已酉条 《明实录》中记载了1958年11月18日由李舜臣将军和明朝陈璘都督指挥的朝明水军的露梁海战,但此文献中只记载了陈璘没有李舜臣。《明史。陈璘传》记载“璘有谋略,善将兵,然所至贪黩”。还有有关陈璘遣往朝鲜后夺取李舜臣的功劳而报告的记载 《朝鲜王朝实录。宣祖实录》卷18,戊戌10月條。。 邢玠又报:近者倭兵二万余,舟以六七百计,纠釜山,泗川,巨济,间山各倭,将悉力西援行长,总兵陈璘即身先将士。鼓众大战,铳死大倭将石曼子,又生擒一部将,其焚溺死者无算,虽水中不能割级而犹斩三百余颗,攻收全胜,妖氛已平。 《明实录万历实录》卷329,万历二十六年十二月丙寅条 二十五年,封事败,起璘故宫,统广东五千援朝鲜。明年二月擢御倭总兵官,与麻贵刘廷并将......兵万三千余人,战舰数百,分布忠清,全罗,庆尚诸海口。初,贼泛海出没,官事法舟,故得志。及见璘舟师, 惧不敢往来海中。会平秀吉死,贼将遁 ,璘急遣子龙偕朝鲜将理舜臣邀之。子龙战没,蚕,金等军至,邀击之,倭无斗志,官军焚其舟,贼大败,脱者又为陆兵所歼,焚溺死者万计。 《明史》卷247,陈璘传 《明史。邓子龙传》中记载了李舜臣将军在救邓子龙的过程中牺牲的史实。 二十六年,朝鲜用师。诏以故宫领水军,从陈璘 东征。倭将渡海遁,璘遣子龙偕朝鲜统制使李舜 臣督水军千人,驾三巨舰为前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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