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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도 지유샤(自由社) 역사교과서 동아시아사 서술의 변화와 특징

        김보한(Bo-han Kim) 한일관계사학회 2011 한일관계사연구 Vol.40 No.-

        본고는 2009년판과 2011년판 지유샤 교과서를 비교하여 전근대 동아시아사 서술에 어떤 문제가 있고 어떠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각 시대별로 그 문제와 변화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2009년판과 2011년판 지유샤 교과서는 야마토정권을 ‘고대국가’의 범주에 넣어 서술하고 있다. 이것은 야마토정권이 ‘고대국가’ 단계에 진입하여 동아시아 국가 발전 단계와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는 역사의 유구함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둘째,2011년판 지유샤의 교과서에서는 서장(序章)의 표지에 이른바 ‘광개토대왕비’의 ‘신묘년‘ 기사 내용을 먼저 소개하고 있다. 서장의 ‘광개토대왕비’와 ‘신묘년’ 기사는 본문의 내용에서 왜의 ‘한반도 남부의 임나(가야)에 영향력 행사’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다. 셋째, 한반도의 여러 나라가 중국에 ‘책봉’을 받았다는 사실과 대비하여 일본 야마토조정은 독자성을 유지했다는 우월적 역사관을 강조하고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 세계에서 조공책봉 체제가 국제 질서를 주도하는 근간이었던 점을 무시하고 일본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있다. 넷째, 일본 신화를 별도의 소항목으로 편성하여 고대 일본의 신국관을 통해서 본래 일본이 천황의 국가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작금에 일본의 우경화 세력이 지향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바가 크다고 판단된다. 다섯째, 대단원 〈중세의 일본〉전면 표지에 몽골의 침입에 대비해서 쌓은 하카타만의 석축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막부와 조정이 하나로 뭉쳐서 세계 역사상 가장 강력한 몽골과의 싸움에서 일본의 승리하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기획된 것으로 판단된다. 여섯째, 왜구의 근거지로 새롭게 쓰시마ㆍ이키ㆍ마츠우라(松浦) 지방을 수록한 반면에 왜구의 주체와 관련해서 기존에 ‘고려ㆍ조선인의 연합설’에 대해서 새롭게 ‘무장상인단설’을 추가하고 있다. 이것은 본문의 내용에 왜구의 근거지를 삽입하여 내용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일본학자의 왜구 논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일곱째, 근세에서는 역사적 시야를 동아시아의 세계를 뛰어 넘어서 서양과 동남아시아로 그 시야를 확대시키고 있다. 즉 교과서의 근세 부분 내용에서는 동아시아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사적 관점에서 서술 체계를 세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처럼 전근대의 동아시아사 서술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2011년판 지유샤 역사교과서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 우월적 역사관으로 일관되어 있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This paper examined the change of the East-Asia historical narration in Jiyusha’s middle school textbook of 2009 and 2011. Its characteristics are as follow. First, Jiyusha’s textbook of 2011 narrated Yamato regime under the category of ancient state. Second, Jiyusha’s textbook claimed to support the chauvinistic historical view of the independent Yamato regime hy publishing the fact that the Han-peninsular was invested with govern from China. Third, It emphasized that the ancient Japan was the divine land through the Japan mythology and that Japan was the land of emperor. Fourth, the theory of ‘armed merchant group’ was added in previous theories regarding the substance of Wakou in the medieval age. Fifth, the historical view was expanded to the western civilization and the East-southern Asian history beyond the East-Asian world in the part of modern age. In the part of modern age of the textbook, it tried to overcome the limitation of East-Asia and to establish the system of historical narration in the view of world history. By examining the change of the East-Asia historical narration in Jiyusha’s textbook, it does fed real that the Han - peninsular is the main scapegoat of Japan’s chauvinistic historical recognition.

      • SCOPUSKCI등재

        안면부에 발생한 비색소성 흑색종 2례

        한예식,김보현,이정윤,안희창 大韓成形外科學會 1993 Archives of Plastic Surgery Vol.20 No.1

        Amelanotic melanoma is extremely rare and more aggressive than similarly staged pigmented lesion. It has been estimated that 2 percent of all melanoma is clinically amelanotic. The authors recently experienced 2 cases of amelanotic melanomas. An amelanotic melanoma of the left lower eyelid was widely excised, and reconstructed with the nasal mucochondral graft and Mustard cheek flap. Until 33month after the operation, no metastatic lesion was found and well being state. An amelanotic melanoma on the right buccal mucosa, in the other patients was widely excised and reconstructed with bilobed forearm flap. 10month later lung metastasis was noted.

      • 한국불교전서 전산화 성과 및 향후 과제

        한보광 동국대학교 전자불전연구소 2007 전자불전 Vol.9 No.-

        전자불전·문화재콘텐츠연구소는 1999년 한국불교전서 전산화 시범사업을 필두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에 거쳐 ‘한국불교전서 전산화 사업’을 성공리에 마무리하였다. 그리하여 한국불교전서 전14책의 전산화를 완료하고 인터넷을 통해 웹 검색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또한 인터넷 접속이 안되는 이용자를 위하여 한국불교전서 CD-ROM을 제작하여 회향하였다. 본 사업을 통해 불교학 분야와 첨단 컴퓨터공학 분야의 학제적 연구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본 사업을 통하여 한국불교전서 전14책을 전산화하였다. 본 사업의 성과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한국불교전서 전산화 사업을 통해 텍스트 전산화 관련 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다. 즉, 한국불교전적의 입력 및 유니코드에 없는 글자 관리 시스템 개발 기술, 한국불교전적의 데이터베이스 저장 기술 등의 한국불교전적의 검색 기술을 확보하였다. 또한 한문으로 작성된 고문서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통해 각종 전적문화재의 모든 문헌을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였다. 본 사업을 통해서 경제, 산업적인 부분과 학문적인 분야에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시공을 초월하여 전 세계 학자들에게 한국불교의 원전자료 제공하였고, 국내 한국불교 관련분야 연구에 기여하였다. 무엇보다도 한국불교 연구의 세계화에 꾀하고, 인터넷을 통한 자료의 제공으로 경비 절감에 기여하고, 마지막으로 불교종립대학인 본교 위상 격상과 건학이념 실천에 기여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불전 전산화의 미래를 위하여 몇 가지를 제언하였다. 아울러 이번 한국불교전서 전산화의 수행이 불전전산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작으로 더욱 정진해야 할 것이다. Heading digitalization model business of Hanguk Bulgyo Chonso in 1999, the Institute of Electronic Buddhist Texts & Culture Cotent had successively finished 'Digitalization of Hanguk Bulgyo Chonso' for 8 years from 2000 to 2007. Therefore, it completed digitalization of all 14 books of Hanguk Bulgyo Chonso and established web retrieval system in internet. In addition, it held a memorial service by making Hanguk Bulgyo Chonso CD-ROM for the user who can not contact internet. With this business, it resulted a fruit of interdisciplinary study in the area of Buddhism and high-tech Computer Science & Engineering. In this business, all 14 Hanguk Bulgyo Chonso was digitalized. The performance of this business was that it secured the text digitalization-related technology through this in the aspect of technology. In other words, it secured input and maintenance system development technology of letters not in the unicode, and a retrieval technology of Hanguk Bulgyo-related books such as database saving technology. Also, with the technology handling ancient documents with Chinese writing, it secured a technology which could manage all literatures of various cultural assets books. Through this business, it had a lot of outcomes in economic, industrial and scientific area. Especially, it provided data of the original text of Hanguk Bulgyo to scholars in the whole world beyond time and space and contributed to domestic Hanguk Bulgyo-related studies. First of all, it attempted globalization of Hanguk Bulgyo study, contributed to cost saving by providing data through internet, and, finally, was conducive to elevating the school's status as a Buddhist university and practicing school establishment ideology. It suggested several things for the future of digitalization of Bulgyo Chonso in this study. At the same time, the digitalization of Hanguk Bulgyo Chonso might be the beginning which opens new phase so religious purification may be needed more.

      • SCOPUSKCI등재

        거지증의 치험례

        한예식,김보현,이정윤,안희창 大韓成形外科學會 1993 Archives of Plastic Surgery Vol.20 No.1

        Macrodactyly is one of the rare congenital anomalies of the upper extrimity. Fastt found 19 cases among 1476 patients with congenital anomalies of the upperextrimity, an incidence of 0.9 percent. The index finger is most commonly invlove. Multiple digits are involved two to and the index-long fingers. The authors recently experienced one case of macrodactyly involving the thumb and index finger in 20 year old female patient. The patient was treated with finger shortening using multiple corrective step ostectomies with the preservation of joints. We present this case with a review fo the literature.

      • 다품종 소량 생산형 기업에서의 일정계획시스템 개발에 관한 연구

        심광보,정한일 대전대학교 산업기술연구소 2000 산업기술연구소 論文集 Vol.11 No.1

        This study is concerned with development a scheduling system for multiple-items manufacturing system considering due date, makespan and tardiness. The scheduling problem of this study has the characteristics of the job shop scheduling problem. Therefore, we use commercial product, that is ILOG, to obtain optimal solution for this scheduling problem. The scheduling system developed in this study consists of the scheduling engine, database and graphic user interface. The scheduling engine is developed with ILOG scheduler and solver that use constraint satisfaction methodology. And the database is implemented by SQL server. Finally the graphic user interface is developed with Microsoft Visual Basic.

      • KCI등재

        今川了俊과 「南九州 國人一揆」의 成立 背景

        金普漢 한국문화사학회 2003 文化史學 Vol.0 No.19

        남북조 내란기에 足利直冬과 一色範氏가 구주를 떠나자, 1360년대 남조는 구주에서 대세력을 형성하고 황금시대를 맞고 있었다. 한편 북조의 막부는 應安 3년(1370) 今川了俊을 九州探題로 임명하여 구주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고자 하였다. 了俊은 구주에 상륙하자마자 守護와 재지 무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펴 나갔다. 了俊이 구주에서 세력의 규합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가 부임하기 이전의 치밀한 준비와 부임 이후의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了俊은 부임하기 이전에 備後·安藝의 守護가 되어 中國 지방에서 군사력 기반을 구성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備後 ·安藝의 재지 무사와, 大友氏 및 石見·周防·長門의 재지 무사들을 주요한 군사력으로 편성하였다. 둘째, 了俊은 구주의 재지 무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書狀을 적극적으로 발급하며 세력을 규합하였다. 셋째, 막부도 了俊의 九州探題 임명을 구주에서 열세 만회의 전기로 삼기 위해 재지 세력의 규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넷째, 了俊은 군사력으로 일족을 중심으로 하는 直轄軍과 비혈연의 군사력도 끌어들여 강력한 무력으로 편성하였다. 또한 了俊은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대립관계에 있던 筑前의 전통적인 守護 少貳冬資를 유인 살해하는 정치적 과단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了俊의 부탁을 받고 冬資를 함정에 끌어들였던 島津氏의 이반은 了俊에게 있어서 하나의 정치적 시련이었다. 冬資의 살해 사건 이후 了俊은 島津氏의 근거지인 大隅와 융마가 위치한 남구주를 장악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펴게 되었다. 永和 2년(1376) 아들 滿範을 융마·大陽·日向 3개국의 대장으로 파견하고 島津氏를 공략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永和 3년(1377) 10월 남구주 지역에서 肥後·융마·大隅·日向의 재지 무사 61명이 「南九州國人一撥」를 결성한다. 이 一撥는 재지 무사들의 주체적인 의지와 자율적 요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지역적 결합체이었다. 미리 島津氏의 항복이라는 현실적 과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재지 무사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또한 「南九州 國人一擦」는 남구주 일대에서 재지 무사(國人)들이 결성하여 了俊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了俊의 구주 지배에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觀應擾亂以後, 1360年代の南朝の軍勢はれ州で大きい勢力を作り出し黃金時代を迎えていた. 幕府は應安3(1370)年に今川了俊を九州探題に任命して九州に劣勢を回復しようとした. 了俊が九州に下向して守護と在地領主層を積極的に幕府の味に引き입める政策が行なわれつた. 九州の專制的の支配が一次的の目標した今川了俊は政治的に葛藤の關係であつた少貳冬資を南朝の軍勢とたいじしていた肥後の水島に引き寄せて殺した. 彼の事件は島津氏久の離脫を引き起こして, 島津氏の根據地としている大隅國と융摩國がある南九州の掌握のために新しい政策を行なわなければならながつた. したがつて, 了俊は永和2(1376)年に肥前にいる子の滿範を융摩·大隅·日向らの3個國の大將に派遺して島津氏久を攻略しようとした. ところで, 永和3(1377)年10月に南九州の地域の肥後·융摩·大隅·日向國の在地領主の61人が「南九州國人一揆」を作り出した. 彼の的容, 一つは, 將軍家の御方のために一味同心し忠節を致す. 二つ, 島津氏が降參治定の上は重ねて公方御意を請け, 此の一揆の人人の知行分に競望を歲し, 公方御意を相待たず馳せ奇り防戰を致す. 三つ, 一揆の契約衆中において所領相論が出來の時は上裁を仰ぎ, 多分の儀をよつて沙汰すべし. 四つ, 島津氏の本領, 或は 恩地に入部することは, 公方御意を請け一揆の談合を加へ沙汰を致すべく, 公方訴課の事は理運の儀をもつて一同に歎き申すべしという的容でる. 契約狀の內容に見えば,「南九州國人一揆」は上部權力の軍事統率力に大きく依存した軍事的な性格が濃厚な一揆需であつたという側面がる. しかし, 在地武士たちが一揆を結成したのは彼らの所領支配の維持·擴大を實現する唯一な方法として一揆を選んでからであつた. また, 一揆は在地武士たちの主體的な意志をもつたので, 自分が作成した一揆契約狀には自律的な要求が具體的に盛り입まれることも事賓である. 卽ち, 島津氏の降參という現賓の課題に對處する方法を在地武士たちが自身の手に作るものであつた. したがつて, 「南九州國人一揆」は成立の動機によつて一揆の衆中の人人の要求が反影される在地武士(國人)たちの自律的な側面が强く殘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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