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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논문 : 이토 진사이[이등인재(伊藤仁齋)]의 『논어』 해석 -주자의 해석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임옥균 동양철학연구회 2012 東洋哲學硏究 Vol.69 No.-

        이 글은 이토 진사이의 『논어』 해석 태도와 그 내용을 주자의 『논어』 해석과의 비교를 중심에 두고 검토한 것이다. 진사이에게 공자는 우주 제일의 성인이었고, 『논어』는 우주 제일의 책이었다. 역사상 제일의 책도 아니고 세계 제일의 책도 아닌, 과장을 섞어서 우주 제일의 책이라고 하는 그의 표현에서 공자와 『논어』에 진사이의 존경의 념을 읽어낼 수 있다. 진사이가 이처럼 『논어』를 우주 제일의 책이라고 높였던 것은 『논어』가 가장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 최상의 진리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서 진사이가 유학의 참 모습은 삶 속에서 덕행을 기르는데 있으며, 학문은 지행을 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진사이는 일상생활의 인정에 가까운 것이야말로 보편적인 도가 될 수 있고, 인정을 벗어나는 것은 이단이 되고 만다고 경고하고 있다. 공자가 생각하는 인은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것을 세상에 펼쳐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끼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자는 공부하는 과정에 있는 제자들의 인을 아직 인정하지 않았으며, 거꾸로 제자들이 인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관중에 대해서는 그가 인하다고 인정하였다. 이러한 인의 포괄성에다가 진사이는 인의 지속성을 강조해서 『논어』를 해석하였다. 진사이는 주자의 『논어』 해석에 대해서 몇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논어』를 해석하면서 주관적인 心보다는 객관적인 예를 기준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의론을 위주로 하여 리중심의 해석을 하면 살아 있는 우주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본다. 셋째, 『논어』에 대한 체용론적 해석은 이단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넷째, 주자의 화이론적 『논어』 해석을 비판하고, 화이는 지역적 구분이 아니라 문화적 구분이라고 강조하여, 일본도 충분히 華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這個論文以與朱子的論語解釋的比較爲中心放在討論了伊藤仁齋論語解釋態度與那個內容. 仁齋對論語的編寫者接受鄭玄的見解, 認同子游·子夏與他們的門徒編寫了論語. 병且對論語的體制仁齋判斷了前十篇先被編寫, 日後通過補充以後後十篇被編寫了. 根據仁齋的見解孔子是宇宙一號的聖人, 論語是宇宙一號的書物. 連歷史上一號的書也沒有, 連世界一號的書也沒有, 用宇宙一號的書這個辭仁齋表現了孔子. 這樣使論語提高是宇宙一號書的理由存在論語是最平凡的日常生活中表現最上眞理的. 仁齋想儒學的眞正的身姿在人生中培育德行的地方, 而且認爲學問是兼知行的. 因此仁齋主張日常生活中近人情的事是普遍的道理, 出人情的事成爲異端. 孔子考慮的界內仁從有愛別人的心來開始, 到親愛百姓來完成了. 因此孔子還沒承認學習的過程中弟子的仁, 反過來承認了管仲的仁. 在這樣的仁的總括性仁齋强調他的持續性.對朱子的論語解釋仁齋在幾個側面提出著批判. 第一, 解釋論語時候的基準必須不是主觀的心而是客觀的禮. 第二, 如果以理解釋論語的話, 不能正經地把握活活潑潑的宇宙的活動. 第三, 他批評著對論語的本體和作用貸款的解釋是異端的. 第四, 他批評用華夷論解釋論語, 强調華不是地域的區分是文化的區分, 暗示著日本也充分地作成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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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학자의 조선 연구 -이등동애(伊藤東涯)의 『삼한기략(三韓紀略)』에 대하여-

        이효원 ( Lee Hyo-won ) 한국한문학회 2017 韓國漢文學硏究 Vol.0 No.66

        18세기 말 조선에서 일본학이 성립한 것처럼 일본에서 역시 조선에 대한 지식이 수집되고 정리되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조선에 관한 지식이 어떤 관점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체계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밝혀진 바가 없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18세기 초에 성립한 『三韓紀略』의 분석을 통해에도 시대 일본에서의 조선연구의 일단을 검토하였다. 『三韓紀略』은 伊藤仁齋의 아들이자 학문적 계승자라 할 수 있는 伊藤東涯가 저술하였는데 당대 일본 지식인의 한반도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또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요령있게 담은 자료로써 일본에서 널리 수용되었으며, 중국에도 전해져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한기략』은 君長略, 紀號略, 土地略, 職品略, 族望略, 文籍彙, 方諺略의 일곱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君長略」에서 東涯는 『동국통감』, 『삼국사기』 등을 참조하면서도 『일본서기』의 기사를 우선시하여 한반도의 역사를 비정하고 있다. 그 결과 고대에 삼한이 일본에 복속되어 있었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다른 유학자들과는 달리 東涯는 신공황후 삼한정벌 전승은 수용하지 않았다.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의거해서 신공황후 전승이 신이성이 강한 전설이라 생각해 배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를 변방으로 간주하고 통신사를 조공사절로 파악하는 武威에 기반한 자기중심적인 관점은 「三韓紀略序」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 전쟁을 경계하고 평화적 관계를 지향하는 유교적 문명의식 역시 東涯의 의식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요컨대 東涯의 타자인식에 조선을 대입했을 때 文明과 武威의 사이에서 분열되고 모순적인 내면이 드러난다. Knowledge of Korea was collected and organized even in Japan as if Japanology was established in the late 18<sup>th</sup> century Korea. 『三韓紀略』 is a Korean study of Japanese writers in 18<sup>th</sup> century. 伊藤仁齋`s son and academic successor, 伊藤東涯 wrote 『三韓紀略』. 『三韓紀略』 is composed of seven items which are 君長略, 紀號略, 土地略, 職品略, 族望略, 文籍彙, 方諺略. In 紀號略 that recorded the name of an era, he regarded the Chosun as a Chinese nation and emphasized the independence of Japan. 土地略 recorded the administrative districts by each era and the title of the posts responsible for the area. <朝鮮八道全圖> is also recorded together. 職品略 contains <朝鮮國官階頒祿圖> that is established 1711, 1748, 1763 when 朝 鮮通信使 came to Japan. 文籍彙 contains title of Korean documents which appear in 『?齋叢話』 and 『攷事撮要』. 東涯 understands the history of Korean Peninsula based on the article of 『日本書紀』. In the 君長略, the historical figures such as 朴堤上, 金春秋, ?支王 were displayed as tributaries and also had been seen that they could come up to the throne with the help of Japan. These views are not consistent with historical facts. 東涯 has a self-centered view that regards Japan is the center, and the Korea is a frontier. This view seems to have influenced the image of Korea that modern Japan made. Meanwhile, Confucian civilization consciousness that is wary of war and orientatipn of peaceful relations also coexists in the consciousness of 東涯. In short, when substituting Korea for 東涯`s recognition of the others, It reveals split attitude between civilization and war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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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 진사이(伊藤仁齋)의 『맹자』관에대한 일고찰

        원용준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1 No.-

        이 논문은 근세 일본의 유학자 이토 진사이(伊藤仁齋)가 내세운 독특한 『맹자』관을 분석하여 그 근저에 있는 이토 진사이의 문제의식을 규명한 것이다. 그 방법론으로 본고에서는 우선, 이토 진사이와 함께 고학파로 분류되는 야마가 소코(山鹿素行)와 오규 소라이(荻生조徠)의 『맹자』관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이토 진사이 『맹자』관의 특징을 검토한 후, 마지막으로 『어맹자의』 분석을 통해 이토 진사이가 왜 독특한 『맹자』관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분석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진사이는 『논어』를 우주 제일의 서책으로 『맹자』를 『논어』에 버금가는 경전으로 높이는 한편,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맹자』라는 주석서가 필요하게 되었다고 하여, 『맹자』를 『논어』의 주석서로 규정하였으나, 이는 『孟子古義』의 총론에서는 『맹자』의 체제가 각 편 별로 달라 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하여, 『맹자』가 『논어』의 자구, 문장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주석서라는 견해와는 모순된다. 한편 진사이는 자신의 대표작인 『어맹자의』를 저술한 목적에 대하여 `어맹`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의 `자의`를 `공맹의 의사어맥`에 의해 해명하는 것이라고 서술하였지만, 이는 표면상의 목적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 목적은 바로 주자학을 중심으로 하는 이단적 학설의 오류를 지적하여 비판하는 것이었다. 진사이는 노장과 불교에 의해 완전히 잘못되어버린 주자학적 풍토를 바로잡고자, 이단의 학설과 맞섰던 맹자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여 스스로 공맹의 진리를 밝히는 전도사가 되었다. 진사이는 공자에 대한 맹자의 관계에 공맹에 대한 자신의 관계로 위치를 부여하였다. 따라서 진사이에게는 다른 어떤 경전보다도 『맹자』가 중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자신의 『고의』가 `어맹`의 주석서이듯이 설령 텍스트에 모순이 있더라도 『맹자』는 『논어』의 주석서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本稿は、近世日本の儒學者である伊藤仁齋が唱えた獨特な『孟子』觀を分析し、その根底にある仁齋の問題意識を明らかにするものである。その方法論として、ここでは、まず伊藤仁齋とともに古學派に分類される山鹿素行·荻生조徠の『孟子』觀を檢討し、これを踏まえて伊藤仁齋の『孟子』觀の特徵を、その著作を通じて捉えることにする。そして、最後に『語孟字義』の分析を通して仁齋の『孟子』觀の有する意義や彼の問題意識を究明する。これをまとめると以下のようである。伊藤仁齋は、『論語』を宇宙第一の書物に伸し上げ、『孟子』を『論語』に竝ぶ經典として重視する。そして、『孟子』を『論語』の注疏と位置づける。すなわち、『論語』は、當初は難しい書物ではなかったが、時代の變遷により難しくなってきたので、『孟子』という注疏が求められるようになったと論ずる。しかし、『孟子古義』の總論では、『孟子』の體裁が各篇ごとに異なっており、『孟子』は一人の手によって作られていないとするが、これは『孟子』が『論語』の一字·一文を一1說明する注疏に當たるという自說と矛盾する。一方、仁齋は『語孟子義』を著述した目的について、「語孟」に現われる主要槪念の「字義」を「孔孟の意思語脈」によって解明するものとするが、これは表面上の目的にすぎず、實際の目的は朱子學を中心とする異端の學說を批判してそれを退けるものであった。伊藤仁齋は、戰國時代に異端の學說に立ち向かって戰っていた孟子に自分を置き換え、近世日本の孟子になって朱子學といった異端と戰ったのである。したがって、伊藤仁齋にとっては、どの經典よりも『孟子』が重視されることになり、自分の『古義』が「語孟」の注疏であるように『孟子』は『論語』の注疏と位置づけ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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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철학 : 이토 진사이[이등인재(伊藤仁齋)]의 □맹자□해석 -주자의 해석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임옥균 동양철학연구회 2011 東洋哲學硏究 Vol.66 No.-

        □맹자□의 저자에 대해서 주자는 □맹자□가 기본적으로 맹자의 저술이 지만, 제자들이 편집한 부분도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진사이는 맹자 자신이 지은 펀도 있고, 제자들이 기록한 것도 있다고 보았다. 유학에서 □맹자□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는 주자는 □맹자□가 □논어□와 그 내용이 일관되고 있으며, 한편으로 □맹자□가 □논어□의 내용을 보충해주는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진사이는 □논어□와 □맹자□가 상보적이 책이며, "만세를 위하여 孔門을 여는 열쇠"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주자와 진사이가 인의가 맹자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크게 본 것은 동일하지만, 주자가 인의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맹자의 성선설이라고 하여 맹자사상의 근저에 성선설을 놓은 반면에 진사이는 인의에 대한 맹자의 주장 자체를 맹자사상의 근저에 놓았다는 점에서 다르다. 진사이는 성선설이 맹자학의 핵심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사단지심을 해설하면서 진사이는 사단의 단을 본이라고 해석한다. 사단의 단은 주자처럼 심 밖으로 드러나 있는 사단을 실마리로 해서 마음속에 있는 인·의·예·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측은·수오·사양·시비를 근본으로 하여 그것을 확충해서 밖으로 인·의·예·지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처럼 진사이는 □맹자□에 대한 주자의 주석처럼 인·의·예·지로 부터 사단이 발로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마음속에 있는 사단으로부터시작하여 그것을 확충해서 사덕을 이룬다는 설을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사단을 확충하는 방법을 무엇인가? 진사이에 의하면 그것은 학문이다. 그러므로 진사이는 본성이 선하다는 맹자의 주장보다는 확충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핵심이 있는 것이라고 맹자의 사상을 파악하였다. 이런 입장에서 진사이는 성선의 성과 선을 재규정하고, 주자의 인성론에서의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구별, 주일무적에 대한 설명 등을 비판하였다. 우선 진사이는 성을 주자처럼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니고있는 인·의·예·지라는 보편적 도덕원리로 보지 않고, 사람마다 다른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성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그것이 바로 성선이라고 진사이는 주장한다. 진사이는 기질지성을 떠난 본연지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주자의 "주일무적"은 불교와 노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맹자□의 본래의 뜻과는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진사이는 맹자학의 핵심이 바로 인의라고 보았으며, 인과 의가 구체화되어 나타난 효도와 공손이 바로 인의를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진사이에 의하면 맹자학의 핵심은 인의이고, 맹자의 기타의 주장들은 모두 인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호연지기는 인의의 기이며, 인의를 국가적으로 확장하여 실천하면 그것이 왕도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진사이는 맹자학의 핵심을 인의로 보았기 때문에, 인의를 주장하면 유학이고 인의를 주장하지 않거나 배격하면 이단이라고 하여 이단구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위와 같은 진사이의 □맹자□해석은, 성선론을 중심으로 인간의 내면을 분석하는 주자의 □맹자□해석으로는 실천력은 얻을 수 없다고 보고, 인의를 중심으로 □맹자□를 해석함으로써 일상생활 속에서의 인의, 더구체적으로는 효도와 공손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맹자□의 근본정신이라는 것을 일깨워 그 실천력을 담보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일상생활에서의 도리의 실천이라는 지향을 갖는 일본 고학파, 더 나아가서 일본사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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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서원의 장서구축-이토 진사이(伊藤仁齋) 가문과 고의당문고(古義堂文庫)-

        야규마코토 ( Yagyu Makoto ) 한국서원학회 2021 한국서원학보 Vol.13 No.-

        고의당(古義堂)은 일본의 유학자로 고학(古學) 인재학파(仁齋學派, 또는 고의학파古義學派)의 창시자이자 사상가인 이토 진사이(伊藤仁齋)가 1662(寬文2)년에 교토(京都) 호리카와(堀川)의 자택에 개설한 사숙(私塾)이다. 고의당은 호리카와주쿠(堀川塾) 또는 호리카와학교(堀川學校)라고도 일컬어졌다. 에도시대의 교토에는 유명한 사숙이 여러 군데 존재했는데 고의당은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이다. 고의당은 초대인 진사이(仁齋)부터 6대 유사이(輶齋)까지 무려 240여 년 동안, 1906(明治39)년에 그 역사에 막을 내릴 때까지 대대로 이토가 당주(當主)로서 숙주(塾主) 자리를 세습했다. 그런데 교토는 도쿠가와 시대에 여러 차례 큰 화재를 당했음에도 고의당은 기적적으로 화재를 면할 수 있었고 그 귀중한 서적과 문헌, 사료, 서화 등이 고스란히 간직하게 되었다. 고의당의 유품들은 1941(昭和16)년부터 1945(昭和20)년에 걸쳐 일괄적으로 덴리도서관(天理圖書館)에 인수되고 ‘고의당문고(古義堂文庫)’라고 불리게 되었다. 덴리도서관은 덴리교 2대 진주(眞柱; 교당지도자) 나카야마 마사요시(中山正善)가 1926(大正15)년에 개설한 도서관이다. 오늘날 고의당문고는 덴리교 나카야마가(中山家)의 원래 장서인 와타야문고(綿屋文庫), 요시다신도(吉田神道) 가문의 옛 장서인 요시다문고(吉田文庫), 그리고 나라현(奈良県)의 향토사가인 야스이 요시타로(保井芳太郎)가 수집한 향토자료인 긴세이문고(近世文庫)와 함께 덴리도서관의 4개 특별문고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고의당문고 중에는 고의학파와 관련된 문헌들 외에도 의학・본초학이나 고의당의 조선문화연구,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것, 중국 송・명・청나라에서 간행된 문헌 등도 포함되어 있다. Kogido(古義堂) is a private school established in AD 1662. by I to Jinsai(伊藤仁齋), who was an educator and a Japanese Confucian philosopher of Kogigaku(古義學, “study of ancient meanings”). It was also called Horikawa-Juku(堀川塾) or Horikawa-School(堀川學校). There were several famous private schools in Kyoto in the Edo period, and Kogido was one of the most representative. From Jinsai to Yusai(輶齋, the 6th), the head of the Ito family inherited the president of the academy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over 240 years until 1906. Kyoto was also hit by many big fires in Tokugawa era, but Kogido miraculously escaped fire and valuable books, literature, historical materials, calligraphy and paintings have been handed down. From 1941 to 1945, All of the literature of Kogido was collected by Tenri Central Library(天理圖書館) and named "Kogido Bunko(古義堂文庫)". Tenri Central Library was opened in 1926 by Shozen Nakayama(中山正善), the 2nd Shinbashira(the leader of Tenrikyo). Currently, Kogido Bunko is one of the four special collections of the Tenri Central Library. Others include the Wataya Bunko(綿屋文庫), a collection donated by the Tenrikyo Nakayama family, the Yoshida Bunko(吉田文庫), a books by the Shinto Yoshida family, and the Kinsei Bunko(近世文庫), a collection of materials collected by the local historian Yasui Yoshitaro(保井芳太郎). In addition to literature on Kogigaku school, the Kogido Bunko also includes literature on medicine and herbs, Korean cultural studies, materials related to the Joseon Tongsinsa(朝鮮通信使; Joseon missions to Japan), and books published in the Sung(宋), Ming(明), and Qing(淸) dynasties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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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dern East Asian Confucian Scholars’ Critical Perception of Zhu Xi’s Concept of Principle(理) -Focused on the Perception of Ito Jinsai(伊藤仁斋), Dai Zhen(戴震) and Choi Hanki(崔汉绮)

        ( Choi Youngjin )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12 儒敎文化硏究(中文版) Vol.0 No.17

        朱子在人、自然、社會的方面建立了一個新的思想體系。如此思想體系在隨后的幾百年里逐漸成爲東亞人認識世界的根本標准。朱子以后的儒學者以朱子學爲理論基礎形成了新的性理學, 幷且有時通過批判性認識, 創造了新的儒學理論。 但是這些理論體系幷非相同, 韓、中、日三國的學者根据自身所處的社會環境和學術環境, 各自對朱子學進行了發展和批評。因此, 東亞儒學理論體系在擁有普遍性的同時, 又具有特殊性。 爲此, 本論文將對如下三位學者關于理的認識, 做出比較和分析, 卽17世紀日本古學派儒學者伊藤仁齋(1627-1705), 18世紀淸代氣哲學者戴震(1724-1777), 以及19世紀朝鮮實學者崔漢绮(1803-1877)對理的認識, 正因爲如各位學者所指出的, “理”卽是東亞儒學思想核心的關鍵詞。 三位學者雖然生活在不同的國家, 不同的時代, 他們的問題意識和理論體系也理應不同, 但是他們却對主導社會理念的朱子學提出了相類似的批判。特別是對朱子强調的“根据的理”卽“所以然之理”的批判成爲他們與朱子學本質上的不同。但是他們否定超越性的“根据的理”的理由各不相同。 伊藤仁齋在從未受到佛敎和老庄思想影響的先秦儒學之道中尋?眞理;戴震認爲朱子學最大的問題是“一種使階級壓迫, 階級次序正當化的工具”;崔漢绮運用西洋科學知識對傳統的儒學思想進行再構成, 致力于新的“氣學”。他通過觀察和實驗獲得的自然的規則, 是人類道德規則和認識規則的標准, 更可以看作是社會運營原理的典范。 他們要解決當時社會新矛盾時認識到朱子學的局限性, 對朱子學進行了批判性的重建, 因此朱子學有一個質的飛躍, 爲我們開拓了一條新的發展道路。 Zhu Xi(1130-1200) had created a new paradigm of human, nature and society. This new paradigm has been a standard for East Asian people to perceive the world for over hundreds years. Zhu Xi's theory had been operated as a fundamental source for many Confucian scholars in creating new Neo-Confucian theories and developing new Confucian theories. These theories originated from Zhu Xi's theory, however, were not exactly the same. Scholars of China, Japan and Korea developed and criticized Zhu Xi's theory from their perspective differentiated by social condition and academic tradition. This is the reason that East Asian Confucianism encompasses both universality and uniqueness. As an example of this characteristic, the perception of ‘principle(理)’ by three scholars from East Asia will be compared and analyzed in this thesis: Ito Jinsai (1627-1705) from Edo period in 17th century, Dai Zhen (1724-1777) from Qing Dynasty in 18th century, and Hanki Choi (1803-1877) from Chosun Dynasty in 19th century. This is because the concept of principle is the core of Confucian theory. Three scholars lived in different period and country, as so their awareness of problem and theoretical system were different. Nonetheless, all of them criticized the theory of Zhu xi which was placed as the mainstream idea in their era. They denied the core concept of Zhu Xi's theory, which is principle; and this made their theories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Zhu Xi's. The reasons that they denied the Principle as a transcendent reason vary considerably. Ito Jinsai tried to find the truth from Dao of Ancient Chinese Confucianism which is not affected by Buddhism and Daoism. Dai Zhen found that Zhu Xi's theory was working as a social norm which justifies hierarchical social order and represses public demands most problematic. Choi Hanki tried to build ‘Kihak(气学)’, a new academic system, by reorganizing conventional Confucian theories with scientific knowledge from the West. He thought that the law of nature drawn by experiment and observation is the standard of the law of ethics and perception and also the example of the society's operating principle. These scholars perceived the limit of Zhu Xi's theory in solving the problem of their very society and tried to reconstitute his theory critically. This is how Zhu Xi’ theory is changed and developed in new directions. [Article in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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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천시대(德川時代)의 『논어(論語)』관(觀)과 그 학문정신 -고학파(古學派)의 『논어(論語)』관(觀)을 중심으로-

        신현승 ( Hyun Seung Shin ) 동양철학연구회 2009 東洋哲學硏究 Vol.59 No.-

        이 논고는 「德川時代의 『論語』觀과 그 학문정신」이라는 제목 하에 주로 도쿠가와시대에 新儒學의 안티테제로서 등장하는 古學派(Kogakuha)의 학문정신 및 이들의 『論語』觀과 해석의 양상 등을 살펴 본 것이다. 그래서 이 논고는 儒敎의 텍스트 가운데 四書(The four books)의 하나인 『論語』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주석 혹은 해석의 문제점에 관하여 일본 도쿠가와시대의 『論語』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동아시아 유학사에서의 『論語』해석이라는 시점 하에 일본 古學派의 『論語』觀및 그들의 학문정신을 탐구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은 대략 두 개의 큰틀로 이루어져 있다. 본문의 첫 번째는, 「古學派」의 학문정신이라는 주제 하에 일본 古學派의 중요한 두 인물 Ito Jinsai(伊藤仁齋)와 Ogyu Sorai(荻生組徠)의 학문정신을 다루었다. 더 세밀하게 분류하면 仁齋의 Kogigaku(古義學) 정신과 ?徠의 Kobunjigaku(古文辭學) 정신을 각각 다룬 것이다. 우선 仁齋의 古義學의 두 축이 『論語』와 『孟子(The works of Mencius)』라는 것을 확인하였고, 이 두 텍스트를 철저히 심사숙고하여 읽는 것에 의해 聖人[孔子]의 뜻과 의도가 명확히 파악될 수 있다는 의미로써 古義學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徠의 古文辭學的학문정신으로의 사상적 전환은 宋代의 朱子學과 仁齋의 古義學에서 촉발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古文辭學의 구체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본문의 두 번째는 이 두 인물의 학문정신이 드러나 있는 『論語』 解釋書를 통해 이들의 論語觀과 그 해석 특징을 살펴보았다. This paper, under 「the name of standpoint of Confucian analects and its scholastic spirits during Tokugawa era」, will discuss scholastic spirit of Kogakuha appeared as Antithese against Neo-Confucianism and their standpoints of Confucian analects and aspect of its interpretation primarily for Tokugawa era. Therefore, this paper, focusing on discussion and interpretation problems about Confucian analects which is one of The four books among texts of Confucianism during Tokugawa era, will plan for research on standpoint of Kogakuha regarding Confucian analects. For these purposes, main text of this paper consists of 2 frames. The first issue in the main text, under the subject of scholastic spirit for Kogakuha, will discuss scholastic spirits of Ito Jinsai and Ogyu Sorai who were 2 major people of Kogakuha. To speaking more specifically, it will discuss the spirit of Kogigaku for Jinsai and that of Kobunjigaku for Sorai respectively. First of all, this paper confirmed that 2 axis of Kogigaku for Jinsai are Confucian analects and The works of Mencius, and analyzed the characteristics of Kogigaku in terms of the fact that meaning and intentions of the saint (Confucius) can be clarified by careful reading of these two texts. This paper, mentioning that philosophical conversion into Kobunjigaku of Sorai was incurred by Juzahak during Song era and Kogigaku of Jinsai, surveyed specific characteristics of Kobunjigaku. The second issue of main text in this paper, through interpreted book of Confucian analects in which scholastic spirits of these 2 people appeared, will discuss the standpoint of Confucian analects and its interpretation.

      • KCI등재

        일반논문 : 주자와 일본 고학파의 『중용』 해석

        임옥균 동양철학연구회 2010 東洋哲學硏究 Vol.63 No.-

        이 글에서는 주자와 일본 고학파의 『中庸』 해석을 비교·검토하였다. 『中庸』의 저자에 대해서 주자는 자사가 지은 것이라고 하였고, 진사이는 『中庸』을 자사가 지었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보았으며, 소라이는 『中庸』을 자사가 지었다는 주자의 견해는 받아들이면서도, 주자가 내세운 도통론에 입각한 자사저작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中庸』의 체제에 대해서는 주자는 원래의 『中庸』이 들어있었던 『禮記正義』와는 다른 분류를 하였으며, ``子曰``이라는 두 글자를 장을 나누는 하나의 표지로 사용하고 있다. 진사이는 『中庸』을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고, 상편은 『中庸』 본서이며, 하편은 한나라의 유학자들의 저술이 『中庸』에 잘못 편입된 것이지, 『中庸』의 원문이 아니라고 보았다. 소라이는 주자의 『中庸』 분류를 따르지 않고 전적으로 자신의 견해에 따라 『中庸』을 분류하였다. 『中庸』의 성격에 대해서 주자는 자사가 이단이 일어나서 도통이 끊어질까 염려하여 지은 것이라고 보았고, 진사이는 『中庸』이 『論語』의 뜻을 부연하여 지은 것이라고 보았으며, 소라이는 『中庸』이 바로 그러한 성격을 갖기 때문에 도가 성인의 도에서 유자의 도라는 낮은 차원으로 떨어지고 말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中庸』의 의미에 대해서 주자는 "평상시에 치우침이나 기울어짐이 없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진사이는 중은 일을 처리하면서 마땅함을 얻는 것인데, 그것은 반드시 권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소라이는 중을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이라는 주자의 중에 대한 해석은 받아들이지만, 용을 평상이라고 한 주자와 달리 "평상시에 백성에게 실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여 치자의 입장에서 『中庸』의 의미를 해석하였다. 그래서 소라이는 『中庸』은 또 하나의 도가 아니라 선왕의 도를 실천하는 방법으로서의 덕이며, 孝悌忠信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덕목들이 바로 『中庸』의 덕행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中和의 해석에서 주자는 喜怒哀樂이 발로되지 않은 것은 性으로, 이미 발로된 것은 情으로 하여 중화구설과 중화신설을 정립하였다. 진사이는 중화를 언급한 구절이 『中庸』의 원문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이 구절에 대한 주자의 형이상학적 해석이 후대 학문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비판하였다. 소라이는 性을 성질이라고 규정하고, 미발은 사람이 어려서 성질의 차이가 발로되지 않은 것, 이발은 이미 성장하여 성질의 차이가 발로된 것으로 보아, 주자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해석을 하고 있다. 한편, 『中庸』 자체의 해석에서도 진사이와 소라이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這論文比較檢討朱子與日本古學派的中庸解釋. 朱子主張中庸子思著作說, 伊藤仁齋疑中庸子思著作說, 荻生조徠肯定中庸子思著作說而否定朱子的道統論. 朱子用``子曰``字分類中庸, 仁齋把中庸分上篇與下篇, 조徠依自見分類中庸. 朱子以爲子思恐道統絶而作中庸, 仁齋以爲子思敷衍論語而作中庸, 조徠以爲子思作中庸以後聖人之道變成了儒者之道. 朱子說"中者,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 平常也." 仁齋說"中是處事得當, 必待權而後得當." 조徠說"中者, 無過不及之名, 庸者, 平常時可能實行於百姓者." 所以조徠主張中庸不是道, 是在日常生活中實踐可能的孝悌忠信之德. 於中和之解釋, 朱子根據喜怒哀樂未發爲性已發爲情而定立中和舊說與中和新說. 仁齋否定中和說不是中庸原文而批判朱子的形而上學性解釋否定地影響後代學問. 조徠規定性是性質, 未發是人幼時未發露性質之差異而已發是人成長之後發露性質之差異. 他的規定與朱子相反. 而且解釋中庸之時, 仁齋與조徠提示與朱子相反的獨自解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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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 진사이[伊藤仁齋]의 『맹자』 해석 − 주자의 해석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

        임옥균 동양철학연구회 2011 東洋哲學硏究 Vol.66 No.-

        『맹자』의 저자에 대해서 주자는 『맹자』가 기본적으로 맹자의 저술이지만, 제자들이 편집한 부분도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진사이는 맹자 자신이 지은 펀도 있고, 제자들이 기록한 것도 있다고 보았다. 유학에서 『맹자』가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는 주자는 『맹자』가 『논어』와 그 내용이 일관되고 있으며, 한편으로 『맹자』가 『논어』의 내용을 보충해주는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진사이는 『논어』와 『맹자』가 상보적이 책이며, “만세를 위하여 孔門을 여는 열쇠”라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주자와 진사이가 인의가 맹자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크게 본 것은 동일하지만, 주자가 인의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 맹자의 성선설이라고 하여 맹자사상의 근저에 성선설을 놓은 반면에 진사이는 인의에 대한 맹자의 주장 자체를 맹자사상의 근저에 놓았다는 점에서 다르다. 진사이는 성선설이 맹자학의 핵심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사단지심을 해설하면서 진사이는 사단의 단을 본이라고 해석한다. 사단의 단은 주자처럼 심 밖으로 드러나 있는 사단을 실마리로 해서 마음속에 있는 인⋅의⋅예⋅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측은⋅수오⋅사양⋅시비를 근본으로 하여 그것을 확충해서 밖으로 인⋅의⋅예⋅지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처럼 진사이는 『맹자』에 대한 주자의 주석처럼 인⋅의⋅예⋅지로부터 사단이 발로된다는 것을 부정하고, 마음속에 있는 사단으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확충해서 사덕을 이룬다는 설을 주장하였다. 그렇다면 사단을 확충하는 방법을 무엇인가? 진사이에 의하면 그것은 학문이다. 그러므로 진사이는 본성이 선하다는 맹자의 주장보다는 확충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핵심이 있는 것이라고 맹자의 사상을 파악하였다. 이런 입장에서 진사이는 성선의 성과 선을 재규정하고, 주자의 인성론에서의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구별, 주일무적에 대한 설명 등을 비판하였다. 우선 진사이는 성을 주자처럼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인⋅의⋅예⋅지라는 보편적 도덕원리로 보지 않고, 사람마다 다른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성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선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그것이 바로 성선이라고 진사이는 주장한다. 진사이는 기질지성을 떠난 본연지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주자의 “주일무적”은 불교와 노장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맹자』의 본래의 뜻과는 크게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진사이는 맹자학의 핵심이 바로 인의라고 보았으며, 인과 의가 구체화되어 나타난 효도와 공손이 바로 인의를 실천하는 방법이라고 보았다. 진사이에 의하면 맹자학의 핵심은 인의이고, 맹자의 기타의 주장들은 모두 인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호연지기는 인의의 기이며, 인의를 국가적으로 확장하여 실천하면 그것이 왕도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진사이는 맹자학의 핵심을 인의로 보았기 때문에, 인의를 주장하면 유학이고 인의를 주장하지 않거나 배격하면 이단이라고 하여 이단 구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위와 같은 진사이의 『맹자』 해석은, 성선론을 중심으로 인간의 내면을 분석하는 주자의 『맹자』 해석으로는 실천력은 얻을 수 없다고 보고, 인의를 중심으로 『맹자』를 해석함으로써 일상생활 속에서의 인의, 더 구체적으로는 효도와 공손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맹자』의 근본정신이라는 것을 일깨...

      • The Idea of Heaven(Tian) in Ito Jinsai’s Thought

        ( Kimura Junji ) 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2007 儒敎文化硏究(中文版) Vol.7 No.-

        這篇論文旨在考察伊藤仁齋的天概念。伊藤仁齋( 公元1627-1705年)是日本最有名的儒學者, 他批判朱子學, 主張歸於孔孟子之教。他所批判朱子學的要點在於它依據嚴格的理來解釋世界和人。根據仁齋的理解, 人是不斷變化的活物, 所以難免錯誤。仁齋主張, 沒有錯誤不如改善自己的錯誤, 進而他認為允許人犯錯誤是很重要的。 仁齋說天地與人一樣是活物。天也是活物, 所以不可避免錯誤。異常氣象就是其表現。雖然如此, 天不肯隱藏自己的錯誤, 所以它是很高貴的存在。朱子學通過嚴格的理來解釋天地, 這與殺天道同樣。天不肯隱藏錯誤, 可是不能改善自己的錯誤。改善錯誤屬於人們的行為。孔子曾經說過要為改善錯誤而努力。仁齋說, 如果沒有孔子, 天地不能作為天地。 從全體來看, 天道指向於善的實現。因此, 在地上活著的人們應該努力實現善。但是天也可能會犯錯誤, 所以善人也往往遭遇不幸。仁齋說:這個時候, 我們不應該怨恨天, 而應該認為自己的不幸就是天為活物的證據, 進而要把它接受為天命, 繼續努力去實現善。 This paper studies the idea of Heaven in Ito Jinsai’s thought. Ito Jinsai(1627~1705) is one of the most famous Confucian in Japan. He rejected Neo-Confucianism and advocated the original teachings of Confucius and Mencius. The main point that he criticized Neo-Confucianism is to understand the world and a human being by the rational and strict principle. According to his thought a human being cannot avoid a mistake, because it lives and continues changing. He insists that it is more important to change one's mistake and to forgive a mistake of another person than not to make a mistake. Jinsai says that both the heaven and the earth live same as a human being. It is not avoided a mistake as far as the heaven lives. And the outcome is abnormal weather. Heaven is noble nevertheless, because it does not hide its mistake. It ruins the Heavenly Way to interpret the world by the rational and strict principle like Neo-Confucianism. But Heaven cannot change mistakes by itself. It is an action of a human being that change a mistake. And it was Confucius that preached teaching to change mistakes. Jinsai says that the world cannot be the world if there was not Confucius. Generally speaking, the Heavenly Way aims at realization of good. Therefore a human being living on the earth must make efforts for good. However, because Heaven can make a mistake, there can be a misfortune on a good person. Jinsai preaches that it is necessary to consider his misfortune as an evidence of Heaven’s life, to accept it as Destiny and to continue making efforts for good not bearing a grudge against Heaven. [Article in Chi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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