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鄕歌硏究를 둘러싼 昏迷와 疑問 : 「風謠」에 關한 諸問題를 中心으로
池憲英 忠南大學校 文理科大學 國語國文學會 1972 語文論志 Vol.1 No.-
8.15 光復以後 再出發한 韓國 學界가 量的으로나마 豊登을 보이고 있음은 多幸하고 고마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 學界는 8.15~6.25間의 祝祭 機運 속에서 고요히 새 出發한 듯이 보이지마는, 實은 숨은 소용돌이와 회호리가 이골에도 휘몰아쳤던 것을 看過할 수 없겠다. 이에다 6.25의 試鋉은 脆弱한 基盤에 不請客이 闖入할 틈을 벌리었으나 이 激動은 오히려 能力과 眞贋을 判別하는 作用을 하였고 또 硏究 資料의 移動과 露出을 몰아온 契機도 마련하였던 것인가 한다.
김형기 忠南大學校 文理科大學 國語國文學會 1972 語文論志 Vol.1 No.-
우리말은 꼭 530년 전에 우리문화의 터전이 될 훌륭한 글씨체계를 세종께 받아왔건만, 하도 오랫동안 한문·한자를 써오던 버릇에 젖어, 요새도 연방 한자말을 만들어내면서 한자가 아니면 우리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는 것처럼 주장하시는 학자님이 적지 않으니, 옛말에야 더구나 오죽했으랴마는 그런 중에도 고유한 우리말의 지나온 모습을 돌이켜 보면, 임난 이후로 차차 모음조화법칙은 물러지고 존대·겸양 및 시상 표현은 단출해졌으며 따라서 토와 어미들이 거뜬해지면서 서술 어미에 나타났던 인칭변화는 사리고 말았으니 이런 덧 잎의 정리를 영어보다 앞서 끝내버린 것은 다행한 일이거니와 이 정리가 실은 꽤 오래전에 있었던지 오늘 우리들은 이 인칭변화가 우리 옛 말에 있었던 사실조차 기억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일을 위해 오늘을 알고자하고, 오늘을 알기 위해 어제를 살피는 것이 우리 공부하는 이들의 태도라 하면 오늘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어제 있었던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니, 우리 옛 말에 있었던 인칭변화를 우리가 지금 살펴보려 하는 것도 그 이유가 여기 있다.
趙鍾業 忠南大學校 文理科大學 國語國文學會 1972 語文論志 Vol.1 No.-
여기까지 필자가 가칭으로 명명한「종결어」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 보았다. 여기서 결론으로 요약해 보면, 1. 종결어는 어느 문장의 형성과 내용에 관계없이 결론이나 결구를 예시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이것은 고대문학상 공통공유하는 형식이었다는 것을 알겠고, 2. 산문의 경우는 그 기원이 중기의 세가·열전에 사관이 내린 사평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 나라 야사의 하나인 삼국유사는 대부분이 개인전기를 수록하면서「종결어」에 평과 찬을 혼용하였고, 개인전기적인 고대소설에서도 그 사평적방법을 취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3. 이러한 것은 양상의 차이는 있을망정 우리 시가에서도 쓰여지고 있는데, 감탄사와 후감 등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뜻이 비록 종장이나 낙구에 영향하는 바가 없다곤치더라도 향가에서 볼 때 종결어 자체에 함유한 뜻이 전연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