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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의 종언에 대한 물음

        박준상(Park, Joon-Sang) 새한철학회 2016 哲學論叢 Vol.86 No.4

        문학의 종말이라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논의되어왔고, 특히 일본의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에 의해 강력하게 표명되었다. 가라타니에게 그 문제는 단순히 문학 내부의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정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본주의의 문화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고, 근대에서의 인간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결부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가능한 동시에 유효한 정치적 실천이라는 물음과 이어져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가라타니의 표현)이라는 그 문제는 또한 20세기 중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문학을 인간주체성을 사회적 주체성으로 승격시키는 탁월한 계기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하면서 여전히 확신했던 문학의 가능성이라는 결론에 대한 하나의 이의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가라타니와 그가 참조하는 사르트르가 제시한 문학의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에 대한 논의들을 따라가면서 여기저기서 여전히 받아들여지거나 의문에 부쳐지는 문학의 종말이라는 문제를 다시 한 번 되돌려보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가라타니와 사르트르의 논의들을 반복하고 해석하고 비판하는 데에 있지 않고, 문학이 끝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논란이 되는 현재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문학적 상황 가운데로 들어가는 데에, 또한 그 상황이 암시하고 있는 귀결점에 다가가는 데에 있다. From long time ago, the issue which is the end of literature is widely proposed and discussed. And specially it was strongly expressed by japanese critic Karatani Kojin. This issue is not simply inside the literary issues. It is relating with the cultural situation of the capitalism which is headed to the summit, with the historical understanding of the human being in modern era, and finally with the question, "what could be a possible and effective political practice in the present situation?" This issue, "the end of modern literature" (expression of Kojin), is a objection of the possibility of the litterature which was still believed firmly by Jean-Paul Sartre who thought of the litterature as one of moments by which the human subjectivity can be promoted to the social subjectivity. But the most important point of our thesis is not in repeat, discussion and critic of Kojin and Sartre"s themes. We would like to enter in the present cultural political situation where the judgement by which the literature reached in an end arouse controversy, and also to approache to a suggestive conclusion of that situation.

      • KCI등재

        언어와 정념

        박준상(Park, Joon Sang) 새한철학회 2018 哲學論叢 Vol.94 No.4

        이 논문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많이 다루어지지는 않은 주제인 언어와 느낌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했다. 역사에서 그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사상가들 중 하나는 장-자크 루소이다. 우리는 그 주제를 루소를 중심으로, 니체와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언어에 대한 현대적 사유를 참조해서 고찰해보고자 했다. 그 주제와 결부된 물음들은 다음과 같다. 언어와 사회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기원적인가? 언어가 관념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느낌을 만들어낸다면, 관념과 느낌은 어떠한 상호 작용을 갖는가? 언어가 만들어낸 느낌들 가운데 관념 이전 또는 이후에 주어지는 정념이 있고 관념과 매개되어 주어지는 감정이 있다면, 정념과 감정은 어떠한 점에서 다른가? 언어가 불평등의 기원인 가치의 일반관념들을 만들어낸다면, 언어의 기원이자 지향점으로 제시된 정념은 어떻게 일반 관념들에 작용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이 논문에서 마지막으로 조명하고자 했던 점은, 언어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정념이 사회 내에서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In this study, we have reflected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language and the emotion which is a subject little studied up to now. This issue is covered in-depth in Jean-Jacques Rousseau. With Rousseau, in the context of the contemporary thoughts of the language in Nietzsche and Maurice Merleau-Ponty we ask these questions. Does the language precede at the society, or vice versa? If the language causes the emotion at the same time as with the idea, in which report are they? There are two types of emotion, the passon which is presented before or after the constitution of an idea of value on the one hand, and the feeling which is always given with an idea of value on the other hand. In what they are distinguished the one from the other? If the language causes the ideas of value which are considered like origin of the inequality, is the passion which is as well the origin of the language as the destination of the language, how done it with these ideas? By putting these questions in consideration, we clarified the fact that the passion always going with the language can assume a political role in the society.

      • 환대(歡待)로서의 책 또는 행위로서의 철학

        박준상(Joon-Sang Park) 한국현상학회 2002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19 No.-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인으로서의 타자가 초월적임을, 즉 의식 바깥에서 주제화(thematisation)를 넘어서 언어적 표현을 초과하면서 현현(apparition)한다는 점을 되풀이 해 강조하였다. 이러한 초월적 타자에 대한 증거를 자신의 첫 번째 과제로 삼은 레비나스의 철학은 따라서 어떤 초월성을 말하는 철학, 일종의 초월성의 철학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타자의 초월성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모순 없이, 수월하게 주장될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을 언제나 예외 없이 존재자(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도 하나의 존재자일 것이다)를 주제화하는 명제들의 집합, 존재자의 의미를 의식에 전달하는 명제들의 집합이라고 본다면, 철학은 원칙적으로 타자의 초월성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자크 데리다는 그 점을 간파하였고, 초월적 타자가 근본적으로 철학의 언어에 기입될 수 없다는, 또는 철학의 언어 안에서 자체모순을 불러일으킨다는 비판을 레비나스에게 제출하였다. 그러나 레비나스는 데리다의 그러한 비판 이후에도 자신의 〈철학〉 내에서 타자의 초월성에 대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는 의식 너머에 관념적으로 실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근원적(pre-originel)으로, 의식 이전에, 감수성에 기입되기 때문에 초월적인 타자의 흔적을 철학의 언어 가운데에서 찾아내고자 한다. 결국 여기서의 문제는 철학의 언어의 또 다른 측면을 밝히는 데에, 더 정확히, 존재자의 규정 바깥에서, 의식 너머에서(au-dela) (동시에 의식 이하에서(en deca)에서 - 감수성 내에서, 감각적인 것 가운데 - 철학의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살펴보는 데에 있다.

      • KCI등재

        예술비평과 공공 우리시대의 탁월함(Arete)과 범속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숭고

        박준상 ( Joon Sang Park ) 한국비교문학회 2013 比較文學 Vol.0 No.61

        `Le sublime(ou ``sublime``) est un mot qui apparait de temps en temps dans l`ceuvre de Nietzsche, mais non pas un concept auquel ce dernier ne s`est jamais efforce de donner une nouvelle signification. Mais dans La Naissance de la tragedie ou s`affirme au premier plan ``le grandiose``, ``le barbare`` ou ``l``exces de la nature``, en un mot, ``le dionysiaque``, ce que nous pouvons appeler ``sublime`` sans difficulte y regne en etant souvent suggere. Nous essayerons de reflechir sur ce fait, sur sa consequence. Mais quelque chose de sublime chez Nietzsche, non pas une pure nature qui n`ait aucun rapport avec la culture, se presente dans le conflit ou le differend avec le langage comme fondement de la culture. Nous porterons attention aussi sur cette scene.

      • KCI등재

        정치적 `행위`와 공동체

        박준상(Park, Joon-Sang) 새한철학회 2014 哲學論叢 Vol.78 No.4

        장-뤽 낭시가 자신의 공동체론을 중심으로 전개한 정치적 사유는 그 새로움으로 인해 주목을 끌었지만, 정작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모호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 ‘무위(無爲)의 공동체’, 어떠한 조직도 어떠한 기관도 어떠한 확정된 정치적 프로그램도 없이 긍정되는 공동체, 그러나 그러한 모든 것들 이전이나 이후(사실 낭시가 그 모든 것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에 정치적 경험의 중심에 자리 잡는 공동체, 규정적 정치를 의문에 부치는 그의 정치적 사유는 새롭기는 했지만, 비현실적인 것이거나 지나치게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오해되거나 이해되었다. 이 논문은 어쨌든 그 핵심을 포착하기 쉽지 않은 낭시의 정치적 사유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목적하에 씌어졌다. 우리는 그의 정치적 사유의 고유한 특징이 그이 고유한 글쓰기에 투영되어 있다고 보았고, 그의 글쓰기를 살펴봄으로서 그의 정치적 사유에서 암시되었던 고유한 어떤 것에 다가가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정치적인 모든 장(場)에서 이론 이전 또는 이후에 어떤 행위(행동 이전의 행위)가 중요하다는 전제하에, 그의 글쓰기는 이론의 구성과 제시 이전 또는 이후에 행위를 그 자체 내에서 직접적으로 촉발시킨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 KCI등재

        메를로-퐁티에 비추어 본 미적 경험과 예술

        박준상(Park Joon-Sang) 대한철학회 2007 哲學硏究 Vol.104 No.-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감각적인 것과 지성적인 것은 현상과 실체, 감각과 오성, 수동과 능동 등의 명칭들 아래서 구분되어왔으며, 그 구분으로부터 서양 철학의 이원론적 세계관이 구축되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칸트와 라이프니쯔를 참조해서 그 구분의 기준이 개념 또는 언어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자 했다. 그들에게 개념들로 구성 가능한 것 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지성적인 것이며, 그럴 수 없는 것은 감각적인 것이다. 또한 그들은 서양 철학의 전통에 따라 지성적인 것을 감각적인 것의 우위에 두었다. 그러나 메를로-풍티는 그러한 입장에 반대하면서 우리의 모든 경험을 떠받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성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음악적 또는 감각적 관념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으로 감각적인 것으로서의 음악적 또는 감각적 관념들로 구성된 세계(살)가 모든 경험의 뿌리에 있으며 모든 예술이 근거하고 있는 공간임을 밝히고자 했다.

      • KCI등재

        『무위(無爲)의 공동체』의 몇몇 개념들에 대하여

        박준상(Joon-Sang Park) 한국현상학회 2010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46 No.-

        장-뤽 낭시(Jean-Luc Nancy)는 현대 철학에서, 특히 정치 철학 분야에서 동구권이 몰락한 이후에 가능한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새롭게 개진해왔다. 그의 정치적 성찰은 현 시대의 주목할 만한 성과로 남아있지만, 그것은 국내에서 지나치게 소홀히 여겨져 왔다. 이 논문은 낭시의 사상에 대한 하나의 전반적인 소개가 아니다. 이 글은 그의 주저들 가운데 하나이자 그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담고 있는 『무위의 공동체』를 떠받치고 있는 몇몇 표현들에 대한 조명이다. 필자는 이 책을 독해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종류의 조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첫째로, 198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주목할 만한 한 사유가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위해 개념들의 유기적 조직망을 그려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공동체에 대한 또 하나의 그의저서 『마주한 공동체(La Communaute affrontee)』가 국내에서 소개된 후 확인한 바이지만, 『무위의 공동체』에서도 제시되어 있는 낭시의 정치철학이 비현실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것으로 적지 않게 오해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에 따라 그의 사상의 기본적 입장을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논문에서 우리는 낭시의 몇몇 개념들을 해명하면서, 그것들에 대한 단순한 설명에 머무르고자 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남아 있는 마르틴 하이데거에 비추어 그의 사유를 조망하는 방법을 택했으며, 그 방법을 통해 어떻게 그가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를 정치적 관점에서 변형시키고 있는가를 밝힘으로써, 그의 사유와 마주하는 하나의 관점을 견지하고자 했다.

      • KCI등재

        행위로서의 외존(外存)

        박준상(Joon-Sang Park) 한국현상학회 2005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27 No.-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논제들에 따라 씌어졌다. 1) 여기서 먼저 문제는 레비나스의 존재론(있음l'il y a의 존재론)과 윤리학(타자의 윤리학) 사이의 관계를, 또한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게 되는 맥락과 근거를 밝히는 데에 있다. 2) 레비나스의 사상은 일종의 경험론, 보다 정확히, 한계경험론(존재론적·윤리적 관점에서의 한계사건들에 대한 경험론)이다. 그 사상은 우리의 경험의 장에서 해명되고 검증되기를 기다리는 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사상이 우리의 경험의 장에서 전개되는 과정의 장면에 주목하였다. 3) 레비나스에 의하면, '나'는 모든 다른 타인들과는 달리 선택받은 유일무이한 자로서 타자를 환대하고 타자가 지은 죄까지 짊어져야 할 위치에 있다. 그러나 레비나스의 그러한 윤리적 주체에 대한 관점에서 따라 나올 수 있는 난제는, 본질적으로 보았을 때, '나'는 타인을 절대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자인가, 또는 '나'는 과연 윤리에서 부과되는 모든 무게를 홀로 짊어질 수 있는가라는 것이 아니다. 보다 결정적인 문제는 레비나스가 타자를 책임지는 유일한 자로 주체를 과도하게 부각시키면서 그 주체를 타인(들)과의 관계 바깥으로 이끌고 나간다는 데에 있다. 레비나스의 타자의 철학은 분명 유아론은 아니다. 그러나 그 철학이 타자와의 관계와 소통에 대한 주목에서 출발했을지는 모르나 결국 관계 자체보다는 주체라는 관계의 하나의 항을 부각시키는 데에서 마감되지 않는가라는 물음이 남는다.

      • KCI등재후보

        바깥, 죽음

        박준상(Joon-Sang Park) 한국현상학회 2003 철학과 현상학 연구 Vol.21 No.-

        블랑쇼의 문학과 철학에 대한 성찰의 중심에 죽음이 놓여 있다. 그에게서 죽음의 경험은 바깥의 경험과 다른 것이 아니다. 서양의 사유(헤겔, 니체, 하이데거)에서 죽음은 인간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과 자유를 결정적으로 시험하고 증명하는 최종심급이다. 다시 말해 죽음은 최고로 지배하기 어려운 자연, 최고로 포착하기 힘든 현상이며. 죽음에 대한 지배는 자연에 대한 자아의 궁극적 승리를,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자신의 관리영역에 두는 자아의 의미부여능력의 절대성을 의미한다. 그러한 죽음에 대한 이해를 하이데거는 죽음으로 앞서 달려가봄을 나의 본래적 실존을 위한 최고의 가능성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블랑쇼에게서 죽음으로의 접근은 나의 최고의 가능성과, 나의 본래성과 마주하게 하는 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결정적 불가능성 또는 비동일성에 대한 시련의 경험이다. 블랑쇼는 죽음의 경험, 바깥의 경험이 결국 세계의 상실과 자아의 파기의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것은 허무주의적으로 실존의 어두운 측면으로 돌아선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블랑쇼의 죽음에 대한 성찰은 죽음의 경험에서 인간 공동의 영역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존적 조건으로서의 함께 있음 (etre-ensemble)이 발견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죽음의 경험이 급진적 양태의 함께 있음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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