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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기술 그리고 건축 - AI로봇기술의 변화와 건축서비스산업 -
변순용 한국환경철학회 2017 환경철학 Vol.0 No.24
The modern concept of time and space is extended to the various concept of time and space due to technological change of modern society. There is no sufficient considerations of Its impact on modern life. The differences between virtual and real spaces gradually disappear, and the need and meaning of mobility are changing. The emergence of smart home and smart city and the emergence of single residence type and shared house type show that modern perception of space is changing. Space has value in relation to human being. The change in representation of space is bound to be directly related to the change of human life. That is why human beings need to learn about space and think about their living. It should be emphasized that there is a need to consider the value of space and the responsibilities of human space and the need for spatial education. Considering the series of technological changes and the social and economic ripple effects that are being addressed by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the architectural service industry needs to recognize and respond to the essential changes in the concept of space. 근대적 시, 공간의 개념이 현대사회의 기술적 변화로 인해 다양한 시, 공간의 개념으로 확장되고, 이것이 현대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가상과 실재의 공간에 대한 차이가 점차 사라지고, 이동성(mobility)의 필요와 의미가 변하고 있으며, 스마트 홈, 스마트 시티의 등장과 1인 주거 형태와 쉐어하우스와 같은 공동주거 형태의 등장 등을 통해 공간에 대한 현대적인 인식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간은 인간과의 관계 하에서 가치를 담고 있다. 공간에 대한 표상의 변화는 바로 인간 삶의 변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은 공간에 대해서 배우고, 거주함에 대해서 숙고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간의 가치에 대한 숙고와 인간의 자기 공간에 대한 책임과 이에 대한 공간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회자되고 있는 일련의 기술적 변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볼 때 건축서비스산업에서도 이러한 공간 개념의 본질적인 변화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변순용 한국윤리학회 2017 倫理硏究 Vol.117 No.1
이 글의 출발점은 촛불시위에 나타난 시민들에게서 기존의 시위와는 다르게 평화적인 시위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사회지도층 인사의 도덕적 불감성에 대한 분노를 느끼면서 가지게 된 의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던 시위의 현장이 그 다음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을 보면서 왜 우리는 저토록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시위를 원했는지에 대해 반문해 보았고, 누구라도 작은 거짓말을 하거나 타인을 해치는 일을 했을 경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마련인데 어떻게 공개적으로 거짓을 말하거나 양심적이지 않은 일을 하고서도 떳떳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상처받은 자존심의 회복과 악의 평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것이 생각의 실마리로 작용되어,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의 문제, 인문학적 자기 치유,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그리고 밀그램의 실험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자기 치유로서의 자기 책임의 의미와 선의 평범성에 대한 신뢰가 인간성의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고, 또 이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The starting point of this article was the question that the citizens who appeared in the candlelight demonstrations were trying to maintain the peaceful demonstration different from the previous demonstrations and feeling the anger about the moral insensitivity of the social leaders. As we saw the scene of the protest, where so many people gathered, restored the image of the day as if nothing had happened the next day, we asked why we wanted such a peaceful and democratic demonstration. When anyone has committed a small lie or harmed others, he feels the remorse of conscience. I wondered how he could openly say falsehood or do his work without conscience. So I came to think about the restoration of the wounded self-esteem and the banality of evil, and this became a clue of thought, leading to the problem of the problem of justice, the humanistic self-healing, the banality of evil, and the Milgram’s experiment of obedience. Therefore, it came to the conclusion that the meaning of self responsibility as self healing and the trust in the banality of moral goodness can and should be led to the responsibility of humanity.
현대 주거 공간으로서의 아파트의 인간학적 의미에 대한 연구
변순용 한국환경철학회 2011 환경철학 Vol.0 No.11
이 연구는 우선 집 그 안에 사는 사람의 품성이나 성향 내지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볼 때, 집이야말로 그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또한 사람이 만드는 그 어떤 물리적인 실체보다도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감성이 담겨지고 표현되고 계발되어 승화시키는 그릇임을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하에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로 자리잡은 아파트의 의미를 전통적인 삶의 주거 구조와 비교하면서, 서구적인 아파트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변화에 주목하여, 아파트식 주거 구조에 공동체적 계기의 실현을 강조하였다. 한국의 주거문화는 생활 기능적 측면보다는 가족 구성원 중심을 강조한다. 여러 가족 구성원이 한 공간에서 모여 산다는 것은 구성원간의 서로 다른 욕망의 본질에 의해서 갈등, 분열과 긴장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갈등구도는 가족 구성원간의 협력과 정(情)의 공간성에 근거해서 해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아파트형 주거문화에서 개별성과 독립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공동체성을 살릴 수 있는 공간적 계기가 구성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적 계기의 실현이 전통적인 사회의 공동체성으로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이러한 공동체적 계기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공동체성이라기 보다는 현대사회의 특징이 반영된 공동체성으로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사생활 보호와 안정성에 대한 요구와 더불어 공동체성에 대한 요청이 서로 조화될 수 있는 공동체성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연구는 현대 주거 공간의 철학적ㆍ윤리적 의미에 대한 숙고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는 자신의 존재에 상응하는 고유한 공간을 지니고 있다. 공간과 존재자는 서로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공간의 의미는 존재자의 존재의미와 직결되며, 결국 공간의 위기는 존재자의 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공간이란 인간적인 공간임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으며, 좋은 집은 인간적인 집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This paper supposes that the house represents emotions and atmosphere of the inhabitants who live there. While the meaning of modern living style of apartment is compared to traditional one. this paper focuses on the changes of housing culture in the korean society and emphasizes the need of communal moments. The housing culture in Korea places more stresses on family-centered life than living function. But the living culture in apartments has emphasized individuality and independence of each members of family. So it is important to maintain harmony between both characters. The communal moments does not mean to come back to the past, to the traditional housing culture, but it must be based on the modern lifestyle. The need of privacy and stability should be in harmony with the need of communal character. And this paper propose the need of reflection on the philosophical and ethical meaning of modern living space. All beings have own space to its existence. Because space and being have necessary relation and the meaning of space has direct relation to the meaning of being. crisis of space leads to crisis of man. So a good house should be humane house.
변순용,송선영,김현수 한국윤리교육학회 2012 한국윤리교육학회 학술대회 Vol.2012 No.2
이 연구의 목적은 로봇 제작 및 사용에 따라 인간 삶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들에 관한 윤리적 성 찰을 탐구하는데 있으며, 이것은 또한 로봇윤리의 근본적인 목표이다. 현재 로봇 공학의 기술 발달 에 따라 분야별로 전개되는 로봇의 제작 및 사용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 해 현재 서양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로봇윤리 연구는 각 분야별 사례에 따라 개별적인 사례들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로봇윤리의 기본적 특징과 한계를 밝히고, 로봇윤리의 이론적 기초를 모색해보고, 향후 미래에 대한 책임윤리로서 로봇윤리의 본질을 전망해 본다.
변순용 범한철학회 2004 汎韓哲學 Vol.32 No.1
In der vorliegenden Abhandlung handelt sich um die Verantwortung für das Leben bei Albert Schweitzer und Hans Jonas, in bezug auf erstens das Verstehen des Lebens, zweitens die Begründungsstrategie der Verantwortung für das Leben, letztlich die Absolutheit den Charakter der unendlichen Verantwortung. Für Schweitzer ist die Ethik die ins Grenzenlose erweiterte Verantwortung gegen alles, was lebt. In dem Leben findet er das ontische Faktum des menschlichen Bewußtseins. Bei ihm wird das Subjekt des Lebens mit dem Leben und dem Willen zum Leben identifiziert. Bei Jonas ist das Sein nur verständlich, nur wirklich als Leben. Das Leben hat einen Selbstzweck, d.h., aktiv sich wollender und verfolgender Zweck. Die ontologische Verantwortung geht von den ontologischen Fakten aus und entwickelt sich zum ontologischen Sollen. Zwischen Sein und Sollen legt er den Begriff, "Tunsollen", und damit wollte er das Tunkönnen oder das Tunmüssen, das aus dem Wissen und der Technik herauskommt, begrenzen. Die Beiden behaupten, daß die Verantwortung für das Leben einen absoluten Charakter hat. Aber die unendliche Verantwortung, in der die Grenzen der Verantwortung oder die Adressaten nicht fixiert werden könnten, ist weder angreifbar, noch verwirklich, noch verpflichtbar. In der Jonaschen ontologischen Verantwortung ist der Mensch das Subjekt der Verantwortung und die Instanz der Verantwortung. Das, worauf Verantwortung sich sinngemäß bezieht, ist aktuelles oder potentielles Leben, und zuallererst menschliches. Die moralische Verantwortung für das Leben im ganzen kann und soll nur der Mensch tragen, und in diesem Sinne ist sie eine Ausdruck für das Seinkönnen des Menschen. 이 글은 생명윤리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는 쉬바이처(A. Schweitzer)와 존재론적 책임을 주장한 요나스(H. Jonas)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우선 생명에 대한 이해의 측면에서, 둘째 그 생명에 대한 책임을 정당화하는 방법의 측면에서, 그리고 책임의 절대성에 대한 문제라는 측면에서 비교하고 있다. 쉬바이처는 생명에 대한 외경을 주장하면서, 윤리(Ethik)란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로 확장되는 무한한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생명 속에서 인간 의식의 존재적 사실을 찾아내어 생명과 생명의지 그 자체를 생명의 주체와 동일시함을 알 수 있다. 요나스는 존재를 생명으로 이해하며, 모든 유기체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자기목적성을 가진다. 존재론적 책임은 존재론적 사실로부터 존재론적 당위로 전개된다. 두 철학자 모두 존재적 사실, 즉 쉬바이처는 생명의 의지에, 요나스는 물질대사와 생명보존에 근거하여 생명에 대한 절대적인 책임을 주장하지만, 무한한 책임성, 즉 정도나 관련자의 범위가 정해지지 않는 책임은 파악될 수도, 실현될 수도, 실제적으로 행위를 구속하거나 의무화하지 못한다. 특히 요나스의 존재책임은 그 존재가 누구의 존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결국 인간이라고 답한다. 결국 요나스에게 있어서 책임이 의미있게 관련되는 것은 실제적인 내지 잠재적인 생명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의 생명이다. 도덕적인 책임은 인간에게만 허용된다는 점에서 인간이 가진 존재능력의 한 표현일 것이다.
대학과 대학교육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 대학의 미래와 대학교육의 문제점에 대하여
변순용 한국교양교육학회 2015 교양교육연구 Vol.9 No.1
In this study are the problems which the universities in Korea have nowadays, i.e. university-factorism, job-supermacism, information-pragmatism, assessment, analysed. As Husserl regarded the crisis of european science as the crisis of humanity, the crisis of university education leads to the crisis of society. At first, the korean universities have changed into a factory, which makes ready-made students, and in this factory professors have changed into machines which produce academical writings. Secondly, the universities turn into the institutions of vocational training. As though training of future members of society is one of most important functions of university, society wants university to be a institute of vocational training. Thirdly, the korean univerisities are swayed by university assessment which is connected with financial support of government. No one mind for whom and what the assessment should be done. To conclude, university should maintain right distance from society and social needs. Without this distance would the university be so deeply influenced by society that the university could not criticize the society and give the future vision of society. 이 글은 고등교육, 특히 대학교육을 중심으로 고등교육의 대중화, 국제화라는 흐름 속에서 현재 한국 대학의 문제점을 대학공장화주의, 직업우선주의, 정보실용주의, 평가주의를 통해 살펴보았다. 후설(E. Husserl)은 유럽 학문의 위기를 인간성의 위기로 규정하고 있듯이, 현재 한국 대학들의 문제점을 통해 위기 상황을 진단해보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우선 한국 대학이 공장화되어 대학은 학생들을 사회의 요구대로 생산해내는 공장으로 변해버리고 교수들은 자신들에 대한 평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논문을 생산해내는 기계로 전락해버리는 실정이다. 그리고 대학의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가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공급하는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대학교육은 학생들이 졸업하자마자 숙련공처럼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직업교육원이 되길 요청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학들은 지금 재정지원과 연결되어 있는 대학평가에 휘둘리고 있다.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평가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 이전에 무조건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학과 사회의 관계는 너무 소원해져서 이론과 실제의 괴리가 커져도 문제이지만, 그 관계가 너무 밀접해져서 사회의 요구가 즉각적으로 대학의 교육에 영향을 미친다면, 대학의 사회 비판과 미래 비전 제시가 어려워지게 된다. 따라서 이제는 대학이 사회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거리두기가 요청된다.
변순용,송선영 한국윤리학회 2013 倫理硏究 Vol.88 No.1
The main purpose of this paper is to consider ethical effects of the production and use of robots to human lives, in terms of the fundamental goal of roboethics. Due to different interests in robots technology, the levels of developing robots are different from various industrial fields of robots. At the moment a study of roboethics centred on western countries like EU and the USA tends to be focused on each case from their own interests of robotics. To give any desirable foundation of roboethics in ethics as well as in robotics, therefore, this paper would like to point out the limit of roboethics in contemporary tendency and to have certain perspective to the ethical nature of responsibility for the next generations. 이 연구의 목적은 로봇 제작 및 사용에 따라 인간 삶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들에 관한 윤리적 성찰을 탐구하는데 있으며, 이것은 또한 로봇윤리의 근본적인 목표이다. 현재 로봇 공학의 기술 발달에 따라 분야별로 전개되는 로봇의 제작 및 사용의 양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서양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로봇윤리 연구는 각 분야별 사례에 따라 개별적인 사례들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로봇윤리의 기본적 특징과 한계를 밝히고, 로봇윤리의 이론적 기초를 모색해보고, 향후 미래에 대한 책임윤리로서 로봇윤리의 본질을 전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