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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북벌론(北伐論)의 여맥(餘脈)과 오자서(伍子胥) 담론 = The context of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北伐論) and Wu Zixu(伍子胥) discourse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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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는 병자호란 이후 北伐論의 제기와 함께 긍정적으로 인식되었던 伍子胥의 복수가 북벌론이 퇴조한 이후에는 어떻게 평가받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북벌론이 현실 논리를 상실한 시기인 17세기 말∼18세기 초에 북벌론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론과 그것을 반대하는 소론의 갈등이 있었고, 그에 따라 북벌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던 오자서 관련 담론 역시 노소에 따라 찬반이 갈릴 수 있음을 방증하였다. 나아가 현종 대 漢黨과 山黨 간의 公義ㆍ私義 논쟁 또한 오자서 복수에 대한 상반된 노소의 견해차를 짐작하게 하는 일로 주목하였다. 그 이유는 이 논쟁이 오자서 복수와 같이 忠ㆍ孝가 상충하는 구도를 띠었고, 또 君臣之義를 중시한 한당의 徐必遠이 오자서 복수에 대해 부정하는 견해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논쟁은 노소 분기 이전에 일어났지만, 산당은 주로 노론이 되고 한당은 대부분 소론이 되었던 만큼 노소분기와 접맥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실제로 17세기 말∼18세기 초 노소 분기 속에서 산생된 오자서 담론이 노소에 따라 상반되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의 오자서 담론은 노론의 金春澤, 소론의 林象德ㆍ李匡德에게서 확인되는바, 이를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김춘택은 충ㆍ효가 상충하는 역사 사건에서 상대적으로 효의 가치를 중시하는 관점을 보였는데, 이는 오자서의 복수를 바라볼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부자ㆍ군신의 의리를 가지고 그 경중을 따지는 대신 ‘赤子之心’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인간 본연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의 가치를 중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임상덕과 이광덕은 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게 충이란 어떠한 상황에도 신하가 반드시 행해야 할 당위였다. 그리하여 楚平王과 오자서의 아비인 伍奢가 군신 관계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거나 春秋之義의 함의를 북벌론을 주창한 노론과 다르게 해석하여 오자서 복수를 부정하였다.
      이처럼 세 인물의 오자서 담론은 저마다의 논리와 근거를 통해, 북벌론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던 노론과 북벌론을 반대하고 君臣之義의 중요성을 피력한 소론의 입장을 보여 준다. 즉 이들의 오자서 담론은 작품 내적 특징을 갖고 있는 동시에, 노소 갈등이라는 작품 외적 맥락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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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병자호란 이후 北伐論의 제기와 함께 긍정적으로 인식되었던 伍子胥의 복수가 북벌론이 퇴조한 이후에는 어떻게 평가받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북벌...

      본고는 병자호란 이후 北伐論의 제기와 함께 긍정적으로 인식되었던 伍子胥의 복수가 북벌론이 퇴조한 이후에는 어떻게 평가받는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북벌론이 현실 논리를 상실한 시기인 17세기 말∼18세기 초에 북벌론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노론과 그것을 반대하는 소론의 갈등이 있었고, 그에 따라 북벌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던 오자서 관련 담론 역시 노소에 따라 찬반이 갈릴 수 있음을 방증하였다. 나아가 현종 대 漢黨과 山黨 간의 公義ㆍ私義 논쟁 또한 오자서 복수에 대한 상반된 노소의 견해차를 짐작하게 하는 일로 주목하였다. 그 이유는 이 논쟁이 오자서 복수와 같이 忠ㆍ孝가 상충하는 구도를 띠었고, 또 君臣之義를 중시한 한당의 徐必遠이 오자서 복수에 대해 부정하는 견해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논쟁은 노소 분기 이전에 일어났지만, 산당은 주로 노론이 되고 한당은 대부분 소론이 되었던 만큼 노소분기와 접맥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실제로 17세기 말∼18세기 초 노소 분기 속에서 산생된 오자서 담론이 노소에 따라 상반되는지 확인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의 오자서 담론은 노론의 金春澤, 소론의 林象德ㆍ李匡德에게서 확인되는바, 이를 검토한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김춘택은 충ㆍ효가 상충하는 역사 사건에서 상대적으로 효의 가치를 중시하는 관점을 보였는데, 이는 오자서의 복수를 바라볼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부자ㆍ군신의 의리를 가지고 그 경중을 따지는 대신 ‘赤子之心’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인간 본연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효의 가치를 중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임상덕과 이광덕은 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게 충이란 어떠한 상황에도 신하가 반드시 행해야 할 당위였다. 그리하여 楚平王과 오자서의 아비인 伍奢가 군신 관계였다는 사실에 주목하거나 春秋之義의 함의를 북벌론을 주창한 노론과 다르게 해석하여 오자서 복수를 부정하였다.
      이처럼 세 인물의 오자서 담론은 저마다의 논리와 근거를 통해, 북벌론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던 노론과 북벌론을 반대하고 君臣之義의 중요성을 피력한 소론의 입장을 보여 준다. 즉 이들의 오자서 담론은 작품 내적 특징을 갖고 있는 동시에, 노소 갈등이라는 작품 외적 맥락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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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study sought to answer the question of how Wu Zixu(伍子胥)’s Revenge, which was positively recognized with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fter the Manchu war of 1636, was evaluated after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was decline. To this end, he first tried to prove that there was a conflict between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to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in the late 17th and early 18th centuries when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lost its logic of reality. Furthermore, Wu Zixu-related discourse, which was recognized as a symbol of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lso proved that pros and cons could be divided according to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The debate over public and private matters during the Hyeonjong era also proved to be a reflection of the conflicting views of Noron and Soron on Wu Zixu's Revenge. The debate is meaningful in that it has conflicting structures between allegiance and filial duty, such as Wu Zixu's Revenge. Of course, the debate took place before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were differentiated, but it was seen as linked to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s differentiation.
      On this basis, it was considered whether Wu Zixu's discourse, which was spawned during the differentiation between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in the late 17th and early 18th centuries, differed according to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Specifically, the writings of Kim Chun-taek(金春澤), Im Sang-deok(林象德), and Lee Kwang-deok(李匡德) were reviewed. As a result, the writings of the three individuals demonstrate the position of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which opposed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nd expressed the importance of allegiance, based on their own logic and rationale. The Wu Zixu discourse of the three has the meaning of the times in that it has internal characteristics of the work and also contains the context of the conflict between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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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study sought to answer the question of how Wu Zixu(伍子胥)’s Revenge, which was positively recognized with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fter the Manchu war of 1636, was evaluated after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was decline. To this end,...

      The study sought to answer the question of how Wu Zixu(伍子胥)’s Revenge, which was positively recognized with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fter the Manchu war of 1636, was evaluated after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was decline. To this end, he first tried to prove that there was a conflict between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to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in the late 17th and early 18th centuries when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lost its logic of reality. Furthermore, Wu Zixu-related discourse, which was recognized as a symbol of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lso proved that pros and cons could be divided according to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The debate over public and private matters during the Hyeonjong era also proved to be a reflection of the conflicting views of Noron and Soron on Wu Zixu's Revenge. The debate is meaningful in that it has conflicting structures between allegiance and filial duty, such as Wu Zixu's Revenge. Of course, the debate took place before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were differentiated, but it was seen as linked to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s differentiation.
      On this basis, it was considered whether Wu Zixu's discourse, which was spawned during the differentiation between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in the late 17th and early 18th centuries, differed according to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Specifically, the writings of Kim Chun-taek(金春澤), Im Sang-deok(林象德), and Lee Kwang-deok(李匡德) were reviewed. As a result, the writings of the three individuals demonstrate the position of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which opposed Plan for Northern Subjugation and expressed the importance of allegiance, based on their own logic and rationale. The Wu Zixu discourse of the three has the meaning of the times in that it has internal characteristics of the work and also contains the context of the conflict between the Noron Party and the Soron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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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중국 없는 중화" 인대학교 출판부 2009

      2 허태용, "조선후기 중화론과 역사인식" 아카넷 2009

      3 정옥자, "조선후기 조선중화사상연구" 일지사 1998

      4 조성산, "조선후기 소론계의 古代史 연구와 中華主義의 변용" 역사학회 (202) : 49-90, 2009

      5 백진우, "조선후기 사론 산문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1

      6 하윤섭, "조선후기 『삼국지』 인물 차용 시조의 유행과 시대적 동인에 대한 탐색" 한국고전문학회 (41) : 187-226, 2012

      7 "조선왕조실록"

      8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아름다운날 2007

      9 정하정, "조선(朝鮮) 사론 산문(史論 散文)의 한 단면 - 소식(蘇軾)의 사론 산문에 대한 비판 양상 -" 한국고전연구학회 (32) : 325-355, 2015

      10 김연지, "조선 중후기 문인의 오자서 논평 연구" 단국대학교 2019

      1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중국 없는 중화" 인대학교 출판부 2009

      2 허태용, "조선후기 중화론과 역사인식" 아카넷 2009

      3 정옥자, "조선후기 조선중화사상연구" 일지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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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하윤섭, "조선후기 『삼국지』 인물 차용 시조의 유행과 시대적 동인에 대한 탐색" 한국고전문학회 (41) : 187-226, 2012

      7 "조선왕조실록"

      8 이성무, "조선시대 당쟁사 1" 아름다운날 2007

      9 정하정, "조선(朝鮮) 사론 산문(史論 散文)의 한 단면 - 소식(蘇軾)의 사론 산문에 대한 비판 양상 -" 한국고전연구학회 (32) : 325-355, 2015

      10 김연지, "조선 중후기 문인의 오자서 논평 연구" 단국대학교 2019

      11 백진우, "전란의 기억과 문학적 극복 — 정묘⋅병자호란 이후 17세기 후반에 나타난 문학적 현상에 주목하여 —" 동양고전학회 (68) : 69-97, 2017

      12 백진우, "인물 詠史詩를 통해 본 조선후기 對淸 복수 담론의 일국면" 개신어문학회 (36) : 5-40, 2012

      13 윤세순, "역사인물 오자서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인식태도" 민족문학사연구소 (51) : 200-229, 2013

      14 이명학, "북벌론과 비판의식 - 관련 야담을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5 : 83-31, 1990

      15 백진우, "병자호란의 상흔에 대한 문학적 치유 양상 연구 -역사 인물 句踐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민족어문학회 (69) : 31-57, 2013

      16 김영은, "백이론의 전통과 박지원의 백이론 연구" 한양대학교 대학원 2010

      17 김혈조, "박지원의 산문문학"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2

      18 尹宣擧, "魯西先生遺稿" 민족문화추진회 1988

      19 李宜顯, "陶谷集" 민족문화추진회 1996

      20 朴世堂, "西溪集" 민족문화추진회 1994

      21 김영은, "肅宗代 老少分岐에 따른 王權 인식의 한 단면 - 伍子胥 題材 史論 散文을 중심으로" 1-15, 2019

      22 林象德, "老村集" 민족문화추진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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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趙龜命, "東谿集" 민족문화추진회 1998

      27 정만조, "朝鮮 顯宗朝의 私義, 公義 論爭"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4 : 65-89, 1992

      28 崔錫鼎, "明谷集" 민족문화추진회 1995

      29 이미진, "德村 梁得中의 趙苞 고사 인식과 그 의미" 한국어문교육연구회 47 (47): 283-308, 2019

      30 尹鳳九, "屛溪集" 민족문화추진회 1998

      31 이성형, "對明義理論의 推移와 朝鮮 關王廟-宣祖~肅宗 年間을 中心으로-" 한국한문학회 (53) : 353-390, 2014

      32 宋時烈, "宋子大全" 민족문화추진회 1988

      33 안춘분, "孔子의 『春秋』 大義思想 硏究" 성균관대학교 2015

      34 司馬遷, "史記"

      35 韓元震, "南塘集" 민족문화추진회 1998

      36 金春澤, "北軒集" 민족문화추진회 1997

      37 정하정, "北軒 金春澤의 史論 散文 硏究" 고려대학교 2014

      38 李匡德, "冠陽集" 민족문화추진회 1998

      39 徐必遠, "六谷遺稿" 민족문화추진회 1994

      40 백진우, "丁卯․丙子胡亂시기 管仲의 상징성과 歷史類比* ―설득 근거로서의 활용 양상을 중심으로―" 동양한문학회 35 (35): 65-89, 2012

      41 정하정, "18세기 전반 羅州 林氏 家門 文人의 散文 硏究: 林象鼎, 林象德, 林象元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2020

      42 허태용, "17세기말~18세기초 尊周論의 강화와 ?三國志演義?의 유행" 고려사학회 (15) : 5-158, 2003

      43 우경섭, "17세기 조선 학자들의 尊王論과 老少分岐 (Ⅱ) -1683년 종묘 논쟁을 중심으로-" 태동고전연구소 36 : 7-39, 2016

      44 우경섭, "17세기 조선 학자들의 尊王論과 老少分岐 (I) -管仲에 대한 인식과 勳戚 문제를 중심으로-" 동국역사문화연구소 (50) : 95-126, 2011

      45 김영은, "17∼18世紀 中國 君主 題材 史論 散文 硏究 : 政論과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2020

      46 허태용, "17·18세기 北伐論의 추이와 北學論의 대두" 대동문화연구원 (69) : 373-4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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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7-10-30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Society for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7-10-12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Hanmun -> 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2-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1999-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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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7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 0.86 1.77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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