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城의 築造技法에 대한 연구는 版築技法 일변도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漢城百濟期 토성에 대한 이해 역시 여기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고대 토성에 대한 발굴조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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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 한신대학교 대학원, 2013
2013
한국어
경기도
125 p. ; 2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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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土城의 築造技法에 대한 연구는 版築技法 일변도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漢城百濟期 토성에 대한 이해 역시 여기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고대 토성에 대한 발굴조사의 ...
土城의 築造技法에 대한 연구는 版築技法 일변도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漢城百濟期 토성에 대한 이해 역시 여기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고대 토성에 대한 발굴조사의 증가와 함께 판축기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료가 다수 확인되었다. 이들은 중심토루와 외피토루의 경계가 모호하며, 수평상의 정연한 토층선이 확인되지 않아 매우 복잡한 양상이다. 또한 木柱나 基壇石列이 확인되지 않는 등 판축토성과 제한적으로 유사하거나 판이하다.
더불어 2000년대 중반 이후 주로 古墳 封土를 중심으로 盛土技法의 인식과 함께, 版狀의 토층의 관성적 해석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高大한 盛土構造物이 반드시 판축기법만으로 축조되지 않으며, 흙을 다양한 방법으로 쌓거나 가공하는 방식이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이러한 점은 토성 축조기법과도 연결되면서 기존 연구 성과에 대한 재검토와 새로운 자료에 대한 해석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논의의 주요대상이 한성백제기에 해당함에 따라 발굴조사를 통해 축조기법이 드러난 10개소를 대상으로 분석하였다.
축조기법의 검토는 입지의 선정, 기저부 조성, 축조방식, 관련시설, 증축 및 보수를 중심으로 실시하였다. 그 결과, 동시기 임에도 다양한 축조기법이 밝혀졌다. 특히 축조공정이 정반대인 2가지 방식이 확인되어, 이를 기준으로 크게 A군과 B군으로 분류하였다. A군은 기존에 알려진 판축기법과 판이한 반면, B군은 純粹版築土城의 정의와 맞아떨어짐을 근거로, 성토기법(A군)과 판축기법(B군)으로 대별하였다.
A군의 성토기법은 바깥쪽에서 중심을 향하는 축조방식, 복잡한 토층선, 다양한 흙의 가공, 비교적 소규모의 토루인 점을 특징으로 한다. 판축기법에 비해 기술적으로 古式적인 요소가 많은데 축조기법 역시 비교적 이른 편이다. 이러한 A군의 특징은 5세기 이후 등장하는 한반도 남부지역의 古塚古墳, 堤防의 축조방식과 일정한 공통점을 갖고 있어 주목된다.
B군의 판축기법은 중심토루를 축조한 다음 바깥쪽으로 외피토루를 덮는 방식이다. 내부에서는 수평상의 토층이 특징이며, 永定柱와 일부 판재흔 등 구조물이 확인되었다. 또한 일정한 높이에 따라 판축구조물을 해체→재설치를 반복하면서, 版塊가 입체적으로 조합되는 방식이 한성백제기 판축토성의 일관된 특징이다. 이는 扶蘇山城 등을 통한 각종 복원도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이에 주목하여 판축기법을 2가지(B1식, B2식)로 분류하였다.
이와 더불어 판축기법에 대한 재검토를 실시하였다. 기존에는 판축기법의 가장 큰 증거를 수평상의 토층에 두었다. 그러나 B군 토성의 재검토 결과, 수평상의 토층은 간접적 증거일 뿐이며 판축구조물이야말로 직접적 증거물임을 새삼 지적하였다. 이는 이미 先學에 의한 판축의 정의에서 수차례 언급된 부분이다. 그러나 판상의 토층을 판축으로 판단하는 오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결국 판축기법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판축구조물이며, 여기에 더해 구조물이 아니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중심토루의 경사각 또한 중요한 증거임을 지적하였다.
한편 동 시기임에도 서로 다른 축조기법이 공존하는 점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축조기법의 차이는 축조주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따라서 전혀 다른 2가지 기법이 동시기에 사용되는 점은 자연스럽게 축조주체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최근 원삼국∼한성백제기 물질문화의 지역성⋅다양성이 부각되는 경향이다. 흥미로운 점은 ‘재지적 물질문화→백제 중앙의 물질문화의 파급⋅재편과정’과 함께 축조기법의 변화(성토기법→판축기법) 또한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성백제 1기에 지방에서는 地域集團 주도의 축조 가능성을 제기하였으며, 이후 한성백제 2기에는 판축기법 일색으로 변화함을 근거로, 백제 중앙의 계획 하에 축조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