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훼 종교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연장선상에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출애굽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 하느님이 율법...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https://www.riss.kr/link?id=T10496893
서울 :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2004
학위논문(석사) -- 성공회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 신학석사과정(M.Div) , 2004
2004
한국어
233.1 판사항(4)
221 판사항(21)
서울
60p. ; 26cm
참고문헌: p. 58-60
0
상세조회0
다운로드야훼 종교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연장선상에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출애굽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 하느님이 율법...
야훼 종교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의 연장선상에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출애굽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 하느님이 율법을 제정한다. 큰 틀에서 보면 성결법, 제의법, 사회법 등으로 구별할 수 있지만 특별히 본 논문에서 다룬 부분은 사회법 가운데 토지에 관한 법을 다루었다. 이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 다시 노예가 되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또 그들의 평등한 삶을 보장해주는 법이 곧 '안식년법'과 '희년법'이다.
고대 사회에서 토지가 없다는 것은 노예나 다름없는 삶이다. 그러므로 노예해방은 토지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가나안 정착 때 토지의 분배는 이런 의미에서 온전한 해방, 진정한 자유를 정착시키기 위한 시도였다. 최소한 이스라엘에 왕정의 통치가 있기 이전까지는 유지되었다고 본다. 오므리왕 이후 하느님의 율법이 거부되고 바알 종교법이 이스라엘에 도입되면서 하느님이 허락한 자유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예언서에 등장하는 많은 예언자들의 외침은 상실한 자유를 찾기 위함이다. 그들이 자유를 외치는 것은 단순한 정의를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율법 특히 '희년법' 에 근거하여 위법적인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통렬하게 비난했던 토지 독점소유는 인류역사의 대부분을 장식할 정도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인류의 역사는 토지를 둘러싼 갈등의 역사였다.
금세기까지 물질문명과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절대빈곤층의 범위 또한 넓어지고 있다. 현대에 와서 많은 지역의 경제문제의 근원에는 토지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하느님의 간곡한 명령을 무시한 것이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한다. 이 갈등을 회복하는 길은 하느님의 법이 이 땅에 다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주장은 성서의 '희년법' 은 구약의 율법으로 아주 오래전에 제정된 것으로 시간적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 법의 실행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또 다른 주장은 현대 사회는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와는 근본적인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 법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구약의 희년법이 폐기되어야 한다고 기록된 부분은 없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성하고자 했던 율법은 '희년법' (사회법)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대상이 가난한자, 갇힌 자, 억눌린 자, 보지 못하는 자들이다. 즉, 이들의 노예상태에서의 해방을 위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고자 했던 이 하느님의 법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그 사명이 완수되어야 한다고 본다. 희년법의 정신을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에 헨리 조지의 사상과 이론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 가난과 억압과 고통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방치한 것이 아니고, 인구가 너무 많아 물자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야훼의 손이 짧아서 구해 내지 못하시겠느냐?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시겠느냐? 너희가 악해서 너희와 하느님 사이가 갈라진 것이다. 너희가 잘못해서 하느님의 얼굴을 가리워 너희 청을 들으실 수 없게 된 것이다(이사야 59:1-2)." 이런 문제 즉 가난한 이들의 고통은 인간의 제도와 구조에 하느님의 율법이 없거나, 하느님의 율법(사회법)을 부인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래서 예언서의 많은 부분에서 예언자들은 이 상황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오늘도 동일한 목소리로 헨리조지는 "빈곤이란 자연 상태로서의 빈곤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범죄에서 비롯되는 것" 이라고 지적하면서, 자연의 법칙과 성서의 가르침이 이러한 점에서 서로 합치된다는 사실을 외치고 있지만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회개다. 토지 사유와 부의 축적을 위해 '안식년법'과 '희년법'을 어기고 '부'라는 우상을 섬기며 살았던 과거를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선포하셨다.
'희년법'을 레위기 25장에 기록하고, 그 다음 레위기 26장 1절에서는 "너희는 우상을 만들어 모시지 말라. 신상이나 석상을 너희 가운데 세우지 말라. 또 그림 그린 석상을 너희 땅에 세우고 그 앞에 엎드리지 말라.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것의 의미는 위 25장에서 언급된 하느님의 '희년법' 을 지키는 것이 우상을 섬기지 않는 것으로 해석 될 수도 있다. 또 이법을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이 신뢰에 하느님의 응답은 자유이다. 이 자유가 영원하기 위해서는 이법이 영원히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영원한 한 분을 거룩하게 여기는 신앙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느님은 그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자유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유가 영원하기를 또한 원하며, 이 땅에 하느님의 법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