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孝明世子(1809~1830)와 관련된 王室儀禮를 전반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시대적 맥락을 살피기 위해 작성되었다. 효명세자는 代理聽政 동안 왕실의례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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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 단국대학교 대학원, 2022
학위논문(박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한국사(조선시대사) 전공 , 2022. 2
2022
한국어
경기도
A Study on Royal Rituals related to Crown Prince Hyo-Myung in King Sunjo’s Reign
ix, 254 p. : 삽화 ; 30cm.
지도교수:김문식
단국대학교 학위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참고문헌 : p.233-241
I804:11017-00000019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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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孝明世子(1809~1830)와 관련된 王室儀禮를 전반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시대적 맥락을 살피기 위해 작성되었다. 효명세자는 代理聽政 동안 왕실의례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노력한 인물이다. 효명세자는 王世子의 지위에서 사망하여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국왕과 같은 권한을 행사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권위는 왕실의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효명세자는 4세의 나이로 왕세자 冊封禮를 거행한 뒤, 9세에 入學禮, 11세에 冠禮와 嘉禮를 거행하는 通過儀禮를 마쳤다. 이후 효명세자는 純祖(1790~1834)를 대신하여 왕실의례를 攝行하기 시작하였고, 宗廟와 大報壇의 祭享을 주관하며 차기 군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1827년(순조 27) 효명세자는 순조로부터 정무를 다스리라는 명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국정을 주관하였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을 시작하면서 순조와 純元王后를 높이기 위해 上尊號 儀禮와 宴享을 기획하고 진행하였다.
효명세자와 관련한 왕실의례는 조선 후기 변화된 의례의 모습을 반영하였다. 더욱이 대리청정을 수행한 마지막 왕세자로서 왕세자 관련 의례의 전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효명세자가 주관한 상존호 의례와 연향은 주체가 신료를 대표하는 領議政에서 왕세자로 변화되는 모습에서 볼 때, 국정뿐 아니라 의례를 통해서도 그의 위상은 이전 왕세자들과 달랐음을 확인할 수 있다.
효명세자가 상존호 의례를 주관함에 따라 의례 절차의 변화가 발생했다. 正殿에서 존호를 올린 이전 사례와는 달리 효명세자는 내전인 慈慶殿에서 순조와 순원왕후에게 직접 존호를 올렸다. 효명세자는 연향도 ‘進爵’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거행하였다. 효명세자는 올리는 작의 수를 3작으로 제한하는 새로운 형태의 연향을 선보였다. 또한 효명세자는 국왕과 왕비가 정전과 내전에서 따로 연향을 받은 이전 사례와 달리 상존호 의례와 마찬가지로 순조와 순원왕후를 함께 모시고 진작의례를 진행하였다. 이와 같은 형식은 국왕을 위한 연향을 百官을 대표하는 영의정이 아니라 효명세자가 주관하게 되면서 가능했다.
나아가 효명세자는 연향에 앞서 정전에서 백관을 거느리고 순조와 순원왕후에게 직접 지은 致詞와 箋文, 表裏를 올렸으며, 연향에서 공연되는 呈才를 직접 창작하는 등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1829년(순조 29) 순조의 재위 30년을 기념하여 열린 진찬의례는 순조의 권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의례였다. 효명세자는 효를 명분으로 순조를 위한 진찬의례를 거행하였다. 효명세자는 이 의례에서는 자신이 지은 치사와 악장, 정재를 통해 태평성대를 노래하며 순조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효명세자 관련 왕실의례가 갖는 의미는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선왕 正祖를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효명세자의 통과의례에서 보이는 정조대 繼述은 효명세자에게 정조의 모습을 투영시켜 정조의 권위가 이어지길 바라는 순조의 의도였다. 순조는 효명세자의 통과의례에서 정조를 계승하여 효명세자가 정조의 권위를 이어가길 바랐다. 이러한 순조의 바람은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시기 의례에도 이어졌고, 효명세자는 정조대 사례를 모범으로 하여 상존호 의례와 연향을 개최하여 정조를 계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둘째, 다양한 세력들이 의례에 참여한 모습을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세력은 元老, 外戚, 효명세자의 측근 세력이었다. 원로는 효명세자의 통과의례에서 주로 활약하며 효명세자의 교육에 힘썼다. 외척은 효명세자의 통과의례부터 그의 주관 의례까지 참여했다. 외척은 효명세자가 주관한 의례에서 효명세자를 측근에서 도왔고, 효명세자는 이들에게 주요 직임을 맡겨 자신을 도와 정국을 이끌어 나갈 것을 기대하였다. 효명세자는 외척과 함께 의례를 준비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효명세자의 측근 세력들은 동궁 요속 출신으로 대리청정 시기에 활발히 활동한 인물군이다. 효명세자는 대리청정 시기에 이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육성하였고, 특지를 통해 요직에 등용하였다.
마지막으로 효명세자와 관련한 왕실의례가 갖는 의미는 왕실 위상의 고양이다. 특히대리청정 시기 효명세자의 권한은 순조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순조는 효명세자의 통과의례를 통해 효명세자가 왕세자로서의 위엄을 갖출 수 있도록 조치했다. 순조는 효명세자의 책봉을 통해 일찌감치 군신 관계를 확립시켰다. 그리고 효명세자의 입학례를 통해서는 유교 군주로서의 소양을 드러나게 하며, 치국에 대한 백성에 기대에 답했다. 이어 순조는 효명세자의 관례와 가례에서는 성인으로 성장한 효명세자의 모습을 대내외에 드러냈으며, 그 지위를 강화해갔다. 순조는 효명세자의 가례에서 성대한 행차를 통해 가례의 행렬이 도성 안을 지나면서 효명세자의 위엄을 대내외 표출할 수 있게 했다. 순조는 효명세자의 통과의례를 통해 차기 군주의 자질을 획득하게 하였다. 그리고 일찍이 자신을 대신하여 왕실의례를 섭행하게 하였으며, 이를 통해 효명세자는 국정을 다스릴 준비가 되어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효명세자의 위상은 상존호 의례와 연향을 통해 명확히 나타났다. 효명세자의 주도로 설행한 의례들은 부모인 순조와 순원왕후에 대한 예우로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방법이었다.
효명세자는 백성을 대표하여 의례를 주도하는 명분을 말하면서 동시에 의례의 의미가 백성에게 미치길 바랐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재위 30년을 기념한 자경전 진찬의례 자리에서 순조를 위해 치사를 올리며 지금 이 잔치를 후대까지 본받게 하고, 순조에게 백성의 ‘孝’가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조선 시대 국가관에서 군주는 어버이고, 백성은 곧 자식이다. 효명세자는 만백성의 어버이가 되는 순조에게 백성을 대표하여 ‘효’를 표했고, 경사를 기념하는 면세 혜택을 내려 백성들에게 골고루 그 혜택이 미칠 수 있게 하여 어버이가 자신들을 돌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려고 하였다.
이처럼 효명세자는 의례를 통한 경사의 혜택이 백성에게 고루 미치도록 하여 그 의미를 백성들까지도 같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효명세자의 행위는 백성들 역시 ‘효’를 실천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동안 효명세자의 주도로 이뤄진 의례들은 순조의 재위 동안 약화된 국왕권과 가뭄과 홍수의 반복으로 동요된 민심을 ‘효’를 통해 하나로 모아 국가를 다스리는 하나의 통치 방법으로 활용하였다.
목차 (Table of Contents)
참고문헌 (Reference)
1. 효명세자연구, 한국무용예술학회, 두솔, , 2005
2. 정조와 정조 이후,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역사비평사, , 2017
3. 조선정치사 상‧하, 한국역사연구회, 청년사, , 1990
4. 1894년 농민전쟁연구 2,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비평사, , 1992
5.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민속원, , 2003
6.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2,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원, , 2005
7.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3,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원, , 2005
8. 安東金氏 文正公派 寄贈遺物, 친환경농업박물관, 양평군, , 2009
9. 문예 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국립고궁박물관, , 2019
10. 「純祖代 孝明世子 代聽時 呈才의 演行樣相」, 조경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 원 석사학위논문, ,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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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조선후기 순조대 궁중연향 복식에 관한 연구」, 조미라,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 문, , 2005
12. 「孝明世子 憲宗代 宮闕 營建의 政治史的 의의」, 한국사론 54, 이민아, 서울대학교 국 사학과, , 2008
13. 「純祖代 王世子 儀禮관련 宮中記錄畵 硏究 : 孝明世子를 중심으로」, 박민선, 홍익 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2020
14. 「純祖代 呈才 創作樣相 : 중국 문헌의 수용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31, 조경아, 한국음악사학회, , 2003
15. 「순조대 효명세자 대리청정시 정재(呈才)의 계승과 변화」, 민족무용 ((The)Ethnic dance) 5, 조경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세계민족무용연구소, ,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