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祖代 "北路陵殿志"·"北道陵殿誌"의 편찬과 그 의의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사전공 김 지 영 지도교수: 김 문 식 본고는 조선 英祖代의 함경도 왕실 사적 편찬 기록인 "北路陵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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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 단국대학교 대학원, 2024
2024
한국어
951 판사항(23)
경기도
The Compilation and Significance of “Bukroneungjeonji” & “Bukdoneungjeonji” during the King Yeongjo’s reign
iv, 85 p. ; 30cm.
단국대학교 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지도교수: 김문식
참고문헌: p. 73-82
I804:11017-000000199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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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祖代 "北路陵殿志"·"北道陵殿誌"의 편찬과 그 의의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한국사전공 김 지 영
지도교수: 김 문 식
본고는 조선 英祖代의 함경도 왕실 사적 편찬 기록인 "北路陵殿志"와 "北道陵殿 誌"를 비교·분석하여 두 기록의 연관 관계 및 "북도능전지"에 나타나는 증보 양상과 편찬의 의의를 파악함에 목적을 두었다. "북로능전지"와 "북도능전지"는 함흥 출신 魏昌祖가 함경도에 자리한 이성계와 그 4대조의 陵·殿·宮을 비롯한 관련 사적을 종합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북로능전지"는 1747년(영조 23) 위창조에 의해 편찬되었고, 이듬해 이를 열람한 영조의 명에 의해 1758년(영조 34)에 "북도능전지"로 증보 편찬되었다. "북로능전지"와 "북도능전지"는 편찬을 명하고 주도한 주체에 따라 私撰과 官撰 으로 구분되는데, 기본적인 구성이나 수록 내용, 주된 인용 자료 등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북로능전지"가 2卷 1冊, 8條의 凡例로 구성된 것에 비해 "북도능전지"는 8권 3책, 17조의 범례로 구성되었고, 수록된 附錄과 遺蹟의 수도 늘어났다. "북도능전지"에 수록된 범례와 부록, 유적 등은 "북로능전지"와 비교하여 단순히 양적 증가 외에도 출전과 注 등이 상세화되고 내용상으로도 풍부해져 책의 증보 양상을 확인케 한다. "북도능전지"에 새로 수록된 부록은 태조와 그 선조와 관련한 중요 기록이며, 유적 역시 창업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장소이다. 따라서 "북도능전지"에서 더 많은 내용을 발굴하여 기록한 것은 증보 편찬을 명한 영조의 함경도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북도능전지"는 왕명에 의해 편찬된 것인 만큼 높아진 서적의 위상을 확인 할 수 있으며, 영조의 어제로 대체된 서문이 이를 방증한다. 또한 "북도능전지"는 필사본인 "북로능전지"와 달리 목판본으로 간행되어 책의 대량 보급이 가능해졌고 이후 활용 가능성도 커졌다. 본고에서는 "북도능전지" 편찬의 의의를 세 가지 측면에서 구분하여 확인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북도능전지" 편찬은 왕실 創業地의 상징성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이 지 역 출신 위창조의 자부심에서 기인하였다. 위창조는 함경도에 대한 편견으로 출사 후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영조는 주변의 반대에도 그에 대한 지속적인 지지와 관심을 보였다. 이에 대해 위창조는 자신의 생장 기반이 된 고향의 왕실 사적 기록을 수집 정리하여 편찬함으로써 국왕의 은혜에 보답하고 함경도의 창업지로서 의미를 확증하고자 했다. 둘째, "북도능전지" 편찬은 국왕 영조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지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영조는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訛言과 是非를 잠재우고 정통성을 확보하는 방안으로 創業主에 대한 존숭과 함경도 왕실 사적 정비를 선택하였다. 영조는 "북도능전지"에 실린 別諭를 통해 선계를 받드는 일과 백성에 대한 보호가 같은 맥락에 있음을 밝히고 북도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표명하였으며, 太祖와 肅宗에 이어 釋王寺에 御製碑를 세우게 하였다. 이 같은 조처를 통해 영조는 함경도를 창업의 땅으로 부각하고, 자신은 창업주와 선왕의 뒤를 잇는 정당한 후계자로 자임하였다. 셋째, "북도능전지" 편찬은 위창조가 여러 곳에 산재한 함경도의 왕실 사적을 종 합하여 정리한 것으로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다. "북도능전지"는 함경도 왕실 사적의 보수·관리 및 의례 수립과 왕실 선계를 확인하는 근거 자료로 활용되었으며, 조선 후기 역사서의 典據가 되거나 여러 사찬 기록에 인용되었다.
주제어: 북도능전지, 북로능전지, 영조, 왕실 사적, 위창조, 함경도
목차 (Table of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