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조선 초기 종묘 親享儀의 禮樂 구성 = A Study on the Arrangement of Music and Ritual Procedures for Jongmyo Shrine in the early Joseon Dynasty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8055279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is article, we looked at the process of combining the music used in the Jongmyo ritual with the procedure of the Jongmyo ritual performed by the king. In order to properly know Jongmyo ritual, not only the ritual procedure but also the music part must be examined together. In the theory of Confucian rule, rituals and music were considered equally important, and Jongmyo rituals are the most important Confucian rituals combined with music and rituals.
    Existing Confucian state rituals were for the emperor, but Joseon wanted to create state rituals used in the kingdom. In Joseon, it was desired to review the rituals of the Ming Dynasty and apply them to their own rituals. But the Ming Dynasty did not disclose the Ming Dynasty's rituals, asking to follow Joseon's Confucian customs. Joseon created its own Confucian state rituals for the king to use.
    Jongmyo ritual in Joseon, held by the king, was built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ng and was revised by King Sejong and King Sejo. Finally, the final version was completed at Kukjo-oryeui; the book for state rituals divided into five categories. For the ritual procedure, the old systems of the Tang and Song dynasties were first referenced. It was also revised by referring to the current system of the Ming Dynasty. Gradually, Joseon's unique ritual procedure emerged.
    In Joseon, ritual music was newly created, and the musical element played a large part in making Jongmyo ritual a unique ritual of Joseon. Chinese music, dance, and songs were used in Jongmyo rituals. In Joseon, Chinese music and dance were used for Jongmyo rituals, but the song was newly written. It was not easy to harmonize with ceremonial procedures while making new music. Sejong created new music, dance, and songs to praise the virtues and achievements of his grandfather and father, the kings. The representative music was the Yongbieocheonga; the song of dragons flying into the sky. Sejong failed to complete the Jongmyo ritual using new music. King Sejo inherited King Sejong's will to hold a memorial service to Jongmyo Shrine, which used new music, and actually created a memorial service and held a memorial service.
    The new Jongmyo ritual ceremony created by King Sejo developed more elaborately and was included in the Kukjo-oryeui. Joseon people who perform Jongmyo rituals were able to experience Joseon's unique rituals through their five senses. Jongmyo ritual ceremony is designed to feel the originality and Confucian universality of Joseon through five senses. The ritual of Jongmyo Shrine described in Kukjo-oryeui shows a new horizon reached by the people of Joseon.
    번역하기

    In this article, we looked at the process of combining the music used in the Jongmyo ritual with the procedure of the Jongmyo ritual performed by the king. In order to properly know Jongmyo ritual, not only the ritual procedure but also the music part...

    In this article, we looked at the process of combining the music used in the Jongmyo ritual with the procedure of the Jongmyo ritual performed by the king. In order to properly know Jongmyo ritual, not only the ritual procedure but also the music part must be examined together. In the theory of Confucian rule, rituals and music were considered equally important, and Jongmyo rituals are the most important Confucian rituals combined with music and rituals.
    Existing Confucian state rituals were for the emperor, but Joseon wanted to create state rituals used in the kingdom. In Joseon, it was desired to review the rituals of the Ming Dynasty and apply them to their own rituals. But the Ming Dynasty did not disclose the Ming Dynasty's rituals, asking to follow Joseon's Confucian customs. Joseon created its own Confucian state rituals for the king to use.
    Jongmyo ritual in Joseon, held by the king, was built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ng and was revised by King Sejong and King Sejo. Finally, the final version was completed at Kukjo-oryeui; the book for state rituals divided into five categories. For the ritual procedure, the old systems of the Tang and Song dynasties were first referenced. It was also revised by referring to the current system of the Ming Dynasty. Gradually, Joseon's unique ritual procedure emerged.
    In Joseon, ritual music was newly created, and the musical element played a large part in making Jongmyo ritual a unique ritual of Joseon. Chinese music, dance, and songs were used in Jongmyo rituals. In Joseon, Chinese music and dance were used for Jongmyo rituals, but the song was newly written. It was not easy to harmonize with ceremonial procedures while making new music. Sejong created new music, dance, and songs to praise the virtues and achievements of his grandfather and father, the kings. The representative music was the Yongbieocheonga; the song of dragons flying into the sky. Sejong failed to complete the Jongmyo ritual using new music. King Sejo inherited King Sejong's will to hold a memorial service to Jongmyo Shrine, which used new music, and actually created a memorial service and held a memorial service.
    The new Jongmyo ritual ceremony created by King Sejo developed more elaborately and was included in the Kukjo-oryeui. Joseon people who perform Jongmyo rituals were able to experience Joseon's unique rituals through their five senses. Jongmyo ritual ceremony is designed to feel the originality and Confucian universality of Joseon through five senses. The ritual of Jongmyo Shrine described in Kukjo-oryeui shows a new horizon reached by the people of Joseon.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이글에서는 종묘 親享儀를 중심으로 의례와 음악의 정비를 당시 사람의 시선에서 종합하여 이해할 수 있는가를 시험적으로 검토하였다. 종묘 의례를 유교적 본속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하기 위해서, 의례 절차와 용악의 구성을 함께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조선은 친왕 등급의 유교 국가례를 구축하려고 했기 때문에 고려의 제도를 승계할 수도, 중국의 황제 五禮를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었다. 명은 자신의 오례를 조선에 공개하지 않으면서 ‘조선의 本俗을 따르라’ 선언하였다. 조선은 친왕에 해당하는 유교 本俗을 사실상 창출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의례 정비에 긴 시간을 투입하였다. 세종은 조선적인 음악이 적용되는 종묘 친향의 의례를 추구하였다. 古制 혹은, 時制를 지향하면서, 수차례 의례 절차를 개정하였지만, 점차 이에 구애받지 않는 의례 형태를 구성하였다. 조선적 특색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음악적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세종 말년 新樂을 창제하였는데, 선왕의 덕과 업적을 칭송하는 신악은 의례 현장에서 사용할 목적이었다. 절차와 음악이 융합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구현될 수 있었다. 세조대 신악을 중심으로 하는 친향 의례의 시행은 조선의 독특한 의례를 실천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국조오례의』 단계에서 신악은 보다 정돈된 의례 절차와 완전히 융합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국조오례의』 단계의 친향의는 중국이나 고려와 차별될 뿐 아니라, 유교 의례로서의 보편성을 갖춘 의례로 정형화되었다. 『국조오례의』의 친향의 구성은 조선 나름대로 의례 절차와 음악적 요소가 하나로 융합되어 의례 본연의 목적을 구현해낸 성과였다. 유교 의례의 정비라는 지향이 일관되게 유지되면서, 이에 부합되는 음악의 이론적 체계화에 실제의 용악이 조화를 이루는 단계에 도달하면서 비로소 실현된 경지였다.
    번역하기

    이글에서는 종묘 親享儀를 중심으로 의례와 음악의 정비를 당시 사람의 시선에서 종합하여 이해할 수 있는가를 시험적으로 검토하였다. 종묘 의례를 유교적 본속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하기 ...

    이글에서는 종묘 親享儀를 중심으로 의례와 음악의 정비를 당시 사람의 시선에서 종합하여 이해할 수 있는가를 시험적으로 검토하였다. 종묘 의례를 유교적 본속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하기 위해서, 의례 절차와 용악의 구성을 함께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조선은 친왕 등급의 유교 국가례를 구축하려고 했기 때문에 고려의 제도를 승계할 수도, 중국의 황제 五禮를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었다. 명은 자신의 오례를 조선에 공개하지 않으면서 ‘조선의 本俗을 따르라’ 선언하였다. 조선은 친왕에 해당하는 유교 本俗을 사실상 창출해야 했고, 이로 인해 의례 정비에 긴 시간을 투입하였다. 세종은 조선적인 음악이 적용되는 종묘 친향의 의례를 추구하였다. 古制 혹은, 時制를 지향하면서, 수차례 의례 절차를 개정하였지만, 점차 이에 구애받지 않는 의례 형태를 구성하였다. 조선적 특색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음악적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세종 말년 新樂을 창제하였는데, 선왕의 덕과 업적을 칭송하는 신악은 의례 현장에서 사용할 목적이었다. 절차와 음악이 융합되어야 한다는 당위는 선언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구현될 수 있었다. 세조대 신악을 중심으로 하는 친향 의례의 시행은 조선의 독특한 의례를 실천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국조오례의』 단계에서 신악은 보다 정돈된 의례 절차와 완전히 융합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국조오례의』 단계의 친향의는 중국이나 고려와 차별될 뿐 아니라, 유교 의례로서의 보편성을 갖춘 의례로 정형화되었다. 『국조오례의』의 친향의 구성은 조선 나름대로 의례 절차와 음악적 요소가 하나로 융합되어 의례 본연의 목적을 구현해낸 성과였다. 유교 의례의 정비라는 지향이 일관되게 유지되면서, 이에 부합되는 음악의 이론적 체계화에 실제의 용악이 조화를 이루는 단계에 도달하면서 비로소 실현된 경지였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송혜진, "한국 아악사 연구" 민속원 2002

    2 강문식, "태종~~세종대 許稠의 禮制 정비와 禮 인식" 진단학회 (105) : 111-139, 2008

    3 장사운, "증보 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 1986

    4 강제훈,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5 임영선, "조선초기 회례 용악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

    6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일조각 2002

    7 박경지, "조선초기 國家禮 정비와 『國朝五禮儀』 편찬" 고려대 2021

    8 최종석, "조선초기 ‘時王之制’ 논의 구조의 특징과 중화 보편의 추구" 조선시대사학회 (52) : 5-49, 2010

    9 고영진, "조선중기 예학사상사" 한길사 1996

    10 정경희, "조선전기 예제·예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1 송혜진, "한국 아악사 연구" 민속원 2002

    2 강문식, "태종~~세종대 許稠의 禮制 정비와 禮 인식" 진단학회 (105) : 111-139, 2008

    3 장사운, "증보 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 1986

    4 강제훈, "종묘, 조선의 정신을 담다"

    5 임영선, "조선초기 회례 용악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2020

    6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일조각 2002

    7 박경지, "조선초기 國家禮 정비와 『國朝五禮儀』 편찬" 고려대 2021

    8 최종석, "조선초기 ‘時王之制’ 논의 구조의 특징과 중화 보편의 추구" 조선시대사학회 (52) : 5-49, 2010

    9 고영진, "조선중기 예학사상사" 한길사 1996

    10 정경희, "조선전기 예제·예학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0

    11 이욱,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창비 2009

    12 이욱, "조선시대 왕실 제사와 제물의 상징 : 혈식(血食)· 소식(素食)· 상식(常食)의 이념" 종교문화비평학회 20 (20): 221-260, 2011

    13 한형주, "조선시대 국가제사의 시대적 특성" 민족문화연구원 (41) : 3-39, 2004

    14 김해영, "조선 초기 禮制 연구와 『國朝五禮儀』의 편찬" 조선시대사학회 (55) : 41-80, 2010

    15 강제훈, "조선 초기 王室 祖上儀禮의 유교적 정비" 고려사학회 (66) : 121-166, 2017

    16 강제훈, "조선 초기 俗祭 祭祀床의 구성과 그 특징" 고려사학회 (60) : 209-241, 2015

    17 강제훈, "조선 전기의 국가 의례와 의주" 민속원 2015

    18 이욱, "조선 전기 유교국가의 성립과 국가제사의 변화" 한국사연구회 (118) : 6-194, 2002

    19 이욱, "조선 왕실의 제향 공간-정제와 속제의 변용-" 한국학중앙연구원 2015

    20 강제훈, "조선 세종조의 國家禮 정비와 五禮의 성립" 고려사학회 (82) : 97-138, 2021

    21 정화순, "조선 세종대 조회아악 연구" 민속원 2006

    22 강제훈, "조선 「世宗實錄」 「五禮」의 편찬 경위와 성격" 한국사학회 (107) : 169-227, 2012

    23 이욱, "조상제사의 의미와 기억의 의례화儀禮化" 한국국학진흥원 (19) : 473-501, 2011

    24 이욱, "제기(祭器) : 신을 위한 기물(器物)" 종교문화비평학회 23 (23): 349-369, 2013

    25 김종수, "세종조 신악 (新樂)의 전승 연구" 3 : 1997

    26 송혜진, "세종대 동아시아 예악론의 인식 양상과 의례음악 정비" 한국학연구소 (51) : 111-142, 2014

    27 송방송, "세조조 음악업적의 역사적 조명" 48 : 1987

    28 김인숙, "박연 악기 제작에 관한 배경적 고찰-율관 제작을 중심으로-" 14 : 2019

    29 금장태, "귀신과 제사-유교의 종교적 세계-" 제이앤씨 2009

    30 "高麗史"

    31 이범직, "韓國中世禮思想硏究-五禮를 中心으로-" 일조각 1991

    32 "通典"

    33 한형주, "許稠와 태종~세종대 國家儀禮의 정비" 민족문화연구원 (44) : 271-321, 2006

    34 "禮記"

    35 "皇明制書"

    36 "朝鮮經國典"

    37 "朝鮮王朝實錄"

    38 이범직, "朝鮮時代 禮學硏究" 국학자료원 2004

    39 김해영, "朝鮮初期 祭祀典禮 硏究" 집문당 2003

    40 강제훈, "朝鮮初期 國家儀禮 정비의 지향과 원칙 - 吉禮·凶禮의 상호 영향을 중심으로 -" 민족문화연구원 (68) : 137-174, 2015

    41 金泰永, "朝鮮 初期 祀典의 成立에 對하여-國家意識의 變遷을 中心으로-" 역사학회 58 : 1973

    42 "明集禮"

    43 "文獻通考"

    44 김승우, "宗廟祭禮樂章 <保太平>·<定大業>의 특성과 변모 양상" 민족문화연구원 (48) : 1-40, 2008

    45 池斗煥, "國朝五禮儀 編纂過程(Ⅰ)-吉禮 宗廟・社稷祭儀를 중심으로" 9 : 1985

    46 "國朝五禮儀"

    47 "周禮"

    48 "儀禮"

    49 신대철, "『세종실록악보』 소재 신악과 관련된 고취악론 재고" 한국국악학회 60 : 125-144, 2016

    50 최연식 ; 송경호, "<경국대전>과 유교국가 조선의 예치(禮治): 예(禮)의 형식화 과정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소 38 (38): 46-65, 2007

    51 한형주, "15세기 祀典體制의 성립과 그 추이―『國朝五禮儀』편찬과정을 중심으로 ―" 역사교육연구회 (89) : 127-161, 2004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7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7-02-06 학회명변경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05-09-29 학술지명변경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Journal for the Studies of Korean History KCI등재
    2004-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3-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1-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28 1.28 1.1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97 0.89 2.254 0.21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