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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어느 식민지 지식인의 서해도서 ‘巡禮’ = An Intellectual’s “Pilgrimage” to Islands on the West Sea in th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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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Dong-A Daily News (東亞日報) published a 73 part ambitious serial, “A Pilgrimage to the Islands,” from June 22nd to September 12th, 1928. Seven journalists were sent to the islands on the West, South, and East Sea, where they studied legends, investigated historical remains, and examined the living conditions of residents. It was a cultural movement by bourgeois-nationalists in 1920s, too, who tried to include islands, which had been considered as the territorial boundaries, among the national space, and to encourage national solidarity. Clearly, this serial was different from the serials published by government-run press or the accounts of a journey written in 1910s, for example, the travelogue of Choi Nam-Sun (崔南善):The former advertised the results of colonialization and modernization, while the latter sublimated a trip across the country into a religious ritual. “Pilgrimage” was used to catch a glimpse of lives of people who overcame contradictions of the times, natural disaster, and the hardship of life, as well as to diffuse knowledge of the national territory and the historical remains. Paradoxically, in the “imagination” of the cultural elites, they were the model of the nation lost long time ago.
    The author reviews the situation in islands on the West Sea in 1920s, focusing on “Baengnyeongdo Area (白翎島 方面)” by Kim Dong-Jin, the 6th article of “A Pilgrimage to the islands.” He grew up in Russia, while he was a man of national consciousness just like the other journalists, as a result of the education and experience in Koreatown, Yunhaeju (沿海州). He felt a strong sense of fraternity by the warm welcome of residents, and wept with an old soldier’s patriotism. In Daecheong Island (大靑島), he praised Kim Hak-Sun (金學善) that he established “an idealistic autonomous town,” who tried to isolate the island from outer world and to maintain the tradition. Also, according to his detailed information on the folk religion, until 1920s at least, lots of residents believed in Im Gyeong-Eop (林慶業) in Yeonpyeong Island, Emperor Shun of Wen (元順帝) in Daecheong Island, and Big Bamboo Tube (王竹筒) in Baekryeong Island. On the other hand, in 1920s, there was a gradual change in the social structure in the islands on the West Sea, from agricultural society to fisheries society. As a result, worshipping Im Gyeong-Eop, the God of fishery, became the typical religion in the islands on the West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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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g-A Daily News (東亞日報) published a 73 part ambitious serial, “A Pilgrimage to the Islands,” from June 22nd to September 12th, 1928. Seven journalists were sent to the islands on the West, South, and East Sea, where they studied legends, ...

    Dong-A Daily News (東亞日報) published a 73 part ambitious serial, “A Pilgrimage to the Islands,” from June 22nd to September 12th, 1928. Seven journalists were sent to the islands on the West, South, and East Sea, where they studied legends, investigated historical remains, and examined the living conditions of residents. It was a cultural movement by bourgeois-nationalists in 1920s, too, who tried to include islands, which had been considered as the territorial boundaries, among the national space, and to encourage national solidarity. Clearly, this serial was different from the serials published by government-run press or the accounts of a journey written in 1910s, for example, the travelogue of Choi Nam-Sun (崔南善):The former advertised the results of colonialization and modernization, while the latter sublimated a trip across the country into a religious ritual. “Pilgrimage” was used to catch a glimpse of lives of people who overcame contradictions of the times, natural disaster, and the hardship of life, as well as to diffuse knowledge of the national territory and the historical remains. Paradoxically, in the “imagination” of the cultural elites, they were the model of the nation lost long time ago.
    The author reviews the situation in islands on the West Sea in 1920s, focusing on “Baengnyeongdo Area (白翎島 方面)” by Kim Dong-Jin, the 6th article of “A Pilgrimage to the islands.” He grew up in Russia, while he was a man of national consciousness just like the other journalists, as a result of the education and experience in Koreatown, Yunhaeju (沿海州). He felt a strong sense of fraternity by the warm welcome of residents, and wept with an old soldier’s patriotism. In Daecheong Island (大靑島), he praised Kim Hak-Sun (金學善) that he established “an idealistic autonomous town,” who tried to isolate the island from outer world and to maintain the tradition. Also, according to his detailed information on the folk religion, until 1920s at least, lots of residents believed in Im Gyeong-Eop (林慶業) in Yeonpyeong Island, Emperor Shun of Wen (元順帝) in Daecheong Island, and Big Bamboo Tube (王竹筒) in Baekryeong Island. On the other hand, in 1920s, there was a gradual change in the social structure in the islands on the West Sea, from agricultural society to fisheries society. As a result, worshipping Im Gyeong-Eop, the God of fishery, became the typical religion in the islands on the West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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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1928년 6월 22일부터 9월 12일까지 총 73회에 걸쳐 연재된 「島嶼巡禮」시리즈는 『동아일보』가 서해, 남해, 동해의 주요 도서에 7명의 기자를 파견하여 각 섬들의 고적과 전설 등을 조사하고, 섬 주민의 생활상을 살펴본 야심찬 기획이었다. 이는 전통시대 王의 敎化가 미치기 힘든 문화적 최외곽[夷], 그리고 단순히 내지와 구분되는 국토의 境界로만 인식했던 도서지역을 민족 내부의 공간으로 포섭하고 민족 간의 연대감을 높이려는 1920년대 부르주아민족주의운동 노선의 ‘文化運動’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같은 시기 식민정책과 근대화의 성과물로서 지방의 발전상을 선전한 관제언론들의 연재물들은 물론 1910년대 이후 국토순례를 종교적 차원의 祭儀 행위로까지 찬미한 崔南善 등의 국토기행문과도 엄연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巡禮’라는 표제를 사용한 이유는 국토와 고적에 대한 지식 보급 외에도 식민지 모순과 자연재해, 생활고를 극복하고, 민족의 정체성과 역동성을 잃지 않는 기층민중의 삶을 엿보기 위함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중심부의 문화적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민족의 典範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본고에서는 「島嶼巡禮」의 여섯 번째 순례에 해당하는 金東進 기자의 ‘白翎島 방면’ 기사를 중심으로 1920년대 西海島嶼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김동진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러시아에서 보낸 인물이지만 沿海州의 韓人村에서 받은 남다른 교육과 경험으로 인해 다른 기자들에 못지않은 민족적 의식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서해도서 주민들의 환대에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고, 백령도 늙은 군인의 애국심에 눈물 흘리었다. 그리고 외부 사회와 철저히 고립시킨 채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유지시키려는 大靑島의 有志 金學善의 활동을 ‘理想的인 自治村’의 건설이라고 찬사를 보내었다. 아울러 그는 延平島, 大靑島, 白翎島 등 서해도서의 민속신앙에 대해서도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1920년대 말까지는 이들 세 섬에 ‘林慶業’, ‘元順帝’, ‘왕대통[王竹筒]’ 신앙이 각 섬의 대표적 신앙으로 군림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는 근대화의 과정 속으로 서해도서의 사회구조가 점차 변화를 맞고 있던 시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통시대 水軍鎭 중심의 농업사회 구조가 서서히 해체되고, 근대어업기지를 중심으로 하는 어업사회로 사회구조가 변환함에 따라 서해도서의 민속신앙은 이후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다. ‘어업의 신’으로 추앙받는 ‘임경업’ 신앙은 굳건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근 도서로 확산되어 서해도서의 대표적 민속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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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8년 6월 22일부터 9월 12일까지 총 73회에 걸쳐 연재된 「島嶼巡禮」시리즈는 『동아일보』가 서해, 남해, 동해의 주요 도서에 7명의 기자를 파견하여 각 섬들의 고적과 전설 등을 조사하고, ...

    1928년 6월 22일부터 9월 12일까지 총 73회에 걸쳐 연재된 「島嶼巡禮」시리즈는 『동아일보』가 서해, 남해, 동해의 주요 도서에 7명의 기자를 파견하여 각 섬들의 고적과 전설 등을 조사하고, 섬 주민의 생활상을 살펴본 야심찬 기획이었다. 이는 전통시대 王의 敎化가 미치기 힘든 문화적 최외곽[夷], 그리고 단순히 내지와 구분되는 국토의 境界로만 인식했던 도서지역을 민족 내부의 공간으로 포섭하고 민족 간의 연대감을 높이려는 1920년대 부르주아민족주의운동 노선의 ‘文化運動’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들은 같은 시기 식민정책과 근대화의 성과물로서 지방의 발전상을 선전한 관제언론들의 연재물들은 물론 1910년대 이후 국토순례를 종교적 차원의 祭儀 행위로까지 찬미한 崔南善 등의 국토기행문과도 엄연한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巡禮’라는 표제를 사용한 이유는 국토와 고적에 대한 지식 보급 외에도 식민지 모순과 자연재해, 생활고를 극복하고, 민족의 정체성과 역동성을 잃지 않는 기층민중의 삶을 엿보기 위함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중심부의 문화적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민족의 典範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본고에서는 「島嶼巡禮」의 여섯 번째 순례에 해당하는 金東進 기자의 ‘白翎島 방면’ 기사를 중심으로 1920년대 西海島嶼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김동진은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러시아에서 보낸 인물이지만 沿海州의 韓人村에서 받은 남다른 교육과 경험으로 인해 다른 기자들에 못지않은 민족적 의식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서해도서 주민들의 환대에 뜨거운 동포애를 느꼈고, 백령도 늙은 군인의 애국심에 눈물 흘리었다. 그리고 외부 사회와 철저히 고립시킨 채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유지시키려는 大靑島의 有志 金學善의 활동을 ‘理想的인 自治村’의 건설이라고 찬사를 보내었다. 아울러 그는 延平島, 大靑島, 白翎島 등 서해도서의 민속신앙에 대해서도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적어도 1920년대 말까지는 이들 세 섬에 ‘林慶業’, ‘元順帝’, ‘왕대통[王竹筒]’ 신앙이 각 섬의 대표적 신앙으로 군림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는 근대화의 과정 속으로 서해도서의 사회구조가 점차 변화를 맞고 있던 시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통시대 水軍鎭 중심의 농업사회 구조가 서서히 해체되고, 근대어업기지를 중심으로 하는 어업사회로 사회구조가 변환함에 따라 서해도서의 민속신앙은 이후 급속한 변화를 가져왔다. ‘어업의 신’으로 추앙받는 ‘임경업’ 신앙은 굳건히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근 도서로 확산되어 서해도서의 대표적 민속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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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이영호, "황해도 동학농민군과 기독교 선교사의 접촉과 소통 -매켄지(William J. McKenzie)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역사학회 34 (34): 5-38, 2011

    2 강봉룡, "해양인식의 확대와 해양사" 역사학회 200 (200): 67-97, 2008

    3 신기욱,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넘어서" 삼인 2006

    4 한상복, "한국의 낙도민속지" 집문당 1982

    5 "한국언론재단 미디어가온"

    6 박찬승,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민족주의 우파의 실력양성운동론-" 역사비평사 1992

    7 "조선일보 아카이브"

    8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 "조선일보 사람들 : 일제시대 편" 랜덤하우스중앙 2004

    9 B. 홀, "조선서해탐사기" 집문당 2005

    10 주강현, "조기에 관한 명상" 한겨레신문사 1998

    1 이영호, "황해도 동학농민군과 기독교 선교사의 접촉과 소통 -매켄지(William J. McKenzie)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역사학회 34 (34): 5-38, 2011

    2 강봉룡, "해양인식의 확대와 해양사" 역사학회 200 (200): 67-97, 2008

    3 신기욱,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넘어서" 삼인 2006

    4 한상복, "한국의 낙도민속지" 집문당 1982

    5 "한국언론재단 미디어가온"

    6 박찬승, "한국근대정치사상사연구-민족주의 우파의 실력양성운동론-" 역사비평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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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조선일보사 사료연구실, "조선일보 사람들 : 일제시대 편" 랜덤하우스중앙 2004

    9 B. 홀, "조선서해탐사기" 집문당 2005

    10 주강현, "조기에 관한 명상" 한겨레신문사 1998

    11 M. 로빈슨,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 나남 1990

    12 이기훈, "일제 강점기 섬과 섬사람들에 대한 인식 -1920년대 호남지방의 도서들을 중심으로-" 역사문화학회 15 (15): 397-428, 2012

    13 정연학, "인천 섬지역의 어업문화"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08

    14 정진석, "인물한국언론사" 나남출판 1995

    15 옹진군향리지편찬위원회, "옹진군향리지"

    16 옹진군지편찬위원회, "옹진군지"

    17 임학성, "역주 인천도서지역의 지지자료"

    18 조경달, "식민지기 조선의 지식인과 민중-식민지 근대성론 비판" 선인 2012

    19 나승만, "서해와 연평도" 민속원 2011

    20 서종원, "서해안 임경업 신앙 연구" 중앙대학교 대학원 2009

    21 서영대, "서해도서민속학 1" 인하대학교박물관 1985

    22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나남출판 2002

    23 박찬승, "부르주아 민족주의, 우파 민족주의, 문화 민족주의" 역사문제연구소 75 (75): 286-290, 2006

    24 유창호, "백령․대청도를 바라보는 전통과 근대의 시선" 인하대학교박물관 14 : 2011

    25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대청도 대중국 등 관광객 유치 역사 발굴․고증 연구" 2013

    26 동아일보80년사 편찬위원회, "민족과 더불어 80년 :동아일보 1920~2000" 동아일보사 2000

    27 윤영실, "문학적 글쓰기와 민족의 공간 -조국(祖國), 신화세계, 변경(邊境)-" 한국현대문학회 26 (26): 99-125, 2008

    28 강재철, "러시아 N.G. 가린의 개화기 한국설화자료의 수집과 채록방법 - 조사자와 제보자 및 후원자에 주안하여" 동아시아고대학회 18 (18): 237-284, 2008

    29 대청면지편찬위원회, "대청면지"

    30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31 구인모, "국토순례와 민족의 자기구성 - 근대 국토기행문의 문학사적 의의 -" 한국문학연구소 27 (27): 128-152, 2004

    3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33 박종오, "『동아일보』 <島嶼巡禮>를 통해서 본 1920년대 도서 민속에 대한 인식" 도서문화연구원 (39) : 111-131, 2012

    34 김경남, "1920년대 전반기 『동아일보』 소재 기행 담론과 기행문 연구" 한민족어문학회 (63) : 251-275, 2013

    35 金明久, "1920년대 국내 부르주아 민족운동 우파 계열의 민족운동론" 한국근현대사학회 20 : 163-196, 2002

    36 노기욱, "1920년대 島嶼巡禮" 역사문화학회 15 (15): 153-19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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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5-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8-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2006-07-12 학회명변경 영문명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Center for Korea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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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5 0.75 0.68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62 0.59 1.314 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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