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1674년(숙종 즉위)부터 1800년(정조 24)까지 虎患의 확산과정을 살피고 조선 정부의 포호정책의 전개과정을 분석하여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해 연구하였다. 전쟁과 기근, 대규모 군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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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 단국대학교 대학원, 2021
학위논문(석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 사학과 조선사 전공 , 2021. 2
2021
한국어
경기도
Review of tiger hunting policies of the Joseon government in the 17th and 18th centuries
iii, 43 장 ; 30 cm.
지도교수:김문식
단국대학교 학위논문은 저작권에 의해 보호받습니다
참고문헌 : 장 37-38
I804:11017-000000196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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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674년(숙종 즉위)부터 1800년(정조 24)까지 虎患의 확산과정을 살피고 조선 정부의 포호정책의 전개과정을 분석하여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해 연구하였다.
전쟁과 기근, 대규모 군사훈련의 제약과 더불어 청에서의 호랑이의 유입 등으로 인해 양난 이후 호환은 점점 심해졌다. 호환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에서 발생하였고, 주된 피해자는 민간인들이었다. 특히 1699년(숙종 25)에 대규모로 발생된 호환은 조선정부에게 체계적인 포호정책의 수립의 필요성을 갖게 했다.
조선 후기 포호정책은 호랑이에 대한 포상을 걸어 이를 잡도록 장려케 하는 것이었으며 예방보다 사후처리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정부는 막연했던 포상을 구체화하여 등급 및 포상의 기반을 확실히 했다. 또한 지역별로 전담하는 기구를 정하고, 책임 여부를 문서화하여 담당기구가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였다.
포호에 활용된 도구에도 변화가 있었다. 신무기로 도입된 조총은 소규모의 인원으로도 호랑이 사냥을 가능하게 하였다. 기존의 무기인 창과 활은 활용이 축소되었으나, 각각 필요성에 의해 변용되었다. 덫과 함정은 조선 전기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사용되었으며, 호망은 포획의 용도에서 신변을 보호하는 용도로 활용법이 변화했다.
조선정부는 호랑이의 숫자를 줄이는 등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많은 한계점도 나타나 호환의 근절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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