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고려 무인집권기 거사불교의 推移와 고려대장경 = Goryeo Military Reign Period householder buddhism votary(geosa, 居士) and the Tripitaka Koreana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6059798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오류접수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intellectuals of the Goryeo Dynasty were social leaders who led bureaucrats, Confucian scholars, and senior monks. and led society in the whole of religion, politics, and culture.
    They also studied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depth. As a result they recognized Confucianism as a realistic way, understanding Buddhism as a method of cultivating the mind. this was the normal lifestyle of the intellectuals of the Koryô period.
    In this paper, I want to clarify that the Buddhistic votary(geosa, 居士) in the middle of the Goryeo period led to the extension of the local intellectuals during the Military ruling period and made the local Literary Class actively to participate in the formation of the Tripitaka Koreana.
    In Military Reign Period of Goryeo, the ideological and academic activities of the intellectuals who fled to the provinces greatly influenced the local ruling class people at that time and let the number of local intellectuals increase.
    Besides they participated in the religious social reformation movement, the faith association, and actively expressed their critical consciousness in the Buddhist community and the ruling regime at the time.
    Furthermore "Geosa" have played a pivotal role in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by actively participating in the colonization project during the Mongol invasion period.
    As the Tripitaka Koreana production project was a national project, all classes participating in various fields according to their individual status and ability. Finally their active participation could be the foundation to complete the cultural heritage of the Tripitaka Koreana.
    번역하기

    The intellectuals of the Goryeo Dynasty were social leaders who led bureaucrats, Confucian scholars, and senior monks. and led society in the whole of religion, politics, and culture. They also studied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depth. As a result t...

    The intellectuals of the Goryeo Dynasty were social leaders who led bureaucrats, Confucian scholars, and senior monks. and led society in the whole of religion, politics, and culture.
    They also studied Confucianism and Buddhism in depth. As a result they recognized Confucianism as a realistic way, understanding Buddhism as a method of cultivating the mind. this was the normal lifestyle of the intellectuals of the Koryô period.
    In this paper, I want to clarify that the Buddhistic votary(geosa, 居士) in the middle of the Goryeo period led to the extension of the local intellectuals during the Military ruling period and made the local Literary Class actively to participate in the formation of the Tripitaka Koreana.
    In Military Reign Period of Goryeo, the ideological and academic activities of the intellectuals who fled to the provinces greatly influenced the local ruling class people at that time and let the number of local intellectuals increase.
    Besides they participated in the religious social reformation movement, the faith association, and actively expressed their critical consciousness in the Buddhist community and the ruling regime at the time.
    Furthermore "Geosa" have played a pivotal role in overcoming the national crisis by actively participating in the colonization project during the Mongol invasion period.
    As the Tripitaka Koreana production project was a national project, all classes participating in various fields according to their individual status and ability. Finally their active participation could be the foundation to complete the cultural heritage of the Tripitaka Koreana.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고려시대 문인층은 관료층, 유학자, 고위 승려 등 고려사회를 이끌어가던 사회주도층으로 종교·정치·문화 전반에서 사회를 주도하였다. 또한 유교와 불교를 두루 섭렵하여 유교는 經世的 측면에서, 불교는 心性修養의 측면에서 이해하였는데 이는 고려시대 문인들의 일상적인 생활방식이었다.
    본고에서는 고려중기 거사불교가 무인집권기를 거치면서 지방의 문인층 확대를 가져왔으며, 이는 대장경 조성에 지방의 향리와 독서층을 비롯한 다양한 문인층이 대거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무인집권기 지방으로 은거한 문인들의 사상과 교학활동은 당시 지방의 향리층과 독서층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지방 문인층이 많이 양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사회변혁 운동인 신앙결사가 일어났을 때 적극 참여하면서 당시 불교계와 정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표출하면서 선종의 부흥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대몽항쟁기 지방에 존재하였던 다양한 유형의 문인층은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실참여를 실천하였으며 대장경 조성사업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장경 조성은 국가적 사업으로 전 계층이 자신들의 능력과 기능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참여하였으며, 『고려대장경』이라는 문화유산을 완성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번역하기

    고려시대 문인층은 관료층, 유학자, 고위 승려 등 고려사회를 이끌어가던 사회주도층으로 종교·정치·문화 전반에서 사회를 주도하였다. 또한 유교와 불교를 두루 섭렵하여 유교는 經世的 ...

    고려시대 문인층은 관료층, 유학자, 고위 승려 등 고려사회를 이끌어가던 사회주도층으로 종교·정치·문화 전반에서 사회를 주도하였다. 또한 유교와 불교를 두루 섭렵하여 유교는 經世的 측면에서, 불교는 心性修養의 측면에서 이해하였는데 이는 고려시대 문인들의 일상적인 생활방식이었다.
    본고에서는 고려중기 거사불교가 무인집권기를 거치면서 지방의 문인층 확대를 가져왔으며, 이는 대장경 조성에 지방의 향리와 독서층을 비롯한 다양한 문인층이 대거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무인집권기 지방으로 은거한 문인들의 사상과 교학활동은 당시 지방의 향리층과 독서층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지방 문인층이 많이 양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사회변혁 운동인 신앙결사가 일어났을 때 적극 참여하면서 당시 불교계와 정권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표출하면서 선종의 부흥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대몽항쟁기 지방에 존재하였던 다양한 유형의 문인층은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실참여를 실천하였으며 대장경 조성사업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장경 조성은 국가적 사업으로 전 계층이 자신들의 능력과 기능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참여하였으며, 『고려대장경』이라는 문화유산을 완성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崔柄憲, "金哲俊博士華甲紀念私學論叢" 지식산업사 1983

    2 金毅圭, "한국사18" 국사편찬위원회 2002

    3 김두진,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2002

    4 徐景洙, "한국불교사상사 숭산박길진박사화갑기념논문집" 숭산박길진박사 화갑기념사업회 1975

    5 조용헌, "이자현의 능엄선 연구" 한국종교학회 12 : 1996

    6 정성식, "이규보(李奎報)의 유불관(儒佛觀)" 동양문화연구원 24 : 103-134, 2016

    7 김창현, "고려중기 윤언이의 사상과 파주 金剛齋"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 31 : 2004

    8 황인규, "고려시대 불교계와 불교문화" 국학자료원 2011

    9 전영준, "고려시대 공역승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5

    10 이병희, "고려시기 관료의 불교계 네트워크" 한국중세사학회 (39) : 45-90, 2014

    1 崔柄憲, "金哲俊博士華甲紀念私學論叢" 지식산업사 1983

    2 金毅圭, "한국사18" 국사편찬위원회 2002

    3 김두진, "한국사 16" 국사편찬위원회 2002

    4 徐景洙, "한국불교사상사 숭산박길진박사화갑기념논문집" 숭산박길진박사 화갑기념사업회 1975

    5 조용헌, "이자현의 능엄선 연구" 한국종교학회 12 : 1996

    6 정성식, "이규보(李奎報)의 유불관(儒佛觀)" 동양문화연구원 24 : 103-134, 2016

    7 김창현, "고려중기 윤언이의 사상과 파주 金剛齋"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 31 : 2004

    8 황인규, "고려시대 불교계와 불교문화" 국학자료원 2011

    9 전영준, "고려시대 공역승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2005

    10 이병희, "고려시기 관료의 불교계 네트워크" 한국중세사학회 (39) : 45-90, 2014

    11 金皓東, "고려무신정권시대 文人知識層의 현실대응" 경인문화사 2003

    12 金潤坤, "고려대장경의 새로운 이해" 불교시대사 2002

    13 최연주, "고려대장경연구" 경인문화사 2006

    14 김철웅, "고려 예종대 郭輿의 활동과 道敎" (사)한국인물사연구회 (16) : 339-367, 2011

    15 류창규, "고려 무인정권 시대의 문인 박인규-고문존중·세승과관련하여" 서강대 동아연구소 17 : 1989

    16 황병성, "강도시기 이규보의 현실인식" 전주대역사문화연구소 8 : 2001

    17 金相永, "高麗睿宗代禪宗의 復興과 佛敎界의 變化"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청계사학회 5 : 1988

    18 李佑成, "高麗武臣政權하의 文人知識層의 動向" 영남대학교 1977

    19 金皓東, "高麗武臣政權時代僧侶知識人知訥·慧諶의 現實對應" 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 13 : 1992

    20 張叔卿, "高麗武人政權下文士의 動態와 性格," 한국사연구회 34 : 1981

    21 羅滿洙, "高麗武人執權期의 國王과 文班" 진단학회 63 : 1987

    22 이병희, "高麗時期 居士의 生活方式과 그 意味" 한국사학회 (116) : 197-242, 2014

    23 정제규, "高麗後期의 居士觀과 그 特性" 한국문화사학회 11 (11): 1999

    24 蔡尙植, "高麗後期佛敎史硏究" 일조각 1991

    25 金潤坤, "高麗國分司大藏都監과 布施階層"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16 : 1996

    26 "高麗史"

    27 許興植, "高麗佛敎史硏究" 일조각 1989

    28 許興植, "高麗中期禪宗의 復興과 看話禪의 展開"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6 : 1982

    29 신규탁, "高麗中期居士佛敎와 李資玄의 禪사상" 강원대 강원문화연구소 23 : 2004

    30 조명제, "高麗中期 居士禪의 사상적 경향과 看話禪 수용의 기반" 부산경남사학회 (44) : 99-120, 2002

    31 전영준, "高麗 江都時代 사원의 기능과 역할" 한국역사민속학회 (32) : 131-163, 2010

    32 金毅圭, "韓㳓劤博士停年紀念史學論叢" 지식산업사 1981

    33 "西河集"

    34 崔孝軾, "竹堂李炫熙敎授華甲紀念韓國史學論叢" 논총간행위원회 1997

    35 "破閑集"

    36 최영호, "江華京板』高麗大藏經『의 판각사업 연구" 경인문화사 2009

    37 "櫟翁稗說"

    38 "東文選"

    39 "東國李相國集"

    40 朴洪培, "弘慶寺창건의 思想的背景" 경주사학회 3 : 1984

    41 李載昌, "佛敎의 社會經濟觀" 佛敎文化硏究院 10 : 1973

    42 최연주, "『고려대장경』 彫成과 鄭晏의 역할" 석당학술원 (70) : 93-125, 2018

    43 최영호, "13세기 중엽 경주지역 分司東京大藏都監의 운영형태" 신라문화연구소 (27) : 249-274, 2006

    44 최영호, "13세기 중엽 江華京板 高麗大藏經의 조성공간과 경주 東泉社" 한국중세사학회 (20) : 95-116, 2006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8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22-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KCI등재
    2015-12-01 등재 등재후보로 하락 (기타) KCI등재후보
    2015-03-19 학회명변경 영문명 : Korean Institute for uddhist Studies -> Korean Institute for Buddhist Studies KCI등재
    2011-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9-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8-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77 0.77 0.61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59 0.55 1.569 0.17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