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 건축은 명확성과 완전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건축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건축의 한 경향이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으며, 형태적으로 기울어지고 뒤틀려 있어 불안정함...
해체주의 건축은 명확성과 완전성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건축과는 뚜렷이 대비되는 건축의 한 경향이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으며, 형태적으로 기울어지고 뒤틀려 있어 불안정함을 유발하는 것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 해체주의 건축은 1980년대에 세계적인 조류를 형성했으며, 그 용어는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해체주의 건축전(Deconstructivist Architecture)’을 계기로 생겨나게 되었다.
이 전시의 큐레이터 마크 위글리(Mark Wigley)는 해체주의 건축을 비대칭적인 기하학을 사용하여 고전적인 구성 법칙을 깨뜨린 러시아 구축주의와 연관 지었다. 그는 구축주의(constructivism) 앞에 변형을 의미하는 접두어 ‘de-'를 붙여 해체주의(deconstructivism)라는 용어를 만들어내었는데, 이것은 해체주의가 러시아 구축주의에서 나왔지만 그것에서 일탈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구축주의와 연결짓고자 했던 위글리의 견해와는 다르게, 많은 이론가들은 해체주의 건축을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 철학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았고 이를 통해 해체주의 건축을 읽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관점들은 해체주의 건축의 특성을 일정 부분 정확히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메리 맥러드(Mary McLeod)는 이러한 논의들이 해체주의 건축전에 참여했던 일곱 명의 건축가들 중 몇몇에만 한정된 것임을 밝혔다. 또한 해체주의 건축가들의 작품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름 건축(Folding Architecture)'이라는 새로운 방향으로 이행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으로 해체주의 건축을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따라서 본 논문은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주름론을 통하여 해체주의 건축의 최근 경향을 살펴보고자 하였으며, 가장 극단적인 경향을 보이는 세 명의 해체주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 렘 쿨하스(Rem Koolhaas),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을 논의의 초점으로 삼았다.
I장에서는 해체주의 건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그것을 둘러싼 논의들 그리고 그 한계를 지적하였다. II장에서는 해체주의 건축을 새롭게 읽기 위한 방법론으로 들뢰즈의 주름론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들뢰즈가 논하고 있는 주름 개념은 세계를 이루는 최소 단위가 점이 아니라 주름이라고 보았던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기인한 것이며, ‘물질의 주름(Pleats of Matter)'과 ’영혼 안의 주름(Folds in the Soul)', 두 가지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었다. 물질의 주름이란 주로 가시적인 차원의 것으로, 동굴의 주름진 벽면, 종이를 접을 때 나타나는 주름, 물결이 파동칠 때의 주름이 이러한 주름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영혼 안의 주름이란 보이지 않는 차원의 주름인데, 접혀져 있다가 펼쳐지는 것, 즉 잠재적인 상태로 있다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본 연구자는 이러한 주름들이 공간 안에서 나타날 때 유기적인 공간, 이벤트(event)의 공간, 감성적인(affective) 공간으로 드러남을 보였다.
III장에서는 II장에서 파악한 주요 개념들을 토대로, 게리, 쿨하스, 아이젠만의 1990년대 이후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첫 번째로 유기적인 공간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in Bilbao>을 비롯한 게리의 건축과 쿨하스의 <시애틀 공공 도서관(Seattle Public Library)>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 건축에서 보이는 주름은 곡선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주름과 클러스터를 이루는 유기체와 같은 덩어리를 포함하여, 단일하고도 연속된 형태를 이루는 재료와 구조, 주변의 분화된 요소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외피를 통해 드러남을 확인하였다.
두 번째로 이벤트의 공간은 쿨하스의 <보르도 주택(House in Bordeaux)>과 아이젠만의 <홀로코스트 기념관(Holocaust Memorial)> 등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쿨하스는 불확정적인 프로그램과 유연한 빈 공간을 자신의 건축 전략 중 하나로 삼고 있고, 이것은 이벤트가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미래에 확장이 가능하도록 나선형으로 이어진 바닥면으로 서고를 구성하기도 하였고, 빈 공간이라는 장치를 통해 빛과 공기의 흐름 그리고 역동성이 발생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아이젠만은 보행자에게 기능적인 역할을 벗어버린 구조물들 사이의 좁은 통로를 걷게 함으로써, 기억을 이끌어냄과 동시에 새로운 이벤트가 일어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감성적인 공간은 아이젠만의 <알테카 오피스 빌딩(Alteka Office Building)>과 쿨하스의 <쿤스트할(Kunsthal)> 등에서 볼 수 있었다. 아이젠만은 대상이 본질적인 형태로 규정될 수 없음을 나타내고자, 접힘-펼침 기법을 통해 되어가는 건축을 계획하였다. 이것은 더 이상 원근법적인 시각으로는 파악할 수 없으며, 다른 논리, 즉 아우라(aura)로만 지각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쿨하스의 건축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비선형적인 공간 전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보행자는 건물의 구조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혼돈을 느끼게 됨을 보였다. 이 건축들은 주체중심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효율적인 공간에서 일탈한, 감성적인 공간을 핵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리하자면, 해체주의 건축가 게리와 쿨하스, 아이젠만의 1990년대 이후의 작품들은 분리될 수 있는 점이라는 개념이 아닌, 무한히 연속적인 주름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들뢰즈가 논한 가시적인 차원의 주름과 보이지 않는 차원의 주름이, 그들의 구체적인 작품에서 유기적인 공간, 이벤트의 공간, 감성적인 공간으로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논문에서 제시한 해체주의 건축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지금까지 별개로 다루어져왔던 주름 건축을 해체주의 건축의 연장선상에서 되새겨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고 생각된다. 또한 해체주의 건축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단편적인 시각을 벗어나, 좀 더 다양한 해석의 영역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 본 논문의 의의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