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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OTELIC THEORY OF ART = 藝術의 自目的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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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詩는 경험이다. 일정하게 배열된 소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정확한 이미지를 주는 일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말과 그 말이 의미하는 물건, 그리고 그 물건에 관한 생각, 이 세 가지가 만드는 세모꼴을 생각할 때, 그 말과 그 말이 의미하는 물건과의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그물건에 관한 우리의 생각들이 모두 똑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이란 類槪念을 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말은 현실의 정확한 곡선을 붙잡지 못한다. 우리들은 槪略的인 通話로써 서로 어슴프레한 윤곽만 주고 받으면서 일상생활을 한다. 이 槪略的인 언어는 우리들의 인식능력에 엷은 막이 생기게 해서 현실을 우리들로부터 차단해 버린다. 詩는 이 일상의 언어가 놓친 事物의 實體를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詩人은 쓰면서 이것을 붙잡고, 독자는 읽으면서 그것을 붙잡는다. 사물의 정확한 곡선, 또는 그 형편을 붙잡는다는 말은 그것을 정확히 묘사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정확히 묘사하는 것은 언어의 본질상 불가능한 일이다. 단어와 단어의 관계에서 그 단어들의 총화가 주는 의미 이상의 것이 생겨날 때 비로소 그 단어들만으로는 붙잡히지 않는「어떤 것」이 붙잡혀진 것이다.
    말이란 원래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배반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즉 詩의 전달은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 단어들이 배열된 방법에 따라 그 단어들만으로는 줄 수 없는 새로운 뜻이 생기고 -이것을 행간(行間)에서 생겼다고 말해도 좋다.- 이 새로운 뜻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일으키는 변화는 보통의 말들에 의해서는 얻을 수 없는 변화이다. 그것은 우리다 일상생활에서 놓친 實體에 접하는 데에서 생기는 변화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생긴 이 변화는 행동 직전의 태도이고 이 태도가 곧 詩의 궁극적 효과이다. 詩는, 널리 말해서 藝術은, 우리의 認識能力에 엷게(때로는, 두껍게) 끼인 막을 깨트리고 일어난 이 변화(태도)로써 만족한다. 태도 이후의 행동에는 관심이 없다. 예술의 세계는 태도-즉, 우리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어떤 분위기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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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는 경험이다. 일정하게 배열된 소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정확한 이미지를 주는 일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말과 그 말이...

    詩는 경험이다. 일정하게 배열된 소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일정한 변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정확한 이미지를 주는 일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면 말과 그 말이 의미하는 물건, 그리고 그 물건에 관한 생각, 이 세 가지가 만드는 세모꼴을 생각할 때, 그 말과 그 말이 의미하는 물건과의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그물건에 관한 우리의 생각들이 모두 똑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이란 類槪念을 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말은 현실의 정확한 곡선을 붙잡지 못한다. 우리들은 槪略的인 通話로써 서로 어슴프레한 윤곽만 주고 받으면서 일상생활을 한다. 이 槪略的인 언어는 우리들의 인식능력에 엷은 막이 생기게 해서 현실을 우리들로부터 차단해 버린다. 詩는 이 일상의 언어가 놓친 事物의 實體를 붙잡으려는 노력이다.
    詩人은 쓰면서 이것을 붙잡고, 독자는 읽으면서 그것을 붙잡는다. 사물의 정확한 곡선, 또는 그 형편을 붙잡는다는 말은 그것을 정확히 묘사한다는 말과는 다르다. 정확히 묘사하는 것은 언어의 본질상 불가능한 일이다. 단어와 단어의 관계에서 그 단어들의 총화가 주는 의미 이상의 것이 생겨날 때 비로소 그 단어들만으로는 붙잡히지 않는「어떤 것」이 붙잡혀진 것이다.
    말이란 원래 그 말을 하는 사람을 배반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다. 즉 詩의 전달은 무엇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 단어들이 배열된 방법에 따라 그 단어들만으로는 줄 수 없는 새로운 뜻이 생기고 -이것을 행간(行間)에서 생겼다고 말해도 좋다.- 이 새로운 뜻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일으키는 변화는 보통의 말들에 의해서는 얻을 수 없는 변화이다. 그것은 우리다 일상생활에서 놓친 實體에 접하는 데에서 생기는 변화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 생긴 이 변화는 행동 직전의 태도이고 이 태도가 곧 詩의 궁극적 효과이다. 詩는, 널리 말해서 藝術은, 우리의 認識能力에 엷게(때로는, 두껍게) 끼인 막을 깨트리고 일어난 이 변화(태도)로써 만족한다. 태도 이후의 행동에는 관심이 없다. 예술의 세계는 태도-즉, 우리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어떤 분위기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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