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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병제 형성과정을 통해서 본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 = The History of Conscience Objection in South Korea: Approached through the Making Process of Conscription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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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2000년대 이후 병역거부는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처벌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러한 ``비범죄화``의 틀을 넘어서기 위해서 본 연구는 한국 사회의 병역거부 역사를 징병제의 형성과정 속에서 고찰해보았다. 이 는 병역거부를 ``예외적 현상``,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한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혹독한 탄압과 처벌이 왜 이어졌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일천했는가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한국 전쟁 직후의 열악한 안보상황 속에서도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시작되면서인데, 이는 당시 징집체제 형성의 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권력의 근거인 군부를 강화하고, 전 사회의 병영화를 위해 입영률 100%를 사회적 목표로 삼는다. 이후 주민등록제 도입과 같은 전사회적인 통제, 기피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사회적 낙인 등의 집요한 노력을 바탕으로 병역기피자의 비율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역시 강화되었다. 유신 이후 박정희 정권은 전 사회의 통제를 더욱 강화해 나가면서 처벌을 강화하고, 병역의 도덕화 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병역거부에 대한 탄압 역시 강화되는데, 복무의사에 상관없이 강제입영 했고, 군대 안에서 항명죄로 높은 형량을 선고 받도록 했다. 또한 전사회적인 병역의 ``도덕화``를 진행하면서 병역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사회악``적인 행위로 낙인찍혀 갔다. 민주화 이후에도 병역거부는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지 못했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 팽배한 군사주의와 이단시 되어왔던 ``여호와의 증인`` 교파에 대한 사회적 터부,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 가진 종교적 특징이 복합적으로 공론화를 막아왔던것이다. 2000년대 이후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운동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병역거부자의 감옥행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병역거부자들의 존재, 그들의 역사는 징병제라는 신성화된 대상을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틈을 만들어냈고, 군사주의를 조금씩 허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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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이후 병역거부는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처벌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

    2000년대 이후 병역거부는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처벌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러한 ``비범죄화``의 틀을 넘어서기 위해서 본 연구는 한국 사회의 병역거부 역사를 징병제의 형성과정 속에서 고찰해보았다. 이 는 병역거부를 ``예외적 현상``,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한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병역거부자에 대한 혹독한 탄압과 처벌이 왜 이어졌으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왜 일천했는가를 역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다. 한국 전쟁 직후의 열악한 안보상황 속에서도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은 이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웠다.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되는 것은 박정희 정권이 시작되면서인데, 이는 당시 징집체제 형성의 과정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권력의 근거인 군부를 강화하고, 전 사회의 병영화를 위해 입영률 100%를 사회적 목표로 삼는다. 이후 주민등록제 도입과 같은 전사회적인 통제, 기피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사회적 낙인 등의 집요한 노력을 바탕으로 병역기피자의 비율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 역시 강화되었다. 유신 이후 박정희 정권은 전 사회의 통제를 더욱 강화해 나가면서 처벌을 강화하고, 병역의 도덕화 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병역거부에 대한 탄압 역시 강화되는데, 복무의사에 상관없이 강제입영 했고, 군대 안에서 항명죄로 높은 형량을 선고 받도록 했다. 또한 전사회적인 병역의 ``도덕화``를 진행하면서 병역을 기피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사회악``적인 행위로 낙인찍혀 갔다. 민주화 이후에도 병역거부는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지 못했는데, 이는 한국 사회에 팽배한 군사주의와 이단시 되어왔던 ``여호와의 증인`` 교파에 대한 사회적 터부, 그리고 여호와의 증인이 가진 종교적 특징이 복합적으로 공론화를 막아왔던것이다. 2000년대 이후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운동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병역거부자의 감옥행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병역거부자들의 존재, 그들의 역사는 징병제라는 신성화된 대상을 상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틈을 만들어냈고, 군사주의를 조금씩 허물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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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has always been a hotly debated topic in South Korea since 2000 years. Yet most of the studies on the issue focused on the propriety of criminal punishment on conscientious objectors(COs). This study tries to review the history of conscience objection in South Korea through the making process of conscription system to overcome the previous studies about decriminalization. In this method, this study will explain historically why harsh sufferings of COs and the social stigma on cas have been continued. And it tries to position the COs`` history in the context of resistance against to the conscription system. Though the poor security circumstances right after the Korean War, punishment to the COs in 1950s was not hard compared by 1960s. But since the Park Chung-hee government emerged, punishment to the COs became so severe. It could be understood by the making process of conscription system at that time. The Park Chung-hee military regime set up "Accomplishment of Conscription Rate up to 100%" as a national goal. Since then, the Park regime had persisted to cut down the rate of draft evasion through the adoption of the resident registration system, the criminalizing hardly and stigmatizing draft evaders. In this historical context, punishment to the COs also became severe. After the establishment of Yusin dictatorship in 1972, the Park regime hardly propelled to make the obligation of national defenses as morality by stigmatizing evader as anti-social and immoral behaviors. A suppression of the COs also was tightening. They were drafted into the army compulsorily. In there, more severe sentence was imposed on them. The sufferings of COs could not be a public issue after democratization in 1990s for the following reasons. The militarism of South Korean society, the social stigma on COs as heretics, and the religious traits of Jehovah``s Witnesses obstructed to emerge Conscience Objection as a social problem. From the beginning in 2000, at last the matter of COs could form the social movement and have a position of social issue. Nonetheless, COs still are put in prison. But their history and their existence make break to analysis the conscription system which have regarded as a consecration cri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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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has always been a hotly debated topic in South Korea since 2000 years. Yet most of the studies on the issue focused on the propriety of criminal punishment on conscientious objectors(COs). This study tries to re...

    The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has always been a hotly debated topic in South Korea since 2000 years. Yet most of the studies on the issue focused on the propriety of criminal punishment on conscientious objectors(COs). This study tries to review the history of conscience objection in South Korea through the making process of conscription system to overcome the previous studies about decriminalization. In this method, this study will explain historically why harsh sufferings of COs and the social stigma on cas have been continued. And it tries to position the COs`` history in the context of resistance against to the conscription system. Though the poor security circumstances right after the Korean War, punishment to the COs in 1950s was not hard compared by 1960s. But since the Park Chung-hee government emerged, punishment to the COs became so severe. It could be understood by the making process of conscription system at that time. The Park Chung-hee military regime set up "Accomplishment of Conscription Rate up to 100%" as a national goal. Since then, the Park regime had persisted to cut down the rate of draft evasion through the adoption of the resident registration system, the criminalizing hardly and stigmatizing draft evaders. In this historical context, punishment to the COs also became severe. After the establishment of Yusin dictatorship in 1972, the Park regime hardly propelled to make the obligation of national defenses as morality by stigmatizing evader as anti-social and immoral behaviors. A suppression of the COs also was tightening. They were drafted into the army compulsorily. In there, more severe sentence was imposed on them. The sufferings of COs could not be a public issue after democratization in 1990s for the following reasons. The militarism of South Korean society, the social stigma on COs as heretics, and the religious traits of Jehovah``s Witnesses obstructed to emerge Conscience Objection as a social problem. From the beginning in 2000, at last the matter of COs could form the social movement and have a position of social issue. Nonetheless, COs still are put in prison. But their history and their existence make break to analysis the conscription system which have regarded as a consecration critic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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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김성수, "함석헌 평전: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삼인 2001

    2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지원사" 국방군사연구소 1997

    3 이영린, "한국재림교회사" 시조사 1965

    4 한홍구, "한국의 징병제와 병역거부의 역사. in: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철수와영희 2008

    5 김동춘, "한국의 분단국가 형성과 시민권: 한국전쟁, 초기 안보국가하에서 '국민됨'과 시민권" 비판사회학회 70 (70): 168-189, 2006

    6 강인화, "한국사회의 병역거부운동을 통해 본 남성성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2007

    7 강인철, "한국사회와 양심적 병역거부: 역사와 특성" (7) : 2005

    8 차명제,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활성화 가능성: 유럽과 한국의 평화운동 연구를 중심으로" 한독사회과학회 5 : 1994

    9 진상범, "한국사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국가와 종교의 대응" 8 : 2006

    10 김두식, "평화의 얼굴" 교양인 2007

    1 김성수, "함석헌 평전: 신의 도시와 세속 도시 사이에서" 삼인 2001

    2 국방군사연구소, "한국전쟁지원사" 국방군사연구소 1997

    3 이영린, "한국재림교회사" 시조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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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김동춘, "한국의 분단국가 형성과 시민권: 한국전쟁, 초기 안보국가하에서 '국민됨'과 시민권" 비판사회학회 70 (70): 168-189, 2006

    6 강인화, "한국사회의 병역거부운동을 통해 본 남성성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2007

    7 강인철, "한국사회와 양심적 병역거부: 역사와 특성" (7) : 2005

    8 차명제,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활성화 가능성: 유럽과 한국의 평화운동 연구를 중심으로" 한독사회과학회 5 : 1994

    9 진상범, "한국사회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국가와 종교의 대응" 8 : 2006

    10 김두식, "평화의 얼굴" 교양인 2007

    11 병역거부 연대회의(양심적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타이완 대체복무제도 시찰 보고서" 2004

    12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 2005

    13 전쟁없는세상,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철수와영희 2008

    14 최재희, "징병제의 역사 : 국가폭력과 민주주의의 충돌" 역사문제연구소 69 (69): 218-237, 2004

    15 박노자, "징병제 : 개화기 때 실현되지 못한 근대의 꿈" 74 : 2004

    16 오만규, "집총거부와 안실일 준수의 신앙양심" 삼육대학교 선교와 사회문제연구소 2002

    17 정영신, "죽어도 군에는 가지 않겠다고 일본으로 밀항해" 말 2007

    18 홍성태, "주민등록제도와 총체적 감시사회 : 박정희 독재의 구조적 유산" 9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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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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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10-07 학술지명변경 한글명 :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1-50) ->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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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07-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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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09 1.09 1.12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16 1.11 1.7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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