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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義天의 入宋求法과 宋 僧侶들과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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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본고에서는 의천과 관련된 사료에서 확인되는 송나라 승려와 그들과의 교류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의천은 1085년 4월에 송나라에 가서 송나라 여러 종파의 승려들을 만나고, 불교 관련 서적을 수집하고 1086년 5월에 고려로 돌아왔다. 의천은 1085년 입송 이전부터 송나라 화엄승인 정원과 이미 교류를 하며 관계를 형성하였다. 정원과는 당시 송과 고려 사이를 왕래하던 제3의 인물을 통해 양국의 상황과 불교계 흐름을 파악하였다. 의천과 정원은 단지 서신만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화엄경 관련 서적도 주고받았다. 특히 의천은 입송 전에 정원에게 ‘교승목록’을 전해주는 등 이미 교장 수집 활동을 하고 있었다. 또, 의천은 고려에서 정원의 초상화도 보았으며, 둘은 입송 전에 이미 사제관계를 형성하였다. 입송한 후에는 의천은 밀주~개봉~항주~개봉~명주로 이어지는 입송구법 여정 속에서 화엄, 천태, 선, 율, 범학 등 다양한 종파의 승려들과 교류하였다. 교류시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 의천 귀국시 송별시와 글을 보내 교류사실을 알 수 있는 인물은 약 40여명이다. 입송 당시에 의천은 고려에서 ‘장소목록’을 가지고 갔다. 귀국한 후에도 이들 대부분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비롯하여 서로 필요한 불교 관련 서적을 주고받았으며, 또 서로가 만든 서적을 교감, 교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088년에는 정원이 입적하였는데, 정원의 입적과 관련하여 다른 승려들과의 서신 교류도 주목되며, 의천이 귀국하고 나서 10년이 지난 후에도 몇몇 송나라 승려들과 꾸준히 교류한 것이 확인된다. 의천이 몸소 송나라에 있었던 기간은 1년 남짓이었지만, 그의 구법은 입송하기 전부터 귀국한 이후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실은 신편제종교장총록의 편찬 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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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에서는 의천과 관련된 사료에서 확인되는 송나라 승려와 그들과의 교류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의천은 1085년 4월에 송나라에 가서 송나라 여러 종파의 승려들을 만나고, 불교 관...

    본고에서는 의천과 관련된 사료에서 확인되는 송나라 승려와 그들과의 교류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의천은 1085년 4월에 송나라에 가서 송나라 여러 종파의 승려들을 만나고, 불교 관련 서적을 수집하고 1086년 5월에 고려로 돌아왔다. 의천은 1085년 입송 이전부터 송나라 화엄승인 정원과 이미 교류를 하며 관계를 형성하였다. 정원과는 당시 송과 고려 사이를 왕래하던 제3의 인물을 통해 양국의 상황과 불교계 흐름을 파악하였다. 의천과 정원은 단지 서신만 주고받은 것이 아니라, 화엄경 관련 서적도 주고받았다. 특히 의천은 입송 전에 정원에게 ‘교승목록’을 전해주는 등 이미 교장 수집 활동을 하고 있었다. 또, 의천은 고려에서 정원의 초상화도 보았으며, 둘은 입송 전에 이미 사제관계를 형성하였다. 입송한 후에는 의천은 밀주~개봉~항주~개봉~명주로 이어지는 입송구법 여정 속에서 화엄, 천태, 선, 율, 범학 등 다양한 종파의 승려들과 교류하였다. 교류시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과 그렇지 않은 인물, 의천 귀국시 송별시와 글을 보내 교류사실을 알 수 있는 인물은 약 40여명이다. 입송 당시에 의천은 고려에서 ‘장소목록’을 가지고 갔다. 귀국한 후에도 이들 대부분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비롯하여 서로 필요한 불교 관련 서적을 주고받았으며, 또 서로가 만든 서적을 교감, 교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088년에는 정원이 입적하였는데, 정원의 입적과 관련하여 다른 승려들과의 서신 교류도 주목되며, 의천이 귀국하고 나서 10년이 지난 후에도 몇몇 송나라 승려들과 꾸준히 교류한 것이 확인된다. 의천이 몸소 송나라에 있었던 기간은 1년 남짓이었지만, 그의 구법은 입송하기 전부터 귀국한 이후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결실은 신편제종교장총록의 편찬 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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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In the present manuscript, Buddhist monks in the Song Dynasty who can be confirmed in historical records as being related to Uicheon, and his interactions with them, are reexamined. Uicheon went to Song in April 1085; he met with Buddhist monks of various denominations and collected Buddhism-related books, returning to Goryeo in May 1086. Uicheon had already interacted and established a link with Jeongwon, a Huayan monk in Song, before he went there in 1085. Uicheon understood the situation of the two countries and the flow of Buddhism by communicating with Jeongwon through a third person who traveled between Song and Goryeo. Uicheon and Jeongwon exchanged not only letters, but also books related to the Avatamska Sutra. In particular, Uicheon was already performing “gyo-jang” collection activities such as sending Jeongwon “Gyoseungmongnok.” In addition, Uicheon saw Jeongwon’s portrait in Goryeo, and they had already formed a student-teacher relationship even before Uicheon went to Song. After Uicheon went to Song, he interacted with Buddhist monks of various denominations including Huayan, Tiantai, Zen, vinaya, and Buddhist studies during his journey of seeking Dharma in Song from Milju to Gaebong, Hangju, Gaebong, and Myeongju. Uicheon interacted with approximately 40 Buddhist monks in Song, including those whose time of interaction can and cannot be specified, and those whose interaction can be identified by farewell poems or works of writing sent to him when he was returning to Goryeo. Uicheon took a “catalog of writing and commentaries” with him when he went to Song and collected writing and commentaries from Buddhist monks in Song. He corresponded with most of those monks even after he returned to Goryeo. They maintained contact, asking after each other, exchanging Buddhism-related books they needed, and requesting the proofreading of each other’s books. In 1088, Jeongwon passed into nirvana; correspondence with other monks regarding Jeongwon’s passing is worth noting, and it can be confirmed that correspondence with some of the monks in Song continued even 10 years after Uicheon returned to Goryeo. Even though Uicheon’s stay in Song only lasted a little over a year, his visit to Song was meaningful in that his seeking for truth continued from before he went to Song to after returning to Goryeo, significantly affecting his activity after his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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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present manuscript, Buddhist monks in the Song Dynasty who can be confirmed in historical records as being related to Uicheon, and his interactions with them, are reexamined. Uicheon went to Song in April 1085; he met with Buddhist monks of var...

    In the present manuscript, Buddhist monks in the Song Dynasty who can be confirmed in historical records as being related to Uicheon, and his interactions with them, are reexamined. Uicheon went to Song in April 1085; he met with Buddhist monks of various denominations and collected Buddhism-related books, returning to Goryeo in May 1086. Uicheon had already interacted and established a link with Jeongwon, a Huayan monk in Song, before he went there in 1085. Uicheon understood the situation of the two countries and the flow of Buddhism by communicating with Jeongwon through a third person who traveled between Song and Goryeo. Uicheon and Jeongwon exchanged not only letters, but also books related to the Avatamska Sutra. In particular, Uicheon was already performing “gyo-jang” collection activities such as sending Jeongwon “Gyoseungmongnok.” In addition, Uicheon saw Jeongwon’s portrait in Goryeo, and they had already formed a student-teacher relationship even before Uicheon went to Song. After Uicheon went to Song, he interacted with Buddhist monks of various denominations including Huayan, Tiantai, Zen, vinaya, and Buddhist studies during his journey of seeking Dharma in Song from Milju to Gaebong, Hangju, Gaebong, and Myeongju. Uicheon interacted with approximately 40 Buddhist monks in Song, including those whose time of interaction can and cannot be specified, and those whose interaction can be identified by farewell poems or works of writing sent to him when he was returning to Goryeo. Uicheon took a “catalog of writing and commentaries” with him when he went to Song and collected writing and commentaries from Buddhist monks in Song. He corresponded with most of those monks even after he returned to Goryeo. They maintained contact, asking after each other, exchanging Buddhism-related books they needed, and requesting the proofreading of each other’s books. In 1088, Jeongwon passed into nirvana; correspondence with other monks regarding Jeongwon’s passing is worth noting, and it can be confirmed that correspondence with some of the monks in Song continued even 10 years after Uicheon returned to Goryeo. Even though Uicheon’s stay in Song only lasted a little over a year, his visit to Song was meaningful in that his seeking for truth continued from before he went to Song to after returning to Goryeo, significantly affecting his activity after his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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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Table of Contents)

    • I. 머리말
    • II. 입송 이전 정원과의 교류
    • III. 입송 당시 송 승려들과의 교류
    • IV. 귀국 이후 송 승려들과의 교류
    • V. 맺음말
    • I. 머리말
    • II. 입송 이전 정원과의 교류
    • III. 입송 당시 송 승려들과의 교류
    • IV. 귀국 이후 송 승려들과의 교류
    • V. 맺음말
    • <국문초록>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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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Reference)

    1 최연식, "「大覺國師碑」의 建立過程에 대한 새로운 고찰" 한국사연구회 83 : 1993

    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6" 2013

    3 黃時鑒, "한국불교의 좌표" 綠園스님 古稀紀念學術論叢刊行委員會 1997

    4 허정희, "의천의 불교적 이상과 실천 -입송구법을 중심으로-" 한국불교연구원 (28) : 179-198, 2008

    5 박용진, "의천의 『新編諸宗敎藏總錄』編纂과 華嚴 및 天台 章疏" 한국중앙사학회 22 : 2005

    6 보정, "의천불교사상의 회통적 성격에 관한 연구" 원광대학교 대학원 2008

    7 김상현, "의천(義天)의 천태종(天台宗) 개창(開創) 과정(過程)과 그 배경(背景)" 천태불교문화연구원 2 : 2000

    8 이창안, "송대(宋代) 설숭(契嵩)의 유불융합(儒佛融合)" 유학연구소 39 : 349-371, 2017

    9 김성규, "북송의 개봉과 외교" 중국사학회 13 : 2001

    10 박용진, "동아시아불교의 역경과 대장경 편찬 -송(宋)과 고려의 대장경 편찬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회 (55) : 109-142, 2017

    1 최연식, "「大覺國師碑」의 建立過程에 대한 새로운 고찰" 한국사연구회 83 : 1993

    2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16" 2013

    3 黃時鑒, "한국불교의 좌표" 綠園스님 古稀紀念學術論叢刊行委員會 1997

    4 허정희, "의천의 불교적 이상과 실천 -입송구법을 중심으로-" 한국불교연구원 (28) : 179-198, 2008

    5 박용진, "의천의 『新編諸宗敎藏總錄』編纂과 華嚴 및 天台 章疏" 한국중앙사학회 22 : 2005

    6 보정, "의천불교사상의 회통적 성격에 관한 연구" 원광대학교 대학원 2008

    7 김상현, "의천(義天)의 천태종(天台宗) 개창(開創) 과정(過程)과 그 배경(背景)" 천태불교문화연구원 2 : 2000

    8 이창안, "송대(宋代) 설숭(契嵩)의 유불융합(儒佛融合)" 유학연구소 39 : 349-371, 2017

    9 김성규, "북송의 개봉과 외교" 중국사학회 13 : 2001

    10 박용진, "동아시아불교의 역경과 대장경 편찬 -송(宋)과 고려의 대장경 편찬을 중심으로-" 한국사상사학회 (55) : 109-142, 2017

    11 의천, "대각국사집" 동국대학교출판부 2012

    12 "대각국사외집"

    13 "대각국사문집"

    14 사토 아쯔시, "대각국사 의천의 입송 대각국사 의천의 입송-교(敎)와 사(史)의 측면에서"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10 : 2006

    15 박용진, "대각국사 의천 연구" 국민대학교 대학원 2005

    16 "고려사"

    17 장총, "고려 대각국사 의천과 항주 혜인사(慧因寺) 정황"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18 : 2017

    18 저경하, "高麗 義天과 宋 蘇軾의 교류에 관한 一考察" 중앙사학연구소 (39) : 145-184, 2014

    19 저경하, "高麗 義天과 宋 楊傑의 불교 교류에 대한 재검토" 역사문화연구소 (49) : 3-30, 2014

    20 金相永, "義天의 天台宗 開創과 관련한 몇 가지 問題" 중앙승가대학교 8 : 1999

    21 千惠鳳, "義天의 入宋求法과 宋刻 注華嚴經板"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54-56 : 1987

    22 박용진, "義天에 대한 연구의 현황과 그 전망" 한국학연구소 32 : 191-220, 2009

    23 박용진, "義天 그의 생애와 사상" 혜안 2011

    24 崔鳳春, "海東高僧義天硏究"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5

    25 吉田剛, "杭州慧因院(高麗寺)における華嚴學の動向" 불교학연구회 8 : 271-296, 2004

    26 석길암, "宋에 대한 高麗의 佛典 供與와 그 의도" 한국사상사학회 (40) : 355-376, 2012

    27 杜成輝, "宋代印經院考" 중국사학회 (97) : 117-138, 2015

    28 陳景富, "天入宋求法活動及其弘法業績" 天台佛敎文化硏究院 2 : 2000

    29 박용진, "大覺國師文集의 편찬과 그 정치사회적 배경" 한국학중앙연구원 30 (30): 33-57, 2007

    30 崔柄憲, "大覺國師 義天의 渡宋活動과 高麗·宋의 佛敎交流-晋水淨源·慧因寺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震檀學會 71·72 : 1991

    31 崔柄憲, "大覺國師 義天의 天台宗 創立과 宋의 天台宗"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47 : 2002

    32 김상현, "大覺國師 義天 關係 參考文獻" 천태불교문화연구원 4 : 2002

    33 신규탁, "古代 韓中佛敎交流의 一考察 ― 高麗의 義天과 浙江의 淨源 ―" 한국동양철학회 (27) : 229-259, 2007

    34 김상일, "北宋時代의 外交와 商人·僧侶 -宋-高麗 關係를 中心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2017

    35 李宁, "北宋与高丽佛教交流研究" 河北大學 2015

    36 李範鶴, "北宋 後期의 政治와 黨爭史의 再檢討"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4 : 1992

    37 최기표, "僊鳳寺 大覺國師碑의 의문점" 금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3 : 2008

    38 褚慶霞, "人的交流를 통한 高麗와 宋 關係史의 再照明"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2013

    39 徐新啦, "义天与其佛教思想研究" 浙江大學 2014

    40 張元圭, "中國佛敎史" 고려원 1983

    41 김영미, "11세기 후반~12세기 초 고려·요 외교관계와 불경 교류" 한국역사연구회 43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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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KCI등재
    2017-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3-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KCI등재
    2010-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7-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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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0.4 0.4 0.49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0.45 0.43 1.181 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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