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SS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검색

인기 검색어

    다국어 입력

    http://chineseinput.net/에서 pinyin(병음)방식으로 중국어를 변환할 수 있습니다.

    변환된 중국어를 복사하여 사용하시면 됩니다.

    예시)
    • 中文 을 입력하시려면 zhongwen을 입력하시고 space를누르시면됩니다.
    • 北京 을 입력하시려면 beijing을 입력하시고 space를 누르시면 됩니다.
    닫기
    KCI등재

    이승만정권 초기의 사형제도 운용에 대한 평가 : 제주4.3사건 및 여순사건을 중심으로 = An Evaluation of the Operation of the Death Penalty in the early Syngman Rhee Regime : Focused on the Jeju April 3 Incident and the Yeosu-Suncheon Incident

    한글로보기

    https://www.riss.kr/link?id=A103962416

    • 0

      상세조회
    • 0

      다운로드
    서지정보 열기
    • 내보내기
    • 내책장담기
    • 공유하기
      • URL 복사
    • 오류접수
    인용문이 복사되었습니다.

    부가정보

    다국어 초록 (Multilingual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The first president Syngman Rhee hovered between life and death as a political criminal during the Korean Empire era. However, he ruthlessly put citizens to death to suppress those who had opposed or resisted him with no legal procedure, which lasted for nearly 2 years while he was in office as the first president of Korea. Several years ago, the Ministry of Justice released statistics on executions since the founding of the country. According to the data, there were less executions during Syngman Rhee regime than those of Park Chung-hee regime. However, it probably underestimated and distorted facts. Although Syngman Rhee has generally been referred to as a ‘Founding Father,’ his actions since the government formation indicates he is a ruler of autocratic police state. In fact, he engaged in judicial murders that were extralegal massacre, based on formal judicial proceedings.
    Thus, this study is mainly aimed at exploring how he used the death penalty as a tool to maintain his regime while suppressing the incidents in Jeju on April 3rd and Yeosun, which occurred during the early stage of his regime. To accomplish the objective, elements of crimes leading to the death penalty and special cases of criminal trials for death sentences during the period were explored. When the death sentences and executions during the emergency amid the government formation were examined, it was clear that the death penalty was a tool of suppression and tyranny beyond a punishment.
    번역하기

    The first president Syngman Rhee hovered between life and death as a political criminal during the Korean Empire era. However, he ruthlessly put citizens to death to suppress those who had opposed or resisted him with no legal procedure, which lasted ...

    The first president Syngman Rhee hovered between life and death as a political criminal during the Korean Empire era. However, he ruthlessly put citizens to death to suppress those who had opposed or resisted him with no legal procedure, which lasted for nearly 2 years while he was in office as the first president of Korea. Several years ago, the Ministry of Justice released statistics on executions since the founding of the country. According to the data, there were less executions during Syngman Rhee regime than those of Park Chung-hee regime. However, it probably underestimated and distorted facts. Although Syngman Rhee has generally been referred to as a ‘Founding Father,’ his actions since the government formation indicates he is a ruler of autocratic police state. In fact, he engaged in judicial murders that were extralegal massacre, based on formal judicial proceedings.
    Thus, this study is mainly aimed at exploring how he used the death penalty as a tool to maintain his regime while suppressing the incidents in Jeju on April 3rd and Yeosun, which occurred during the early stage of his regime. To accomplish the objective, elements of crimes leading to the death penalty and special cases of criminal trials for death sentences during the period were explored. When the death sentences and executions during the emergency amid the government formation were examined, it was clear that the death penalty was a tool of suppression and tyranny beyond a punishment.

    더보기

    국문 초록 (Abstract) kakao i 다국어 번역

    일제의 식민지배와 미군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자주국가 건설의 서막을 열어야 했던 제1공화국 이승만정권은 냉전의 세계질서 속에서 남북 분단이 예견되는 사정 아래 가장 시급한 국정의 방향을 체제 유지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열악한 정치적 기반을 조속히 정비하려면 내부적으로 통치권력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을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전환기 한국사회는 반공주의를 체제 유지의 사활을 건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던 만큼 조직적으로 무장화되어 가는 좌익세력의 준동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혹한 방법을 동원하여 탄압하려 했던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도에 따라 이승만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한편으로 법외적 학살을 동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합법을 가장한 형식적인 사법절차에 따라 사법살인도 불사했던 것이다.
    이 연구는 특히 후자에 해당하는 사법살인을 실체적 측면에서 정당화해 주었던 사형규정 범죄구성요건과 절차적 측면에서 손쉽게 사형선고를 남용할 수 있었던 형사재판상 특례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떠한 측면에 의한 것이었든 헌법이 존재하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규범체계에서는 전혀 허용하기 어려운 위헌적이면서 위법한 요소들이 당시의 사형제도 운용에 내재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전제 아래 정부수립 이후 1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던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이라는 국가비상사태에 직면하여 그 사후처리에 있어서 특히 군법회의에 의한 사형선고와 그에 따른 집행이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국가사법작용의 일부가 아니라 사법살인에 지나지 아니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승만정권 초기에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으로서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에 관련된 사형 또한 법외적 학살과 동일한 불법행위임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국가는 더 이상 이를 불행했지만 불가피했던 과거사로 회피해서는 안 되며 당시의 사형제도 운용과 관련된 객관적 평가와 책임 있는 해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번역하기

    일제의 식민지배와 미군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자주국가 건설의 서막을 열어야 했던 제1공화국 이승만정권은 냉전의 세계질서 속에서 남북 분단이 예견되는 사정 아래 가장 시급한 국정...

    일제의 식민지배와 미군정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자주국가 건설의 서막을 열어야 했던 제1공화국 이승만정권은 냉전의 세계질서 속에서 남북 분단이 예견되는 사정 아래 가장 시급한 국정의 방향을 체제 유지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열악한 정치적 기반을 조속히 정비하려면 내부적으로 통치권력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을 용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전환기 한국사회는 반공주의를 체제 유지의 사활을 건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던 만큼 조직적으로 무장화되어 가는 좌익세력의 준동을 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혹한 방법을 동원하여 탄압하려 했던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의도에 따라 이승만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한편으로 법외적 학살을 동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합법을 가장한 형식적인 사법절차에 따라 사법살인도 불사했던 것이다.
    이 연구는 특히 후자에 해당하는 사법살인을 실체적 측면에서 정당화해 주었던 사형규정 범죄구성요건과 절차적 측면에서 손쉽게 사형선고를 남용할 수 있었던 형사재판상 특례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어떠한 측면에 의한 것이었든 헌법이 존재하는 민주적 법치국가의 규범체계에서는 전혀 허용하기 어려운 위헌적이면서 위법한 요소들이 당시의 사형제도 운용에 내재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전제 아래 정부수립 이후 1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던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이라는 국가비상사태에 직면하여 그 사후처리에 있어서 특히 군법회의에 의한 사형선고와 그에 따른 집행이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국가사법작용의 일부가 아니라 사법살인에 지나지 아니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승만정권 초기에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으로서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에 관련된 사형 또한 법외적 학살과 동일한 불법행위임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국가는 더 이상 이를 불행했지만 불가피했던 과거사로 회피해서는 안 되며 당시의 사형제도 운용과 관련된 객관적 평가와 책임 있는 해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더보기

    참고문헌 (Reference)

    1 황남준, "해방전후사의 인식3" 한길사 2012

    2 헌병사편찬위원회, "한국헌병사" 1952

    3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제1권"

    4 고석, "한국 군사재판 제도의 성립과 개편 과정에 관한 연구 : 국방경비법에서 군법회의법 제정 시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6

    5 김순태, "제주4.3민중항쟁 당시 계엄에 관한 고찰-계엄의 법적 근거 유무에 대한 판단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법학연구회 (14) : 1998

    6 최호근, "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 책세상 2005

    7 변동명, "제1공화국 초기의 국가보안법 제정과 개정" 5.18연구소 7 (7): 85-122, 2007

    8 유영익, "젊은 날의 이승만 : 한성감옥생활(1899-1904)과 옥중잡기 연구" 연세대학교출판부 2002

    9 魯永基, "육군 창설기(1947년-1949년)의 숙군에 관한 연구" 成均館大學校 大學院 1998

    10 김병훈, "역사를 왜곡한 한국인" 반디출판사 2006

    1 황남준, "해방전후사의 인식3" 한길사 2012

    2 헌병사편찬위원회, "한국헌병사" 1952

    3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사 제1권"

    4 고석, "한국 군사재판 제도의 성립과 개편 과정에 관한 연구 : 국방경비법에서 군법회의법 제정 시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6

    5 김순태, "제주4.3민중항쟁 당시 계엄에 관한 고찰-계엄의 법적 근거 유무에 대한 판단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법학연구회 (14) : 1998

    6 최호근, "제노사이드 : 학살과 은폐의 역사" 책세상 2005

    7 변동명, "제1공화국 초기의 국가보안법 제정과 개정" 5.18연구소 7 (7): 85-122, 2007

    8 유영익, "젊은 날의 이승만 : 한성감옥생활(1899-1904)과 옥중잡기 연구" 연세대학교출판부 2002

    9 魯永基, "육군 창설기(1947년-1949년)의 숙군에 관한 연구" 成均館大學校 大學院 1998

    10 김병훈, "역사를 왜곡한 한국인" 반디출판사 2006

    11 김득중, "여순사건과 이승만 반공체제의 구축"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2004

    12 김춘수, "여순사건 당시의 계엄령과 군법회의" 부경역사연구소 (6) : 2009

    13 주호노, "사형제도의 폐지와 그 대안에 관한 소고" 법학연구소 47 (47): 591-622, 2012

    14 김득중,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의 법-역사적 접근 : ‘국방경비법’을 중심으로" 아세아문제연구소 53 (53): 7-40, 2010

    15 문준영, "미군정 법령체제와 국방경비법" 민주주의법학연구회 (34) : 97-136, 2007

    16 오인환, "리승만 : 이승만의 삶과 국가" 나남 2013

    17 정인섭, "대한민국의 수립과 구법령의 승계 : 제헌헌법 제100조 관련 판례의 분석" 서울국제법연구회 1 : 2000

    18 (사)여수지역사회연구소, "다시 쓰는 여순사건보고서" 한국학술정보 2012

    19 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1" 역사비평사 2004

    20 이재승, "국가범죄" 앨피 2010

    21 백윤철, "계엄법에 관한 연구 -일제의 계엄령과 건국 초기의 계엄법-" 법학연구소 33 (33): 87-109, 2009

    22 이상철, "계엄법에 관한 문제점 고찰" 안암법학회 (12) : 2001

    23 최경옥, "美軍政法令에 관한 硏究" 한국법사학회 (29) : 135-171, 2004

    24 HQ, "USAFIK, G-2 Periodic Report" 1948

    25 "RG 407: The Adjutant General’s Office, Entry 368"

    26 Arrest of Korean Constabulary and Korean Coast Guard Personnel by National Police, "RG 338, Provisional Military Advisory Group, 1948-1949 and Korean Military Advisory Group" 1948

    27 한국인권재단, "21세기의 인권II" 한길사 2000

    28 한국인권재단, "21세기의 인권I" 한길사 2000

    29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10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제6권" 2010

    더보기

    동일학술지(권/호) 다른 논문

    동일학술지 더보기

    더보기

    분석정보

    View

    상세정보조회

    0

    Usage

    원문다운로드

    0

    대출신청

    0

    복사신청

    0

    EDDS신청

    0

    동일 주제 내 활용도 TOP

    더보기

    주제

    연도별 연구동향

    연도별 활용동향

    연관논문

    연구자 네트워크맵

    공동연구자 (7)

    유사연구자 (20) 활용도상위20명

    인용정보 인용지수 설명보기

    학술지 이력

    학술지 이력
    연월일 이력구분 이력상세 등재구분
    2022 평가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201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6-01-01 등재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KCI등재
    2012-01-01 등재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KCI등재
    2009-01-01 등재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KCI등재
    2008-01-01 등재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KCI등재후보
    2006-01-01 등재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KCI등재후보
    더보기

    학술지 인용정보

    학술지 인용정보
    기준연도 WOS-KCI 통합IF(2년) KCIF(2년) KCIF(3년)
    2016 1.14 1.14 1.17
    KCIF(4년) KCIF(5년) 중심성지수(3년) 즉시성지수
    1.05 0.94 1.239 0.25
    더보기

    이 자료와 함께 이용한 RISS 자료

    나만을 위한 추천자료

    해외이동버튼